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한국 최초의 뮤지컬은 전세권 연출의 000 이다 - 최초 블랙리스트에 희생 당한 한국 최초 뮤지컬
6.전세권 연출의 ‘극단 제3극장’은 한국 최초의 뮤지컬 ‘새우잡이’를 국립극장 무대에 올린다.
7. 한국 최초의 뮤지컬은 전세권 연출의 뮤지컬 카니발 수첩이다
인터뷰의 저작권은 문화예술의전당 www.lullu.net 에 있습니다. 인용,보도 시 출처를 밝혀주시기 바랍니다.
한국 최초의 뮤지컬 <새우잡이> 작.연출 전세권은 가수 전인권의 형이다.
1965년 뮤지컬 <새우잡이>의 연출가 전세권은 작곡가 오경일과 개인적인 친분으로 뮤지컬 <새우잡이> 작곡을 의뢰한다. 무대가 삼류인생들의 주 무대인 선창이라는 점과 등장인물들이 뱃사람과 작부들이라는 분위기에 맞추어 줄 것을 요구했다. 또한 전세권은 한국적인 뮤지컬을 위해 음악도 민요조나 타령조를 가미하여 작곡하기를 청하였다. 뮤지컬에서 오케스트라의 역할에 큰 의미를 부여했던 전세권은 열악한 제작비를 염두에 두고 지휘자 박은성 에게 부탁하여 젊은 음악인들로 구성된 ‘영.필하모니 오케스트라’가 반주를 맡았다.
그러나 앞서 보도한 동아일보 기사대로 공연에서 오케스트라 연주는, 막상 공연의 막을 올리는 날 공연이 올라가기 전 관객이 3명에 불과하자 연주자들이 출연료에 불안을 느끼고 공연에 불참하고 악기를 챙겨 공연장을 떠나는 황당한 사건이 벌어진다. 공연에의 진행은 불가피하기에 전세권은 연습 때 반주를 맡았던 경희대 음대 재학생의 피아노 반주만으로 공연을 올리게 된다. 한국 최초의 창작 뮤지컬 <새우잡이>는 이렇게 우여곡절을 겪으며 가까스로 막을 올릴 수 있었다.
1965년 8월 국립극장에서의 초연 공연은 이렇게 단 4명의 관객과 함께 시작하여, 다음날은 피아노 반주 없이 테이프 MR로 진행되어져 150명의 관객이 들어와 총 관극인원은 연출 포함하여 155명이라는 기록 아닌 참사의 기록을 갖게 된다.
훗날 공연전문계간지 ‘극작에서 공연까지’에 기고한 글에서 전세권은 그 당시 참담했던 심정을 이렇게 토해낸다.
“이렇게 우리나라 최초의 뮤지컬(새우잡이)은 피아노 반주로 막을 올렸다. 객석엔 막 올리기 전 한 사람이 더 들어와 4명의 관객과 나, 이렇게 5명의 관객 앞에 30여 명의 출연진이 젊음의 열기를 뿜으며 한국 최초의 뮤지컬은 시작되었다. 나는 자꾸만 눈물이 났다. 그리고 다짐했다. 오늘의 이 5명의 관객은 훗날 만원사례의 관객을 만드는 견인차가 되게 하리라! 둘째날 150명의 관객이 들어와 155명의 관객으로 첫 번째 뮤지컬은 ‘무식칼’로 끝이 났다” - 공연에서 극작까지, P75 남기고 싶은 이야기 , 전세권 -
한국 뮤지컬사 연보는 이렇게 정리되야 한다.
1965년 8월 26일, 27일 국립극장 (현재 명동예술극장)에서 한국 최초의 뮤지컬 <새우잡이>가 전세권 작.연출로 공연되었다.
1년 지난 1966년 한국 최초 뮤지컬 '카니발 수첩'이 무대에 올려진다.
한국 최초 뮤지컬은 가수 전인권 형 전세권 연출의 '카니발 수첩'이다
1966년 7월 22일 ~ 7월 26일(5일 간) 매일 3시 30분 , 7시 2회 공연 , 후원 제3화학(현재 한독약품), 주최 주간한국, 황유철 작, 안길웅 작곡, 이운철 안무, 전세권 연출, 김홍종.김호근 조연출, 봉봉사중창단, 쏠리스트로 엄정행(당시 경희음대2년 재학)이 특별출연했고, 출연진은 미국에서 뮤지컬 워크숍을 거친 김석강, 이로미, 그리고 국내의 뮤지컬 탤런트 김기일, 이성웅,장욱제,이신재,이완호,박웅,장미자,이주실,원미원,윤여정 등 30여 명의 연기자가 출연했다.
극중 황유철 작,안길웅 작곡, 한상일이 노래 부른 '애모의 노래'는 장안의 화제였다.
이 공연의 제목은 뮤지컬 <카니발 수첩>이다.
그리고 뮤지컬 <카니발 수첩>의 성공적인 공연이후 3개월 지나서 예그린 악단의 ‘살짜기 옵서에’가 공연되는 것이다.
1966년 10월 26일 시민회관에서 <살짜기 옵서예>가 막을 올려 29일까지 4일 간 공연하게 된다
그래서 한국뮤지컬 최초의 연대기는 수정되어 다시 바르게 써 져야 하는 것이다.
난형난제
이제 연재를 마쳐야 할 시간이다. 작가이자 연출이신 전세권 선생은 한국 최초의 뮤지컬로 <새우잡이>를 말씀하신다. 논문의 저자인 장연희도 뮤지컬 <새우잡이>는 오버추어를 비롯한 14개의 넘버를 갖고 있고 오케스트라와 합창단을 구성하여 준비된 공연으로 이룩되었고 무용 또한 작품에 맞추어 새롭게 창작된 것이며 등등의 이유로 해서 (논문의 끝부분 참조) 한국 뮤지컬의 효시는 뮤지컬 <새우잡이>라고 말한다.
이 글을 쓰고 있는 기자는 아니다, 한국 뮤지컬의 효시, 한국 최초의 뮤지컬은 <새우잡이>가 아니다 라고 말한다.
그러면서 ‘난형난제’네요. 한다.
기자는 뮤지컬 <카니발 수첩>을 한국뮤지컬의 효시이며, 한국 최초의 뮤지컬로 정의한다.
친모가 곰보라서 그런 것이 아니다. 태동은 뮤지컬 <새우잡이>이지만 명확하게 정의되어야 하는 뮤지컬로는
전세권 연출이 1966년 7월 국립극장에서 막을 올린 뮤지컬 <청춘 카니발>이
우리나라 최초의 뮤지컬이며 한국 뮤지컬의 효시인 것이다.
왜 뮤지컬 <새우잡이>가 아니고 뮤지컬 <카니발 수첩>이라고 하는 이유에 대해서는 이전 글을 살펴보면 이미 기술되어 있다. 이제 마지막 사진 하나만 투척한다.
뮤지컬 <카니발>의 공연프로그램 사진이다. 공연 프로그램에 ‘뮤지컬’이라고 장르가 명기되어 있고, 5일 간 , 하루 2회씩 공연했다. 극장이 미어터졌다. 관객이 넘쳤고, 토코페롤을 생산하는 독일계회사가 후원했고, 주간한국이 공연을 주최했고, 20여 곡의 뮤지컬 넘버가 있었고, 한상일이 극중 부른 '애모의 노래'는 장안의 화제였고, 30인조 오케스트라가 라이브로 연주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