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은선갤러리 정회윤 초대展 “버드나무 바람에 날리고...”
이혜경 기자 | 입력 : 2023/02/28 [02:22]
▲ 정회윤, 버드나무2, 자작나무에 천연옻칠, 자개,100x100cm,2022 © 문화예술의전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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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익대 대학원 출신의 정회윤 작가는 옻칠회화를 한다.
작가는 자연에 대한 경이로움과 상실의 시대를 사는 현대인의 삶을 자연의 재료인 옻칠과 자개를 사용한 전통기법으로 현대적 감성을 더해 신비롭게 표현하고 있다
정회윤 작가에게 있어서 작업이란, 자연을 찾아 나서면서 자연 자체를 회복한다는 의미와 의지를 담고 있다. 평소 자연에 대한 작가의 감정이 담겨있는 작품이다. 풍경을 옻칠로 칠하고, 그 위에 마치 드로잉이라도 하듯 자개를 붙여 그린듯한 느낌이 든다. 사포로 표면을 갈아내는 과정을 통해 우연적인 효과를 얻기도 한다. 많은 실험들을 거쳐 자개의 일정한 온도와 습도의 유지를 통해 파스텔 톤의 밝고 화사한 색감의 화면을 얻는다.
버드나무와 불꽃놀이의 경우에는 자개를 붙여 표현하는데, 자개를 세로로 길게 자르는 섬세한 감각의 끊음질 기법은 자연의 주는 감동을 고스란히 포획한다. 자개가 주는 미묘한 색감의 차이는 심플한 색면 구성과 대비되면서 더욱 돋보인다. 작품의 색감과 심플한 화면구성이 미니멀리즘, 색면화파의 추상회화를 떠올리게 만든다.
만물이 소생하는 3월의 햇빛 좋은날. 싱그럽고 아름다운 옻칠회화 작품 30여점을 장은선갤러리에서 선보인다. 정회윤 작가는 홍익대 문화예술경영대학원 석사와 국민대 미술교육석사로 개인전 12회 및 그룹전 60여회에 참여하며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으며 아시아프 히든아티스트(ASIAAF & Hidden Artist )로 선정된바 있다.
정회윤 초대展
“버드나무 바람에 날리고...”
2023.3.8 (수) ~ 3.25 (토)
장은선갤러리
서울시 종로구 운니동19 / 02-730-3533
www.galleryjang.com
▲ 정회윤, 불꽃축제, 자작나무에 천연옻칠, 자개,45.5x45.5cm,2022 © 문화예술의전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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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회윤, 버드나무_봄, 자작나무에 천연옻칠, 자개, 100.5X100.5,2021 © 문화예술의전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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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회윤의 옻칠 회화
사막에, 소금호수에, 버드나무에, 세상 끝에 서다
고충환(Kho Chunghwan 미술평론)
옻칠은 다루기가 까다롭다. 특정 온도와 습도에서 굳기 시작하는데, 조건이 맞지 않으면 굳지 않거나 원래 칠한 색상이 변해버리기 일쑤다. 그래서 잘못되면 귀찮아도 처음부터 작업을 다시 해야 한다. 그렇게 옻칠이 제 색을 내기까지 오랜 기다림이 필요하다. 여기에 옻칠은 기존의 질서와 반대되는 특성이 있다. 옻칠이 잘 경화되려면 습기가 있어야 한다. 기존 물감은 습기를 싫어하지만, 옻칠은 습기를 받아들인다...스피드와 효율성이 중시되는 현대사회의 가치와 상반되게 느껴지지만, 옻칠 과정 하나하나를 정성스럽게 해나가다 보면 정체성을 찾는 과정이자 수양의 과정이라는 생각이 든다. 가장 큰 영감의 원천은 자연이다. (나에게 작업이란) 현대인의 삶을 계절이라는 내러티브로 풀어나가는, 우리의 존재 이유를 찾아가는 여정이라고 생각한다. (작가 노트)
좀 과장해서 말하자면 현대인은 상실의 시대를 산다. 신을 상실하고, 중심을 상실하고, 유년을 상실하고, 고향을 상실하고, 원형을 상실하고, 자연을 상실하고, 자기를 상실한. 상실감이야말로 그가 다름 아닌 현대인임을 증명하는 징후며 증상인 시대를 살고 있다. 다만 그 경우와 정도에 차이가 있을 뿐, 상실감이야말로 현대인의 보편적인 세계감정이라고 해야 할까. 환경결정론자들은 시대 감정이 예술(그리고 예술형식)에 연동된다고도 했지만, 이런 상실의 시대에 예술은 무엇을 할 수 있는가. 예술의 당위는 어디서 어떻게 찾아질 수 있는가. 여기에 우리가 무엇을 어떻게 상실했는지 해석하고 분석하는 예술이 있고, 그렇게 상실한 것들을 되불러와 그리움의 대상으로 만드는, 치유와 위안의 계기로 삼는 예술이 있다. 각 현실주의와 낭만주의 혹은 이상주의적 태도와 유형으로 보면 되겠다.
