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발레의 대명사 러시아 볼쇼이 발레단이 한국에 옵니다. 한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레파토리인 "백조의 호수"를 통해 정통발레의 모든 것을 보여줄 것입니다. 차이코프스키의 아름다운 선율과 천재적인 안무가 유리 그리고리비치의 "백조의 호수"를 통해 영원히 잊지 못할 감동의 무대를 놓치지 마시기 바랍니다. 프 로 그 램 : 백조의 호수 (2막) 일 시 : 4월21일 ~ 24일 (평일 : 7시 30분 / 토요일 : 6시) 장 소 : 세종문화회관 대강당 작 곡 : 차이코프스키 안 무 : 유리 그리고리비치(Yuri Gorigorovich) 예 술 감 독 : 알렉세이 라트만스키(Aleksei Ratmansky) 지 휘 : 파벨 소로킨(Pavel Sorokin) 교 향 악 단 : 코리아 심포니 오케스트라 의상 및 무대 : 사이몬 바르살라즈(Simon Virsaladse) 공연일시 : 4월21일(수)~23일(금) 7시30분, 24일(토) 저녁 6시 티켓금액 : R석 20만원, S석 16만원, A석 12만원, B석 8만원, C석 5만원 할인안내 : 2월말까지 10% 할인 (1인당 4매에 한함) "백조의 호수"가 대중적인 사랑을 받고 있는 이유는 스물 네마리 백조들이 차이코프스키의 극적인 음악에 맞추어 연출하는 환상적인 춤과 최고 기량의 무용수들이 추는 화려한 군무 때문만은 아닙니다. 무엇보다 숭고의 극치로 상징되는 백조(오데뜨)와 간악한 흑조(오딜)를 동시에 연기하는 발레리나의 대변신을 한번에 감상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발레리나의 알파와 오메가를 보여줄 수 있는 오데뜨-오딜역은 95년에도 한국을 방문한 바 있는 갈리나 스타파넨코(Galina Stepanenko)가 맡습니다. 스타파넨코는 러시아 인민예술가 호칭을 받는 볼쇼이 대표 무용수로 완벽한 발레 기술과 원숙한 연기가 기대됩니다. 또한 지그프리드 왕자역은 볼쇼이 대표적 주역무용수인 안드레이 우바로프(Andrey Uvarov)가 열연합니다. 89년 볼쇼이에 입단한 후 주요 작품에서 주역을 맡았고, 볼쇼이 발레단의 간판무용수로 인정 받고 있습니다. 한편 내한 공연에는 볼쇼이 발레단에서 활동하고 있는 배주윤이 폴란드 무희역으로 참가, 세계 정상급 무용단에서 맹활약하는 그녀의 기량도 확인할 수 있는 좋은 기회입니다. 볼쇼이 극장은 세계에서 가장 널리 알려진 발레 "백조의 호수"와 무척 특별한 관계를 맺고 있다. 이 작품이 볼쇼이 극장에서 처음 공연됐기 때문이다. 라이징거(Vatslav Reisinger)의 안무하에 무대에 올려진 "백조의 호수"의 초연은 1877년 2월 20일에 있었다. 비록 최초의 안무는 거장 차이코프스키의 음악적 연출의 깊이를 제대로 드러내 주지는 못하였지만 볼쇼이 발레단의 공연 레퍼토리에 6년이나 머물러 있었다는 것은 이 작품이 어느 정도 성공을 거두었다는 것을 시사한다. 하지만 진정한 성공은 마리우스 쁘띠빠(Marius Petipa)와 레브 이바노프 (Lev Ivanov)가 안무를 맡은 1895년의 페테스부르크 공연에서 찾아오게 된다. 