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리뷰]별에서 온 그대, 쌤을 아시나요?, 명계남 출연, 극단 완자무늬 연극 ‘은하수를 아시나요’,재미와 감동의 연극
단완자무늬 창단 30주년 기념공연 ‘은하수를 아시나요’(칼 비트링거 작), 3월 9일까지 정미소에서 공연
우미옥 기자 | 입력 : 2017/11/29 [02:11]
[시사코리아=우미옥 기자] 최근에 많은 여심을 흔들고 있는 드라마가 한 편 있다. 4백 년 동안 지구에 머물고 있는 꽃미남 외계인, 차갑고 도도하지만 따뜻하고 여린 맘을 갖고 있는 남자 주인공은 곧 그의 별로 돌아갈 날을 기다리다가 그만 지구인과 사랑에 빠지고 만다.
지구인들의 일에는 신경 쓰지 않겠다던 그가 자신의 목숨을 내걸고 그녀를 지키기 위해 노력한다. 그는 고향 별로 다시 돌아갈 수 있을까? 아니면 포기하고 지구에 남아 그녀 곁에서 죽음을 맞이할까?
‘은하수를 아시나요?’ 공연을 보면서 문득문득 그 드라마가 떠올랐다. 이 작품의 주인공 역시 ‘별에서 온 그대’이기 때문이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별에서 온 어린왕자’라고 하면 더 맞을 듯싶다. 아니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그는 15년이 넘게 전쟁터에 있다가 부상을 입고 돌아왔지만, 고향에서는 벌써 죽은 것으로 여기고 비석까지 세운 '쌤'이다.
첫 장면과 마지막 장면은 정신병원에서 시작하고 끝난다. 쌤은 정신병원에 있고, 그가 쓴 희곡으로 담당 의사와 함께 극중극을 통해 지구에서 일어났던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이 작품의 제목은 우리말로 해석되어 ‘은하수를 아시나요?’이며, 원제는 ‘Milkyway'이다. 그는 환자들에게 우유 배달하는 일을 하고 있다. 제목은 이중적 의미를 갖고 있다. 그는 은하수를 가리키며 자신은 그 중 하나의 별에서 지구로 왔다고 말한다. 그리고 언젠가는 다시 돌아갈 것이라고 한다.
그에게 돌아가야 할 별은 전쟁 이전의 세계를 뜻한다. 부모님과 사랑하는 연인이 있는 고향을 뜻하기도 하며, 전쟁 이후의 각박하고 차가운 세상이 아닌 그가 꿈꾸는 이상향을 말하기도 한다. 그리고 잃어버린 순수함을 뜻하기도 한다.
우리말로 번역된 제목은 왠지 좀 올드한 느낌을 준다. 악극을 연상시키기도 한다. 제목에 대한 고심이 컸으리라 짐작된다. 하지만 드라마투르그가 밝혔듯이 원작 각색 없이 그대로 공연했다고 하는 것을 보면 아마도 제목 역시 가감 없이 그대로 보여주고 싶다는 의도가 있었던 듯싶다. 하지만 은하수와 우유의 간극은 좀 크게 느껴졌다.
하지만 제목에 대한 인상과는 달리 원작을 가감없이 공연함에도 불구하고 현대적인 감성을 지니고 있었다. 그리고 희한하게도 요즘 유행하는 ‘별에서 온 그대’에 나오는 대사들과 비슷한 대사가 많았다. 수십 년 전 독일 작품임에도 불구하고 최근의 관객들에게도 쉽게 다가갈 수 있을 것 같았다.
이 작품은 극단 완자무늬의 30주년 기념작이다. 40년 전 대학에서 의기투합했던 완자무늬의 김태수 대표와, 장제훈 연출, 창단멤버인 명계남 배우, 이들 3인방이 40년 전 했던 오래된 약속을 지키기 위해 만든 연극이라고 한다.
전후 독일을 배경으로 전쟁에서 돌아온 자들이 느끼는 소외감과 이방인의 느낌을 다룬 연극들이 꽤 있고, 이런 형식의 연극이 그 당시 독일 연극의 경향이었다고 하지만 이 작품이 지금의 관객들에게도 공감을 주고 감성에 맞는 까닭은 작품이 지닌 보편성과 우화성이라고 생각된다. 그것은 마치 쌩떽쥐뻬리의 ‘어린 왕자’가 시대와 공간과 세대를 뛰어넘어 아직까지도 많은 사람들이 손꼽는 감동적인 이야기인 것과도 같은 이유일 것이다.
