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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인포메이션, ‘죽도록 즐기기’ 리커버 개정판 출간- 닐 포스트먼 지음, 홍윤선 옮김, 올더스 헉슬리 , 조지 오웰

우미옥 기자 | 기사입력 2020/04/19 [20:08]

굿인포메이션, ‘죽도록 즐기기’ 리커버 개정판 출간- 닐 포스트먼 지음, 홍윤선 옮김, 올더스 헉슬리 , 조지 오웰

우미옥 기자 | 입력 : 2020/04/19 [20:08]

 

넘치는 개인방송과 소셜미디어, 유튜브와 블로그 없는 세상은 상상할 수 없는 우리

스마트폰, TV, 인터넷… 재미에 살고 죽는 시대, 그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넘쳐나는 미디어, 축복인가 재앙인가?

 

 굿인포메이션은 스마트폰, TV 등 미디어 홍수시대를 논평한 ‘죽도록 즐기기’를 출간한다고 밝혔다.

 

바야흐로 미디어 홍수시대. 소셜미디어 없이는 소통할 수 없고, 개인방송이 없으면 회자될 재밋거리도 없다. 스마트폰의 진화는 눈 깜짝할 새라 즐길 거리를 맘껏 누리려면 부지런히 업데이트해야 한다.

 

손가락 하나로 안 되는 것 없고, 말보다는 문자가 오늘 하루 대화의 절반 이상을 차지한다. 고개를 돌리기도 전에 놀 거리가 천지빼까리다. 책의 제목처럼 ‘죽도록 즐기기’ 딱 좋은 세상이다.

 

봇물 터지듯 터져 나오는 미디어 세상의 즐길 거리는 인터넷을 타고 하루가 채 가기도 전에 온 세상의 즐길 거리가 된다. 나라와 민족의 경계마저 허물어뜨린 지 이미 오래다. 그러나 사람들은 새로운 소통도구와 문화를 그저 즐길 뿐 그것의 속성과 정체성에 대해서는 진지하게 고민하지 않는다. 20여년 전 예측했던 허상 속 삶이 지금, 우리에게 펼쳐져 있다.

 

▲ 굿인포메이션은 스마트폰, TV 등 미디어 홍수시대를 논평한 ‘죽도록 즐기기’를 출간한다고 밝혔다.  © 문화예술의전당

 

이 책은 영혼이 잠식되지 않도록 정신 단단히 붙들어 매고 있으라 충고한다. 그것도 미디어의 시작인 TV가 막 발달하기 시작하던 1985년에 말이다. 미디어 비평의 대가 닐 포스트먼의 기념비적 역작인 이 책은 뉴미디어시대를 예견한 매체 비평서이자 성찰없는 미디어 세대를 위한 예언자적 메시지이다.

 

또한 21세기 가장 의미심장한 문화적 사실(활자시대의 쇠퇴와 텔레비전 시대의 부상)에 대한 탐구와 탄식이다. 우리를 포위하고 있는 매체 생태 환경의 허상을 제거해 줄 뿐만 아니라 매체의 실체를 파악하도록 안내한다. 영상매체로 인해 정치, 교육, 공적 담론, 선거 등 모든 것이 쇼비즈니스 수준으로 전락하고 있는 우리의 현실을 목도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겁먹지 말자. 실체를 알면 허상에 함몰되지 않는다.

 

▲ 굿인포메이션은 스마트폰, TV 등 미디어 홍수시대를 논평한 ‘죽도록 즐기기’를 출간한다고 밝혔다.  © 문화예술의전당



◇해외서평

 

20년 지난 지금까지도 《죽도록 즐기기》에 쏟아지는 찬사들

 

“할리우드 시대를 열렬히 전파하는 한 사람으로서, 나는 닐 포스트먼이 예견한 암울한 미래상에 공공연히 대립해 왔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자 포스트먼이 옳았음이 입증되었다. 포스트먼은 젊은 세대가 외견상 현란하나 하찮음으로 가득 찬, 미친 듯이 날뛰고 철저하게 소모적인 매체문화를 물려받으리라 정확히 내다봤다” - 카밀리 파글리아(사회비평가, 작가)

 