그 무대의 안무가 그대로 고전 발레의 결정판이 되어버린 것이다. 20세기의 75년 동안 공연된 "백조의 호수"는 이 이바노프-쁘티빠 안무 버전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비록 극적인 강조의 시점이 옮겨진다든지 역동적인 춤이 전통적인 판토마임을 대체하는 등 개개적인 솔로 차원의 변화는 있었지만 왕자의 역할 자체는 변함이 었었다. 마찬가지로 언제나 무대에서 고통받는 것은 오데뜨였고 음모를 꾸미는 것은 흑조 오딜이었다. 또한 전쟁 이전에 소련의 "백조의 호수"는 긍정적인 결말을 갖추게 된다. "백조의 호수"는 아마도 볼쇼이 극장의 공연 레퍼토리에 언제까지나 빠지지 않을 작품이지만, 또한 다른 어떠한 발레보다도 많은 수정이 가해진 작품이기도 하다. 130여 년의 세월동안 10번의 수정이 가해졌는데 쁘티빠의 제자이며 발레단장이었던 알렉산드로 고르스키는 (Alexander Gorsky)는 혼자 5번의 수정을 하였다. 만일 사이몬 바르살라즈(Simon Virsaladze)의 무대디자인이 없었다면 유리 그리고로비치는 평범한 "백조의 호수"를 통해서 평범하지 않은 작품을 창조해 내기는 쉽지 않았을 것이다. 그들의 작품에서 마침내 진정 로맨틱한 왕자 - 로엔그린이 발레 무대에 나타나 춤을 추는 것만 같은 하얀 백조의 기사가 등장하며 그는 고귀하면서도 실체가 없는 듯한 이중적 세계에 기거한다. 각각의 장은 현실 세계와 내적 세계를 표현하는 2개의 막으로 이루어진다. 현실 세계는 왕자의 기사 수여식에 대한 축하에서 시작해서 신부를 고르는 연회로 연결이 되고 내적 세계는 주인공의 심리 상태를 반영하는 "내적인 풍경"으로써의 호수를 배경으로 한다. 그리고로비치와 바르살라즈의 "백조의 호수"에서 모든 것은 환상과 양면성의 베일에 싸여 있다. 수면 밑에 가라앉아 있는 신기루처럼 보이는 고딕양식의 성이나, 은색 달빛이 어슴푸레 비추며 암흑으로부터 그 형상을 서서히 드러내는 호수 모두 그러한 베일로 가려진 모습들이다. 오직 왕자만이 실재하고 다른 배역들은 그의 분열된 심리 상태의 양면적 이미지를 나타내는 허깨비에 지나지 않는다. 외로움이나 어려운 결정의순간에 왕자를 먹구름처럼 짓누르는 것은 그의 무의식 깊은 곳에서부터 자신도 모르게 드러나는 그의 천재 악마이다. 심지어 왕자의 수호신인 백조 역시 악마적 분신이라 할 수 있는 흑조와 함께 존재한다. 이렇게 디자인적 측면에서 왕자의 웃옷처럼 하얀색 안의 검은색, 검은색 안의 하얀색으로 표현되어지는 이미지들은 차이코프스키의 음악세계에 대한 함축적 은유라고 할 수 있다. 원래 극은 비극적인 결말을 맺게 되어 있었다. 결국, 문화부에서는 이 작품에 대해 공연금지 명령을 내렸다. 안무가는 "백조의 호수"를 그림 같은 사랑이야기로 바꿀 것을 강요당했다. 하지만 여러 해가 지나면서 그는 자신의 맘속에 품었던 공연과 실제로 행해지는 공연의 괴리에서 빚어진 모순을 타파하기 위하여 많은 시도를 하였다. 그의 실현되지 못하였던 "백조의 호수"는 2001년이 되어서야 결국 새로운 모습으로 태어났다. 이 "백조의 호수"에서 유리 그리고로비치의 상상력은 그가 조심스레 전승해온 쁘티빠, 이바노프 그리고 고르스키 등의 안무의 부분들과 조화롭게 엮여져 있다. 볼쇼이는 가장 위대한 것, 중심적인 것, 최상의 것 등을 뜻하는 러시아어이다. 볼쇼이 발레의 역사는 볼쇼이 극장과 함께 2백여년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현재 발레단뿐 아니라 오페라단, 합창단, 극단, 오케스트라 등에 900여명의 예술가를 가진 세계적인 예술단체로 성장한 볼쇼이 극장은 1780년 완공된 모스크바의 페트로프스키극장에서 오페라, 발레, 연극 등을 공연하기 시작했다. 