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를 구한 도둑女들의 반란이 시작 된다. 연극 '전쟁터를 훔친 여인들'
“생명을 부정하라! 아니다. 피 흘리는 삶의 고귀함을 마주하라.”권력 놀이에 빠진 남자들, 용감한 여자들의 한판 승부
우미옥 기자 | 입력 : 2017/11/29 [04:17]
거칠 것 없고 생명력 넘치는 상상력의 세계가 펼쳐진다. <전쟁터를 훔친 여인들>은 권력 다툼과 힘의 게임 속에도 시대와 장소를 넘어 여전히 살아있는 싱싱한 삶의 생명력의 관한 이야기다. 작품은 나라를 새롭게 창업하고자 하는 도련님과 그의 군대, 화전민 여인들을 중심으로 진행된다. 도련님과 군대는 나라를 세운다는 미명하에 전쟁과 살상을 자행하고 노동 없이 먹을 것을 축내기에 바쁘다. 그러나 화전민 여인들은 양식을 나누고, 가족을 만들며 다음 세대의 미래를 내다보는 진실하고 원초적 삶을 추구한다. 수천 년 동안 나라가 세워졌다가 사라지는 세월 속에서 인간의 삶을 지속시키는 것은 무엇이었을까? 작품은 상반된 두 그룹의 삶을 통해 인간의 존엄한 생명력과 불변의 가치에 대해 이야기 한다. 이번 작품은 남성중심의 ‘개국신화’라는 허상과 위선 속에 가려진 가장 겸허한 진실이 담겨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권력보다 질긴 삶의 생명력, 나라를 구한 도둑년들 작품은 세상의 상반된 두 개의 세계를 보여준다. 남성과 여성, 죽음과 생명, 권력과 희생, 그리고 고기와 채소. 도련님으로 대변되는 ‘남성’이 삶을 파괴하는 존재라면, 화전민 여인들은 자신의 삶을 내어주면서 삶을 지켜낸다. 작품에서는 시종일관 두 개의 이미지가 대립한다. 이처럼 서로 반대 되는 요소 들은 극의 갈등구조를 이룸과 동시에 실제 세계를 구성하는 것이기도 하다. 남성이 추구하는 권력과 이데올로기는 그 안에서 수많은 죽음과 허상을 낳는다. 작품 속에서 남성은 권력을 위해 거짓 예언을 만들고 한 달의 한번 월경하는 여성의 삶 자체를 부정하고 탄생의 근원을 거부하며 극단으로 치닫는다. 반면, 전쟁에 휘말린 여인들은 그 극한 상황에서도 병사들을 먹이고, 씨종자를 나눠주며 다시 밭을 일군다. 여인들이 전쟁터를 훔친 이유는 죽음의 땅을 생명의 땅으로 만들기 위한 것이다. 채우는 작가 김지훈, 비우는 연출 김광보의 만남 김지훈 작가와 김광보 연출이 드디어 만났다. 둘의 만남만으로 이번 작품의 완성도에 대한 기대감이 높다. 작가 김지훈은 자신감 넘치는 언어 표현과 거침없는 상상력으로 시공을 가로지르는 거대한 담론을 펼쳐놓는 것이 장기이다. 이번 작품은 마치 영화나 복잡한 게임 스토리를 방불케 하며 놀라운 상상력을 보여준다. <원전유서>,<풍찬노숙>에 이은 김지훈표 개국신화 3부작의 마지막으로, 시대 미상의 과거, 국경의 어딘가를 배경으로 한다. 전작이 현재, 미래를 배경으로 했다면 드디어 미상의 세계를 통해 완벽한 세상을 조합하고 만들어 낸 것이다.
연출가 김광보는 최소한의 것으로 본질을 드러내는 미니멀리즘의 대가이다. 2013년 <그게 아닌데>로 대한민국 대부분의 연극 상을 휩쓸었으며 완벽한 텍스트 분석과 상징적이고 모던한 연출로 정평이 나있다. 소극장과 대극장을 두루 섭렵하는 그의 연출력은 항상 수준 높은 작품을 만들어 냈다. 이번 공연 또한 치밀한 계산과 텍스트 분석의 새로운 접근을 통해 그의 의도대로 무대를 만들어가고 있다.