“탁월할 뿐 아니라 강렬하고 의미심장한 책이다. 내가 보는 견지에선, 이건 포스트먼이 단언해 버린 일종의 기소장(起訴狀)이다. 반박할 수조차 없다.” - 조나단 야들리(<워싱턴포스트> 북월드 칼럼니스트)

 

“포스트먼은 마샬 맥루한이 멈춰선 지점에서 시작해, 학자적 수완과 이야기꾼의 재치로 자신의 논거를 구축해 낸다.” - <크리스천 사이언스 모니터>

 

“정말 시의적절하게 등장한 책이다. 우리 모두는 예언자적 통찰로 가득한 포스트먼의 도전에 직면하지 않을 수 없다.” - 조나단 코졸(미 교육학자, 전미 도서상 수상자)

 

“미디어문화에 관한 책으로는 압권이다. 이보다 더 예언자적이고, 사려깊고, 유용하고, 게다가 흥미롭기까지 한 책은 생각해 낼 수조차 없다.” - 빅터 내버스키(<네이션> 발행인)

 

◇2006년판 서문 - 20세기에 출간된 21세기 책

 

최근(2006년) 사회를 논평한 책이 20여 년 전(1985년)에 출간되었다? 적어도 당신은 이메일을 쓰거나, 회신 전화를 걸거나, MP3를 다운받거나, 게임에 빠져 있거나, 웹사이트를 둘러보거나, 문자메시지를 보내거나, 메신저로 채팅을 하거나, 동영상을 녹화하거나, 동영상을 구경하고 있지는 않기에, 이 책을 마주하고 있다.

 

지금 당신은 20세기에 출간된 책 중 21세기에 대해 최초로 언급한 이 책을 마주하고 있다. 아마 잠시 이 책을 훑어보기만 해도, 1985년 당시 세계에 대한 적나라하고 도발적인 비판 때문에 적지않게 충격받을 것이다. 은근하면서도 뿌리깊은 텔레비전의 해악에 대해 일찌감치 경고한 이 얇은 책이 오늘날과 같은 컴퓨터시대에 와서야 시의적절하다는 느낌이 든다는 게 정말 그럴듯하지 않은가? -앤드류 포스트먼

 

◇역자서문 - 죽도록 즐기기 딱 알맞은 ‘삐까부 세상’

 

당신은 지금 이 책을 손에 들었다. 우리사회가 도대체 어디로 향하는지 궁금하지 않은가? 혹시 당신은 컴퓨터나 핸드폰 같은 기기는 ‘인간이 사용하기 나름’이라는 순진하기 짝이 없는 고정관념의 소유자는 아닌가? 청소년들이 주고받는 문자메시지를 단순히 ‘또래문화’ 정도로 치부하는 경솔함을 보이진 않는가? 막장드라마나 선정적인 쇼, 저질 코미디 프로야말로 텔레비전의 골칫거리라 생각하는가? 그렇다면 당신은 완전히 틀렸다. 게다가 인터넷 뉴스기사에 주렁주렁 달린 댓글을 여론이라 여긴다면, 구제불능 수준이다. 이 말은 이미 당신은 21세기 초반의 매체 생태환경에 철저하게 길들여져 분별력을 송두리째 상실했다는 뜻이다.

 

지금은 과거 어느 시절보다 사회적 상황에 대한 통찰이 필요한 때다. 주변을 한번 둘러보라. 불과 10여 년 사이에 온갖 매체가 우리를 뒤덮어 버렸다. 고개만 돌리면, 손만 뻗으면, 엄지손가락만 움직이면 온갖 즐길 거리가 눈 앞에 펼쳐지는 세상이다. 놀 거리가 지천에 널려 시간이 부족할 지경이다. 이 책의 제목처럼 ‘죽도록 즐기기’ 딱 알맞은 세상이다. 그런데 죽도록 즐길 때마다 실제로 우리 안에서 무엇인가 죽어가고 있다. 그게 과연 무엇인지 궁금하지 않은가? -홍윤선

 

◇본문 속에서

 

쇼쇼쇼, 쇼를 즐겨라 - 뉴스쇼!