그 후 "전원풍경", "시골의 축제날" 등 토속적 생활과 민속무용을 중심으로 구성된 발레들로 인기를 모으다 볼쇼이 극장으로 본거지를 옮겼다. 1820년대와 1830년대에 걸쳐 러시아발레는 낭만적인 공연방향을 확립하면서 세계적인 발레리나들과 겨뤄도 손색이 없는 러시아인 발레리나 산코프스카야의 등장으로 도약의 계기를 맞았다. 볼쇼이 발레단은 1860년 프랑스인 안무가 마리우스 쁘띠빠(Marius Petipa)을 영입함으로써 비약적인 발전을 거두게 된다. 그는 " 백조의 호수", "돈키호테" 등 발레팬들의 사랑을 가장 많이 받고 있는 작품의 원 안무자로서 발레의 중심을 파리에서 모스크바로 옮겨놓은 러시아 발레의 지대한 공헌자이다. 쁘티빠 이후 1898년 그의 제자였던 알렉산드로 고르스키(Alexander Gorsky)가 발레단장으로 영입된다. 그는 춤과 연극적 동장, 음악과 예술적 디자인을 통합하여 무대위에 실현함으로써 발레의 일대 개혁을 가져온다. 이어 바실렌코, 유로프스키 등 유명한 안무가들을 통해 "잠자는 숲속의 미녀" "레이몬다" "백조의 호수" "돈키호테" "붉은 양귀비""로미오와 줄리엣" "신데렐라" 등 러시아 발레의 세계적 위치를 확립시킨 명작들이 계속 쏟아져 나와 볼쇼이 발레단은 키로프와 함께 러시아 발레의 양대산맥을 이루게 된다. 볼쇼이 발레단이 해외순회공연을 시작하여 서국에 첫선을 보인 것은 1956년이다. 런던의 코벤트가든에서 "로미오와 줄리엣"으로 개막된 볼쇼이 발레의 공연은 세계 무용계에 엄청난 충격을 던져준 일대 사건이었다. 줄리엣 역을 비할 데 없이 빼어나게 해석한 갈리나 울라노바가 당시 최고의 발레리나라는 사실은 전세계가 이미 다 알고 있는 사실이었지만 볼쇼이의 전단원이 보여준 무대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신기에 가까운 몸짓이었다. 서구의 관객들은 꽉 짜여진 무대와 춤의 강렬한 극적 스타일에 완전히 압도당했다. 특히 남자 무용수들의 재능은 서구의 발레에서는 볼 수 없었던 것이었으며 이 공연은 서구 발레계를 변화시키는 기폭제 역할을 하였다. 이후에도 볼쇼이 발레단은 지금까지 매년 20여개의 레퍼토리를 가지고 시즌 주 2백회 이상의 러시아 공연을 계속하는 동시에 해외공연으로 전 세계 무대를 누비고 있다. 볼쇼이 발레가 키로프를 누르고 러시아를 대표하는 동시에 세계적인 발레의 대명사로 자리잡게 된 것은 1964년 안무가 유리 그리고로비치를 영입하면서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다. 당시 34세의 키로프 발레의 발레마스터였던 유리가 수석 안무가 겸 예술감독으로 취임함으로써 볼쇼이 발레단은 키로프의 전통, 즉 아카데믹한 정확성과 엄격한 합리주의를 완전히 흡수하게 되었으며 그의 주도하에 볼쇼이 발레는 비로소 안무예술에서 그 자신의 고유한 방향을 굳건하게 설정할 수 있었다. 유리 그리고로비치의 대표작 "석화""스파르타쿠스" "사랑의 전설"은 오늘날 볼쇼이 발레의 현대 레퍼토리의 근간을 이루고 있다. 볼쇼이 발레단의 소련 공연무대는 2천석 규모의 볼쇼이 극장과 크렘린궁 안에 있는 6천석 규모의 현대식 의회궁정에서 이루어진다. 수많은 국내외 공연을 모두 소화해 낼 수 있는 빼어난 무용수들은 주로 볼쇼이 발레단 부설 모스크바 발레학교를 통해 배출된다. 