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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은선갤러리 -마리캣 초대展 - “겨울산의 신” 展

권종민 기자 | 기사입력 2019/05/09 [03:32]

장은선갤러리 -마리캣 초대展 - “겨울산의 신” 展

권종민 기자 | 입력 : 2019/05/09 [03:32]

서양화가 마리켓의 본명은 박은경이다. 고양이 그림의 독보적인 존재 마리캣 작가의 신비롭고 몽환적인 전시“겨울산의 신”.은 오랫동안 고양이를 주제로 고양이에 대한 자신만의 해석과 작업방식으로 보다 치밀하고 섬세한 붓터치를 담아 나날이 진행하며 성장해왔다. 

 

▲  봄이 오긴 하나요_캔버스에아크릴_45x53cm_2019   © 문화예술의전당



 이전의 작업들이 애완묘의 고양이를 표현해왔다면 이번 전시에서 작가는 ‘야생을 누비는 동물의 神 고양이’를 선보인다. 작가는 “겨울산의 신” 전시를 통해 자연신화를 만드는 꿈에 다가갈 수 있었다고 말한다. 작가가 이야기하는 겨울산의 고양이는 우리가 알던 마냥 귀여운 고양이들과는 확연히 다른 설표의 모습이다

 

 10년 가까이 4월까지도 눈이 내리는 대관령의 산 속에서 머물고 있는 마리켓작가의 고양이는 차가운 야생의 세계로 향하고 있다.  작품 속 고양이의 새파란 눈동자 속에서 차갑고 깨끗한 대관령의 하늘이 담겨있는 느낌을 받을 수 있다. 혹독한 겨울을 이겨낸 푸른 눈빛에서는 생명의 의지가 비쳐지며, 설원의 풍경 속 몽환적이고 신비로운 존재로 인식된다.

▲마리캣, FROST, 캔버스에아크릴, 80x100cm, 2019     © 문화예술의전당

 

작가는 “겨울산의 신”의 존재로써의 고양이를 위해 수묵담채화를 그리듯 아크릴 물감을 아주 묽게 희석하여 수많은 붓질로 톤을 쌓아나가는 방식을 택했다. 또한, 주인공인 고양이 뿐 아니라 배경표현에도 집중하여, 고양이를 둘러싸고 있는 미묘한 속삭임 같은 눈안개와 설원의 풍경을 동양적인 기법으로 묘사하고 있다. 서양화가가 서양화 재료를 사용하여 동양적인 느낌을 담은 작품들은 동도서기(東道西器)의 깊이있고 섬세한 아름다움을 보여준다.

 

 나뭇잎이 푸르러지는 늦은 봄에 추운겨울을 이겨낸 “겨울산의 신”고양이에게서 그 차갑고 강한 생명의 힘을 전해 받을 수 있다. 이번 전시에서는 강하고 아름다운 존재들을 담아낸 마리캣 작가의 작품 30여점을 장은선갤러리에서 만나볼 수 있다.

 

 마리캣작가는 서울대학교 산업디자인과를 졸업하고 2010년 장은선갤러리초대전 등 10여회의 개인전을 하며 활발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으며, 다수의 아트페어에도 참가하고 있다.

 

장은선갤러리 마리캣 초대展

 

“겨울산의 신” 展

 

 일시: 2019. 5. 15 (수) ~ 5. 25 (토)

 

        Open Reception 2019. 5. 15 (수) PM 4:00~ 6:00

 

 장소: 장은선갤러리 (서울시 종로구 운니동 19번지)  www.galleryjang.com (02-730-3533)

 

▲  기다리는 마음_캔버스에아크릴_65x100cm_2019   © 문화예술의전당



  작가 노트

흰색, 검은색, 푸른색. 겨울 대관령의 색채는 그 세가지다. 눈의 흰색과 나목의 짙은 먹색 사이에는 섬세한 그라데이션이 펼쳐져, 눈이 오는 날 지상의 풍경은 온통 흑과 백의 섬세한 숨결로 다시 그려진다. 며칠이고 하염없이 눈이 쏟아질 때는, 희뿌연 눈안개 속으로 온 세상이 사라져버릴 것처럼 아득하다. 날이 개어 무채색의 풍경 위로 깨어질듯 파란 하늘이 드러나면, 세계는 마치 차갑고 투명한 유리구슬같다. 10년 가까이 이곳에 머물며 그 희고 푸른 풍경은 내 영혼에 스며, 가끔은 내 혈관 속에도 차갑고 푸른 무언가가 흐르는 듯한 환상을 느낀다. 눈으로부터 태어나 서리를 숨쉬는 존재들, 차가운 세계를 살아가는 신령스러운 것들. 겨울산의 신들의 모습은 그렇게 하나씩 내 마음으로부터 태어났다.

 

▲  마녀_캔버스에아크릴_80x100cm_2019   © 문화예술의전당



나는 어릴 적부터 민화 속 산신의 모습을 좋아했다. 큰 호랑이를 데리고 자연물들을 보살피는 지혜로운 신의 존재는 무언가 마음의 평화를 주었다. 그러나 전통적으로 시각화된 산신의 모습보다,  실제로 야생의 세계를 접하며 느끼는 산신의 존재는 훨씬 강렬했다. 그것은 푸근하고 화사한 민화 속의 인자한 할아버지가 아닌 냉혹하고 매혹적인 동물신의 모습에 가까웠다.

