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단고래 대표작 <빨간시>가 2018년 4월, 나루아트센터 소공연장 무대에 오른다. 2011년 처음 ‘혜화동 1번지’의 작은 공간에서 <빨간시>를 선보인 후, 벌써 7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그동안 <빨간 시>는 아르코 대극장의 넓은 무대 위를 채우기도 했고, 크고 작은 공연장들을 거치며 많은 관객들의 성원 속에서 극단 고래의 대표작으로 자리 잡았다 .
심지어 2017년에는 극장이 아닌 광장에서, ‘블랙텐트’의 첫 번째 시작을 알렸다.
그동안 <빨간시>는 사회 안에서 자행되는 폭력과 그에 대한 침묵이 재생산하는 폭력의 카르텔(cartel)을 고발했다. 그러나 7년이라는 시간 동안, 일본군 ‘위안부’ 문제는 여전히 해결되지 못했고, 꽃다웠던 한 여배우의 죽음을 둘러싼 관심과 진실도 덮여버리고 말았다. 그리고 욕망과 폭력은 비가시적인 존재로 이 사회 곳곳에 더 깊숙이 침투해 버렸다.
그러나 단단해 보였던 폭력의 카르텔은 소수의 용기로 균열을 보이기 시작했다. 이른바 미투운동의 흐름 속에서, 그 동안의 부당함을 고발하는 목소리들이 하나의 물결을 이루며 사회 전반을 휩쓸어갔다. <빨간시>공연은 미투운동 전에 결정되었지만, 그 어느 때보다 강력한 시의성을 반영한다. 미투 운동을 통해 자신의 부당함을 알리는 개인의 목소리는 곧 할머니들이 가슴 속에 묻어두었던 아픔이고 꽃다운 나이에 배우의 꿈을 포기하고 죽음을 택했던 한 여배우의 이야기가 된다. 할머님들과 장자연의 고발이 미투운동의 시작이었다.
작가 이해성은 지난 12년간 수요시위에 참석했고, 그 현장에서 느낀 절실함과 진정성이 쌓여 이 작품이 탄생하게 되었다. 이해성 대표의 뜻을 따라, 이제는 극단 고래의 단원들이 자발적으로 수요시위에 참석하며 사회의 폭력에 대항하기 위한 평화적 연대를 이어가고 있다. <빨간시>는 이러한 마음들이 모여서 만들어진, 피해자들을 기억하고 아픈 상처를 치유하기 위한 하나의 제의의 장이다. 역사의 아픔을 온 몸으로 짊어진 그분들이 한 분이라도 더 사라지기 전에 나도 말해야 하고 그들과 함께 해야 한다.
<빨간시>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배우는 단연 강애심이다. 그는 할미의 아픈 삶과 상처를 온전히 살아내며, 후속 세대에 그 미움과 상처가 반복되지 않기를 바라는 인물을 진정성 있게 그려낸다. 무엇보다 일본군에 의해 희생당한 수많은 여성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부르는 모습은 이 작품의 가장 강렬한 순간으로 관객들의 뇌리 속에 남게 된다. 7년이라는 시간 동안 더욱더 깊어진 할미가 이번에는 어떠한 모습으로 다가올지, 궁금해진다.
극단고래와 함께 공동으로 <빨간시>를 올리는 (재)광진문화재단은 서울 동남권을 대표하는 나루아트센터(사장_김용기)를 운영하는 기관이다. 예술성과 대중성을 겸비한 공연, 전시, 교육 프로그램을 제공하여 문화예술을 통한 관객과의 지속적 만남을 위해 노력하여 관객들의 신뢰를 얻는 전문 공연장으로 거듭나고 있다.
한편 작품을 선보이는 극단 고래는 작가이자 연출가인 이해성이 2010년에 설립하여 강애심, 김동완, 전형재 등 40여명의 단원들이 함께 연극을 만들고 있다. 깊은 바다에 사는, 혹은 우리 마음속에 숨 쉬고 있는 고래처럼 잊혀져가지만 소중한 가치를 동시대인들에게 질문하며 나누고자 한다.
공연은 4/20(금)부터 5/13(일)까지 나루아트센터 소공연장에서 진행되며, 문의는 광진문화재단(02-2049-4700)과 극단고래(010-3164-6280)로 하면된다.
<빨간시>는 우리 근현대사의 두 가지 아픈 사건을 다루고 있다. 일제가 자행한 위안부 사건과 몇 년 전에 한 꽃다운 여배우의 죽음으로 드러난 여배우들의 성상납 사건이다. 시간적, 시대적으로 많은 차이가 나는 사건들이지만, 작가 이해성은 이 두 사건 사이에서 어떤 공통된 지점을 바라본다. 일단 상대적으로 약자인 여성들이 거대한 힘과 권력에 의해 성적으로 유린당하고 육체적, 정신적인 상처를 입었다는 것. 사건의 가해자들이 이에 대해 절대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거나 뉘우치지 않고 있다는 것. 그리고 이로 인해 피해자들의 상처와 아픔은 결국 치유되지 않은 채 덮여있다는 것이다.
