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또 오탁(汚濁. 오염되고 탁함)의 거리를 내려다보았다. 거기서는 피곤한 생활이 똑 금붕어 지느러미처럼 흐늑흐늑 허비적거렸다. 눈에 보이지 않는 끈적끈적한 줄에 엉켜서 헤어나지들을 못한다. 나는 피로와 공복 때문에 무너져 들어가는 몸뚱이를 끌고 그 오탁의 거리 속으로 섞여 들어가지 않는 수도 없다 생각하였다.
나서서 나는 또 문득 생각하여 보았다. 이 발길이 지금 어디로 항하여 가는 것인가를…….
그때 내 눈앞에는 아내의 모가지가 벼락처럼 내려 떨어졌다. 아스피린과 아달린.
우리들은 서로 오해하고 있느니라. 설마 아내가 아스피린 대신에 아달린 정량을 나에게 먹여 왔을까? 나는 그것을 믿을 수가 없다. 아내가 대체 그럴 까닭이 없을 것이니 그러면 나는 날밤을 새면서 도적질을 계집질을 하였나? 정말이지 아니다.
우리 부부는 숙명적으로 발이 맞지 않는 절름발이인 것이다. 내가 아내가 제 거동에 로직(rogic. 논리)을 붙일 필요는 없다. 변해(辨解. 변명하고 해명함)할 필요도 없다. 사실은 사실대로 오해는 오해대로 그저 끝없이 발을 절뚝거리면서 세상을 걸어가면 되는 것이다. 그렇지 않을까?
그러나 나는 이 발길이 아내에게로 돌아가야 옳은가 이것만은 분간하기가 좀 어려웠다. 가야하나? 그럼 어디로 가나?
이때 뚜우 하고 정오 사이렌이 울렸다. 사람들은 모두 네 활개를 펴고 닭처럼 푸드덕거리는 것 같고 온갖 유리와 강철과 대리석과 지폐와 잉크가 부글부글 끓고 수선을 떨고 하는 것 같은 찰나, 그야말로 현란을 극한 정오다.
나는 불현 듯이 겨드랑이가 가렵다. 아하, 그것은 내 인공의 날개가 돋았던 자국이다. 오늘은 없는 이 날개, 머리속에서는 희망과 야심의 말소된 페이지가 딕셔내리(사전) 넘어가듯 번뜩였다.
나는 걷던 걸음을 멈추고 그리고 어디 한 번 이렇게 외쳐 보고 싶었다.
날개야 다시 돋아라.
날자. 날자. 날자. 다시 한 번만 더 날자꾸나.
한 번만 더 날아 보자꾸나.
▲ 김혜경이가 누군지 알아? 알구맙구쇼..내가 묻는 말에 경어를 써 경어. 경어가 뭔가유? 먹는건가유? 금홍 과 판사
1910년 9월 23일, 서울에서 태어난 이상(본명 : 김해경)은 1931년 '이상한 가역반응'이라는 시로 문단에 데뷔했다. 1933년부터 폐가 악화되기 시작했고, 1934년에는 김기림, 정지용, 박태원 등과 교유하면서, <조선중앙일보>에 그 유명한 시 '오감도'를 연재하다가, 빗발치는 독자들의 항의로 중단하기도 했다. 건강 악화와 사업 실패, 사상 혐의로 피검되는 등 결코 행복하지 않은 삶을 살았고, 게다가 26년 7개월이라는 짧은 생애로 요절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오감도' 등의 시와 '날개', '지주회시', '봉별기' 등의 소설을 통해 거의 파격적으로 한국문학의 수준을 올려 놓았다
