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로 세 돌을 맞은 국내 최대 공연축제인 ‘2003년 서울공연예술제’(10월 4일∼11월 2일)의 이종훈 예술감독이 언론을 향해 일침을 놓았다.
예술제에 참가하거나 초청된 좋은 작품들이 많이 있는데도 언론에서는 ‘벗는’ 공연에만 관심을 기울인다는 것이다.
이 감독은 “언론에서 소위 ‘누드’에 대해서만 관심을 가지고 기사를 쓰는데, 왜 그런 공연만 보도하는지 불쾌하다”며 “기자들을 만나
‘다른 좋은 작품들도 많으니 신경써 달라’고 했지만 아무 반응도 없었다”고 말했다.
서울공연예술제는 국내 공식초청 연극 7개작, 국내 공식초청 무용 12개작, 해외 공식초청 참가공연 6개작, 해외 자유참가작 2개작, 젊은 연극 초대전 8개작, 자유참가작 19개작 등을 비롯해 부대 행사로 광화문 댄스 페스티벌과 거리 연극제, 로비 음악회, 거리 음악회, 각종 세미나 등 다양한 문화 공연예술 행사를 열고 있다.
이 감독은 “그동안 서울공연예술제에 관객이 많지 않아서인지 작품 선정에 불만이 있어서인지 기자들이 예술제를 달갑지 않게 보는 것 같다”며
“하지만 올해는 나름대로 좋은 작품을 엄선했다고 자부하는데, 전체적인 기사를 별로 쓰지 않았다”라고 말했다.
경향신문과 중앙일보는 예술제에서 공연되는 작품과 행사 소개 기사를 게재했고, 동아일보와 한겨레신문은 안톤 체호프의 작품들을 소개하면서 공연제에 초청된 <갈매기>를 소개했다. 그런가 하면 대한매일은 14일 <올 가을 공연가 ‘알몸 바람’ 오페라·무용 등 누드장면 많아>기사에서 <리골레토>와 <봄의 제전>, <애프터 에로스> <폴몬티> 등을 예로 들었고, 국민일보는 8일 <‘누드와 나체’의 차이점은 무엇인가>라는 제목의 공연수첩을 게재했으며, 한국일보 역시 18일 <사랑방-뜬금없는 누드공연 열풍>이라는 기사를 게재했다.
조선일보는 9월 27일 <공연시간 내내 ‘태초의 모습’으로…누드무용 ‘애프터 에로스’>를 보도했다.
이종훈 감독은 “이번에 초청한 작품들은 대부분 특징이 뚜렷한 것들로, 특히 스페인 마르셀 리의 퍼포먼스 <에피주(EPIZOO)>와 <아파시아(AFASIA)>는 국내에서는 처음으로 공연되는 작품이고,
황금마스크 페스티벌에서 심사위원상을 받은 젊은 연출가가 만든 <오이디푸스-렉스(Oedipus-Rex)>,
체코의 데자돈컴패니가 공연한 <우리가 있던 그곳은(There Where We Were)>는
세계 무용의 흐름을 한눈에 볼 수 있는 작품이었다”며
“이런 작품들은 거의 다뤄지지 않은 채 ‘누드’가 나온다는 이유로 <애프터 에로스(After Eros)>가 주로 보도됐다”고 서운한 감정을 표현했다.
이 감독은 또 “최근 ‘누드’ 공연으로 언론의 주목을 받은 <리골레토>와 <봄의 제전>을 공연제의 <애프터 에로스>와 묶어 쓰는 데 총력을 기울이는 것 같아 기분이 좋지 않다”며 “심지어 유력 신문사 가운데 어떤 곳은 공연제에 대해 <애프터 에로스> 외에는 한 줄도 보도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축제는 시민들의 참여로 이뤄져야 하는 것이고, 그러기 위해서는 언론에서 축제에 대해 많은 정보를 제대로 전달하고, 서울 시민들의 정신적 활기를 찾아줘야 하는데 ‘누드’라는 말초적인 것에만 신경을 쓰고 있다”고 언론과 기자들의 행태를 강하게 비판한 이 감독은 “언론에서 제대로 소개조차 해 주지 않고, 관객이 없으면 공연예술계만의 책임인 것처럼 보도하는 것과, 상업적인 뮤지컬이나 연극만을 보도하는 것을 보면 과연 기자들이 공연예술에 대해 얼마나 전문성을 가지고 있는지 의심이 든다”고 꼬집었다.
