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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상반기 갤러리도스 기획공모 릴레이 프로젝트 ‘실상과 허상’展

실상과 허상의 경계를 허물고 관람객들과 작가의 작품 세계를 공감할 수 있는 전시 열려

경영희 기자 | 기사입력 2017/12/22 [17:49]

2018년 상반기 갤러리도스 기획공모 릴레이 프로젝트 ‘실상과 허상’展

실상과 허상의 경계를 허물고 관람객들과 작가의 작품 세계를 공감할 수 있는 전시 열려
경영희 기자 | 입력 : 2017/12/22 [17:49]

갤러리도스는 새로운 작가를 발굴하고자 일 년에 상반기, 하반기 두 번의 공모전을 기획하고 있다. 공모전에는 매번 새로운 주제가 정해지게 되며, 같은 주제를 가지고 각 작가들이 자신들의 작품세계로 참신하게 풀어내는 자리를 만들고자 한다. 2018년 상반기는 실상과 허상이라는 주제를 가지고 젠박, 김성중, 안지예, 이수원, 김기섭, 서윤아6명의 작가를 선정하였으며 201813일 부터 201836일까지 각 작가의 개인전이 릴레이 형식으로 연이어 펼쳐지게 된다.

 

전 시 명 : ‘실상과 허상

전시장소 : 서울시 종로구 삼청로 737 갤러리 도스 (Gallery DOS)

전시기간 : 2018. 1. 3 () ~ 3. 6 () 기간 동안 릴레이형식으로 개인전 진행

참여작가 : 젠박, 김성중, 안지예, 이수원, 김기섭, 서윤아

 

▲ 2018년 상반기 갤러리도스 기획공모 릴레이 프로젝트 ‘실상과 허상’展     © 강새별 기자

 

실상의 사전적 의미는 실제 모양이나 상태, 모든 것의 있는 그대로의 참모습을 뜻한다. 어떤 사물을 바라보고 그 색상, 움직임 및 변화를 하나 둘 인식하듯 우리는 오감 중 시각에 많은 비중을 두어 현실세계를 바라보고 느낀다. 세상에는 이렇게 우리 망막위로 드리워지는 실상의 것들만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머릿속으로 그리는 어떠한 상상의 세계나 감정들은 우리 눈에 비치지 않는 허상이며 실재하지 않지만 있는 것처럼 보이거나 다른 것으로 드러나 보이기도 한다. 눈을 통하여 존재하는 모든 가시적인 것들을 접하며 이를 각자의 환경이나 심상에 따라 다르게 인식하는 것 자체가 허상으로 가는 첫 발걸음이며 이는 실상과 허상의 공존을 의미한다.

 

예술가들이 자신만의 방식으로 특정한 부분에 대한 사유를 고스란히 담아낸 작업은 그들 스스로와 관객들 모두에게 실상인 동시에 허상으로 다가온다. 실존하는 대상을 바라보고 나서 느낀 감정 혹은 더 나아가 새로운 상상의 기반으로서의 역할을 한 대상은 더 이상 실상으로만 보기는 힘들다. 예술가의 상상이 시각적으로 드러난 작품 위에 관람객들의 내적상상이 합쳐짐으로서 새로운 허상이 만들어진다. 갤러리도스는 '실상과 허상'이라는 주제를 가지고 2018년 상반기 공모전을 기획하고자 하며 이를 통해 실상과 허상의 경계를 허물고 관람객들과 작가의 작품 세계를 공감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1) 2018. 1. 3() ~ 2018. 1. 9() 젠박 작가 

우리 모두에게 시간과 공간은 한정되어 있다. 지금 살고 있는 장소, 내가 채워 나가야할 캔버스 그리고 정해진 공간들 안에서의 삶, 한정된 시간. 이 모든 것 안에서 나는 안정을 찾고 싶다. 그래서 나는 질서가 정립되어있는 레고에게 끌렸다. 내 작품은 레고로 출발하지만 레고의 모습을 띄고 있지는 않다. 형태가 무너지면서 새로운 질서가 생기는 레고 속에서 나는 한정된 공간으로부터 벗어나고픈 욕망을 투영해본다. Legoscape (-ing)는 이러한 나의 욕망을 잘 표현하는 단어다. 새로운 빌딩들이 올라가는 것처럼, 그리고 헌 빌딩을 무너트리는 것처럼 나는 나만의 도시를 캔버스 안에서 적립한다. 캔버스는 한정된 공간이지만 그 안에서 색들이 상호작용하는 것이 우리의 세상과 같다.

