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상 가장 위대한 백조와 10년 만에 돌아오는 키로프 이제껏 우리나라에서 경험할 수 없었던 호화로운 무대 선사 키로프 최고의 주역들, 뛰어난 기량의 엄선된 90여 명의 무용수들 그리고 웅장한 80여명의 오케스트라로 구성된, 발레 역사 상 가장 화려한 캐스팅! 러시아 공연 예술의 자존심이자 러시아를 대표하는 키로프발레 내한 마린스키 최고의 간판스타들, 키로프사상 처음으로 서울 무대 화려하게 장식 키로프발레/ 키로프 오케스트라 백조의 호수 역사상 가장 위대한 백조와 10년 만에 돌아오는 키로프 이제껏 우리나라에서 경험할 수 없었던 호화로운 무대 선사 키로프 최고의 주역들, 뛰어난 기량의 엄선된 90여 명의 무용수들 그리고 웅장한 80여명의 오케스트라로 구성된, 발레 역사 상 가장 화려한 캐스팅! 러시아 공연 예술의 자존심이자 러시아를 대표하는 키로프발레 내한 마린스키 최고의 간판스타들, 키로프사상 처음으로 서울 무대 화려하게 장식 지난 1995년 내한, 9회 공연을 완전 매진시키며 우리의 뇌리에 낭만주의 발레의 최고봉을 보여준 키로프 발레단. 열정적인 감동을 깊이 새겨넣고 떠났던 키로프 발레단이 키로프 발레 사상 가장 최고의 캐스팅으로 10년 만에 다시 우리나라를 찾는다. 울랴나 로파트키나는 <백조의 호수> 공연 사상 가장 뛰어난 오데트/ 오딜이라고 얘기되는, 러시아 최고의 고전 무용수이고 같은 배역을 맡은 알리나 소모바, 이르마 니오르다제, 소피아 구메로바 등도 모두 정통으로 바가노바 발레 아카데미를 졸업한 마린스키의 간판 무용수들이다. 러시아의 가장 뛰어난 남성 무용수 이고르 젤렌스키를 비롯해 다닐라 코르선체프, 레오니드 사라파노프, 이고르 콜브는 유수의 경연대회에서 화려한 입상 경력을 자랑하고 러시아의 영예로운 온갖 상들을 휩쓴 스타들이다. 마린스키의 그 찬란한 별들이 서울 무대를 화려하게 장식하는 것이다. 10월29일(금) 7:30 울랴나 로파트키나 (Uliana Lopatkina), 다닐라 코르선체프 (Korsuntsev) 10월30일(토) 2:00 알리나 소모바 (Alina Somova), 레오니드 사라파노프 (Leonid Sarafanov) 7:30 이르마 니오라드제 (Irma Nioradze), 이고르 젤렌스키 (Igor Zelensky) 10월31일(일) 6:30 소피아 구메로바 (Sofia Gumerova), 이고르 콜브 (Igor Korb) 최초로 키로프 입성한 최초의 그리고 유일한 외국인 발레리나 유지연-<백조의 호수>로 고국 팬에게 첫 인사 키로프발레단 최초의 외국인 무용수 - 발레리나 유지연. 발레의 대명사 러시아. 그 러시아를 대표하는 키로프 발레단의 유일무이한 외국인 무용수 유지연이 온다. 한국인 최초로 바가노바 발레학교에 입학해 수석으로 졸업 후. 또 다시 한국인 최초이자 유일한 외국인으로 키로프 발레단에 입단한 유지연은 만 14세에 러시아로 홀로 건너가 만 18세에 세계적인 발레단의 무용수가 되었고 몇 해 전, 국내 일간지에서 키로프 발레단 최고의 수석 무용수로 다시 돌아오겠다는 포부를 불태운 바 있다. 이제 키로프의 당당한 수석 무용수가 된 유지연이 <백조의 호수>스페니쉬 역으로 그간 힘겹게 쌓아온 열정과 노력을 선보인다. 