작가 이해성은 우리역사 속에서 돌고 도는 이 폭력과 상처 의 근본적인 원인을 바라보고 그 악순환의 고리를 끊고자 이 작품을 구상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빨간시>에서는 이승과 저승을 넘나들며 위안부들의 상처와 여배우의 고통을 아주 적나라하게 우리의 눈앞에 펼쳐놓는다. 모두가 그들이 고통 받았다는 사실은 알고 있지만, 실제로 그들이 어떤 심정으로 어떤 일들을 당했는지 잘 알지 못하고, 알려고도 하지 않는 관객들에게 그들의 고통을 생생하게 느끼게 함으로써 다시 한 번 우리 자신을 돌아보게 만드는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상처의 폭로와 사회 비판에서 끝나는 것은 아니다. <빨간시>는 비판과 질타를 넘어 용서와 해원의 경지로 나아가는 작품이다. 세상은 할머니를 외면했지만, 할머니들은 마지막까지 진실을 규명하고 자신을 버린 세상을 용서하고자 한다. 극중 위안부 시절 생긴 아들을 평생 미워했던 할머니는 마지막에 “니는.. 하늘이 낸 사람이데이..”하고 그의 존재를 인정하면서 죽음을 맞는다. 폭력의 결과로 생긴 아들에 대한 할머니의 사랑은 곧 자신에게 가해진 폭력, 자신의 망가진 삶에 대한 아픈 용서와 화해를 보여준다.
>>거대한 침묵, 이제는 말해야한다
“내 말은 내 가슴을 찢어서 길어낸 말이야.
내 목숨을 실어서 움직인 말이야.
거짓말이 아닌, 말이야. 허위가 아닌, 말이야.”
-<빨간시>中 대사
한편 <빨간시>가 집중하고 있는 것은 폭력을 둘러싸고 있는 거대한 침묵이다. 여기서 침묵은 세 가지로 보여 지는데 그중 하나는 가해자의 침묵이고, 다른 하나는 피해자들에게 강요된 침묵이고, 마지막은 가해자는 아니지만 이를 지켜본 자들 우리들의 침묵이다. 극중 동주는 여배우 수연을 폭행하지는 않았지만, 그 자리에서 지켜본 목격자였고 이에 대해 한 마디도 하지 않는다. 작가 이해성은 이러한 동주의 모습이 다름 아닌 우리 자신의 모습과 다를 바가 없다는 점을 보여주려고 한다. 즉 위안부라는 역사적 사실과 여배우들의 성상납 사건이 실제로 일어난 폭력이라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아무도 말하지 않고, 모른 척 살아가고 있는 우리의 모습을 비추고 있는 것이다.
“기억하고 이야기해야 치유가 돼.”
“치유되지 않은 고통은 사라지지 않아.
다른 이의 고통으로 흘러 다니게 돼.”
-<빨간시>中 대사
이러한 대사에서도 알 수 있듯, <빨간시>는 ‘말’을 하는 행위 자체가 가진 힘, 치유의 능력을 믿고 이를 강조하고 있다. 이 때문인지 이 작품에는 유난히 ‘말’에 대한 강조가 많다. 저승에서 옥황과 염라가 주고받는 말장난을 비롯해서, 인물들의 언어유희가 끊임없이 이어지고, 대사 사이의 침묵이 도드라지는 등 ‘말을 하는 것’과 ‘말을 하지 않는 것’의 대비와 성찰이 작품 곳곳에서 드러나고 있다.
아름답고 아픈 한 편의 詩
<빨간시>라는 제목에서 알 수 있듯 이 작품은 전체적으로 한 편의 시를 연상케 하는 형식을 보여준다. 프롤로그와 각 장면의 막 사이에 들어가는 시와 영상, 그리고 정적 등을 통해 공연 전체가 하나의 시처럼 무대 위에 펼쳐진다. 또한 시어처럼 반복되는 단어와 운율을 가진 대사, 그리고 그 사이 사이의 침묵은 청각적으로도 시적인 리듬을 느끼게 한다.
또한 극중 ‘빨간 꽃’은 마치 시적 은유처럼 그 이미지가 반복, 강조된다. 빨간 꽃은 극중 할머니가 첫사랑에 대해 가진 애틋한 기억이자 동시에 피로 물든 상처를 의미하고, 여배우 수연이 꿈꾸던 화려한 미래에 대한 상징이기도 하다. 이 외에도 이 작품에서 빨간색은 두려움과 죽음, 사랑과 생명, 그리고 고통과 아름다움 등 많은 이미지를 담아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