 

내 작품 속에서 어느 색들은 조화롭고 어느 색들은 어우러지지 못한다. 완벽한 선이나 완벽한 색은 애초에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나는 이것을 완성되지 못한 유토피아라고도 부르고 싶다. 이 유토피아에 나는 균형을 찾아내기 위해서 레고를 불안정하게 쌓아올리는 작업을 한다. 누구나 일상 속 탈출을 꿈꾼다. 그건 나도 마찬가지다. 레고를 통해서 현실도피를 하고 싶다는 시도를 해본다. 매일 보는 도시와는 또 다른 세상을 나는 기대한다.

 

▲ Legoscape (-ing)_162 x 390cm_oil on canvas_2017~.     © 강새별 기자

 

2) 2018. 1. 24() ~ 2018. 1. 30() 김성중 작가 

보이는구만 뭔소리냐 라고 해봤자 그건 빛이 전해주는 거라지 않나. 들리는구만 이라고 해봤자 그건 공기가 진동으로 전해주는 거다. 그럼 내가 직접 만지고 있는 이것은? 그러니까 그것을 왜 차갑다고 이야기하는가. 왜 거칠다고, 딱딱하다고 말하는가. 그것을 왜 그렇게 생겼다고 말하는가. 그게 진짜 그것일리 없다. 있는 것까지는 알겠다. 무언가가. 사실 그 무언가가 있다는 것 정도는 맞닿아 있는 이것 혹은 그것이 다른 것이라고 말할 때 이미 모두가 알고 있는 것이었다. 그저 바로 그것은 아니지 않을까한다는 것이다. 여기에 없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그리고 여기엔 있는 것도 아무것도 없다. 생겨져버린 이상 이미 다른 것이다.

 

없어야 한다. 나타남이란 동시에 다음단계로 흐름이다. 있음과 없음은 서로 붙어있는 말이다. 없으면 다시 생김으로, 있음으로 향하게 된다. 나타남의 전 단계에 머물 필요가 있다. 그렇기에 부어서 흘러내리게 한 뒤 굳으면 원래의 것을 없앤다. 그냥 무언가가 아닌 바로 그것을 보여주기 위한 노력이랄까. 그것의 네거티브공간이 작품이니, 오늘도 나는 만들지 않았노라고 열심히 우기고 있다. 이것들은 존재의 증거일 뿐이라고.

 

가득 차있는 이 세계에 홀로 존재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서로가 존재의 증거가 되어가며 모든 것은 맞닿아있다. 존재의 증거가 되기에 훌륭한 다른 것인 투명한 두께를 이용해 그들과 그것들이 있었고 또 있노라고 대신해서 말해주고 싶다. 그들과 그것들의 빈자리를 보여줌으로써 말이다.

 

▲ 달항아리_crystal clear_47×50×33cm_2017     © 강새별 기자

 

3) 2018. 1. 31() ~ 2018. 2. 6() 안지예 작가 

인간이 만들어낸 산물로서의 도시는 인간의 가장 가까이에서 자연스럽게 인간의 모습을 반영한다. 끊임없이 변화하는 도시는 상징적인 존재로 고정적으로 유지되는 장소라기보다는 흐름에 따라 유동적으로 상호작용하는 가변적인 공간으로 인식된다. 이러한 도시의 특성은 도시를 구성하고 있는 내부의 존재가 상관관계를 이루면서 관계에 따라 다르게 드러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사회적 존재로서 개인의 정체성은 관계를 벗어나서 생각할 수 없으며, 자신 안에서 스스로 형성되는 것이 아닌 외부의 다양한 대상과 관계하며 형성된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은 항상 타자를 의식하며 대상과 상황에 어울리는 모습으로 존재한다. 다수의 타자가 되어 드러나 보이는 존재로서 인간은 끊임없이 관계 맺으며 존재의 의미를 찾는다. 본인의 작업은 타자를 인식하는 것에서부터 시작되며, 관계에서 발견하게 되는 가변적이고 이질적인 모습을 나타내고자 하는 의도를 가지고 있다.

