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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포먼스

이수 | 기사입력 2004/01/21 [22:25]

퍼포먼스

이수 | 입력 : 2004/01/21 [22:25]


나의 퍼포먼스는 70년초 암울했던 시대 상황에서 충동적으로 발생한 해프닝이 출발점 이였다.
전통 사물 놀이의  타악과 리듬의 특질을 유입한 의식(ritual)이 관객에게 얼만큼 소통 되였는지는 알 수 없으나 그 야릇했던 전률은 아직도 있지 못한다.
사물 놀이와 농악의 특성은 강력한 소시알리즘(Socialism)을 내포 하고 있다.
그래서,
가슴으로,
가슴으로 내리 쳐 오는 붉은 피빛의 역동이 그곳에 있다.
난장 같은 놀이판에 들썩이는 어깨춤이 그윽한 아름다움으로 현란하다.
먼 산 허리를 휘어 잡고 바람처럼,
나풀, 나풀 내려 오는 투박한 뼈 마디가 저토록 고울 수 없는 것이 어떤 출중한 연출 때문일까?
수 천번 우려 먹는 대본은 없어도,
황홀한 아름다움이 없다고 말 할 수 없는 것 처럼,
특정한 벙법론에 기인한 양식은 없어도,
그것이, 통상적 개념에 존재 하지 않는다 하여 예술이 아닐수는 없을 것이다.

퍼포먼스를 아방가르드의 전위 부대로 유추하는 것은 이론가들의 착오일 뿐,
더욱이 예술의 실험이라 말 하는 어리석음은 인류 문화사에 대한 중대한 모독이다.
이미 고대부터 매체적 언어로서 그 역할이 존재하였고,
따라서, 예술의 형식적 특성들은 그것에서 비롯되었다 할 것이다.
말하자면 예술이라 말 할 수 있는 것들의 모체가 퍼포먼스라는 것이다. 모던 창조물의 근원으로 향하는 태동의 세계를 야곱의 돌 벼개는 예견하고 있었다.
그 자리에 계단을 쌓아 성전을 만들던 야곱의 행위를 그것이라 할 수 있다면 퍼포먼스는 신의 창조적 행위와 직결 된다고 말 하지 않을 수 없지 않은가
퍼포먼스는 여러 예술적 장르를 규합하여 조립하는 것이 아니다.
애초부터 매개체적 언어로서 자생되어 온 여러 갈래의 재질들을 사용하게 된다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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