스페니쉬 댄스는 오데트/ 오딜 다음으로 비중이 큰 역할이며 화려한 테크닉을 필요로 하는 역할이다. 250년 전통 세계 최고의 키로프는 곧 러시아 발레의 역사 마린스키발레단은 250여년 전 탄생한 이래로 러시아 안무법의 모든 역사와 밀접히 연관된다. 1783년부터 발레단은 상트-페테르부르크의 볼쇼이극장에서 공연하였고 1885년부터 마린스키 극장에서 공연했다. 그리고 1869년 주역 발레 마스터였던 마리우스 푸티파에 의해, 기존의 인지도없던 발레단의 수준이 전문가적인 수준으로 끌어올려 졌으며 이 위대한 아티스트의 업적은 표트르 차이코프스키, 알렉산더 글라주노프와 함께 작업 한 <잠자는 숲 속의 공주> <레이몬다> <백조의 호수>에서 그 절정을 이룬다. 키로프발레단은 60년대 이후에야 두각을 드러내기 시작한 볼쇼이발레단이 감히 모방할 수 없는 우아와 품격, 고전미가 철철 넘친다. 90년대 중반 페레스트로이카 이후 러시아 내 수 십 개의 발레단과 발레학교가 문을 닫고 심지어 볼쇼이까지 내분을 겪었던 와중에도 전혀 훼손됨없이 최고 예술의 자리를 지켜왔던 키로프 발레단은 발레리 게르기예르가 마린스키 극장의 예술감독과 상임지휘를 맡은 이후 더욱 획기적인 발전을 보이고 있다. 그가 활동하는 동안 마린스키 극장은 세계 최고 수준으로 끌어올려졌다. 제2의 화려한 최고 전성기를 이끌어낸 예술 감독이자 상임지휘자 발레리 게르기예프, 그리고 2백년 전통의 세계 최초 발레 오케스트라이자 세계 최정상급 키로프오케스트라 특히 마린스키 극장과 함께 호흡해온, <오페라-발레 오케스트라>에 뿌리를 둔 <키로프 오케스트라>는 18세기 피터 대제의 통치기에 설립되어 혁명 전에는 러시아 황실 오케스트라로 이름이 알려졌고 19세기 후반 음악 감독 나프라브닉의 지휘 하에 유럽에서 가장 훌륭한 오케스트라 중 하나로 인정받았다. 특히 상임지휘자 발레리 게르기예프를 통해 최근 더욱 눈부신 활동들을 선보이고 있으며 오케스트라 그 자체만으로도 세계 최정상급이라는 찬사를 받고 있다. 이제 발레단과 함께 서울을 찾는 90여명의 연주자가 빚는 웅장한 선율을 세종문화회관에서 감상할 수 있다. 러시아 발레는 곧<백조의 호수>다 – 키로프가 선보이는 불멸의 춤, 불멸의 사랑 <백조의 호수> 우리가 ‘러시아 발레’를 말할 때는 곧 <백조의 호수>(Swan Lake)를 칭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차이코프스키의 명작인 <백조의 호수>는 예로부터 러시아의 우호국 사신이 왔을 때 선사하는 대표적인 관람공연이며, 극장의 시즌공연 또는 외국 순회공연의 첫 시작을 여는 공연이기도 하다. 러시아 관광의 필수코스인 이 공연을 세계 모든 발레단이 주요 레파토리로 선보이고 있지만, 그들은 러시아 공연자들의 우월함을 암암리에 인정하고 있다. 키로프에서는 <백조의 호수>에 동시대인을 감동시킬 수 있는 모티브를 새로 도입하고 미학적으로도 더욱 세련된 발레 연출 기법을 작품에 도입하여 왔다. 따라서 키로프의 <백조의 호수>는 화려한 의상, 무대디자인 그리고 차이코프스키의 완벽한 음악에다 아름답고 과감한 표현력으로 관객들로 하여금 진정한 놀라움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불멸의 역작이다. 