 

도심에서 어느 날 문득 낯설게 비쳐진 건물의 모습은 친밀한 관계에서 발견되는 낯선 모습과도 같다.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도시에는 관계를 맺고 있는 수많은 개체들이 있는데, 건물도 그 중의 하나로 본인이 관계에서 경험한 타자를 설명하는 매개물이 된다. 이는 건물을 미학적 대상이 아닌 존재론적 대상으로 바라보고, 건물에 인격성을 부여하는 방식이다. 건물은 그 자체로 존재함과 동시에 주변의 상황들을 반영하고, 그로 인해 외관이 변화되기도 한다.

 

▲ Friends  Oil on Canvas 91.0 x 116.8cm   2017     © 강새별 기자

 

4) 2018. 2. 7() ~ 2018. 2. 13() 이수원 작가 

나의 작업은 작은 조각을 하나씩 만들어내는 것으로 시작된다. 그 각각의 조각들은 다양한 크기와 색으로 나름의 깊이를 만들어간다. 각자의 조각들은 서로 이어지면서 점점 그 형태를 확장시켜간다.

작은 조각들은 나를 통상적으로 주어진 역할 수행에서 벗어나 그저 여기’, ‘지금’, ‘있음을 찾아가는 하나의 통로가 된다. 이러한 표현의 반복적 행위를 통해서 아직은 불완전한 자아의 내면 모습을 찾아가는 과정이 되어주는 것이다. 이런 과정은 여기에서 지금 무언가를 만들어내고 있는 내가 허상이 아닌 실재라는 것을 확인하는 방법이 된다.

 

그 때문에 작품으로 보여지는 형태들도 확정적이지 않고, 세포가 분열, 증식하는 듯한 그 무엇이 될 수도 있는 유기적 형태로 만들어진다.

 

작품의 과정에서 나는 작은 조각을 계속해서 만듦을 통해 내가 행위하고 있다는 것에 몰입하고, 지금 이 순간 움직이며 무언가를 만들어 내고 있는 ''라는 존재가 있음을 다시 한번 인식하게 된다.

 

▲ 매달린 것들, 혼합재료, 가변설치, 2015     © 강새별 기자

 

5) 2018. 2. 21() ~ 2018. 2. 27() 김기섭 작가 

인간은 모두 자연으로의 회귀본능이 있다. 고민이 있거나 문제가 있는 사람들은 공원이나 숲 속을 걸으며 생각을 정리하고 바쁜 도시 생활에 지친 현대인들은 산으로 바다로 휴가를 떠나 소진된 에너지를 충전하길 소망한다. 자연은 우리 모두에게 어떤 방식으로든 큰 영향을 끼친다. 자연은 나에게도 역시 영감 그 자체로 다가오고 내 작업의 원동력이 된다. 나에게 자연은 색 그 자체이다. 계절, 장소, 혹은 시간에 따라 시시각각 변화하는 자연의 색은 무궁무진하다. 나는 그런 자연이 가진 많은 색감을 소화해 나만의 색과 모양으로 변화된 새로운 형태의 추상적 자연을 만들어 낸다. 나는 이것을 “Internal Landscape” 라고 부른다.

 

나의 내면에서 만들어진 이 추상적 자연세계는 항상 아름답지만은 않다. 본디 자연이란 따뜻하고 포근한 반면 차갑고 배척적이기도 하고, 아름답고 영롱하기도 하면서 어둡고 음침하기도 하다. 아름다운 색이 있으면 추한 색이 함께 분명히 존재하는, 그것이 바로 “Internal Landscape” 이다.