 

텔레비전 세계에서 오락은 모든 담론을 압도하는 지배이념과 같다. 무엇을 묘사하든, 어떤 관점에서 전달하든, 가장 중요한 전제는 즐겁고 재미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바로 이 ‘재미’ 때문에 매일같이 뉴스에서 재난이나 잔혹한 장면을 접하면서도, 뉴스진행자가 “내일 다시 뵙겠습니다”하는 한마디에 걸려들고 만다. 왜냐고? 아마 TV에서 몇 분 정도 살인이나 무차별적 상해사건을 보면 한달 정도는 잠을 못 이룰 것이라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사람들은 ‘뉴스’를 심각하게 받아들이기 보다는 재미 삼아 보게 될 것임을 잘 알기에 뉴스진행자의 초대에 기꺼이 응한다. -p.142

 

뉴스쇼에서 온통 우리가 보고 듣는, 잘 생기고 상냥한 뉴스 진행자, 유쾌한 재담, 자극적인 타이틀 음악, 생생한 현장 장면 그리고 매혹적인 광고… 이 모든 것들이 방금 본 장면이 슬퍼할 필요가 없음을 암시한다. 솔직하게 말하자면, 뉴스쇼는 오락적 구성 형식일 뿐, 교육적이지도, 성찰하거나 정서를 함양하는 형식도 아니다. 그렇다고 이런 식으로 뉴스쇼를 만든 사람들을 엄격하게 비판해서는 곤란하다. 이들은 읽을 뉴스를 편집하거나 라디오 청취 방송을 하는 것이 아니라, 보기 위한 뉴스를 TV로 내보내고 있을 뿐이다. -p.142

 

결국, 우리는 ‘하찮음의 추구’라고 부를만한 정보환경으로 급속히 들어서고 있다. 이 게임은 ‘사실’을 오락을 위한 원재료로 사용하기에, 우리의 뉴스 출처도 오락의 재료가 될 뿐이다. 오보(誤報)나 판단오류가 난무해도 문화는 존속 가능하다고 여러 차례 언급한 바 있다. 하지만 이 세상을 단 22분 만에 어림잡는다거나, 재미있는 뉴스가 가치 있는 뉴스로 둔갑하는 상황에서도, 문화가 살아남을지는 모르겠다. -p.178

 

우리 모두는 “자, 다음은… ”이라는 뉴스세계 - 모든 사건이 개별적으로 다루어지고, 전후 관계는 물론 다른 사건과의 연관성까지 배제된, 파편화된 세계 - 에 철저하게 길들여져 있기에, 일관성을 기준으로 세계를 바라보는 관점을 모조리 상실해버렸다. 그리고 이로 인해 필연적으로 새로운 모순이 도래했다. 소위 무상황의 상황(the context of nocontext)에선 모순이 증발해버린다. -p.174

 

◇당신의 뇌는 몇 채널이십니까? - 텔레비전쇼

 

텔레비전에서는 거의 매 30분마다, 앞섰거나 잇따를 사건과는 내용이나 정황이나 감정적 성격이 제각각인 단절된 사건이 등장한다. 그래서 한편으로는 텔레비전이 시간을 분초로 나누어 팔기 때문에, 또 한편으로는 텔레비전이 말보다는 이미지 우선이기에, 다른 한편으로는 시청자가 TV화면 앞을 자유로이 오갈 수 있기에, TV프로그램은 매 8분 단위로 사건을 그 자체로 완결시켜 나타내도록 편성된다. 따라서 어떤 뉴스 꼭지에서 다른 꼭지로 넘어갈 때, 시청자는 생각이나 느낌을 전혀 끌고 다닐 필요가 없다. -p.159

 

이제 텔레비전은 지식을 알려주는 것은 물론 어떻게 배워야 하는지에 관한 방법론까지 지시하는 초(超)매체적 지위에까지 올랐다. 이와 동시에 TV는 미국문화에 너무나 익숙하고 철저하게 얽혀 있어서 이제는 더이상 배후에서 나오는 희미한 소리를 들을 수도 없고 깜박거리는 회색 불빛도 보지 못한다. TV가 구축해 온 삐까부 세상도 이제는 더이상 낯설어 보이지 않는다. -p.132

 

