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고
광고
공연/문화 > 미술

변시지 화백의 어눌하고 소박한 품성처럼, 제주가 갖는 토착적 정서인

문예당 | 기사입력 2004/08/26 [09:10]

변시지 화백의 어눌하고 소박한 품성처럼, 제주가 갖는 토착적 정서인

문예당 | 입력 : 2004/08/26 [09:10]

▲ 변시지  © 문화예술의전당

 

▲ 변시지  © 문화예술의전당


변시지 화백의 어눌하고 소박한 품성처럼, 제주가 갖는 토착적 정서인


로칼리즘(Localism)은 더 이상 현대미술에서 국지적 지방색이나 편협성이 아니며

민족미술의 다양성의 재발굴이자 재창조로서 긍정적 의의를 갖는다.

이처럼 작가 변시지는 가장 지역적이며 개인적인 출발점에서 시작하여 가장 세계적이며

우주적인 경지에 도달함으로써 이에 대한 훌륭한 모범을 제시하였다.

변시지: 폭풍의 화가 변시지는 대한민국의 서양화가로, 그의 작품은 그의 삶과 같이 맹렬하고 열정적이었습니다. 그는 1926년 제주 서귀포에서 태어나 여섯 살 때 가족과 함께 일본 오사카로 건너갔습니다. 어린 시절부터 미술에 재능을 보여주었고, 1940년 오사카 미술학교 서양화과에 입학하여 서양화를 공부했습니다. 광풍의 시대 변시지는 1948년에 일본에서 화려한 성공을 거두었습니다. 그는 당시 일본 최고의 중앙화단으로 알려진 광풍회 공모전에서 최연소로 최고상을 받았습니다. 이러한 성공은 그를 일본 화단의 주목받는 인물로 만들었습니다. 서울대와의 관계 1957년에 변시지는 서울대 교수로 초빙되어 고국으로 돌아왔습니다56. 그러나 그는 당시 한국 사회와 화단에 적응하지 못하였습니다. 제주로의 귀환 1975년에 변시지는 많은 갈등과 번민 끝에 자신의 고향인 제주로 돌아갔습니다. 제주에서 그는 새로운 화법을 만들어내기 위해 이전의 모든 것을 버리기로 했습니다. 일본시절의 인상파적 사실주의 화풍, 비원시절의 극사실적 필법을 모두 잊기로 한 것입니다. 독특한 화풍 제주에서 변시지는 자신만의 독특한 황토색과 먹색 선으로 제주를 표현하며 '폭풍의 화가’로 알려졌습니다. 그의 작품은 제주를 예술의 혈통으로 삼아 작품활동을 한 작가라고 할 수 있습니다. 변시지는 한국 미술의 거장이자 제주의 자랑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는 한국의 미술사에 새로운 장을 열었고, 제주의 풍토와 정신을 세계에 알렸습니다.

  • 도배방지 이미지

관련기사목록
포토뉴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동덕여대 남녀공학 전환 논란과 노매드 크리틱(Nomad Critic)의 폭로, "없던 일로 하기엔 이미 늦었습니다"
1/7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