러시아의 자존심을 확인할 수 있는 유일무이한 기회 -보라! 키로프극장의 불빛을!” 키로프발레단에 대한 러시아의 자존심이 어느 정도였냐 하면, 세계 2차 대전 당시 러시아 제국의 수도였던 상트 페테르부르크 시내가 9백일 간 포위를 당하면서 당시 1백20만 시민 가운데 20여만 명이 굶어죽고,얼어죽고,총맞아 죽는 상황에서도 키로프 발레의 공연은 계속되었다고 한다. 죽음과 직면한 상황에서 하루하루를 보내던 당시의 상트 페테르부르크 주민들은 키로프에 불빛이 켜져 있는 것을 보고, 아직 도시가 함락되지 않았음을 확인하곤 했다는 것이다. 최고의 주역들과 호화로운 군무, 웅장한 오케스트라와 함께 우리나라를 찾는 러시아의 자존심 키로프 발레는 공연 애호가들에게 이제껏 맛보지 못한 깊은 감동을 선사할 것이다. 마린스키 오페라와 발레 컴퍼니 The Mariinsky Opera and Ballet Companies 마린스키 극장 오페라의 역사는 200여 년 전으로 거슬러 가야 한다. 극장의 시초는 1783년 볼쇼이(Stone)극장의 설립부터이다. 18세기 후반과 19세기 초에는 외국 작곡가들에 의해 쓰여진 작품과 초기 러시아 코믹 오페라를 볼 수 있었다. 러시아 국립 문화와 러시아 오페라의 발전의 다음단계는 “황제의 생애”(1836)와 “루슬란과 루드밀라”(1842)등의 오페라 창작과 연결된다. 오쉽 페트로프, 안나 보로비예바 페트로바와 마리아 스테파노바는 미하일 글린카의 오페라에 처음 출연한 배우들이다. 에드워드 나프라브닉은 러시아 오페라 발전의 주요한 공헌자로서, 성악가를 단련하고 최고급 오케스타라를 설립했다. 19세기에 부각된 지휘자는 에드워드로서 1863년과 1916년 사이에 초연된 모든 공연이 그의 지휘로 연출되었다. 이 시기에 율리야 플라타노바, 미하일 사리오티, 표도르 코미사르쳅스키, 이반 멜니코프, 표도르 스트라빈스키, 예브게니아 므라비나 그리고 마리아 슬라비나 등 최고 수준의 많은 성악가들이 배출되었다. 러시아 오페라의 “gold reserves”는 마린스키 오페라단의 자랑이다. 마린스키 극장은 보로딘의 “이고르왕자”초연 작품, 다르고미츠스키의 “루살카” 그리고 알렉산더 세롭, 무소르그스키, 림스키-코르사코프가 쓴 오페라들을 무대에 올렸다. 극장은 The Oprichnic 을 시작으로 차이코프스키의 모든 오페라들을 연출했다. “스페이드의 여왕”의 제작에 관한 역사는 ‘리사’와 ‘허만’을 공연한 첫번째 공연자인 메도아, 니콜라이 피그너와 함께 영원히 기록될 것이다. 상트 페테르부르크의 독특한 문화에 초점을 맞춰서 볼 때, 마린스키 극장은 서양의 정신적인 가치에 대해 개방적이었다. 마린스키 극장의 레퍼토리에는 세계 오페라의 최고 작품들이 포함되어 있다. 베르디 오페라의 러시아 초연작 “라 트라비아타”, “리골레토”, “라 포르자 델 데스티노”, “아이다'와 “오델로”, 고우노드의 오페라 “파우스트”와 리차드 슈트라우스의 오페라 “엘렉트라”등이 마린스키 극장에서 공연되었다. 20세기에 마린스키 극장은 오페라에 있어 새로운 미학적 발전에 기여한 괄목할 만한 작품들을 공연하였다. 알렉산더 베노이스, 콘스탄친 코로빈, 알렉산더 걸로빈과 발란쉰 세롭과 같은 몇 몇 재능있는 아티스트 등의 발견으로 극장은 많은 발전을 이루었다. 