▲  어린마녀들_캔버스에아크릴_97x130cm_2019   © 문화예술의전당



4월까지도 눈이 내리는 대관령의 산 속에서 야생동물과 식물들에게 삶과 죽음은 늘 맞닿아 있고, 겨울에는 특히 더 그러하다. 혹독한 냉기와 처절한 굶주림을 이겨내 봄을 맞고 자손을 남기는 야생 생물들을 보면, 그 강인함에 경이로움을 느낀다. 그들 스스로는 자신의 존재에 경이를 느끼거나 도취되지도 않을 것이다. 삶의 순간순간 최선을 다해 타오르는 생명의 불꽃일 뿐. 겨울은 그런 생명의 의지가 가장 강하게 발휘되는 때이다. 인간인 나에게 그들의 침묵과 의지는 어떤 숙연함마저 느끼게 했다. 

▲  테무진_캔버스에아크릴_45x53cm_2019   © 문화예술의전당



나는 이전에도 도시에 살며 오랫동안 고양이를 그렸는데, 그때의 고양이는 예쁜 꽃이나 소품들과 함께하는 애완의 존재였다. 이곳에서 9번의 겨울을 나면서 나의 고양이들은 차가운 야생의 세계로 나가게 되었다. 인적이라고는 없는 침묵과 고독의 세계. 흑과 백의 차가운 수묵화 같은 세계를 살아가는 야생의 동물이 된 것이다. 나는 오래전부터 내 그림의 의미는, 개인적인 차원에서의 자연신화를 만드는 것이라고 생각해왔다. 이번 전시를 준비하면서 비로소 그 꿈에 조금 다가간 것 같다. 나의 그림이 내가 생명을 이해하고 표현하는 방식이 되었다. 

 

마녀, 요정, 산신 등 여러 캐릭터의 고양이들은 모두 차가운 세계를 살아가는 강하고 아름다운 존재들로 표현되었다. 그들의 새파란 눈동자 속에는 차갑고 깨끗한 대관령의 하늘이 담겨있다. 특히 애정을 갖고 그린 설표 그림은 지상에서 가장 신령스러운 동물에 대한 예찬이다. 설표는 실제로 지구상에서 가장 높은 지대에 살아가는 고양이과 맹수다. 중앙아시아의 고원, 하늘과 가장 가까운 곳에 살아가는 이 맹수는 워낙 은밀한 습성 탓에 실제로 ‘산의 유령’이라 불리운다. 그 고귀함과 아름다움으로 인해 밀렵의 대상이 되어 이제 지상으로부터 거의 사라져가고 있다. 몸이 다 빠질듯한 설원을 헤치고 나아가는 어린 설표의 그림은, 척박한 환경과 인간의 위협을 마주하며 살아가는 신령한 동물에 대한 애가哀歌이기도 하다. 

 

▲     © 문화예술의전당



이런 주제를 표현하기 위해 한동안 기법적인 혼란을 겪기도 했다. 이전의 내 그림들은 선명하고 다채로운 원색 위주였고, 피사체의 윤곽선을 또렷하게 강조하여 형태감이 두드러졌다. 그런 방식은 팝아트적인 발랄함을 표현하기에 좋았지만 ‘겨울산의 신’과 같은 신비로운 주제에는 적합하지 않았다. 결국은 수묵담채화를 그리듯 아크릴 물감을 아주 묽게 희석하여 수많은 붓질로 톤을 쌓아나가는 방식을 택할 수 밖에 없었다. 주인공인 고양이를 생생하게 묘사하는 것도 중요했지만 더 중요한 것은 오히려 배경이었다. 미묘한 속삭임 같은 눈안개와 설원의 풍경을 묘사하는 데는 그런 동양화 기법 같은 방식이 적합했다. 결과적으로는 서양화 재료로 그린 동양화인 셈이다. 시간이 아주 오래 걸리는 작업방식이지만, 결과물은 동양화적 느낌이 나면서도 종이에 그린 것보다 내구성이 뛰어나 만족스러웠다.

 

▲   화호_캔버스에아크릴_65x100cm_2019  © 문화예술의전당

 

겨울이 지나 눈이 녹으면, 숲에서는 겨울에 스러진 동물들의 잔해를 마주친다. 창백하고 고요한 백골, 그 어디에 생명이 머물렀던 흔적이 있었나, 한참을 먹먹한 감정에 들여다본다. 그리고 그 백골을 뒤덮으며 돋아나는 풀들을 보면, 생명의 순환 속에 이 뼈의 주인이었던 자도 다시 돌아오겠지 생각한다. 그 무심하고 거대한 순환 속에서 차갑게, 그러나 가장 뜨겁게 빛나는 생명의 불꽃들 – 아마도 그것이 내가 표현하고 싶었던 것이 아니었을까. 신의 모습이든, 짐승의 모습이든 자신의 존재를 위해 온 힘을 다하는 모습은 다 신령스럽다. 그리고 그 모습은 백마디의 말보다도 더 큰 웅변이다. 수많은 잡념과 나약함에 빠진 나의 의지를 일깨워준다. 그래서 나는 늘 내 마음 속 눈오는 풍경을 향해 기도한다. 겨울산의 신. 그 차갑고 강한 힘을 내게 나누어달라고. 

 

[권종민 기자] lullu@lull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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