연극 '은하수를 아시나요' 공연 무대,설치극장 정미소 |
주인공 쌤은 마치 지구에 떨어진 어린왕자 같다. 그는 어린왕자가 별들을 여행하면서 만나는 어리석은 어른들과 같은 인물들을 차례로 만난다. 로드무비처럼 쌤은 여러 곳을 전전하며 사람들을 만난다. 전쟁의 참혹함을 겪었지만 여전히 아이 같은 순수함을, 희망을 지닌 그가 만나는 사람들은 모두 어둡고 이중적인 모습을 보인다. 그들은 쌤을 이용하려고 하고 그를 팔아넘긴다.
하지만 쌤은 누구도 원망하지 않고 자기의 처지를 슬퍼하거나 절망하지도 않는다. 그는 모든 상황을 기꺼이 받아들이고 최선을 다해 살아가려고 노력한다. 집과 땅을 빼앗기고, 사랑하는 연인과 가족을 잃고, 이름을 잃고, 억울한 누명을 쓰고 감옥에 갇히기도 하고 죽음의 위험에 처하기도 하고 결국에는 정신병원에 갇히기도 하지만 결코 절망하지 않는다.
공연장에서 죽음의 바퀴를 굴리는 마지막 순간까지 희망의 끈을 놓지 않으려는 그의 모습에 관객들은 현실의 부조리함을 느끼고 슬픔을 느끼게 된다. 정신병원에 들어간 그는 그곳에서 비로소 잃었던 자신의 이름 ‘쌤’을 되찾지만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우유 배달이다. 하지만 그는 그 안에서 희곡을 쓰고 그것을 공연하면서 오히려 함께 연기를 했던 담당 의사를 변화시킨다. 꿈을 포기했던 의사에게 병원을 빠져나갈 수 있는 힘을 준다.
밝고 명랑하고 순수하고 깨끗한 마치 하얀 도화지 같은 쌤을 바라보면서 슬픔과 동시에 미소를 짓게 된다.
이 작품은 코미디극을 표방한다. 하지만 말장난이나 슬랩스틱이 아닌, 가볍지만은 않은 재미를 준다. 아이러니하고 부조리한 상황들, 그러한 상황들을 만들어내는 인물들을 통해서 현실의 우리 모습을 반추할 수 있고 그러면서 그 안에서 씁쓸한 미소를 짓는다.
무엇보다 이 작품에서 건진 가장 큰 수확은 일인 다역을 연기하는 명계남 배우의 물오른 연기이다. 배우는 무대에서 빛이 날 때 진정한 배우이다. 그는 마치 중국의 변검 공연에서 얼굴이 휙휙 변하는 인물처럼 역마다 놀라운 변신을 거듭한다. 짧은 시간 동안 역에 맞는 의상과 소품으로 변신을 하고, 인물에 따라 말투, 표정, 움직임 등을 변신시키는 명계남 배우의 연기가 돋보였다.
40년 동안 배우 생활을 했다면 권태에 빠지거나 습관화될 듯도 싶지만 그는 그렇지 않았다. 인물마다의 독특한 캐릭터를 만들면서 강한 에너지와 열정을 내뿜고 있었다. 정말 멋진 배우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린왕자처럼 순수하고 깨끗한 심성을 보여주는 주인공 역의 박윤희 배우 역시 마치 연기가 아닌 진짜 쌤인 것 같은 느낌을 줄 만큼 역할과 자신을 일치시키고 있다.
단출한 무대 장치와 회색으로 칠해진 의자, 상, 물병, 컵 등의 소품을 배경으로 등장하는 다채롭고 다양한 의상의 배우들은 마치 흑백 영화 속에 컬러풀한 두 인물이 들어와 있는 것 같기도 하고, 만화 같은 느낌을 주기도 한다. 극중극이라는 상황을 보여주기도 하지만 그만큼 인물에 더 집중할 수 있어서 배우 그 자체를 돋보이게 하는 무대 장치였다.
철근 구조물로 얼키설키 엮어진 뒤 배경은 미로 , 정글짐 , 사다리를 연상시키게 한다. 병원 밖의, 세상의 모습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우유처럼 흐르는 별의 무리들 은하수, 그 가운데 하나의 별에서 온 어린왕자 쌤. ‘별에서 온 그대’에게서 지구에서는 찾기 힘든 진정한 사랑을, 진정한 희망과 꿈을 보았다.
▲ 연극' 은하수를 아시나요'에서 열연중인 명계남 ,박윤희 배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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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 정보> 연극 '은하수를 아시나요' 칼 비트링거 작 이동승 역 장제훈 연출 명계남, 박윤희 출연 공연 날짜 : 2014. 2. 14 ~ 3.9
평일 8시 / 토요일 3시, 7시 / 일요일 3시
공연 장소 : 설치극장 정美소
문의전화 : 02-734-7744
페이스북 : www.facebook.com/doyouknowmilkyway
[우미옥 기자] red@sisakorea.kr, red@lull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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