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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선희의 네번째 일기, '그림자 극장', 화봉갤러리, 갈등은 살아있다는 증거

경영희 기자 | 기사입력 2017/11/27 [03:35]

진선희의 네번째 일기, '그림자 극장', 화봉갤러리, 갈등은 살아있다는 증거

경영희 기자 | 입력 : 2017/11/27 [03:35]

 

▲  진선희 개인전 '그림자극장', 화봉갤러리,wanderer_oil on canvas_116.5x90.6cm_2010


늘 만나던 애인에게서 문득문득 낯선 매력들을 발견하는 순간, 혹은 누구도 여태 모르는 숨겨진 맛집들을 심심찮게 찾아내는 소소한 희열. 이런 경험들은 뻔한 반복이 아니어서 즐겁고 설렌다. 단지 이전에 보지 못하던 것이기 때문만이 아니라 미래와 맞닿아 있기 때문이다. 발견의 기쁨과 보람이다.
 
대개의 사람들이 잘 기억하지 못하거나 점 몇 개 찍어댄 수준의 스토리라 폐기해 버리고 마는 꿈. 하지만 거의 매일 꾸는 꿈에서 대어들을 발견해 낚아 올리는 화가가 있다면 이 얼마나 큰 기쁨이자 행운인가. 밖으로 발품 팔지 않고 자기로의 여행에서 얼마든 답을 구하는 모습은 일면 제 집안의 파랑새를 일찌감치 알아챈 현자와도 같을 것이다. 이는 찾고자 하는 진짜 자기를 꿈이라는 침몰한 보물선에서 캐 올리는 셈이다.

▲  진선희 개인전 '그림자극장', 화봉갤러리, 지난밤의 위로_oil on canvas_145.5x97.0cm_2014


“제가 저를 너무 잘 알아요.” 인터뷰를 위해 전시장에서 만난 진선희 작가의 이 힘준 한마디는 그간 자기로의 여행에서 얻은 소기의 성과이기도 하다. 팽창된 자의식의 반영이 아니다. 그저 ‘묻는 말에 어쨌거나 답하기’, ‘자기 작업을 언어화하기’ 라는 인터뷰의 다소 불편한 생리 앞에서 멈칫거리던 그녀가 혹시나 망쳐버릴 것만 같은 자신의 인터뷰를 미리 상상하며 덧붙인 말이다.
 
이렇게 연한 속살을 투명하게 드러낸 탓에 작가와 작업이 자석처럼 척 붙어 버린 꽤 매력적인 장면이 되어버렸다. 말하는 목소리와 노래하는 목소리가 같아야 진짜라는 모 가수 겸 음악PD의 평가기준이 설득력을 얻는 순간이었다.

▲진선희 개인전 '그림자극장', 화봉갤러리,떠도는 그림자들_oil on canvas_130x130cm_2014


진작가의 그림은 철저히 그녀 자신에서 시작된다. 방랑자, 이방인, 떠도는 그림자, 말라 죽음… 제목만 나열해 보아도, 대체 어떤 삶의 폭력이 그녀를 후려치고 지나간 걸까 란 의문을 지울 수 없다. 그만큼 그녀가 깊은 밑바닥에서 건져 올린 심상들은 슬프고 아프다. 망치로 툭 치면 바르르 부셔져 버릴듯한 회색 빛 인물들은 이목구비는 물론 머리털도 없다. 아예 머리가 절단된 형태들도 태연하게 등장한다.
 
여자이기보단 인간으로서의 자신을 표현하고 싶었고, 나아가 자신의 모습을 통해 나약할 수 밖에 없는 보편적인 인간상을 투영하고 싶었기 때문이라 한다.
 
가끔씩 여성이란 걸 보여주는 유일한 상징은 치마다. 하지만 치마는 여자에게 사회적으로 주어진 심볼이다. 태생적으로 갖는 머리털이나 이목구비들은 제거해 버리고 사회적 상징만을 남겨놓은 대목에서는 수동성과 피해의식들이 묘하게 아른댄다. 그리고 녹색. 치마에 쓰인 녹색은 치마가 갖는 여성성을 다시 은근슬쩍 흐려놓는다. 녹색은 중성적인 색채로 여성과 남성의 분명한 경계에 대한 저항성을 갖는다. 더불어, 녹색이 실제로는 잘 착용하지 않는 색상이기 때문에 비현실적인 느낌을 주고자 선택했다고 작가는 이야기한다.