그래픽과 전자혁명으로 유발된 가장 큰 골칫거리는, 텔레비전을 통해 전달된 세계가 우리에게 낯설기보다는 자연스럽게 보인다는 점이다. 낯설게 느끼는 감각을 상실했다는 것은 길들여졌다는 신호이며, 길들여져 온 만큼 우리가 변해왔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의 문화는 이제 텔레비전의 인식론에 거의 다 길들여졌다. 즉 우리는 텔레비전을 통해 규정되는 진실, 지식, 사실을 너무도 철저하게 받아들이기에, 쓸모없는 것들이 중요한 것인 양 그리고 모순된 것들이 대단히 합리적인 양 우리 안에 가득 들어앉게 되었다는 뜻이다. -p.133

 

텔레비전이 배출하는 쓰레기 정보에 대해선 별 이의가 없다. 무가치한 정보야말로 텔레비전에서 볼 수 있는 최선의 것이고, 누구도 그 어떤 것도 이 때문에 심각하게 위협받지 않는다. 더욱이 우리가 문화를 평가할 때는, 문화적으로 중요하다고 여길만한 것으로 잣대를 삼지, 시시하고 뻔한 것들 따위는 거들떠보지도 않는다. 그런데 바로 여기에 문제가 있다. 텔레비전은 기껏해야 하찮을 뿐인데, 주제넘게 과대 포장되어, 스스로 중요한 문화적 의사소통의 전달자로 자처할 때가 가장 위험하기 때문이다. -p.37

 

◇본문소개

 

“멋진 신세계에선 사람들이 자신이 생각 없이 웃고만 있다는 사실 때문에 괴로워하지 않는다. 그보다는 자신이 무엇을 보고 있는지, 왜 생각을 멈추었는지 모르기 때문에 고통스러워한다” - 올더스 헉슬리

 

이 책은 우리 족속 모두가 겪고 있는 글쓰기의 마법에서 전자기술의 마법으로 넘어가는 엄청나고 전율할 만한 전환에 관한 내용이다. 글쓰기나 시계와 같은 기술을 문화에 도입하면 시간을 붙들어매기 위한 인간의 능력을 단순히 확장시킬 뿐만 아니라, 사고방식은 물론 나아가 문화의 내용까지 변질시킨다는 사실이다. -1장 <미디어는 메타포다> 중에서

 

아침에 TV 뉴스나 라디오 또는 조간신문을 통해 접한 정보로 인해 하루의 계획을 바꾸거나, 아니면 하지 않았을 일을 저질렀다거나, 무엇인가 해결해야 할 문제에 대한 통찰력을 얻은 적이 얼마나 자주 있는가? 일상적인 뉴스는 대부분 그저 이야깃거리에 불과한 쓸모없는 정보의 집합체일 뿐 의미있는 행동으로 연결되지 않는다. 바로 이러한 점이 전신의 으뜸가는 유산이다. 즉 전신으로 인해 삶과 무관한 정보가 도처에 흘러 넘쳐 ‘정보 대비 행동비율’이 극적으로 낮아져버렸다. -5장 <삐까부 세상> 중에서

 

여기서의 쟁점은 텔레비전이 오락적이라는 것이 아니라, 텔레비전으로 인해 모든 경험적 표현이 자연스럽게 오락적 형태를 띠게 되었다는 점이다. 사람들은 텔레비전을 통해 온 세상과 교감을 유지하지만, 이는 인격이 사라진 무표정한 방식일 뿐이다. 문제는 텔레비전이 오락물을 전달한다는 점이 아니라 모든 전달되는 내용이 오락적 형태를 띤다는 것이다. -6장 <쇼비즈니스 시대> 중에서

 

사람들은 텔레비전 화면을 쳐다보고는 <백설공주와 일곱 난쟁이>에 나오는 여왕처럼 게걸스럽게 묻는다. “거울아, 거울아, 누가 가장 괜찮은 인물이야?” 사람들은 TV 화면에 비친 성격이나 가정생활이나 외모에서 풍기는 이미지가 여왕이 받은 대답보다는 나은 사람에게 표를 던지는 경향이 있다. 사람들은 항상 제 나름대로의 이미지로 신을 그린다. 즉 신과 같이 되고자 하는 정치인은 시청자가 상상하는 대로 자기 이미지를 개조해야 할 터이다. -9장 <이미지가 좋아야 당선된다> 중에서

 