혁신적인 프세볼로드 메이에르홀드가 그의 작품들을 공연한 곳도 이곳이었다. 전쟁 후에, 지휘자 알리 파좁스키와 보리스 카이킨, 감독인 레오니드 바라토프와 일리야 세레피야노프, 디자이너 표도르 표도로프스키와 알렉산더 콘스탄티노프스키 그리고 시몬 비르살라드제들은 다 마린스키 극장에서 일했다. 소피아 프레오브라첸스카야, 니나 세르바이, 나제즈다 벨터, 올가 므샨스카야와 콘스탄친 랍체프는 이 시기에 가장 뚜렷한 활동을 한 무용가들이다. 오페라단이 혁신적인 발전을 한 이 기간에는 또한 유리 테미르카노프(주 지휘자 1976- 88)가 연결된다. 또한 이 기간에 라리사 쉐프첸코, 예브게니아 고라호프스카야, 콘스탄친 플루치니코프, 니콜라이 아호트니코프, 세르게이 레이페르쿠스, 알렉세이 스테블리얀코 그리고 유리 마루신 등 마린스키 극장에서 활동하였고 젊은 가수들에게 품격있는 전문성과 예술성의 본보기로 지금까지 그 자취를 남기고 있다. 마린스키 극장의 새로운 시대가 열린 것은 1980년 후반으로 발레리 게르기예프가 수석 지휘자와 예술감독으로 임명되고 나서이다. 그는 그만의 독창성으로 새로운 예술적 지평을 열었다. 오늘날, 마린스키 오페라단은 세계의 주요 오페라단과 함께 작업하며, 유명한 다수의 권위있는 국제 페스티벌에서 공연을 하고 있다. 오페라단의 성공은 크게는, 클래식이든 현대음악이든 간에 완벽하게 소화할 수 있는 그 실제적인 웅장한 재능에 기인한다. 마린스키 발레단은 250여 년 전 탄생한 이래로 러시아 안무법의 모든 역사와 밀접히 연관된다. 1783년부터 발레단은 상트 페테르부르크의 볼쇼이극장에서 공연하였고, 1885년서부터 마린스키 극장에서 공연했다. 외국의 발레 마스터들이 러시아 발레의 설립과 발전에 주도적인 역할을 하였다. 프란츠 길퍼딩, 가스파로 안지오리니, 조세페 칸지아니 그리고 찰스 르 퀴페 등은 모두 18세기 후반 상트 페테르부르크에서 활동하였다. 그러나 이미 1970년대에 이반 팔버크가 출현하는데, 그는 러시아 최초의 무용가이자 무용선생이었다. 그의 작품은 원칙적으로 판토마임 발레였다. 그는 그의 작품에서 주제가 풍부하게 살아나는 그리고 우리가 인식할 수 있는 삶의 현실과 같은 이미지를 창조하고자 노력했다. 나폴레옹에 대항한 러시아 전쟁의 사건을 그 자신의 발레무곡에 반영한 그의 작품은 매우 특별하다. 19세기 상트 페테르부르크 발레의 역사는 찰스 디델로트, 줄레스 페로트 그리고 아서 세인트-레옹의 활동과 밀접히 연관된다. 1869년마린스키 극장의 수석 발레 마스터는 발레단의 수준을 높이 끌어올린 마리우스 푸티파가 맡게 되었다. 이 위대한 아티스트의 업적의 절정은 교향곡 작곡가 표트르 차이코프스키와 알렉산더 글라주노프와 함께 한 “잠자는 숲속의 미녀”, “ 백조의 호수” 그리고 “레이몬다”이다. 이러한 발레들은 예카체리나 바짐으로부터 마리나 세메노바 그리고 갈리나 울리야노바 등, 이제 막 마린스키 극장에서 경력을 쌓기 시작한 젊은 무용수들에게까지 모든 발레리나들이 전 세대에 걸쳐 그 재능을 입증하는 공연이 되고 있다. 20세기에 접어들어, 마린스키 발레단은 안나 파블로바, 마틸다 크쉐신스카야, 타마라 카르사비나, 올가 프레오브라첸스카야, 올가 스페쉽츠세바, 바실라브 니진스키 니콜라이 그리고 세르게이 레가트 등과 같은 위대한 무용수들을 배출하였다. 