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칼집 속에 아버지’ - 나온씨어터,고연옥 작,전지욱 연출,여욱환,김영준,김혜나,송보은,강예나,김주영,김중기,강인성,박재원,정환욱,장용현,송민혁,이영매,조계성,조운,연극‘칼집 속에 아버지’ 공연의 프레스콜 전막 시연이 어제 나온 씨어터 에서 있었다. 개막 하루 전 극의 전막을 실제공연과 같이 중간 끊임없이 넌 스루로 시연하여 준비 잘 된 공연임을 공연 문화 연예계 기자들에게 확인시켜 준 무대였다. 어제 특이한 점은 ‘연극’임에도 출연배우들 배경 때문인지 연예를 담당하는 연예부 기자들이 많이 왔던 프레스 콜이어서 이채로웠다.
나를 찾아 가는 길 - 선(禪) 화두가 참 재미있다. 결국 참다운 '나'를 찾는 구도역정 求道歷程 아니겠는가?
고연옥 작가는 희곡‘ 칼집 속에 아버지’를 쓰면서 “작정하고 재미있게 썼다”고 했다.
“제54회 동아연극상 희곡상, 제11회 차범석 희곡상 수상자 고연옥 작가의 강렬한 역작!!”이라고 공연 프로그램도 작가를 소개하고 있다.
고연옥 작가는 사건을 전담하는 기자출신이다. 그래서 남들이 다 하는 연애, 사랑이야기에는 관심이 없다고 했다. 그럼 무엇에 관심이 있었을까? 고연옥 작가의 말을 들어보자.
고연옥 작가의 -희곡적 글쓰기-.
20대 시절에 줄곧 기자생활을 했는데,
주로 취재를 했던 것이 거대권력과 개인사에서 빚어지는 문제였지요.
예를 들어 조작 간첩사건, 군 의문사 문제, 국가 기관의 비리, 그린벨트 등과 같은
문제들을 쫓아다니며 권력 앞에 무너지는 인간들을 많이 만났습니다.
취재원들을 만나고 취재를 하다 보면 언제나 느끼는 건데요.
우리 소시민들은 지금 서 있는 곳에서 단 한 걸음만 더 가면 벽에 부딪혔습니다.
그게 바로 권력이라는 것이겠죠.
권력을 잡고 있는 사람들을 직접 만나보면 정말 아무것도 아닌 인간들인데,
그들을 둘러싸고 있는 것은 기득권, 자본, 그런 권력…
그런 것들이 철옹성처럼 둘러싸고 있어요.
그런데 안전망 하나 없는 우리 같은 약자들은 그들과의 싸움에서 절대 이길 수가 없습니다.
권력이라는 것은 아무리 큰 죄를 지어도 양심에 거리낌조차 없는데,
약자들은 조금만 발을 잘못 디디면 삶이 완전히 파괴되고,
범죄자가 되기도 하는 게 지금 세상의 구조적 모순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 사람에게 잘못이 있다기 보다는 어제는 그가 되고,
오늘은 내가 될 수 있는 수많은 위험들이 도처에 있는 것입니다.
그런 사건들을 많이 경험하다 보니,
사랑이야기나 가족 간의 이야기는 도무지 관심이 가지 않았습니다.
사건, 사고 전문작가(?)의 길로 가게 된 것이죠.
제가 그런 사건들에 더욱 매력을 느끼는 것은
새롭게 일어나는 일은 아무 것도 없다는 것 때문이었습니다.
어떤 사건들은 주기적으로 매우 반복적으로 발생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영아 유기, 근친살해, 치정살해, 연쇄살인 등등
매우 잔혹하고 끔찍한 사건들은 지속적으로 일어나고 있습니다.
우리가 이제 충격을 덜 받는 이유도 그래서 일겁니다.
저는 그 사건들이 계속 일어나는 이유는 인간 스스로 제어할 수 없는
어떤 본성 때문이 아닐까 생각해요. 그리고 그 사건들의 면면이
신화 속 이야기와 닮은꼴이라는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신화’라고 하면 영원불멸의 신들의 이야기라고 말하지만,
저는 신화란 인간 본성의 어떤 부분이 극대화된 존재들의 이야기라고 생각합니다.
그리스 신화만 해도 그렇지요.
자식 죽이고, 아버지 죽이고, 근친상간은 너무 흔한 이야기지요.
질투심 때문에 인간을 죽이고, 전쟁을 일으키고, 어찌 보면 신들의 막장 드라마입니다.
그리스에 남아있는 신전들은 단순히 신들을 존경하는 의미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러한 우리의 본성을 잘 알고 살아가라는 의미를 상징적으로 드러낸 것 아닐까요.
그런 면에서 볼 때 잘 알려진 오이디푸스 콤플렉스, 엘렉트라 콤플렉스 등등은
인간의 본성 속에 어머니와 성교하고 싶은 아들, 어머니를 경쟁자로 의식하는 딸의 본성이
있다는 것을 인정하게 하여 우리의 죄의식을 가볍게 하는 역할을 한다고 생각합니다.
정리하면 신화는 그들의 얘기 같지만 우리 본성의 이야기라는 것이죠.
신화학자 조셉 캠벨Joseph Campbell은
“뉴욕 거리의 신호등 앞에는 현대판 오이디푸스가 서 있고,
그 맞은편에는 <미녀와 야수 속편>이 방영되고 있다.”라고 얘기합니다.
즉 과거에서부터 현재까지 인간의 본성은 계속 되고 있다는 것이죠.
