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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 화백의 제9회 전시회

문예당 | 기사입력 2004/02/02 [17:36]

이수 화백의 제9회 전시회

문예당 | 입력 : 2004/02/02 [17:36]


이수 화백의 제9회 전시회 자료를 보내드리오니 검토 후 보도를 부탁드립니다

이수의 그림展
Lee soo Solo Exhibition
2004.2月5日 - 2月20日
Dado Art Gallery

기획 : 모루 아트 02- 3676-9596~8

        담당 : 권 종민 011-211-0566

               wesleykwon@korea.com

        

몸짓언어로 내밀한 언어를 표현하는 전위 예술가이자 서울대 서양화과 출신의

‘유화로 그림을 그리는 ‘이수’ 화백의 제9회 개인전이

서울시 강남구 신사동 다도아트 갤러리(전화: 542-0755, 0446)에서

2004년 2월 5일 ~ 2월 20일 까지 열린다.


한국 실험예술제의 중견 행위예술가로 ‘명상무곡 시리즈’ 등 일련의 작업을 통해

무용과 퍼포먼스의 만남 등의  탈 장르화 및 평면작업과 공연무대를 가리지 않고

내밀한 영혼의 떨림을 무대와 캔버스에서 소화한 이수 화백이

1995년 종로 갤러리에서 ‘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을 주제로 8회 개인전을 연후

만 9년 만에 다시 다도아트 갤러리에서 ‘석류알 속에 꿈꾸는 우주’를 주제로

개인전을 연다.

이번 ‘석류알 속에 꿈꾸는 우주’는  지난 2003년 12월 ‘2003 겨울퍼포먼스 콘서트’에서

현대무용가 박수진 과 더불어 평창동 코어 핸즈 디자인 하우스에서 공연했던 제목과

동일제목이어서, 화폭에 옮겨진 평면작업과 행위예술의 차이를 보여줌과 동시

작업 중 서로 부족한 떨림과 울림을 관객들에게 보상하는 효과가 있다.


2004년 2월 5일 7시부터 시작되는 개막전에는 영화‘까’의 실제주인공으로 잘 알려진

연극배우 겸 연극 연출가인 강만홍이 ‘무제’를 주제로 기념 퍼포먼스를 하게 되며

전시장을 찾는 갤러리를 위해 전위예술가 ‘이수’의 공연 장면을 담은 비디오 시디를

도록과 함께 제공한다.

또한 인터넷 공연 문화 사이트인 문화예술의전당(http://www.lullu.net)에선

전시 기간 내내 전위 예술가 이수의 공연을 동영상으로 누구나 자유롭게 열람할 수

있게 개방한다.



초대 말씀

올해는 님들께 보다 많은 축복이 있으시길 기원 합니다.

2004년 2월 5일부터 10일간

강 만홍님과 다도화랑 홍 성무님의따뜻한 배려로

아홉 번째 개인전을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2월 5일 P.M 7시까지 오셔서

배우, 연출가인 강 만홍님의 축하 퍼포먼스와 함께 뜻깊은 시간을 보냈으면 합니다.

    Lee Soo

개인전


1988. 1회 (도올갤러리)

1990. 2회 (경인미술관)

1991. 3회 Profundity (경인미술관)

1992. 4회 하늘 열림전 (운현궁미술관)

1993. 5회 혼불 (운현궁미술관)

1994. 6회 텃밭 (동광갤러리)

1995. 7회 파장 (종로갤러리)

1995. 8회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종로갤러리)

2004. 9회 석류알 속에 꿈꾸는 우주 (다도화랑)

논문 : 프러시안 블루에 관한 소고

화집 : 하늘 열림전


참여전

1973. 현대회화전 (연화랑)

1975. 아시아 미술 교류전 (동경)

1978. 풍경 (예총화랑)

1987. 자연의 형상전 (윤갤러리)