이들 중 다수는 유럽이 미셸 포킨의 개척적인 작업을 도입했던 파리의 “the legendary Saisons russes”기간 동안에 러시아 발레에 영광을 안겨 주었다. 러시아 혁명기는 마린스키 극장에 있어 고난기였다. 고전 레퍼토리들이 유지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거의 대부분의 주역 무용수들이 발레단을 떠났다. 1922년 발레단은 과감한 개혁가이며 과거에 대한 뛰어난 식별가인 표도르 로브코프에 의해 주도됐고 극장의 레퍼토리는 새로운 작품들이 더해져 더욱 풍성해졌다. 특히 발레는 현대적인 주제로 다루었다. 이 시기에 갈리나 울리야노바 알렉세이 예르모라예브, 마리나 세메노바, 박탕 챠부키아니, 알라 셀레스트 그리고 그 외 다수의 발레 스타들이 상트 페테르부르크 발레단에 참여하였다. 1930년대 발레에 있어서 드라마적인 요소가 주요한 영향을 미쳤다. 이러한 경향은 로스치슬라브 자카로프의 작품 “바흐치사라이의 샘”, 박탕 차부키아니의 “산의 마음” 그리고 레오니드 라브로브스키의 “ 로미오와 줄리엣”에 반영되었다. 1960년 대에는 레오니드 라브로프스키의 “스파르타쿠스”와 “Choreographic Miniatures(안무의 축소판)”, 유리 그리고로비치의 “돌꽃” , “ 사랑의 전설”과 “희망의 해변” 그리고 심포니 댄스의 전통을 부활시킨 이고르 벨스키의 “레닌그라드 심포니” 등을 선보였다. 이러한 작품들의 성공은 우수한 무용수들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1950년대부터 1970년대까지 발레단은 이리나 콜파코바, 나탈리아 마카로바, 알라 오쉬펜코, 이리나 젠슬러, 알라 시조바, 루돌프 누레예프, 미하일 바리쉬니코프, 발레리 파노프, 유리 솔로페프, 아나톨리 사포고프와 같은 재능있는 무용수들을 보유하였다. 1970년대 후반 무렵 어거스트 버몬빌의 “라 실피다”와 “나폴리” 그리고 페롯의 “고전무용의 편린들”, 그리고 “세인트-레옹”과 “코렐리”가 마린스키 극장의 레퍼토리로 추가되었다. 프티파의 작품들 “백조의 호수”, “ 해적 ”, “ 라 바야데르 ”와 함께 “잠자는 숲속의 미녀”는 조지 발란쉰, 롤랑 프티와 켄네스 맥밀란의 발레들과 함께 현재 마린스키 극장의 레퍼토리들이다. 마린스키 예술감독 겸 상임지휘자 -발레리 게르기예프Valery Gergiev 마에스트로 발레리 게르기예프는 1953년 5월 2일 모스크바에서 태어났다. 상트 페테르부르크의 림스키- 코르사코프 음악대학 심포니 지휘과 (뮤신 Musin 교수 사사)를 수료하였다. 아직 음대생이었던 23세에 그는 베를린에서 열렸던 카라얀 지휘경연(the Herbert von Karajan Conducting Competition) 에서 수상하였고, 그 해 키로프 극장에 초대되어 함께 일하게 되었다. 1977년도부터 키로프 극장을 지휘하였고, 1981년부터 1985년까지는 아르마니아 심포니 오케스트라의 수석객원 지휘자로서도 활동하였다. 35세에 발레리 게르기예프는 마린스키 극장 오페라단의 예술단장으로 임명되었고, 1996년부터는 마린스키 극장의 예술관장이 되었다. 그가 마린스키 극장에 공헌하는 시간 동안 마에스트로의 주 목적은 항상 마린스키 오페라 컴퍼니가 세계에서 최고가 되게 하는 일이다. 