동, 서양을 막론하고 잘 알려진 신화뿐 아니라,
옛 이야기, 전설, 설화 이런 것들 역시 다소 허무맹랑해 보이지만
알고 보면 인간 본성에 대해 말하는 교과서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중략)
많은 연극들이 사회적 사건을 소재로 다루고 시대성을 담는 것이 굉장히 반갑습니다.
그런데, 사건을 재현 차원에서 작가의 해석 없이 그대로 보여주는 작품들을 보면
아쉽기도 합니다. 단순한 소재주의 극으로 머무를 때, 그 이야기는 더욱 허망합니다.
그런 이야기를 다룰 때는 더욱 치열하고 집요한 고민이 앞서고, 또 뒤따라야 할 것입니다.
인간이란 그렇게 단순하지가 않습니다.
아무리 나이가 어린 사람이라 할지라도, 혹은 배움이 짧은 사람이라 하더라도,
밑바닥 인생이라 해도, 인생의 깊이라는 것이 존재합니다.
만약 인간을 단순하게 표현하고, 드라마에만 치중하다 보면
결국은 인물의 행동에 동의할 수 없는 일이 일어나고 맙니다.
단순하고 표피적으로 인간을 그리는 경우가 많다는 의미입니다.
희곡을 쓸 때 가장 좋은 도구는 바로 ‘나 자신’입니다.
평범한 인간이자, 일정한 크기의 시간을 지니고 있는 나, 그리고 수많은 공간을 거쳐 온
한 인생으로서의 나를 매 순간 이용해야 합니다.
희곡을 쓰시는 여러분들이 드라마를 극적으로 만들어 가기에 앞서서
나라면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어떤 행동, 어떤 말을 할 것인가를 항상 되물으며
쓰시면 어떨까 합니다.
예를 들어, 살인사건을 소재로 하는 작품들이 많습니다.
그런데 살인의 이유가 다소 단순하게 그려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어린 시절의 트라우마, 학대의 경험, 혹은 원한, 치정 등등의 이유로
살인을 저지른다는 건데, 그렇다면 그 사건을 보도하는 신문기사와 다르지 않습니다.
과연 인간이 그럴까? 나라면 그럴까?
제가 인간에 대해 너무 낙관적으로 생각하는 건지 모르지만,
아무리 싸이코패스, 연쇄살인범이라도
아무 이유 없이 사람을 죽이는 괴물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어느 한쪽만의 일방적 원인 또한 있을 수 없습니다.
어떻게 보면 절대적 악자도 절대적 선인도 없는 것입니다.
어떤 인물이 왜 그런 선택을 했는지를 집요하게 찾아가는 것이
바로 인간에 대해 공부해 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합니다. ....(이하생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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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는 재단법인 국립극단에서 국립극단 백성희장민호극장에서 막을 올린 초연을 촬영했었다.
어제 공연 역시 촬영을 하며 초연과 이번 재연(다른 극단이 올린 초연) 공연을 비교하여 더듬으며 ‘배우들의 연습과정에서 겪었을 어려움과 무대에서 발화되는 고통의 연습 후 비로소 터지는 본 공연에서의 기쁨의 표출’을 즐겁게 UHD 4K 카메라로 촬영했다.
두 공연이 모두 확연하게 차이가 있다. 극장도 다르고 출연배우들도 다르다. 무엇보다 연출이 다르다. 2018. 4. 20(금) ~ 5. 13(일) 까지 대학로 나온 씨어터에서 공연되는 이번 공연에서 연출가 전지욱이 연출했다. 이번 공연에서는 조명이 방점을 찍고 극의 오브제를 도와주는 역할을 한다고 했다, 그래서 “칼집 속에 아버지, 연극, 정말로 가벼운 남자의 허세, 무사의 검과 음악 상징적 조명으로 흝어준다 ,고연옥 작,전지욱 연출”로 제목을 뺐다. 프레스콜 공연을 본 후 의상도 한 몫 단단히 했다고 써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번 공연의 스텝진은 무대_오태훈 / 조명_여국군 / 음악_고운 / 의상_조현정 /
안무_강예나, 무술감독_데이빗 송 으로 팀을 이뤄 공연의 완성도를 높였다.
시놉시스를 찾아보자.
용맹함과 날카로운 칼솜씨, 모든 싸움꾼들의 영웅으로 추앙 받던 찬솔아비가 어느 날 갑자기 살해되어 변솟간에 거꾸로 처박힌 채 발견된다.
범인은 오리무중. 찬솔아비의 아들 갈매는 어머니 아란부인의 간청에 따라 아버지의 원수를 찾아 나선다. 한 번도 칼을 빼든 적 없는 그는 무사 흑룡강과 백호가 안내하는 알 수 없는 길을 따라 7년의 길고 지루한 고행의 길을 걷는다.
갈매가 도착한 마지막 곳은 마을처녀를 재물로 받는 잔혹한 왕 검은등이 지배하는 세상이다. 더 이상 의미 없는 방황을 마치고픈 갈매는 검은등을 무찌르고 마을 처녀 초희를 구하려한다. 그러나 계획의 실패로 검은등의 주술에 걸린 갈매는 그의 꿈속으로 끌려들어가 아버지 찬솔아비를 만나게 된다.
드디어 빠져나갈 방법을 깨달은 갈매, 과연 그의 선택은?
나를 찾아 가는 길 - 선(禪) 화두가 참 재미있다.
결국 참다운 '나'를 찾는 구도역정 求道歷程 아니겠는가? <저작권자 ⓒ 문화예술의전당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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