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식으로 열반의 길 택한 대현 스님 유고집 ‘아름답게 가는 길’ 출간, 출판사 올리브나무
전춘란 기자 | 입력 : 2021/11/10 [22:42]
출판사 올리브나무가 단식으로 열반의 길 택한 대현 스님 유고집 ‘아름답게 가는 길’을 출간했다.
▲ 대현 스님 유고집 ‘아름답게 가는 길’ © 문화예술의전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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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어떻게 하면 생을 편안하게 마감할 수 있을까? 고승들 가운데는 가부좌한 채로 몸을 떠난 사례도 있고, 심지어 물구나무를 서서 몸을 바꿨다는 전설 같은 이야기도 전해진다.
하지만 90% 이상이 병원에서 힘겨운 시간을 보내다가 생을 마감하는 것이 정해진 코스가 되어버린 오늘날, 웰다잉은 모든 사람의 화두가 아닐 수 없다.
안락사, 존엄사, 연명 치료 등의 현실을 누구나 맞닥뜨릴 수밖에 없는 풍토에서, 단식 29일 만에 입적한 대현 스님의 주체적인 열반의 길은 오늘을 살아가는 모든 이에게 곰곰 생각거리를 안겨준다.
만성 폐렴을 진단받은 스님은 죽음이 멀지 않았다는 생각에 몇 가지 원칙을 정한다.
“병원이 아닌 지금의 수행처(죽림선원)에서 죽고 싶다. 치료를 위해 어떠한 약에도 의존하지 않음은 물론 진정제나 진통제, 마취제도 쓰지 않았으면 한다. 단식 수행을 통해서 자연스럽게 다음 생으로 이어지고 싶다. 부처님이 마지막 가신 길을 공부하고 그 내용을 요약, 정리해 단식을 통한 내 경험과 함께 ‘아름답게 가는 길’이라는 제목으로 책을 출간해야겠다.”
병마와 싸우는 대신 단식 수행으로 열반의 길을 선택, 2021년 9월 22일 입적한 대현 스님의 유고집 ‘아름답게 가는 길’이 출간됐다.
22살에 출가, 50안거를 성만할 정도로 오직 수행으로만 일관한 스님은 지리산 정각사 죽림선원에서 정진하던 중 만성 폐결핵을 진단받았다.
독한 약을 아침저녁으로 두 번 복용해야 했지만, 위장이 뒤집힐 듯해 몸을 가눌 수 없을 정도여서 감당하기가 힘들었다. 약을 끓게 되면 어떻게 되느냐고 의사에게 묻자 이런 대답이 돌아온다.
“폐에 석화 현상이 와서 숨쉬기가 힘들어지고 체중이 점점 줄어들어 이삼 년 정도밖에 살 수 없을 것이다.”
100세 시대에 이제 겨우 세수 75세였지만, 스님은 살 만큼 살았다고 생각하고는 어떻게 해야 아름다운 마무리를 할 수 있을지 고심하기 시작한다.
“아름다운 마무리란, 살아오는 동안 인연이 지어진 모든 사람과 기꺼이 작별할 줄 알고 마지막임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아름다운 마무리는 나를 얽어매고 있는 구속과 생각들에서 벗어나 자유로워지는 것, 삶의 예속물이 아니라 삶의 주체로서 거듭나는 것이다. 죽고 사는 것까지도 벗어나야 한다. 죽음은 끝이 아니라 다음 삶의 시작이다. (중략) 이 세상 올 때는 비록 오는 줄 모르고 왔지만, 갈 때는 알아차림으로 가는 줄 알고 가고 싶다. 올 때는 울면서 왔지만, 갈 때는 웃으면서 가고 싶다. 수행자답게 굳은 의지를 보여야 한다.”
30대의 젊은 날 단식 수행을 한 적이 있는 스님은 ‘꿈을 꾸어도 꿈속의 희로애락에 빠져들지 않고 잠자리에 드는 저녁부터 눈을 뜨는 아침까지도 화두의정이 끊임없이 이어졌던’ 경험을 떠올리고는, 단식 수행으로 생을 마감하기로 작정한다. 마지막이 될 어느 봄날에는 마당과 화단에 꽃씨를 뿌리고 꽃을 사다가 심었다. 뒤꼍에는 산과 들에서 야생화를 캐다가 심었다. 마당의 잔디밭 잡초도 열심히 제거했다.
부처님의 마지막 가신 길에 대해 더 깊이 알고 싶었던 스님은 ‘부처님의 마지막 발자취 대반열반경’을 통해 상상을 초월하는 위대한 영적 힘을 지닌 부처님의 삶과 수행에 다시 한번 큰 감동을 하고, ‘율장’과 ‘대념처경’ 등 다른 불경과 함께 엮어 부처님 생애와 가르침을 정리한다.
이후 출판사 관계자를 만나 자신이 정리한 불경의 대의와 함께 장차 기록으로 남길 ‘단식 수행을 통한 열반의 길’을 한데 엮어 입적 이후 49재 이전에 책으로 출간해 줄 것을 유언한다.
영정 사진과 수의까지 손수 준비해 놓고 2021년 8월 25일 단식을 시작한 스님은, 29일 만인 9월 22일 오후 3시 무렵 입적했다.
◇저자 소개
대현(大玄) 스님
1968년 백양사로 출가, 강진 백련사에서 남산 정일(南山 正日) 선사를 은사로 득도했다. 1975년 인천 용화사 법보선원에서 안거 후 제방선원에서 50안거를 성만한 스님은, 간화선이야말로 깨달음에 이르는 지름길인 것이 분명하지만, 깎아지른 바위산을 단박에 오르는 것과도 같아서 상근기에만 적합한 수행법이라는 생각을 품던 중 ‘위빠사나’를 만난 뒤 이를 간화선에 접목, 수행의 바르고 빠른 길로서 ‘위빠간화선’을 제시했다.