1910년 서울 통인동에서 이발사의 아들로 출생 1912년 부모를 떠나 백부 김연필의 장손으로 성장 1917년 신명학교(新明學校, 당시 누상동 소재) 입학. 이 때부터 그림에 소질 보임 1926년 보성고보 5학년 졸업, 경성고등공업학교 건축과 입학 1929년 경성고등공업학교 졸업. 조선총독부 내무국 건축과 기수로 취직 <조선과 건축> 회지 표지도안 현상모집에 1등과 3등으로 각각 당선 1931년 처녀시 '이상한 가역반응'과 '오감도' 발표, 서양화 '초상화'를 '선전(鮮展)'에 출품, 입선 1933년 심한 각혈로 총독부 기수직 사임 1934년 '구인회' 가입, 본격적인 문학활동 시작. 1936년 '지주회시' '날개' 발표, 변동림과 결혼 후 도일 1937년 사상 불온혐의로 일본 경찰에 유치,
박제가 되어버린 천재를 아시오? 이상은 한국 근대문학사가 낳은 불세출의 시인이자 작가이다. 그는 스스로를 '박제가 되어버린 천재'라 불렀거니와, '폭풍이 눈앞에 온 경우에도 얼굴빛이 변해지지 않는 그런 얼굴'을 지닌 사람만이 사는 세계의 주민이 되고자 문을 두드린 최초의 한국인이었다. 문학을 통해서 인간 고통의 근원을 끊임없이 발견하려 했던 이상한 천재 작가, 그가 바로 이상이었다.
1910년 9월 23일, 서울에서 태어난 이상(본명 : 김해경)은 1931년 '이상한 가역반응'이라는 시로 문단에 데뷔했다. 1933년부터 폐가 악화되기 시작했고, 1934년에는 김기림, 정지용, 박태원 등과 교유하면서, <조선중앙일보>에 그 유명한 시 '오감도'를 연재하다가, 빗발치는 독자들의 항의로 중단하기도 했다. 건강 악화와 사업 실패, 사상 혐의로 피검되는 등 결코 행복하지 않은 삶을 살았고, 게다가 26년 7개월이라는 짧은 생애로 요절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오감도' 등의 시와 '날개', '지주회시', '봉별기' 등의 소설을 통해 거의 파격적으로 한국문학의 수준을 올려 놓았다.
이상이 주로 문학 활동을 하던 1930년대는, 식민지의 병리 현상이 완연한 시기였다. 이런 상황에서 이상은, 미국의 T. S. 엘리엇이 그랬듯이, '황무지' 의식을 가장 예각적이고 실험적으로 드러낸 작가에 속한다.
그의 문학이 기본적으로 그로테스크한 왜곡의 상태와 불안 의식, 세계 파국의 공포, 의식 체계와 형태의 파괴, 숫자의 뒤틀림과 유희, 그리고 자기 분열과 자의식의 과잉 등의 비합리적 세계로 일관되고 있는 것은 그런 까닭인 지도 모른다. 그것은 기존 문학 형태를 파괴하고 해체시킨 뒤에 전혀 새로운 의식과 언어, 스타일로 구축된, 그야말로 '이상한 가역반응'의 세계라고 말할 수 있겠다. 이상 문학은 한국 문학에서 새로운 세계 인식과 해석을 확인시켜 줌과 동시에 새로운 문학의 가능성을 보여준 대표적 사례다. (우찬제/문학평론가, 서강대 교수)
● 박제가 되어버린 천재를 아시오?
나는 유쾌하오. 이런 때 연애까지 유쾌하오. …굿바이!
● 날자, 날자, 날자, 한 번만 더 날자꾸나.
한 번만 더 날아보자꾸나!
● 20세기 한국문사의 기념비적인 작품 <李箱(이상)의 날개> 무대화!
●李箱(이상)의 난해하고 관념적인 세계를 미스테리 법정극으로 형상화!
2003년 채윤일 연출 작품 시리즈 제1탄!
극단「쎄실」레파토리 시스템 작품 李箱의 날개
●이상·작
●채윤일·연출
●정하연·각색
<때> 2003년 1월 3일 → 3월 2일 -> 5월 18일 까지 2차 연장을 해서 공연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