지난 50년 동안 레퍼토리는 전례없는 발전을 이루었다. 마린스키 극장은 모차르트의 “돈 지오반니”, 무소르그스키의 “The Sorochinsky Fair, 보리스 고두노프와 코반쉬키나 , 베르디의 “오델로”,”아이다”, “라 포르자 델 데스티노”,”돈 카를로스”, “멕 베드”, “가면 무도회”, “라 트라비아타” . 프로코피예프의 “불의 천사”, “도박가”, “전쟁과 평화”, “수도원에서의 약혼”과 “세묜 코트코”. 림스키-코르사코프의 “프스코프의 하녀”, “사드코”, “불멸과 전설 속의 보이지 않는 도시 키테취”와 “하녀 페브로니나”. 쇼스타코비치의 “카테리나 이즈마이로바”, 스트라우스의 “숭어”와 차이코프스키의 “마제파(Mazepa)” ,”예브게니 오네긴”, “스페이드의 여왕” 등이다. 상트페테르부르크의 무대에서 열린 가장 흥미로운 공연은 바그너의 오페라들로, “로엔그린”, “팔시팔(Parsifal)”과 전곡을 독일어로 공연한 “리벨룽겐의 반지” 전곡 “라인의 황금”,”발퀴레”, “지그프리트”, “신들의 황혼”으로 독특하면서도, 전례가 없던 이벤트였다. 발레리 게르기예프는 코카서스(Caucasus Vladikavkaz) 에서 개최된 ‘평화를 위한 음악회’를 포함하여 미켈리 페스티벌( The Mikkeli festival , Finland), 홍해 페스티벌( The Red Sea festival, Eilat), 키로프 필하모니(런던) , 로테르담 필하모닉 – 게르기예프 페스티벌 (네덜란드) 그리고 모스크바 부활절 축제 등 많은 국제 페스티벌의 창설자이며 음악 감독이다. 그는 무소르그스키 페스티벌(1998), 프로코피예프 페스티벌(1991,1992)을 창립하고 운영하고 있는데, 작곡가의 광범위한 작품들 중 2개의 오페라 초연(“전쟁과 평화”, “세 오렌지를 위한 사랑”, “도박가”, “불의천사), 여러 심포니곡과 칸타타-오라토리오 작품들, 그리고 20세가 페스티벌(1994) 중의 림스키 코르사코프를 공연하였으며 이는 세계 음악 문화에 지대한 영향을 주었다. 물론, 발레리 게르기예프는 그가 1993년에 설립하였고, 상트 페테르부르크에서 해마다 열리는 “백야의 별들(Stars of the White Nights festival)” 페스티벌의 숨은 에너지이자, 영감의 근원이다. 마린스키 극장과 세계 일류의 오페라 극장들과의 예술적 협력작업을 처음으로 생각해낸 사람도 바로 발레리 게르기예프이다. 세계 일류 오페라 극장에는 메트로 폴리탄 오페라, 코벤트 가든, 카를로 펠리체, 샌프란시스코 오페라, 라 스칼라,뉴 이스라엘 오페라 등이 있다. 샤를렛 극장들과의 예술적 협력을 처음으로 생각해낸 사람도 바로 발레리 게르기예프이다. 발레리 게르기예프는 우리 시대의 가장 뛰어난 지휘자 중 한 사람이다. 그는 베를린 필하모닉, 런던 심포니 오케스트라, 로얄 필하모니 오케스트라 (영국), 프랑스 국립 오케스트라, 스웨덴 라디오 오케스트라와 샌프란시스코 오케스트라, 보스톤, 토론토, 시카고, 클리블랜드, 달라스, 휴스톤, 미네소타, 몬트리올과 버밍험 등의 유명한 앙상블과 공연을 가졌다. 그는 1995년 이래로 로테르담 필하모닉의 수석 객원 지휘자이며, 1997년부터 2002년까지 메트로 폴리탄의 수석 객원 지휘자로 활동했다. 