 

나는 나의 작업에 있어서 색과 색의 섞임, 그리고 색의 전환에 의해 발생되는 감정의 변화에 집중한다. 각 모든 색은 그 자체로 고유의 느낌이 있다. 색에서 느껴지는 감정은 모든 사람들마다 다르다; 그러므로 한가지로 정의될 수는 없다. 그러나 색이 서로 섞이고 다른 색으로 전환되는 과정에서 창출되는 전혀 다른 새로운 감정은 각자의 방식으로 모두의 마음속에 자리잡게 된다. 색은 내 작품의 향방을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이고, 그것은 페인팅을 매력적으로 보이게 하는 다른 어떤 요소들보다 절대적 우위에 있다.

 

▲ Internal Landscape Series 58, 116.8cm x 91cm, Acrylic on Canvas, 2017     © 강새별 기자

 

6) 2018. 2. 28() ~ 2018. 3. 6() 서윤아 작가 

실재하지만 실존하지 않는 것들이 있다. 그것은 실체의 현상이기도 하다. 바닥에 발을 붙이지 않는 대신에, 현상으로서 개념으로서 실제 한다. 그것들은 우리를 둘러싸며 존재한다. 숨 안으로 들어왔다 나가기를 반복하고, 머릿속으로 들어와 마음을 사로잡기도 한다. 나는 그것을 검은 무엇들이라고 부른다. 마치 우주의 암흑물질처럼, 존재하지만 그것이 무엇인지는 모른다. 우리의 사이를 가득 메우고 있지만 그 상념들이 어디에서부터 부유해왔는지는 알 길이 없다. 그것은 모든 간격에 존재한다. 살아있는 것들 사이에서는 물론이고, 활자와 활자 사이에도 존재한다. 자간과 행간 사이에도 긴 숨이 존재하는 것처럼 떠다니는 말들 속에서도, 눈꺼풀이 꿈뻑이는 그 순간에도 언제나 그것은 함께다. 사유의 지도 안에, 그것은 늘 방위처럼 따라 붙는다. 그것은 여러 이름으로 불린다. 분위기, 뉘앙스, 느낌, 감정, 사유, 개념, 아우라 등등. 말 그대로 가변의 성격을 갖고 이리저리 떠다니다 이윽고 어느 구석에 안착한다. 그리고 자란다. 그것은 금세 쌓여 풍선같이 부풀기도 하지만 차곡차곡 조금씩 접히다 단단해지기도 한다.

 

나는 이런 구석에 관심이 있다. 지칭하는 대상보다 그 대상을 지탱하는 상념이 중요하다. 한자리에 뿌리박혀 자라난 관념에 흥미가 있다. 대상이 갖고 있는 아우라와 분위기, 뉘앙스 따위는 모두 다른 단위지만 한데 묶어 검은 무엇이라고 표현하는 그것을 살펴보기를 원한다. 왜냐하면 그것은 뿌리도 없고 형상도 없는 단지 얄팍한 지금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때로 그것은 역사가 되어 땅 밑으로 가라앉기도 한다. 그러나 그것은 조금 더 두고 볼 일들이다.

 

목탄은 장지의 표면에서 마모되며 종이의 구석구석에 안착한다. 그 시간과 공기, 상념의 무게를 싣고 그림 구석구석에 자리하는 것이다. 목탄은 매우 고운 입자로 내 숨들 사이에도 존재하였다가 손에서 종이 위로 이동하기도 한다. 그 사이, 그림과 나는 형체가 사라지고, 그저 검은 암시들 사이에 갇혀 사로잡힌 커다란 재료일 뿐이다. 장지 위에 겹겹이 차곡차곡 쌓여가는 검은 무엇들은 나의 암시이다. 하지만 그것은 밖으로 꺼내어져 다른 누군가의 검은 무엇이 되기도 한다. 검은 무엇에는 경계나 구분이 없다. 단지 어렴풋이 있다는 자각일 뿐이다.

 

▲ 초의 자리, 27.3x22cm, 장지에 목탄, 2016     © 강새별 기자

 

[강새별 기자] green@lull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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