배움에서 중요한 점은 어떤 식으로 배우는가 하는 문제와 늘 관련된다. 사람들은 행동하는 대로 체득한다. 텔레비전은 아이들로 하여금 TV시청 때 유발되는 행동습관대로 행하도록 가르친다. 지속적으로 태도가 형성되는 과정에서 경험하는 2차적인 배움이 맞춤법이나 지리, 역사를 배우는 일보다 더욱 중요하다. 이러한 태도야말로 근본적으로 미래를 결정하기 때문이다. -10장 <재미있어야 배운다> 중에서

 

대중이 하찮은 일에 정신이 팔릴 때, 끊임없는 오락활동을 문화적 삶으로 착각할 때, 진지한 공적 대화가 허튼소리로 전락할 때, 한마디로 국민이 관객이 되고 모든 공적 활동이 가벼운 희가극과 같이 변할 때 국가는 위기를 맞는다. 이때 문화의 사멸은 필연적이다. -11장 <헉슬리의 경고> 중에서

 

◇저자소개

 

지은이: 닐 포스트먼, Neil Postman(1931~2003)

 

닐 포스트먼은 20세기 후반 미국의 사회 비평과 교육 분야 및 커뮤니케이션 이론가로서 가장 중요한 인물에 속하며, 그의 사상은 이해하기 쉬울 뿐 아니라 실제적이기에 전 세계에 걸쳐 많은 추종자를 낳았다. 그는 감화력이 큰 존경 받는 스승이었으며, 40년이 넘도록 뉴욕대에서 교수로 봉직하며 명망 높은 미디어 생태학 이론을 정립하기도 했다.

 

초중등학교 교사로 재직했던 경험을 바탕으로 그가 주로 가졌던 관심영역은 미디어와 교육의 관계였다. 그는 미디어 포화 상태의 사회에 경각심을 불러일으키는 메시지를 30여 년 넘게 지속적으로 전달했으며, 미디어 아이콘들에 대해 신중한 태도를 갖기를 조언했다. 텔레비전을 비롯한 영상매체가 엄청난 문화적 영향력을 행사할 것이라는 그의 경고 메시지를 인터넷 시대인 오늘날에도 귀 기울이고 있다는 것은 주목할 만하다.

 

그는 자동차의 전자식 작동 창문이나 개인용 컴퓨터 등 불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신기술을 사용하지 않고, TV도 거의 보지 않았으며 글도 손으로 직접 쓰는 등 대안적인 삶의 양식을 취해왔다고 한다.

 

광범위한 분야를 아우르는 비범한 능력으로 20여권의 저서를 남겼으며, 주요 저서를 살펴보면 교육 분야로는 《전복행위로서의 교육Teaching as a Subversive Activity》과 《교육의 종말The End of Education》이 있으며, 아동에 관해서는 《유년의 실종The Disappear of Childhood》, 언어 분야로 《정신 나간 말, 어리석은 말 Crazy Talk, Stupid Talk》, TV 뉴스에 관한 《TV 뉴스 어떻게 봐야 하나? How to Watch TV News?》 그리고 기술문명이 문화에 끼치는 충격을 드러낸 《테크노폴리Technopoly》가 있다. 《죽도록 즐기기》는 가장 널리 읽히고 회자되는 작품이며 10여 국가에서 번역 출간됐다. 포스트먼은 프레도니아에 있는 뉴욕주립대학과 컬럼비아대학에서 수학했다. 2003년 10월 73세를 일기로 생을 마감했다.

 

◇미디어 이론의 양대산맥 - 마샬 맥루한 vs. 닐 포스트먼

 

미디어 이론의 대표적인 학자로는 마샬 맥루한(Herbert Marshall McLuhan)과 닐 포스트먼(Neil Postman)이 있다. 이들의 입장은 아주 대조적인 것으로 맥루한은 미디어의 긍정적 측면을 보는 반면 닐 포스트먼은 미디어의 부정적인 측면을 강조한다.

