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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신을 신고 뛰보자 폴짝 -삶은 모든 이가 공연하는 소극이다

추동 | 기사입력 2019/04/04 [02:12]

새신을 신고 뛰보자 폴짝 -삶은 모든 이가 공연하는 소극이다

추동 | 입력 : 2019/04/04 [02:12]

▲     © 추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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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쏘다녔지, 터진 주머니에 손 집어넣고,

짤막한 외투는 관념적이게 되었지,

나는 하늘 아래 나아갔고, 시의 여신이여! 그대의 충복이었네,

오, 랄랄! 난 얼마나 많은 사랑을 꿈꾸었는가!

 

내 단벌 바지에는 커다란 구멍이 났었지.

-꿈꾸는 엄지동자인지라, 운행중에 각운들을

하나씩 떨어뜨렸지. 내 주막은 큰곰자리에 있었고.

-하늘에선 내 별들이 부드럽게 살랑거렸지.

 

하여 나는 길가에 앉아 별들의 살랑거림에 귀기울였지,

그 멋진 구월 저녁나절에, 이슬 방울을

원기 돋구는 술처럼 이마에 느끼면서,

 

환상적인 그림자들 사이에서 운을 맞추고,

한발을 가슴 가까이 올린 채,

터진 구두의 끈을 리라 타듯 잡아당기면서!

 

전에, 내 기억이 정확하다며, 나의 삶은 모든 사람들이 가슴을 열고 온갖 술이 흐르는 축제였다.

어느 날 저녁, 나는 무릎에 아름다움을 앉혔다. 그런데 가만히 보니 그녀는 맛이 썼다. 그래서 욕설을 퍼부어주었다.

나는 정의에 대항했다.

나는 도망쳤다, 오 마녀들이여, 오 비참이여, 오 증오여, 내 보물은 바로 너희들에게 맡겨졌다.

나는 마침내 나의 정신 속에서 인간적 희망을 온통 사라지게 만들었다. 인간적 희망의 목을 조르는 완전한 기쁨에 겨워, 나는 사나운 짐승처럼 음험하게 날뛰었다.

나는 사형집행인들을 불러들여, 죽어가면서, 그들의 총 개머리판을 물어뜯었다. 나는 재앙을 불러들였고, 그리하여 모래와 피로 숨이 막혔다. 불행은 나의 신이었다. 나는 진창 속에 길게 쓰러졌다. 나는 범죄의 공기에 몸을 말렸다. 그리고는 광적으로 못된 곡예를 했다.

하여 봄은 나에게 백치의 끔찍한 웃음을 일으켰다.

그런데, 아주 최근에 하마터면 마지막 <꾸악> 소리를 낼 뻔했을 때, 나는 옛 축제의 열쇠를 찾으려고 마음먹었다. 거기에서라면 아마 욕구가 다시 생겨날 것이다.

자비가 그 열쇠이다. 이런 발상을 하다니, 나는 꿈꾸어왔나 보다.

「너는 언제까지나 하이에나이리라, 등등....」, 그토록 멋진 양귀비꽃으로 나에게 화관을 씌워준 악마가 소리지른다. 「나의 모든 욕구들, 너의 이기심, 그리고 너의 큰 죄업들로 죽음을 얻어라」

아! 나는 그것들을 실컷 맞이했다. 하지만, 친애하는 사탄이여, 간청하노니, 눈동자에서 화를 거두시라! 하여 나는 뒤늦게 몇몇 하찮은 비열한 짓을 기다리면서, 글쟁이에게서 묘사하거나 훈계하는 역량의 부재를 사랑하는 당신을 위해, 내 악마에 들린 자의 수첩에서 이 흉측스러운 몇 장을 뜯어내 덧붙인다.

 

 나는 떠나지 않는다. 내 악덕으로 덮인 이곳의 길을 다시 가자. 철들 무렵부터 내 곁에 고통의 뿌리를 내밀었으며, 하늘로 올라가고 나를 때리고 나를 뒤엎고 나를 끌고가는 악덕.

마지막 순진함과 최후의 소심함. 이것은 이미 말했다. 나의 거부감과 배신감을 세계에 가하지 않기.

가자! 행렬, 짐, 사막, 권태와 분노.

누구에게 나를 세놓을까? 어떤 짐승을 숭배해야 하는가? 어떤 星像을 공격할까? 어떤 성상을 공격할까? 어떤 가슴들을 상하게 할 것인가? 어떤 거짓을 품어야 하는가? 어떤 유혈 속으로 걸어가야 할까?

오히려, 정의를 경계할 것. 힘겨운 삶과 그저 멍한 상태. 말라빠진 주먹으로 관뚜껑을 열고 앉아 숨막히게 할 것. 그러면 노쇠도 위험도 없다. 공포는 프랑스적이지 않다.

-아! 나는 이토록 버림받아, 어떤 신의 영상에게건 완벽을 향한 도약을 봉헌한다.

오 나의 헌신이여, 오 나의 경이로운 자비여! 그렇지만, 이 세상에!

<심연으로부터 주여>, 나는 바보이다.

 

 

권태는 더 이상 내 사랑이 아니다. 분개, 방탕, 광기- 이것들의 모든 충동과 참담한 결과들을 나는 알고 있다-, 나의 짐 전부가 벗겨진다. 현기증 느끼지 말고 내 순진함의 범위를 인정하자.

나는 이제 몽둥이 타작의 격려를 더 이상 요구할 수 없을 것이다. 나는 내가 의붓아버지 노릇을 하는 예수 그리스도와의 결혼 때문에 승선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나는 내 이성의 囚人이 아니다. 나는 말했다 : 하느님, 나는 구원 속에서도 자유를 원한다. 어떻게 자유를 추구할 것인가? 사소한 취미들은 나를 떠났다. 헌신도 신의 사랑도 더 이상 필요없다. 나는 다정다감한 가슴의 세기를 아쉬워하지 않는다. 각자 자신의 이성, 경멸, 자비를 지니고 있다. 하여 나는 저 천사같은 양식의 사닥다리 꼭대기에 내 자리를 잡아놓는다.

가정의 또는 非.... 아니다, 확립된 행복으로 말하자면, 나는 할 수 없다. 나는 너무 산만하고 너무 약하다. 삶은 일에 의해 꽃핀다. 해묵은 진리이다. 나, 나의 삶은 충분히 묵직하지 않아서, 날아가버리고 행동, 곧 세계의 그 귀중한 항목 위로 멀리 떠다닌다.

내가 죽음을 사랑할 용기도 없는 노처녀가 되다니!

만일 신이 나에게 천상의, 공중의 고요를, 기도를 허락한다면, 옛 성자들처럼! 더 이상 필요없는 성자들, 강자들, 은자들, 예술가들!

계속되는 笑劇! 나의 순진함은 나를 눈물짓게 할 것이다. 삶은 모든 이가 공연하는 소극이다.

 

  지옥에서 보낸 한 철』랭보, 김현 옮김, 민음사, 19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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