▲  진선희 개인전 '그림자극장', 화봉갤러리,xenitis_oil on canvas_145x145cm_2011


사실 꿈은 그녀에게 무의식과 같은 단어이다. 현실적인 소재가 아닌 무의식의 재현을 테마로 가져온 데에는 그만큼 중요한 이유가 있다. 사회적 자기인 페르소나와 참 자기 사이의 갈등을 초현실적인 모티브들을 통해 보여줄 수 있다는 점이다. 그렇게 되면, 모순투성이인 현실에 살면서도 이 모순들을 통합한 진정한 자아를 만나게 된다는 희망찬 미래를 꿈꿔볼 수 있는 것이다. 성공여부는 사실상 장담할 수 없을지라도 말이다. 그러나 작품 속으로 점점 빠져들다 보면 그녀가 정작 그림 속에서도 끊임없이 갈등하고 있다는 점을 눈치채게 된다.
 
 “그림자 극장”이라는 전시의 제목은 몇 겹씩 중첩된 갈등을 이미 내포한다. 그림자는 실상이 아닌 허상이고, 극장 역시 허구의 세계를 위한 무대다. 허상에 대한 허구라니. 그림이라는 허구의 세계 속에서도 또다시 연극을 하고 있는 셈인데, 그런 모습은 곳곳에 보인다.
 

▲   진선희 개인전 '그림자극장', 화봉갤러리,xenitis_oil on canvas_130x130cm_2012


자아로 표상된 비현실적인 인물들이 또 다시 객석의 타인을 의식하는 것을 암시한 배경이라든지, 그림이라는 허구 속에서도 진짜와 가짜를 다시 나눠놓은 듯 구멍 뚫린 하늘의 형상도 그러하며, 자아의 분신으로 내세운 허상이 또 다시 바닥에 비친 자기 그림자와 대칭을 이루며 양분화되어 제시된 모습 등도 그러한 반증이다. 특히, 일어나려는 몸짓 같지만 누우려는 듯 보이기도 하는 몸짓, 위로 받는 듯하지만 동시에 따돌림 당하는 듯한 모습, 편안한 천국 같지만 그와 반대로 모든 게 죽어있는 듯한 분위기 등은 둘 중 딱히 어느 하나로 단정짓기 어려운 경계지점에 있다. 즉, 갈등의 격전지이다. 
 

▲  진선희 개인전 '그림자극장', 화봉갤러리,xenitis_oil on canvas_116.5×90.6cm_2013


갈등과 방황은 살아있다는 증거다. 때문에 그녀 작업에 나타나는 다양한 모순과 갈등의 양상들이 도리어 반갑다. 통합으로 가는 그녀의 자아 찾기의 여정은 아직 진행 중이고, 그 진행이 날것에 가깝다는 점에서 우리는 현재의 그녀 작업을 대할 기회를 가치 있게 바라볼 수 있다. 어쩌면, 남의 고통을 뒷짐지고 감상하고 있는 듯한 묘한 죄책감이 들 수도 있다. 하지만 미안함 대신 감사는 어떨까. 그렇게 몸부림하는 그녀의 분신들이 그녀 개인을 넘어서 우리 모두를 비춰주는 거울이 되어준다는 사실과 우린 그 덕에 조금 더 쉽게 한걸음을 더 나가볼 수 있다는 점에 대해서 말이다.
 
진선희 개인전 '그림자극장'은 인사동 화봉갤러리에서 2014. 2. 12(수) - 2. 18(화) 까지 전시된다.
 
작가  진 선 희 Jin, sun-hee
기간 : 2014. 2. 12(수) - 2. 18(화)
관람 시간 :월-일 10:00 ~18:00
전시 장소: 화봉갤러리
                  (110-718 )서울특별시 종로구 인사동7길 12 백상빌딩B1
                  Tel) 02_737_0057,1159     Fax) 02_736_3463
 

▲     © 진선희 개인전 '그림자극장', 화봉갤러리,xenitis_oil on canvas_130x130cm_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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