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지진 "또" 발생, 요즘 계속 발생하고 있는 지진 형태는? 같은 곳에서 연속 지진, 일본 전역에서 지진 발생 등.. 일본인 반응은?
이상 진역 異常震域,, 심발 지진 深発地震 도 발생
권태형 기자| 입력 : 2023/05/28 [05:46]
공유하기 더보기
2023년 5월 28일(일) 오전 5시 46분, 좋은 아침입니다. 제 2호 태풍 마와르(MAWAR) 는 한국으로 오지 않고 오키나와를 거쳐 일본 남쪽으로 우회전 바나나킥 한다는 소식에 이어 또 지진 발생 소식입니다. 기자가 일본 지진 소식을 계속 보도하는 이유는 이제는 일본 지진이 한국 지진 발생과 관련이 있다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브라질에서의 한 나비의 날갯짓이 텍사스 에 돌풍을 일으킬 수도 있는가 (Does the Flap of a Butterfly's Wings in Brazil Set Off a Tornado in Texas?)- 나비효과"
제 2호 태풍 마와르(MAWAR)가 일본 오키나와로 접근하고 있는 가운데 일본 오키나와 근처에서 어제부터 지진이 연속 발생하고 있어 주목되고 있습니다.
홋카이도, 도호쿠, 남관동, 노토 반도, 도카라 제도 등에서 큰 지진이 발생하고 그 이후로 활발히 계속되고 있습니다 만, 난카이 해구에서만 조용하다는 것이 섬뜩합니다. 니이지마에서도 지진 떼가 일어나 태풍과 매우 더운 계절이 되기 때문에 정전이 되면 곤란해집니다. 물가가 비싸고 전기세가 치솟고 있는데 재해가 일어난다고 생각하는 것은 미친 것 같고, 우리는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
다음에는 치바현에서 큰 지진이 일어날까요? 치바현에서는 많은 일이 일어나지 않습니까?
일본 열도 어딘가에서 매일 지진이 발생하는 것 같지만, 집 근처가 신경이 쓰입니다. 일본은 바다로 둘러싸여 있고 참호가 너무 많아 진원지로 둘러싸여 있습니다.
일시적인 변화라면 여전히 좋을지도 모르지만 언제든지 큰 지진이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닙니다 ~.
-
27 일, 치바현에서 차를 운전하고 있었을 때, 너구리가 하루에 두 번 내 앞에서 건넜다 (-ω-?)
하루에 두 번은 기억이 나지 않아서 자연재해에 대비해서 동물의 대이동이 시작된 것이 아닌가 하는 망상이 있었다 (・・;).
딸랑이 고속도로에서 내 차 앞에서 운전한 너구리는 전생에 자원 봉사자였을 것입니다.
-
어제의 지진 강도 5 미만과 거의 같은 곳입니다. 이시카와현과 가고시마현도 진도 5의 지진으로 연이은 지진이 발생했습니다. 큰 재앙이 되지 않기를 바라지만...
-
스모 경기에서 사건이 발생하면 많이 흔들릴 것입니다.
라는 얘기도 있었다.
스모 자체는 정상이지만
야구에 문제가 있습니다
Doskoy Performance의 Yamakawa
스모와 관련이 있다면
라고 하면 들키고 버립니다
아무것도 없으면 가장 좋습니다.
-
최근에는 지진 횟수가 다시 증가했습니다.
큰 지진이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
가나가와현인데 왠지 흔들리는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 찾아봤습니다만, 치바현 진도 2
-
튼튼한 모니터를 보고 있으면 치바가 흔들렸다~라고 생각하면 토카라도 흔들리고 혼마(땀)에 무서워져 버렸다
카운트다운이 시작되나요?
-
지진 전문가는 점쟁이와 같습니다.
미끄러져도 책임은 없습니다. 당신이 이기면, 당신은 영웅입니다.
예측에 대한 근거가 없습니다.
-
간토 대지진의 전조가 아니기를 바랍니다.
-
태풍과 지진으로.
나는 많은 것에 대해 걱정하고 있습니다.
-
그것은 이상한 흔들림이었다.
-
가고시마이기도 합니다.
치바에도 있습니다.
벌써 지진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
-
지진 강도는 약했지만 길었습니다
-
역시 후지산인 것 같아요.
-
사쿠라시도 쿵쿵 소리와 함께 흔들렸다.
-
이것은 간토에서 발생한 대지진의 전조입니까?
많은 일본인들이 지진예측은 점쟁이의 점과 같이 정확하게 맞추기 어렵다고 하면서도
1923년 9월 1일 11시 58분에 일본 도쿄도 등을 포함한 미나미칸토 지역을 중심으로 일어난 지진으로 간토대지진 재앙 재현을 우려하고 있다.
이 부분의 본문은 간토대진재 § 지진 이후 충돌 및 학살 및 간토 대지진 조선인 학살 사건입니다.
1923년 9월 10일자 매일신보. 신문에는 '관동대지진 당시 조선인들이 폭동을 조장하고 있다.'는 내용의 기사글로 전면을 다루고 있다.