그러나 공연·연극 분야를 담당하는 한 언론사 기자는 “지면이 남아 도는 것도 아니고, 기사 가치에 따라 기자와 데스크가 판단해 기사를 쓰는 것인데, 모든 작품을 일일이 다 소개해 달라는 것은 지나친 욕심”이라며 “성에 대해 비교적 보수적인 한국 사회에서 ‘누드 공연’이 기사 가치가 있는 것은 당연한 것”이라고 반박했다.
"19세기와 20세기, 21세기는 전적으로 다른 종류의 소통 방식을 필요로 합니다. 이 세기에는 테크놀러지가 엄청난 역할을 수행하고 있습니다"
서울공연예술제 공식 초청으로 한국을 찾은 스페인 출신 행위예술가 마르셀 리 안투네즈 로카(Marcelㆍli Antunez Roca.44)씨는 로봇, 기계를 인간의 신체와 혼합시킨 자신의 퍼포먼스가 미래지향적 소통의 한 형태라고 말한다.
10일까지 문예진흥원 예술극장 소극장에서 공연하는 「에피주(EPIZOO)」「아파시아(AFASIA)」는 로카씨가 각종 기계장치를 직접 몸에 부착하고 외부 자극과 자신의 신체를 조합하여 제3의 이미지를 창조하는 퍼포먼스. 형식적으로 대척점에 서있는 2개의 작품을 연이어 선보이는 식으로 공연은 진행된다.
아시아에서는 처음으로 공연한다는 로카씨는 "1994년 멕시코의 한 예술제에서 새로운 것을 공연하고 싶다는 취지의 초청을 받고 처음으로 「에피주」를 시작했다"고 밝혔다.
80년대와 90년대초까지 대규모 창작그룹 La Fura dels Baus의 창단 멤버로 활동하며 행위예술가로서 입지를 굳힌 로카씨 역시 마침 새로운 형식의 공연에 목말라 하던 차였기에, 양자의 욕구가 맞아 떨어졌다는 설명.
그는 "90년대 중반들어 테크놀러지가 이전과는 다른 무언가를 만들어낼 것이라고 생각했다"며 "이를 이용한 새로운 형태의 예술을 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이번 공연은 로카씨가 컴퓨터 제어시스템과 연결된 기계를 엉덩이, 가슴근육, 입, 코, 귀 등에 장치하고, 관객이 컴퓨터를 조작함에 따라 기계가 신체를 조정하는 15분 분량의 짧은 퍼포먼스 「에피주」로 시작한다. 디지털 기술과 '관객 참여'가 결합된 형식으로 초연시 화제를 모았던 작품.
이어지는 「아파시아」에서는 관객과 기계에 의해 조정당하던 신체가 기계를 지배한다. 분절된 신체 골격의 형상으로 구성된 로봇 '드레스켈레톤(dresskeleton)'을 입은 로카씨의 움직임에 따라 로봇이 반응하고, 이에 맞춰 로봇과 연결된 디지털 영상장치가 다양한 이미지를 영사한다.
로카씨는 작품과 관련해 "「에피주」는 동물의 전염병명"이라며 "신체적인 접촉은 이뤄지지 않지만 성적인 욕망이 전달되는 극한을 표현하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반면 「아파시아」의 경우는 "몇년 동안 「에피주」를 공연하다보니 희생자의 입장에서 벗어나, 스스로 기계를 조정하고 싶어 고안했다"며 "사진, 영화, TV, 인터넷 등의 연이은 등장으로 읽기 능력을 상실한 우리 시대의 새로운 소통 방식으로 영상에 주목한 공연"이라고 전했다.
물론 그 스스로도 자신의 작업의 난해성은 잘 알고있다.
로카씨는 "「에피주」는 사실 쉬운 공연이 아니고, 「아파시아」는 사회적 토양에 따라 관객의 이해도에 차이가 심하다"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관객들이 공연을 보고 그저 즐기는 것이 아니라 무언가를 생각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밝혔다.
그런데 첨단 디지털 기술을 소재로 하면서도, 왜 굳이 몸에 집착해 극단으로 치닫는 것일까?
스페인 출신 행위예술가 마르셀 리 안투네즈 로카,에피주,아파시아, 첨단 테크놀러지
그는 "몸은 정신의 거울이라고 생각한다"며 "테크놀러지가 발달할 수록 결국 최종적인 종착점은 신체일 수 밖에 없다"고 답하며 짧은 인터뷰를 마치고 무대 세팅 작업에 복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