이 무용수들 중에는 볼쇼이 단원으로서 소련 예술가의 최고의 명예인 '인민예술가"의 칭호를 받은 경우도 상당수에 달해 ' 볼쇼이'라는 이름을 더욱 빛내고 있다. 현재 볼쇼이 발레단에는 유일한 한국인으로는 모스크바 발레학교를 졸업하고 96년 발레단에 입단한 배주윤이 솔로이스트로 활동하고 있다. 2004년1월에 알렉세이 라트만스키(Alexei Ratmansky)가 새로운 발레감독으로 취임한다. 젊은 감각과 열정으로 볼쇼이 발레단의 전통을 어떻게 계승해 나갈 지 귀추가 주목된다. 안무 / 유리 그리고로비치(Yuri Gorigorovich) 금세기 최고의 발레안무가로 인정받는 유리 그리고로비치는 오늘날 볼쇼이발레가 세계발레예술의 대명사로 불리우게 한 장본인이다. 1927년생으로 레닌그라드(현 페테스부르그) 발레학교를 거쳐 키로프발레단에 입단했다. 원래는 무용수의 길을 계속 가려 했으나, 1956년 레닌그라드 안무학교 졸업작품이었던 글링카의 "발레-환타지아"를 시작으로 안무의 길로 들어섰다. 1957년 키로프극장에서 그가 만든 "석화"가 격렬한 논쟁속에 대성공을 거두면서 본격적인 발레안무가로서 명성을 떨치기 시작했다. 1964년 37세의 젊은 나이로 볼쇼이극장의 예술감독으로 취임한 유리는 "사랑의 전설" "잠자는 숨속의 미녀" "호두까기 인형"등을 재안무해서 유례없는 성공을 거두없는데 이는 "일반인민이 공감할 수 있는 발레를 만들어야 한다" 그의 신념의 결과물이기도 하다. 그 이후에 68년 현대적 창작원칙에 따라 재안무한 "스파르타쿠스" 78년 "로미오와 줄리엣"은 일대 센세이션을 일으키며 유리 그리고로비치를 볼쇼이발레에 황제로 불리우기한, 볼쇼이발레의 간판 레퍼터리로 자리잡은 작품들이다. 유리 그리고로비치의 1969년 재안무한 "백조의 호수"의 특징은 천재적인 악마가 왕자와 치열한 대결구도를 보이면서 드라마틱한 발레로 승화되었다는 점이다. 특히 악마 로트바르트에 대한 다른 해석이 다른 버전과 가장 큰 변화이다. 왕자의 별개인 인물로 묘사되는 다른 버전과는 달리 그리고로비치는 악마를 악의 근성으로 묘사된다. 즉, 단순한 악마에 불과한 로트바르트를 지그프리트 왕자의 무의식을 지배하는 천재적인 악마로 설정하여 오데뜨공주를 향한 악마와 왕자의 치열한 싸움을 그림으로써 극적 성격을 강화했다. 또한 1막에 추가된 광대의 42회전, 궁정의 군무왈츠 등 주역, 솔리스트, 군무에 이르기까지 화려한 볼거리는 그리고로비치의 독창성이 돋보이는 부분이다. 지그프리드 왕자 / 안드레이 우바로프(Andrei Uvarov) 모스크바 출생인 우바로프는 89년 볼쇼이발레단에 입단해서 91년 주역무용수가 되었다. 보리스 아키모프(Boris Akimov)의 코치를 받고 있는 우바로프는 대부분의 정통 클래식 작품에서 주연을 맡아왔다. 96년에는 오사카국제발레대회에서 금상을 수상했다. 95년에도 내한공연에서 백조의 호수 지그프리드 왕자역을 맡아 서정적인 감정을 표출해 내는 천부적인 재능을 보여주었다. 오데뜨-오딜/ 갈리나 스페파넨코(Galina Stepanenko) 러시아 공훈배우인 갈리나 스테파넨코는 1990년에 볼쇼이 발레단에 입단했다. 클래식 춤의 명인으로 불리며, 나무랄데 없는 선과 놀라운 회전동작, 완벽한 테크닉으로 다양한 작품에서 주역을 맡아왔다. 95년 내한공연에서도 오데뜨-오딜역을 맡아 열연했다. 천재 악마 / 러슬란 쁘로닌(Ruslan Pronin) 1988년 모스크바 안무대학을 졸업하고 볼쇼이 발레단에 입단했다. 