지리산 정각사 죽림선원에서 정진하던 중인 2020년 만성 폐렴 진단을 받고, 단식 수행을 통해 열반의 길을 열겠다고 결심했다.
대반열경을 위주로 부처님 가신 길을 공부하고, 이 공부 내용과 스님 자신의 마지막 기록을 한데 엮어 ‘아름답게 가는 길’이라는 제목으로 출간해 줄 것을 유언했다. 저서로는 ‘선승의 길’, ‘선을 배우는 길’, ‘위빠간화선 강설’, ‘깨침 아리랑’이 있으며, ‘그림과 함께 읽는 석가모니 붓다의 생애’를 기획·감수했다.
◇대현 스님, 고별사
나를 낳아주신 분은 부모님이지만, 중을 만들어주시어 부처님 법을 만나게 된 보람된 삶을 살게 해주신 분은 은사스님입니다. 은사스님의 은혜는 하늘보다 높고 바다보다 깊습니다. 그 은혜, 세세생생에 갚아도 다 갚을 길이 없습니다.
저는 지혜와 용기와 결단심이 부족해 문도들을 바르게 이끌지 못했습니다. 그런데도 사제들은 저를 사형으로 대접해 주고 있습니다. 하지만 무엇 하나 베푼 바가 없습니다. 이제야 내 자신이 인색했음을 부끄럽게 생각합니다.
그리고 신도님은 훌륭한 수행력을 갖추지 못했고 덕망도 없는 저에게 과분한 대우를 해주시었습니다. 무거운 시은만 지고 가는 것 같아 마음이 무겁습니다.
나는 죽음에 대하여 많은 생각을 했습니다. 어떻게 죽는 것이 가장 잘 죽는 죽음일까? 죽음 그 자체는 두렵지 않습니다. 죽음은 누구도 피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에 당연하게 받아들입니다. 하지만 죽어가는 그 과정이 두렵습니다. 주위에 죽어가는 사람들의 죽음의 과정을 보면, 너무도 안타깝습니다.
병원 중환자실에 거의 의식이 없는 환자가 산소 호흡기를 부착하고 링거액으로 영양분을 공급받아 숨만 쉬고 있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옛날 도인들은 앉아 죽고, 서서 죽고, 미리 날짜를 정해놓고 죽고, 죽기를 마음대로 하였습니다.
나는 늘 신도들에게 말하였습니다. 이 몸은 공(空)하여 거짓 나이니 애착할 게 없다고. 하지만 막상 죽음이 내 코앞에 다가오니 어떻게 죽어야 잘 한 죽음일까? 생각이 깊어집니다.
수행자가 수행의 목적은 깨달음을 성취하여 생사윤회를 벗어나는 것이요, 만약 금생에 깨달음을 성취하지 못했다면 마지막 숨을 거두는 순간 알아차림으로 한 생각 챙기면서 저세상으로 가야 합니다. 그 한 생각은 내세로 연결되어 금생의 수행력과 원력 따라 다음에도 수행자의 길을 걸어 쉽게 깨달음을 성취한다고 합니다.
초학 시절 보름 동안 단식을 한 적이 있습니다. 그때 단식을 하면서 열심히 정진을 하였더니 정신이 맑아져 화두가 성성적적 끊어짐이 없이 밤낮 이어짐을 체득한 바가 있습니다. 그때 생각하기를, 이 세상 떠날 때 단식을 하면서 가는 것이 좋겠구나! 하였습니다.
지금 내 나이는 칠순이 훨씬 지났습니다. 백세까지 사는 세상이니 한참 못 미치는 나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본래 약골로 태어난 나로서는 많이 산 것입니다.
그리고 절집에 들어온 지도 반백년이 지났습니다. 시은만 지고 있어 무거운 업만 쌓여 가는 것 같습니다.
나이가 들어 면역력이 떨어져 일년 내내 감기 기운이 떨어지지 않고 콧물이 줄줄 흘러내리며 가래가 목구멍에 걸리어 괴롭고 기침이 심합니다. 이러한 증상들이 이제 이 세상을 하직하라는 메시지인 것 같습니다.
백 년 이백 년 더 살다 간다고 해도 아쉽기는 매 한 가지입니다. 지금 더 살려고 버둥댄다면 그것은 생에 대한 애착 때문입니다. 생에 대한 애착은 윤회의 씨앗이 됩니다. 나는 그 윤회의 씨앗인 애착을 버리고자 합니다. 좀 힘이 남아 있고 정신이 또렷할 때 단식을 하면서 마지막 정진을 하고자 합니다.
그러하오니 주위에서 저를 도와주십시오.
이 세상 올 때는 업연에 끌리어 오는 줄 모르고 왔지만, 갈 때는 알아차림으로 한 생각 챙기면서 가는 줄 알고 가고 싶습니다. 올 때는 비록 울면서 왔지만 갈 때는 웃으며 가고자 합니다. 나를 억지로 병원으로 데려가 영양제를 놓고 음식을 먹이지 마십시오. 간절히 부탁드립니다. 대중들께 짐 지워 드려 죄송합니다.
七十五年空幻身 75년을 살아온 허망한 이 몸
東西南北空自忙 이곳저곳 공연히 바삐 돌아다녔네
世緣已盡空手去 세상 인연이 다해 빈손으로 가노니
白雲靑山空來去 백운이 청산에 공연히 왔다가네
大玄 合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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