이번 작품은 원래의 대본을 반 이상 줄이며 공연 시간을 두 시간 내외로 만들었다. 극의 구조는 더욱 탄탄해졌고, 집약적이며, 맛깔스럽게 펼쳐지는 대사 속에 위선과 허상으로 가득 찬 세계를 폭로하고 삶의 진실은 더욱 분명하게 드러낸다.
그간 연극계에서는 두 사람의 만남을 고대해왔다. 상반된 성향의 작가와 연출가의 만남은 서로에게도 자극과 도전일 뿐 아니라 그 결과는 관객과 우리 연극계의 큰 수확이 될 수 있다. 꽉 찬 서사의 힘이 압축된 이미지와 만났을 때, 어떤 시너지 효과를 만들 것인지 이번 무대가 기대되는 이유 중 하나다. 객석을 압도하는 박동우의 무대미술 <전쟁터를 훔친 여인들>의 무대 미술은 ‘이해랑 연극상’을 수상하고, 뮤지컬 <명성황후>와 <영웅>으로 해외 언론들의 극찬을 받은 무대미술가 박동우가 맡았다. 그의 상징적이고, 개성 넘치는 무대 미술은 한국적 아름다움에 특화되어 있다. 이번 작품은 시대 미상의 과거, 국경의 어딘가에서 펼쳐지는 이야기이다. 그가 새로운 시간과 공간을 창조해 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작품의 주요한 배경이 되는 산은 관을 쌓아 형상화 했다. 민초의 희생으로 얻어지는 권력의 무자비함과 계급차를 상징한다. 신화적 스케일에 걸맞으면서도 군더더기 없는 무대 연출이 더욱 빛이 날 것이다. 무대 위에 구현해 내는 신화, 전혀 새롭지만 또한 낯익은 세계를 만날 수 있다 원숙미와 신선미, 연극계의 실력파 배우들 총 집합 작품의 스케일에 걸맞게 연극계의 명불허전 대표 배우들과 신인 배우들까지, 20대에서부터 70대에 이르는 다양한 연령대의 배우들이 모였다. 나라를 세우려는 야망을 가진 젊은 도련님 역할은 TV와 무대를 넘나들며 왕성한 활동을 보이고 있는 이승주가 전격 캐스팅 되었는데 귀족적인 마스크와 중저음의 목소리, 안정적인 연기력이 도련님 역에 적역이란 기대를 받고 있다. 도련님의 야망을 이용하거나 이용당하는 구세대의 인물들에는 이호재, 오영수, 김재건, 정태화가 맡아 깊이 있고 감칠 맛 나는 연기로 작품을 더욱 풍성하게 만들 것이다. 여기에 전쟁터를 훔친 여인들 중 가장 첫째, 여인들을 대변하는 매지 역할에는 길해연, 자개, 아주까리, 아지두부 역할은 각각 김정영, 황석정, 최승미가 열연한다. 나라를 세우려는 도련님과 군대, 전쟁터를 훔친 여인들의 불꽃 튀는 연기 대결이 기대된다.
▲ 국립극장 달오름극장 재개관작, <전쟁터를 훔친 여인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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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극장 달오름극장 재개관작, <전쟁터를 훔친 여인들> 이번 작품은 국립극단이 재단법인으로 독립한 이후, 본격적으로 국립극장과 함께 하는 만큼 그 의미가 크다고 할 수 있다. 특히 달오름극장이 2013년 11월에 새롭게 리모델링을 마친 후 처음 공연되는 작품으로 함께 출발하여 반세기 이상 함께 해온 국립극장과 국립극단이 새롭게 만나 관객들의 기대를 결코 저버리지 않는 재미와 감동을 선사할 것이다.
그간 국립극단은 정극의 맥을 잇는 공공 예술단체라는 자부심으로 일반 극단이 다루기 어려운 고전과 대작의 공연은 물론 다양한 레퍼토리 공연 등을 통해 연극의 대중화를 위해서 노력해 왔다. <전쟁터를 훔친 여인들>은 연극의 정수를 보여주기에 가장 적합한 작품으로 시대가 바뀌어도 변하지 않는 우리 삶의 원형적 가치들을 이야기 하고 있으며, 연극적 이야기의 힘을 통해 관객에게 깊은 감동과 정서적 공감을 이끌어낼 최고의 연극이 될 것이다.
[우미옥 기자] red@sisakorea.kr , red@lull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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