그중 정회윤의 작업은 전자보다는 후자에 가깝다. 그에게 작업이란 상실한 것들의 원형을 찾아 나서는 과정이며, 그 과정에서 잊힌 자기_타자와 만나는 여로에 비유할 수가 있을 것인데, 존재하는 이유를 찾아가는 여정에 작업을 빗댄 작가의 고백과도 통하는 부분이 있다. 그렇다면 여기서 상실한 것들의 원형이란 무슨 의미인가. 칼 융은 개인의 기억을 넘어선 아득한 기억을 집단무의식이라고 불렀고, 그 집단무의식이 반복해서 나타나는 상징 그러므로 반복 상징을 원형이라고 했다.
그렇다면 작가에게 그 반복 상징(작가의 그림에서 반복해서 나타나는 테마) 그러므로 원형이란 무엇이고 어디에 있는가. 바로 상실한 자연에 있다. 다시, 그렇다면 여기서 상실한 자연이란 무슨 의미인가. 원래 자연은 숭고와 경외의 대상이었다. 샤머니즘과 토테미즘, 물활론과 범신론의 대상이었다. 그러나 문명의 발달과 함께 자연이 도구화되면서 자연은 숭고를 상실했고 경외를 상실했다. 그러므로 상실된 자연을 되찾는다는 것은 곧 도구화되기 이전의 자연, 원형 그대로의 자연, 원초적인 자연, 여전히 숭고와 경외의 대상으로서의 자연, 그러므로 자연 자체를 회복한다는 의미와 의지를 담고 있다.
그렇게 작가는 자연의 원형 그러므로 원형적 자연을 찾아 나선다. 그러므로 어쩌면 진정한 자기(불교에서의 진아), 잊힌 자기_타자를 찾아 나선다. 그렇게 찾아 나서면서 사막에 서고, 소금호수에 서고, 세상 끝에 선다. 여기서 세상 끝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아득한 풍경, 막막한 풍경, 가없는 풍경, 여기와 저기, 이쪽과 저쪽을 가름하는 풍경이 모두 세상의 끝이다. 세상의 끝이면서 동시에 세계가 시작되는 곳이기도 한 풍경이다. 실재하는 풍경이면서 동시에 어쩌면 마음속에 간직된 내면 풍경이다.
자기 속에 또 다른 태양을 품고 있는 양 열기를 뿜어내는 사막, 그 사막 너머에서 우연히 발견한 소금호수, 하늘과 땅이 맞닿아 있는 곳, 하늘과 호수가 서로 반영하고 반영되면서 경계를 허무는 곳, 40도가 넘는 열기를 품은 바람이라도 불어올 때면 자잘한 빛알갱이처럼 날아오르는 소금 입자들, 그리고 칠흑 같은 밤에 투명한 깊이를 만들면서 발광하는 별빛이 불러일으킨 비현실적인 풍경과 같은, 실제로는 수년 전 호주에서의 여행과 체류 경험을 의미하는 것이지만, 지금도 여전히 그때 그 인상 그대로 남아 작가의 작업을 견인하고 있다. 그동안 사막에서 소금호수로, 그리고 재차 버드나무로 소재가 바뀌었지만, 아마도 앞으로도 한참 동안 반복 상징으로 남아있고, 원형(그리고 원형적 풍경)으로 남아있을 것이다.
