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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예출판사, 히틀러의 음식 시식한 여성 다룬 이탈리아 베스트셀러 ‘히틀러의 음식을 먹는 여자들’ 출간

우미옥 기자 | 기사입력 2019/12/18 [08:31]

문예출판사, 히틀러의 음식 시식한 여성 다룬 이탈리아 베스트셀러 ‘히틀러의 음식을 먹는 여자들’ 출간

우미옥 기자 | 입력 : 2019/12/18 [08:31]

문예출판사는 이탈리아 3대 문학상 중 하나인 캄피엘로 비평가상을 수상했으며, 이탈리아 유수의 문학상 8개를 휩쓴 로셀라 포스토리노의 장편소설 ‘히틀러의 음식을 먹는 여자들(Le assaggiatrici)’을 출간한다. 로셀라 포스토리노의 소설이 한국에 소개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히틀러의 음식을 먹는 여자들’은 2차 세계대전 당시 히틀러의 음식에 독이 들었는지를 감별하기 위해 끌려간 여자들에 관한 이야기로, 실제로 히틀러의 시식가이자 유일한 생존자였던 실존인물 마고 뵐크(Margot W?k)의 고백을 바탕으로 하였다.

 

마고 뵐크는 1941년 24세의 나이에 자신을 포함하여 총 15명의 여성과 친위대원에게 끌려가 독이 들어 있을 수도 있는 히틀러의 음식을 맛보는 일을 맡게 된다. 이들 중 유일한 생존자가 된 마고 뵐크는 2013년에서야 독일 언론 ‘슈피겔’을 통해 지난 일을 고백한다. 살아남기 위해서는 나치에 순응하며 독이 든 음식을 먹어야만 했던 이들의 상황은 공포 속에서도 살고자 했던 인간의 생존 욕구와 더불어 한나 아렌트가 말했던 ‘악의 평범성’을 떠올리게 했고, 신문으로 이 이야기를 접한 포스토리노는 이 사건을 소설로 쓰기로 결심한다.

 

역사적 실화를 바탕으로 전쟁의 단면과 이면을 예리하게 포착하고, 인간의 모순적 욕망에 주목한 이 책은 이탈리아에서 출간 즉시 1개월간 3만부 이상, 현재까지는 50만부 이상 판매되었으며 전 세계 46개국에서 번역 출간되고 있다.

▲ 이탈리아 베스트셀러 ‘히틀러의 음식을 먹는 여자들’ 출간     © 문화예술의전당

 

“모든 시대의 인류는 모순적이다. 나는 언제나 인간의 모호함을 나타낼 수 있는 캐릭터를 선택한다”고 말했던 작가 포스토리노. 그는 이 소설에서도 전쟁이라는 위기상황에서 더 극명하게 드러나는 모순된 인간의 욕망과 선악을 알 수 없는 모호한 행동을 묘사하며 인간의 본성과 존재에 대해 질문을 던진다.

 

주인공 로자 자우어는 작가인 로셀라 포스토리노의 시점이 반영된 인물이다. 작가는 자신의 본명인 ‘로자’로 주인공의 이름을 정하고 성은 ‘자우어’로 지었는데, ‘자우어(Sauer)’라는 단어는 독일어로 ‘괴로움’을 뜻하기도 한다. 이름처럼 소설 속 로자는 살아남았다는 것에 대한 원죄의식을 갖고 있다.

 

나치 추종자가 아니었으나 나치 체제 아래서 살아남았고, 히틀러의 음식을 먹으며 살아가는 것도 모자라 친위대 장교 치글러와 사랑에 빠지게 된 로자. 전쟁상황에 적응하면 할수록 자신의 인간적 면모가 사라짐을 느꼈던 로자는 치글러와의 관계를 정리할 수 없다. 삶이 그리웠던 로자는 치글러와의 관계에서 삶을 되찾아나간다. 하지만 유대인 학살에 가담했던 치글러와의 관계를 지속할수록 로자의 앞에는 아버지의 환영이 나타난다. 나치를 반대했던 아버지는 “일단 용인하면 그 정권에 대한 책임은 네게도 있는 것”이라며 “네게는 정치적 죄악에 대한 면죄부가 없다”고 일침한다.

 

여기서 우리는 한나 아렌트의 주장을 떠올리게 된다. 1차 세계대전 패전 이후 열악한 상황에 처했던 독일 국민들은 사고하기를 포기한 채 ‘폭민’이 되었고, 히틀러는 이들의 틈에 국가사회주의를 심는다. 그리고 많은 독일인은 치글러처럼 나치를 위해, 자신의 임무를 성실히 수행하기 위해 유대인을 혐오하고 소각한다. 로자의 친구가 되어준 마리아 남작 부인은 “히틀러 아니면 스탈린인데 스탈린을 선택할 사람이 어디 있겠”느냐고 되물으며 자신의 선택을 정당화하고, 치글러 또한 “어쩔 수 없었다”며 “내 잘못이 아니”라고 말한다. 이러한 모습은 자신의 임무를 충실히 수행했을 뿐이라고 말한 아이히만의 모습과도 겹쳐지며 ‘악의 평범성’을 다시금 생각하게 한다.

 

실존 인물이자 소설의 주인공 로자로 태어난 아흔여섯이 되어서야 자신의 지난날을 고백했던 마고 뵐크는 평생 엄청난 트라우마 속에서 살아야만 했다. 그는 가장 가까운 이웃에게도 이 사실을 말하지 못했고 고통과 죄의식, 공포 때문에 생긴 현기증에 늘 시달렸다고 한다. 나치가 아니었으나 나치가 되어야만 했고, 죽음의 위험이 내재된 세상에서 살아남아야 했던 이들의 삶을 통해 우리는 무엇을 생각해야 할까. ‘히틀러의 음식을 먹는 여자들’은 여전히 계속되고 있는 광기의 시대 안에서 어떻게 해야 인간의 존엄을 지키며 살아남을 수 있을지를 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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