발레리 게르기예프의 지휘 아래, 마린스키 극장은 투어공연을 널리 가졌고 유럽을 넘어 북미와 남미, 중국, 일본, 오스트레일리아 등의 나라에서 큰 호응을 얻었다. 특별히 게르기예프와 필립스사와는 오랜 기간 동안 함께 일해 왔는데 그 결과 30개 이상의 음반 녹음을 작업했다. 특히 마린스키 극장과 로테르담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와 함께 그의 베스트 레퍼토리인 오페라, 발레곡, 콘서트 프로그램의 지휘 곡을 음반에 담았는데, 그 중에는 글린카, 차이코프스키, 무소르그스키, 림스키-코르사코프, 스트라빈스키, 쇼스타코비치, 프로코피예프, 비제, 베를리오즈, 베르디, 브람스와 브룩크너 등 러시아 작곡가와 비 러시아 작곡가 작품을 비슷한 비율로 작업하였다. 마에스트로 게르기예프의 음악적 업적은 그에게 많은 상과 업적을 가져다 주었다. 그는 ‘러시아 예술가 상’(1983)과 러시아의 ‘예술인 상’(1996)을 수상하였고, 같은 해 6월 ‘국제 클래식 음악 상’ 중 올 해의 지휘자상을 수상하였다. 또한 1994년과 1999년에 ‘러시아 국가상’을 받았다. 최고의 지휘자 상으로서, 러시아 최고의 극장상인 ‘황금 마스크상’을 1996년~2000년에 수상했고 1997년,1998년 그리고 2000년에는 상트 페테르부르크의 최고의 극장상인 ‘Golden Sophit’을 받았다. 1998년 Philps Electronices는 그가 음악에 헌신한 일을 기리기 위해 특별한 상을 수여했는데, 이는 그가 마린스키 극장 아카데미의 젊은 가수들을 위해 후원금을 기부했기 때문이다. 2000년 그는 국제예술아카데미의 전체 멤버를 구성하였다. 같은 해에는 러시아와 아르메니아의 최고상인 “the Order of Friendship”과 “the Order of St. Mesrop Mashtots”를 수상하였다. 마에스트로 게르기예프는 또한 독일의 ‘1등 공신상’과 이탈리아의 “Grand Ufficiale al Merito”와 프랑스의 “L’Ordre des Arts et des Lettres”을 수상하였다. 2002년에는 그의 예술분야의 업적을 기리는 ‘예술과 과학부분 대통령상’을 받았다. “ 게르기예프는 비균형적이게도 세계 현대음악의 큰 부분을 그의 어깨에 짊어지고 있다. 그의 관리 하에 마린스키 극장은 가장 존경 받는 오페라단이 되었다.” <백조의 호수> 시놉시스 Swan Lake Synopsis Act 1 Scene 1 : 성의 공원 지그프리트 왕자와 그의 친구들은 비공개로 파티를 열어 왕자의 성년을 축하하고 있다. 축하객들은 왕자의 건강을 기원하는 축배를 들고 광대는 익살을 떨며 축하객들을 환대한다. 왕자는 그의 어머니인 왕비 리젠트가 오고 있다는 주의를 받는다. 왕비가 왕자의 행동에 대해 언짢아 하자 왕자는 왕비를 달래기 위해 연회의 장미다발을 바친다. 왕비가 떠나자 파티가 새로이 시작된다. 여명이 내린다. 손님들이 돌아가고 왕자는 공원에 홀로 남는다. 지그프리트는 높은 곳, 백조 무리의 광경을 목격한다. 그리고 그 장면은 왕자에게 사냥하고픈 충동을 일으킨다. 그는 활을 꽉 쥐고 숲의 심장부로 달려간다. Scene 2 : 한 밤 중, 숲 속의 호수 백조들은 물가에서 수영을 하고 있다 ; 그들은 악의 마술사 로스벌트에 의해 변한 아름답고 젊은 소녀들이다. 