 

·마샬 맥루한

 

맥루한의 이론을 요약하면 모든 매체가 인간 능력의 확장이라는 것이다. 또한 그는 《미디어의 이해》에서 ‘매체는 곧 메시지’라는 말을 하였다. 이는 매체가 달라지면 메시지도 달라지고 수용자가 세계를 인식하는 방식도 달라진다는 것이다. 이는 당시 사람들의 생각을 완전히 뒤집는 이야기로서, 엄청난 충격을 던져주었다. 사람들은 보통 메시지가 미디어라고 생각했다. 다시 말해서 신문의 기사가 신문을 규정하고, TV 드라마나 뉴스가 TV를 규정한다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마샬 맥루한은 완전히 다른 관점에서 미디어 자체가 메시지라고 이야기하고 있다. 다시 말해서 미디어가 가지고 있는 특징이 메시지 자체를 규정한다고 본 것이다. 미디어가 가지고 있는 속성들이 그 이후에 발생하는 모든 것을 결정한다는 미디어 결정론적인 관점이다. 그 이후에 발생하는 것들은, 미디어가 담고 있는 콘텐츠, 이를 수용하는 방식 그리고 사람들의 가치관의 변화 그리고 사회적인 변화 등을 모두 포함한다. 미디어가 전달하는 콘텐츠(Message) 때문이 아니라 Media 자체가 가진 속성들 때문이라고 본다.

 

또한 그는 70년대에 전 세계적으로 가장 유명한 학자 중 하나였다. 그는 어떤 데이타나 조사를 통해서 자신의 논리를 전개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직관(Intuition)에 의해서 자신의 이론을 마치 예언자처럼 토해냈다. 우리가 흔히 쓰는 Global Village라는 말도 마샬 맥루한이 처음 했던 말이다.

 

·닐 포스트먼

 

이에 반해 닐 포스트먼은 기술에 의해 지배당하게 될 것을 염려하였다. 또한 미디어, 그 중에서도 특히 텔레비전의 부정적 측면에 대하여 이야기하였다. 텔레비전은 사람들에게 정보를 제공하는 것이 아니라 단지 즐거움을 줄 뿐이라고 한다. 그는 미디어의 단점을 해결하는 방법으로 교육의 필요성을 말하였다.

 

또한 텔레비전 주도의 ‘쇼비즈니스 시대’에서 인쇄매체 시대에 가능했던 이성적인 사회적 담론이 죽어가고 있다고 경고한다. 미디어 분야에 있어 마샬 맥루한 이후의 최고의 학자라고도 칭해지며, 그의 저서들은 주로 풍자의 어조를 띄고, 최악의 상황에 대한 시나리오를 제공함으로써, 미디어의 부작용에 대해서 우리에게 경고하고 있다.

 

그러나 두 학자의 상반된 견해는 하나의 공통점을 토대로 하고 있다. 그것은 바로 우리가 지금 ‘강력한 미디어의 영향력 아래 살고 있다’는 것이다. 바로 이것이 ‘미디어사회’이다. 이 강력한 영향력은 앞으로 급속한 변화 속에서 우리 사회에 더욱 지대한 영향력을 행사할 것이다.

 

·앤드류 포스트먼 Andrew Postman

 

닐 포스트먼의 아들로 소설 《이제 모든 것을 알아요Now I Know Everything》을 비롯한 다섯 권의 책을 쓴 작가다. 수년간 월간지 ‘글래머Glamour’의 컬럼니스트로 활동했으며, 여러 출판사를 통해 출간된 그의 작품은 ‘뉴욕타임즈’나 ‘워싱턴포스트’, ‘뉴욕매거진’에서 다뤄지기도 했다.

 

◇옮긴이 홍윤선

 

사이버 공간이 태동하던 시절부터 인터넷 관련기업 및 사업활동에 몸 담아왔다. 현재 웹 서비스 업체인 웹스테이지의 대표로 있다. 과학기술에 근거한 낙관주의나 진보적 시각에 비판적이며, 특히 인터넷을 위시한 디지털 문화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우는데 관심이 크다. 인터넷 비즈니스 활동과 디지털 문화에 대한 비판적 글쓰기를 변증법적으로 병행하며 살고 있다. 저서로 《딜레마에 빠진 인터넷》, 《클릭 네티켓》이 있다.

 

◇도서 정보

 

·닐 포스트먼 지음, 홍윤선 옮김

·신국판 변형 / 272쪽 / 1만6800원 /

·리커버개정판 / 2020년 4월 15일

·ISBN 979-11-967290-5-9 03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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