지젤, 잠자는 숲속의 미녀, 스파르타쿠스, 사랑의전설 등 다양한 작품에서 출연했다. 배주윤 볼쇼이 발레단에서 활동하는 2명의 외국인 단원의 한명으로 88년 서울예술학교를 졸업하고 볼쇼이 발레 아카데미(Moscow Choreographic Ballet)에 유학한 후 96년 볼쇼이 발레단에 입단했다. 97년 모스크바 국제콩쿠르에서 특별상과 관객이 뽑은 인기상을 수상하고, 98년 아라베스크(펌 국제콩쿠르)에서 1위에 입상한 바 있다. 현재 볼쇼이 발레단 솔로이스트로 활동하는 배주윤은 이번에 폴란드 무용수로 출연한다. 지휘자/파벨 소로킨(Pavel Sorokin) 파벨 소로킨(Pavel Sorokin)은 1963년 8월 14일에 예술가의 가정에서 태어났다. 그의 부모님은 볼쇼이 극장의 솔로이스트이었다. 그의 어머니 타마라 소로킨(Tamara Sorokin)은 볼쇼이 오페라의 솔로 소프라노였고, 아버지 Shamil Jagudin은 볼쇼이 발레단의 유명한 무대 장치가였다. 소로킨은 5살 때부터 피아노와 소르페지오 레슨을 받기 시작하여, 중앙 음악 아카데미에 7살 때 들어가 11년 후, 뛰어난 성적으로 졸업하였다. 1981년부터, 소로킨은 모스크바 국립 음악원의 세계적으로 유명한 L. Naumov 교수의 지도하에 피아노 공부를 계속하였다. 1983년에는 그의 재능이 인정되어 J. Simonov교수 밑에서 지휘과정을 이수하게 되었다. 1983년부터 1987년까지 볼쇼이 발레단의 콘서트마스터였던 그는 음악원에서의 마지막 2년을 Agafoniv교수의 지도하에 작곡과에서 보냈다. J.S Bero와 함께 2년간 심포니 지휘 학과에서 공부를 계속하게 되었다. 다음은 보스톤 심포니 오케스트라에 특별회원으로 초대되어 Mayer교수와 위대한 마에스트로 오자와 세이지(Seiji Ozawa)와 레오나르도 번스타인(Leonard Bernstein)의 지도하에 1989년 여름에는 시벨리우스의 "Finland"(Op.26)을 지휘하게 된다. 같은 해에 이 젊은 지휘자는 볼쇼이 극장 대회에서 우승을 하였다. 그의 첫 CD인 Rachmaninov, Symphony No 2 in e-moll; Op.27; Voclaise, Op. 34 No14가 1998년에 나왔다. 소로킨은 1998년에는 "러시아 우수 예술가"의 영예를 차지하였다. 2003-2004년의 콘서트 시즌은 소로킨에겐 무척 바쁜 시기였다. 그는 볼쇼이의 거의 모든 오페라와 발레의 레퍼토리를 지휘하였다. 또한, 모스크바 필하모닉의 시즌 지휘도 담당하면서, 러시아의 뛰어난 오케스트라가 연주하는 모스크바 음악원의 대강당과 차이코프스키 콘서트 홀의 모든 공연을 지휘하게 될 예정이다. 능란한 지휘 테크닉, 절제된 감정의 표현, 그리고 내적인 집중력은 현혹시키는 효과가 배제된 소로킨만의 독특한 스타일을 만들어 냈다. 그의 날카로운 제스쳐는 오케스트라의 음악을 편하고 풍부한 감정이 실리도록 만들어준다. 오케스트라와 솔로이스트들의 미묘한 관계를 읽어내고, 유연하고 섬세한 공연을 만들어 내는 그의 능력은 비평가, 음악인, 관객들 모두에게서 인정 받고있다. 2001년 7월부터 소로킨은 러시아 심포니 오케스트라 수석 지휘자로 활동하고 있다. <저작권자 ⓒ 문화예술의전당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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