간토 대지진의 조선인 학살
1923년 도쿄 일원의 간토 지방은 지진으로 인하여 궤멸적인 피해를 입었고, 흉흉해진 민심 덕분에 일반인들 사이에 서로를 믿지 못하는 불신이 싹트는 가운데, 내무성은 계엄령을 선포하였고, 각 지역의 경찰서에 지역의 치안유지에 최선을 다할 것을 지시하였다.[131]
그런데, 이때 내무성이 각 경찰서에 하달한 내용 중에 "재난을 틈타 이득을 취하려는 무리들이 있다. 조선인들이 방화와 폭탄에 의한 테러, 강도 등을 획책하고 있으니 주의하라"라는 내용이 있었다. 이 내용은 일부 신문에 보도되었고 보도내용에 의해 더욱더 내용이 과격해진 유언비어들이 신문에 다시 실림으로써 "조선인들이 폭도로 돌변해 우물에 독을 풀고 방화약탈을 하며 일본인들을 습격하고 있다"라는 헛소문이 각지에 나돌기 시작했다.[132][133][134]
당시에는 지진으로 인하여 물 공급이 끊긴 상태였고, 목조 건물이 대부분인 일본의 특징 때문에 일본인들은 화재를 굉장히 두려워하였으므로, 이러한 소문은 진위여부를 떠나 일본 민간인들에게 조선인에 대한 강렬한 적개심을 유발하였다. 이에 곳곳에서 민간인들이 자경단을 조직해 불시검문을 하면서 조선인으로 확인되면 가차없이 살해하는 범죄를 저지르기 시작하였다. 이들은 죽창이나 몽둥이, 일본도 등으로 무장하였고, 일부는 총기로 무장하기도 하였다.[135]
우선 조선식 복장을 한 이는 바로 살해당하였으며, 학살 사실을 알고 신분을 숨기기 위해 일본식 복장을 한 조선인들을 식별해 내기 위해서 조선인에게 어려운 일본어 발음 한국어에 없는 어두유성음 및 종종 정확하게 발음되지 않는 장음 발음(撥音)등으로 이루어진) 「十五円五十銭じゅうごえんごじっせん」(쥬고엔 고주센)을 시켜보아 발음이 이상하면 바로 살해하였다. 예를 들어 '쥬고엔 고쥬센'을 일본어가 어눌한 발음의 '츄고엔 고쥬센'으로 발음하는 것이다.[136] 이 때, 조선인뿐만 아니라, 중국인, 류큐인, 외자 성을 강제당해 조선인으로 오인받은 아마미 제도 출신, 지방에서 도쿄로 와 살고 있었던 지방의 일본인(특히 도호쿠 출신)들도 발음상의 차이로 조선인으로 오인받고 살해당하는 등, 자경단의 학살은 마구잡이식이었다.
일부 조선인들은 학살을 피해 경찰서 유치장으로까지 피신하였으나, 일부 지역에서는 경찰서 안까지 쳐들어와 끄집어 내어 학살하는 일도 일어났다.[137] 경찰은 학살사실을 알면서도 모르는 척하거나 소극적으로 대응하는 경우가 흔하였고 오히려 조선인을 조직원으로 받아들이고 있던 야쿠자 등 비공권력 범죄 집단의 일부가 조선인을 숨겨주는 일이 있었다. 조선인 학살과 더불어 사회주의자, 아나키스트, 인권운동가, 반정부 행위자 등으로 경찰에 요주인물로 등록되어 있던, 주로 좌파 계열의 운동가에 대한 학살 사건도 동시에 진행되었는데[138] 육군 대위 아마카스 마사히코에 의해 사회주의자 오스기 사카에와 가족이 살해당한 아마카스 사건이 잘 알려져 있다.
치안 당국은 "조선인들이 폭동을 저지르려고 한다"는 이야기가 헛소문이라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지만, 혼란 수습과 질서 회복의 명분하에 자경단의 난행을 수수방관하였고, 일부는 가담, 조장하기까지 하였다. 그러나, 점차 자경단의 만행이 도를 넘어서 공권력을 위협할 정도가 되어, 그제서야 개입하였으나, 이미 수많은 조선인들이 학살당한 후였다. 자경단의 살상 대상은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았으며, 상당수는 암매장되었다. 학살이 최고조에 달했을 때에는 도쿄에 흐르는 스미다강과 아라카와강은 시체의 피로 인해 핏빛으로 물들었다고 한다. 일본 정부는 최종적으로 유언비어를 공식확인하였으나, 피해자의 수를 축소 발표하고, 자경단 일부를 연행,조사하였으나, 형식상의 조치에 불과하였으며, 기소된 사람들도 증거 불충분을 이유로 무죄 방면되었다.[139] 학살 사건으로 인한 사법적 책임 또는 도의적 책임을 진 사람이나 기구는 전혀 없었다.
일본인 요시노 사쿠조는 그의 저서 『압박과 학살』에서 2,534명으로, 김승학은 『한국독립운동사』에 피해자가 6,066명이라고 적었지만, 그에 비해 당시 일본정부의 추산은 233명이었다.[140][14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