1988. Salon Grands et jeune d'avjourd' hur

1989. 5인전 (동광갤러리)

1991. Figuration

1994. 부활하는 의미전 (조형갤러리)

1995. 현대작가 뉴욕초대전 (소호갤러리)

1995. 오늘 그리고 내일의 시각전 (종로갤러리)

1996. 마당전 (용문산)

1997. 만남전 (도올갤러리)

1997. 전업작가협회전 (1,2,3,4 인사동)

1997. 겨래 숨고르기전 (토란갤러리)

1998. 한국. 인도 국제 교류전 (델리 국립미술관)

1998. 마당전 (토란갤러리)

1999. 마당전 (토란갤러리)

1999. 2인전 (예가족갤러리)

1999~2000년 송구영신 24인 초대전 (예일화랑)


퍼포먼스 (전위, 행위, 설치)

 찌꺼기들의 생존 (마로니에)

 날개달린 붕어 (공간)

 일보 포럼출범식 <민주화투쟁 총학연맹> (흥사단)

 하늘 열림전을 위한... (운현궁)

 개천 참가 (지리산)

 개천 참가 (일산 호수 공원)

 개천 참가 (일산 공원)

 겨레 숨고르기 (토란미술관)

 포스트모더니즘의 탈건축 행위 (미술관 건립, 파주)

 각 월간 건축지 및 건축기행 특집 방영

 파주 광탄 순수예술제 1,2,3,4,5회 운영 (파주 발랑리)

   <넋이라고 말하는... 신과의 대화 등>

 백팔배 축제 (보광정사)

 단양예술제 (단양)

 일산 위령제 참가 (6.25 당시 양민학살사건)

 송강 정철 추모예술제 (고양)

 이중섭 거리 예술제 (제주)

 3.1절 기념 참가 (종로)

 반전운동 참가 (인사동)

 국제 실험예술제 참가 (이집트 카이로)

 한국 실험예술제 참가 <넋이라고...> (씨어터 제로)

 한국 실험예술제 참가 <초월생계> (라메르 화랑)

 그때 그 사람, 지금 이 사람 축제 <어디로 갈거나> (공주)

 2003 겨울 퍼포먼스 콘서트 <석류알 속에...> )(CORE hands)


현 : 파주 국제 실험예술제 운영위원장

     토란리 아트센터 건립추진위원장

     MORU art 대표이사



노-트


사람들이

몇 초 앞 자신의 운명을 예측하며 산다면

단 하루도 살 수 없듯이,

예술이란 이런 것이다, 라고 말 할 수 있다면

그림을 그리지 못하였을 것입니다.


따라서,

혹이나, 관람하는 이들에 의해

예술적 가치로 평가되는 정신적 부분이 발견된다면

그것은,

오로지 작가인 나 개인의 종교적 본질 같은 것으로 이해 되길 바랍니다.


다만, 보잘 것 없이 작긴 하여도,

오만과 배 부른 늑대들의 환상에 들떠 돌아 가는 세상 어느 한 켠에는,

어둠을 뚫고 들어 온 빛살처럼 고운 자태의 사람들이 있어

이렇게,

그림이라도 그릴 수 있었음을 말씀 드리고 싶습니다.


요란하게 치장하는 삶을 거부하는 사람들,

이번 전시는 그런 모습이 아름다운 사람들을 위해 마련 하였습니다


명상무곡(meditation dancing and music)

나는 일상의 관념과 카테고리 속에 부유하는 자신에 관해 도무지 알 수 없어 하고 있다.

가끔씩 나를 긴장된 순간에 빠뜨려 혼란을 주기도 했던 내적 경험의 세계(예술행위)는

늘 사생아의 방황, 그런것과 비교 될 수 있었다.

페인팅과 드로잉의 세계에 몰입했던 일 또한 무모한 도전으로만 기억되고,

감응과 인식사이에 내재한 어떤 실체의 본질에 접근하려든 짓거리가

언제나 허망한 무위로 끝났다.