그 원형적 풍경을, 원형적인 풍경에 대한 인상을 작가는 옻칠과 자개로 그리고 붙였다. 어쩌면 옻칠로 칠하고, 그 위에 마치 드로잉이라도 하듯 자개를 붙여서 그렸다고 해야 할까. 옻칠은 보통의 페인팅과는 그 생리가 다르다. 보통 페인팅 그러므로 회화는 중첩된 터치가 모이고 흩어지면서 형태를 만들고 그림을 만든다. 터치 그러므로 붓질 그대로 보존되면서 쌓이는 것인데, 옻칠은 평평하게 펴지는 성질로 인해 붓질 그대로 보존할 수가 없다. 회화에서의 붓질 대신, 다른 색층을 쌓아 레이어를 만든다고 해야 할까. 그리고 사포로 표면을 갈아내면 부분적으로 밑칠이 드러나 보인다. 그렇게 갈아내는 과정을 통해서 비정형의 얼룩을 얻는, 마치 상처와도 같은 자국을 얻는, 때로 예기치 못한 우연적인 효과를 얻는, 그리고 그렇게 원하는 이미지며 질감을 얻는, 그러므로 사포질을 통해서 그림을 그리는 것이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여기에 옻칠은 그 생리가 까다롭다. 일정한 온도와 습도가 유지되어야 경화하는데, 사람으로 치자면 최악의 조건 속에서 작업이 이루어진다고 해도 좋을 것이다. 여기서 타이밍이 중요한데, 경화와 함께 색의 변색도 같이 진행된다고 보면 된다. 경화가 진행됨에 따라서 최초의 색상 그대로 남아있지도 않을뿐더러, 여차하면 색의 감도(색상과 채도)가 떨어지기 쉽다. 이런 난이도 때문일까. 깊고 어두운 색감의 화면에 비해, 작가의 그림에서처럼 파스텔 톤의 부드럽고 우호적인 느낌의 화면을, 밝고 화사한 색감의 화면을 얻기가 더 어렵다. 모르긴 해도 그동안 허다한 형식실험과 시행착오의 과정이 있었을 것이다.
그렇게 작가의 그림에서 색감만 놓고 보면, 단색이나 수평선이 중첩된 것 같은, 아득하고 막막한 느낌의, 화면 안쪽으로 깊이를 만들면서 확장되는 것 같은, 그러므로 어쩌면 자연의 본성에 부합하는, 심플한 화면 구성이 미니멀리즘을 상기시키고, 색면화파의 추상회화를 떠올리게 만든다. 자연감정 그러므로 평소 자연에 대한 작가의 감정이 자기표현을 얻고 승화된 형식을 얻고 있다고 해도 좋을 것이다.
그 위에 작가는 버드나무와 때로 불꽃놀이와 같은 일상적인 소재를 자개로 붙여 표현하는데, 작가의 그림에서 버드나무와 불꽃놀이는 각 정형과 비정형이라는 차이를 제외하면 서로 통하는 부분이 많다. 자개를 세로로 길게 잘라 마치 점을 찍어나가듯 연이어 붙여 고정하는 끊음질 기법을 구사하는데, 부드럽고 유연한, 불어오는 바람에 반응이라고 하듯 허공을 흔드는 버드나무 가지를 표현했고, 일정한 패턴을 그리면서 일시에 쏟아져 내리는 불꽃을 표현했다.
여기에 외부의 빛에 반응하는, 그렇게 카멜레온처럼 시시각각 변신을 보여주는 자개의 빛깔이 아마도 가녀린 띠가 만드는 섬세한 감각이 관건인 끊음질 기법에 최적화된, 형식과 내용이 부합하면서 감각적 쾌감을 주는 경우라고 생각된다. 소금호수에서 올려다본, 칠흑 같은 밤에 투명한 깊이를 만들면서 발광하던 별빛 이후, 때로 소멸을 위해 추락하는 유성이 보여준 비현실적인 풍경 이후, 자연의 본성 그대로를 고스란히 포획한, 자연이 주는 감동으로 사로잡는, 그런 경우라고 생각된다. 아마도 미묘한 색층(그러므로 차이 나는 색감)을 포함하고 있는 심플한 색면 구성과 대비되면서 더 돋보이는 경우라고 생각된다.
영화에 보면, 로드무비라는 장르영화가 있다. 삶을 길에 빗댄 영화고, 잊힌 자기, 진정한 자기, 자기_타자를 찾아 나서는 여행에 빗댄 영화다. 작가의 작업이 그렇다. 작가는 자기를 찾아 세상 끝에 선다. 사막 위에 서고, 소금호수 앞에 서고, 버드나무 앞에 선다. 그렇게 작가에게 세상 끝은 버드나무에도 있었다. 그리고 아마도 일상 속에도. 그리고 우리가 서 있는 지금 여기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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