한국 최초 뮤지컬은 전세권 연출의 뮤지컬 카니발 수첩이다

권종민 기자 | 기사입력 2018/01/25 [09:16]

한국 최초 뮤지컬은 전세권 연출의 뮤지컬 카니발 수첩이다

권종민 기자 | 입력 : 2018/01/25 [0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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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한국 최초의 뮤지컬은 무엇인가? "살짜기 옵서예"?

 

2. 한국 최초의 『뮤지컬』은 000의 000이다.(2)

 

3. 뮤지컬,musical, 한국 최초의 뮤지컬은 과연 어떤 작품인가?(3)

 

4.[단독]한국최초의 뮤지컬 연출자는 가수 전인권 형, 전세권 연출가

 

5.한국 최초의 뮤지컬은 전세권 연출의 000 이다 - 최초 블랙리스트에 희생 당한 한국 최초 뮤지컬

 

6.전세권 연출의 ‘극단 제3극장’은 한국 최초의 뮤지컬 ‘새우잡이’를 국립극장 무대에 올린다.

 

7. 한국 최초의 뮤지컬은 전세권 연출의 뮤지컬 카니발 수첩이다

 

인터뷰의 저작권은 문화예술의전당 www.lullu.net 에 있습니다. 인용,보도 시 출처를 밝혀주시기 바랍니다.

 

 

  한국 최초의 뮤지컬 <새우잡이> 작.연출 전세권은 가수 전인권의 형이다.

 

1965년 뮤지컬 <새우잡이>의 연출가 전세권은 작곡가 오경일과 개인적인 친분으로 뮤지컬 <새우잡이> 작곡을 의뢰한다. 무대가 삼류인생들의 주 무대인 선창이라는 점과 등장인물들이 뱃사람과 작부들이라는 분위기에 맞추어 줄 것을 요구했다. 또한 전세권은 한국적인 뮤지컬을 위해 음악도 민요조나 타령조를 가미하여 작곡하기를 청하였다. 뮤지컬에서 오케스트라의 역할에 큰 의미를 부여했던 전세권은 열악한 제작비를 염두에 두고 지휘자 박은성 에게 부탁하여 젊은 음악인들로 구성된 .필하모니 오케스트라가 반주를 맡았다.

 

그러나 앞서 보도한 동아일보 기사대로 공연에서 오케스트라 연주는, 막상 공연의 막을 올리는 날 공연이 올라가기 전 관객이 3명에 불과하자 연주자들이 출연료에 불안을 느끼고 공연에 불참하고 악기를 챙겨 공연장을 떠나는 황당한 사건이 벌어진다. 공연에의 진행은 불가피하기에 전세권은 연습 때 반주를 맡았던 경희대 음대 재학생의 피아노 반주만으로 공연을 올리게 된다. 한국 최초의 창작 뮤지컬 <새우잡이>는 이렇게 우여곡절을 겪으며 가까스로 막을 올릴 수 있었다.

 

19658월 국립극장에서의 초연 공연은 이렇게 단 4명의 관객과 함께 시작하여, 다음날은 피아노 반주 없이 테이프 MR로 진행되어져 150명의 관객이 들어와 총 관극인원은 연출 포함하여 155명이라는 기록 아닌 참사의 기록을 갖게 된다.

 

훗날 공연전문계간지 극작에서 공연까지에 기고한 글에서 전세권은 그 당시 참담했던 심정을 이렇게 토해낸다.

이렇게 우리나라 최초의 뮤지컬(새우잡이)은 피아노 반주로 막을 올렸다. 객석엔 막 올리기 전 한 사람이 더 들어와 4명의 관객과 나, 이렇게 5명의 관객 앞에 30여 명의 출연진이 젊음의 열기를 뿜으며 한국 최초의 뮤지컬은 시작되었다. 나는 자꾸만 눈물이 났다. 그리고 다짐했다. 오늘의 이 5명의 관객은 훗날 만원사례의 관객을 만드는 견인차가 되게 하리라! 둘째날 150명의 관객이 들어와 155명의 관객으로 첫 번째 뮤지컬은 무식칼로 끝이 났다” - 공연에서 극작까지, P75 남기고 싶은 이야기 , 전세권 -

 

 

한국 뮤지컬사 연보는 이렇게 정리되야 한다.

1965826, 27일 국립극장 (현재 명동예술극장)에서 한국 최초의 뮤지컬 <새우잡이>가 전세권 작.연출로 공연되었다.

 

1966722~ 726(5일 간) 매일 330, 72회 공연 , 후원 제3화학(현재 한독약품), 주최 주간한국, 황유철 작, 안길웅 작곡, 이운철 안무, 전세권 연출, 김홍종.김호근 조연출, 봉봉사중창단, 쏠리스트로 엄정행(당시 경희음대2년 재학)이 특별출연했고, 출연진은 미국에서 뮤지컬 워크숍을 거친 김석강, 이로미, 그리고 국내의 뮤지컬 탤런트 김기일, 이성웅,장욱제,이신재,이완호,박웅,장미자,이주실,원미원,윤여정 등 30여 명의 연기자가 출연했다.