이 시간도 나는 어떤 사조나 문명의 흐름 따위 같은 미이라를 매우 우스꽝스럽게 관조하고 있다.

과정을 위한 미완의 것들이 옹축된 유리병속의 알맹이들----.

마키아벨리, 르네상스, 자유민주와 잡동사니 이데올로기가 유리병 속에 박제되어

눈알을 뒤집고 번득이는 이유를 알래친스키 화폭에 떨어진 누트카,

인디언의 번개뱀은 알고 있을까?

인간 멘탈리티의 광기를 그래서 데리고 놀고 싶어 한다.

나의 명상적 행위는 이렇게 하여 시작된다.


중압되어 오는 현실의 무게를 감당 할 기력같은 것.

소리없이 다가와 사라지는 바람의 세계.


나는 그 진여실상(Pragmatism)을 깨닿는 눈뜨임의 경지를 통하여

유리병 속의 박제들을 위안하고 싶어 한다.


탈아의 충만한 슬픔같은 그윽한 자유의 몸짓, 가슴 밑으로 흐르는 내밀한 언어의 편린,

그 형상들. 숨트임같은 다향의 설레임으로 충만한 소리,

이러한 직감적이고, 선험적인 인식 활등의 조건들에 의해

나는 물질과 비물질 사이를 연계한 어떤 실체를 이해하려하고 있고,

미의 의식(ritual)을 그 이상의 어떤 무엇에 도달하려는 행위라 규정지은 입장에

변함이 없는 이상 이와 같은 견성의 의지하고 할 나의 행위는 계속될 것이다.


퍼포먼스

나의 퍼포먼스는 70년초 암울했던 시대 상황에서 충동적으로 발생한 해프닝이 출발점 이였다.

전통 사물 놀이의  타악과 리듬의 특질을 유입한 의식(ritual)이 관객에게 얼만큼

소통 되였는지는 알 수 없으나 그 야릇했던 전률은 아직도 있지 못한다.


사물 놀이와 농악의 특성은 강력한 소시알리즘(Socialism)을 내포 하고 있다.

그래서,

가슴으로,

가슴으로 내리 쳐 오는 붉은 피빛의 역동이 그곳에 있다.

난장 같은 놀이판에 들썩이는 어깨춤이 그윽한 아름다움으로 현란하다.

먼 산 허리를 휘어 잡고 바람처럼,

나풀, 나풀 내려 오는 투박한 뼈 마디가 저토록 고울 수 없는 것이

어떤 출중한 연출 때문일까?


수 천번 우려 먹는 대본은 없어도,

황홀한 아름다움이 없다고 말 할 수 없는 것 처럼,

특정한 벙법론에 기인한 양식은 없어도,

그것이, 통상적 개념에 존재 하지 않는다 하여 예술이 아닐수는 없을 것이다.


퍼포먼스를 아방가르드의 전위 부대로 유추하는 것은 이론가들의 착오일 뿐,

더욱이 예술의 실험이라 말 하는 어리석음은 인류 문화사에 대한 중대한 모독이다.


이미 고대부터 매체적 언어로서 그 역할이 존재하였고,

따라서, 예술의 형식적 특성들은 그것에서 비롯되었다 할 것이다.

말하자면 예술이라 말 할 수 있는 것들의 모체가 퍼포먼스라는 것이다.


모던 창조물의 근원으로 향하는 태동의 세계를 야곱의 돌 벼개는 예견하고 있었다.

그 자리에 계단을 쌓아 성전을 만들던 야곱의 행위를 그것이라 할 수 있다면

퍼포먼스는 신의 창조적 행위와 직결 된다고 말 하지 않을 수 없지 않은가

퍼포먼스는 여러 예술적 장르를 규합하여 조립하는 것이 아니다.


애초부터 매개체적 언어로서 자생되어 온 여러 갈래의 재질들을 사용하게 된다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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