그들은 오직 밤에만 인간의 형태를 취하는데, 악마의 이 주문을 깰 수 있는 지구상의 유일한 힘은 헌신적인 사랑뿐이다. 지그프리트가 출현한다. 그는 하얀 새들 중 물가 쪽으로 다가온 한 마리를 보고는 그것을 쏘기 위해 활시위를 당긴다. 그 새는 갑자기 아름다운 여인으로 변한다. - 이것이 백조-소녀들의 여왕, 오데트이다. 오데트의 아름다움은 왕자를 사로잡고 그는 오데트를 잡으려 노력한다. 그러나 악의 마술사를 두려워하는 그녀는 지그프리트를 피하면서, 백조-소녀들의 중앙으로 숨는다. 지그프리트는 오데트를 뒤쫓고 영원한 사랑과 그녀에 대한 순정을 맹세한다. 오데트 역시 지그프리트에게 열렬한 사랑으로 답변한다. 새벽이 열린다. 오데트는 지그프리트와 이별을 하고 백조들은 천천히 미끄러지듯 호수를 가로질러 사라진다. Act 2 Scene 3 : 성 안의 무도회 지그프리트는 무도회에 초대된 좋은 가문의 소녀들 중에서 신부를 골라야만 한다. 그러나 그는 그의 마음을 오데트에게 주어버렸기 때문에 소녀들에게 무관심하다. 오직 왕비의 강요로 신부의 물망에 오른 몇 몇과 춤춘다. 그러나, 그는 그들 중 한명을 선택해야만 하고 사랑의 증거로 그가 선택한 신부에게 부케(꽃다발)를 줘야만 한다. 그가 이 딜레마에 직면해 있을 때, 트럼펫의 팡파르가 새로운 손님의 도착을 알린다 : 마술사 로스벌트와 그의 딸 오딜이다. 왕자는 그녀가 오데트와 흡사함에 매료된다. 로스벌트는 왕자가 오딜과 사랑에 빠지고 그럼으로써 왕자가 그의 영원한 사랑과 순결의 맹세를 깨게 되는 것을 원한다; 그러면 오데트는 마법사의 마력에 영원히 갇히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이유로 로스벌트는 그 자신의 딸에게 오데트의 모습과 특징을 부여한 것이다. 오딜은 그녀의 매력에 반한 지그프리트를 유혹한다. 왕자는 그녀의 어머니(왕비)에게 아름다운 오딜이 그의 선택임을 알린다. 안달이 났던 마법사는 매우 기뻐한다. 갑자기 지그프리트는 성 창문 밖으로 진짜 백조-소녀의 모습을 본다. 그리고 그가 현혹되어 자신의 맹세를 깼음을 알아차린다. 절망에 빠진 왕자는 그의 사랑하는 오데트를 찾기 위해 호수로 급히 달려간다. Act 3 Scene 4 : 한 밤중, 호숫가 백조-소녀들은 낙심한 채 슬프게 서있다. 오데트는 그들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었는지 얘기하고 있다. 지그프리트는 그들에게 달려간다. 그는 오데트가 그를 용서해 주기를 빌며, 그녀를 위한 그의 불멸의 사랑을 고백한다. 그러나 화난 마법사는 흑조들을 모아 오데트와 지그프리트를 갈라 놓으라고 명령한다. 지그프리트는 마법사와 결투를 벌인다. 결투에서 용감하게 왕자는 로스벌트의 날개를 부러뜨린다. 마법사는 쓰러지고, 그의 마력은 사라졌고, 그는 죽는다. 사랑이 악의 주문을 풀었다. 태양이 떠오르며 왕자와 오데트 그리고 지그프리트가 구출한 소녀들을 찬란히 비춘다. <저작권자 ⓒ 문화예술의전당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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