 

이 공연의 제목은 뮤지컬 <카니발 수첩>이다.

 

그리고 뮤지컬 <카니발 수첩>의 성공적인 공연이후 3개월 지나서 예그린 악단의 살짜기 옵서에가 공연되는 것이다.

19661026일 시민회관에서 <살짜기 옵서예>가 막을 올려 29일까지 4일 간 공연하게 된다

 

그래서 한국뮤지컬 최초의 연대기는 수정되어 다시 바르게 써 져야 하는 것이다.

 

난형난제

이제 연재를 마쳐야 할 시간이다. 작가이자 연출이신 전세권 선생은 한국 최초의 뮤지컬로 <새우잡이>를 말씀하신다. 논문의 저자인 장연희도  뮤지컬 <새우잡이>는 오버추어를 비롯한 14개의 넘버를 갖고 있고 오케스트라와 합창단을 구성하여 준비된 공연으로 이룩되었고  무용 또한 작품에 맞추어 새롭게 창작된 것이며 등등의 이유로 해서 (논문의 끝부분 참조) 한국 뮤지컬의 효시는 뮤지컬 <새우잡이>라고 말한다.

 

이 글을 쓰고 있는 기자는 아니다, 한국 뮤지컬의 효시, 한국 최초의 뮤지컬은 <새우잡이>가 아니다 라고 말한다.

그러면서 난형난제네요. 한다.

기자는 뮤지컬 <카니발 수첩>을 한국뮤지컬의 효시이며, 한국 최초의 뮤지컬로 정의한다.

 

친모가 곰보라서 그런 것이 아니다. 태동은 뮤지컬 <새우잡이>이지만 명확하게 정의되어야 하는 뮤지컬로는

전세권 연출이 19667월 국립극장에서 막을 올린 뮤지컬 <청춘 카니발>

우리나라 최초의 뮤지컬이며 한국 뮤지컬의 효시인 것이다.

 

왜 뮤지컬 <새우잡이>가 아니고 뮤지컬 <카니발 수첩>이라고 하는 이유에 대해서는  이전 글을 살펴보면 이미 기술되어 있다. 이제 마지막 사진 하나만 투척한다.

 

뮤지컬 <카니발>의 공연프로그램 사진이다. 공연 프로그램에 뮤지컬이라고 장르가 명기되어 있고, 5일 간 , 하루 2회씩 공연했다. 극장이 미어터졌다. 관객이 넘쳤고, 토코페롤을 생산하는 독일계회사가 후원했고, 주간한국이 공연을 주최했고, 20여 곡의 뮤지컬 넘버가 있었고, 한상일이 극중 부른 '애모의 노래'는 장안의 화제였고,  30인조 오케스트라가 라이브로 연주했다.

 

한국 문화계 최초의 블랙리스트인 '한국 최초 뮤지컬'에 대한 적폐를 이번 문재인 정부는 꼭 바로 잡아야 한다.

한국 최초의 뮤지컬 , 한국 뮤지컬의 효시, 제3극장, 전세권 연출의 뮤지컬 '카니발 수첩'은 가장 화려하게, 대접 받으며, 한국 최고의 공연장에서 재공연되어야 한다

 

▲ 한국 최초의 뮤지컬은 전세권 연출의 뮤지컬 <카니발 수첩>이다.    © 문화예술의전당

 

마지막으로 난형난제의 화폐 소개

▲     © 문화예술의전당 편집장 개인 수집품

 

▲     © 문화예술의전당 편집장 개인수집품

 

이 두 동전은 무엇이 다를까요? 우선 가운데 '호'자에 있는 칠보색깔이 다릅니다. 물론 그것도 중요합니다.

이 동전은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식 화폐로 상평통보와 달리 가운데 구멍이 없는 것이 특징입니다.

 고종 19년 서기 1882년 7월에 3가지 액면 즉, 대동1전, 대동2전, 대동3전으로 발행되었으며, 재질은 '은' 입니다.

대동전은 발행되자마자 은화의 본질적인 가치가 높고 은과 칠보의 아름다움 그 자체 때문에 부유층의 손에 들어가

사장되어 유통이 활발하지 못하게 되어 일반인이 흔히 볼 수 없었던 화폐입니다.

 

전세권 작. 연출의 뮤지컬 '새우잡이'와  전세권 연출의 뮤지컬 '카니발 수첩'이 난형난제 이듯

이 두 녀석 또한 난형난제입니다.

이 두 녀석의 차이는 '칠보의 색깔차이'이외에 크기는 비슷한데 무게가 다릅니다.

위의 녀석이 크기는 29m/m에 , 무게는 11g 이며,   아래 녀석은 크기는 32.5mm, 무게는  10.9gram 입니다.

당연히 위의 녀석이 비싸고 희귀합니다.

 

 전세권 연출과의 인터뷰 분량이 한 두꼭지 남아있습니다. 뮤지컬 '카니발 수첩'에 대한 이야기도 많이 있구요.

 

[권종민 기자] lullu@lull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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