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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문예당 | 기사입력 2005/05/24 [2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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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문예당 | 입력 : 2005/05/24 [20:58]


어느 날






나 늙으면 당신과 살아보고 싶어.
가능 하다면 꽃밭이 있고
가까운 거리에 숲이 있으면 좋겠어.
개울물 소리 졸졸거리면 더 좋을 거야.







잠 없는 나, 당신 간지럽혀 깨워
아직 안개 걷히지 않은 아침 길,
풀섶에 달린 이슬 담을 병들고 산책 해야지.









삐걱거리는 허리 주욱 펴 보이며
내가 당신 하나 두울~ 체조시킬 거야.
햇살이 조금 퍼지기 시작하겠지.
우리의 가는 머리카락이 은빛으로 반짝일 때
나는 당신의 이마에 오래 입맞춤하고 싶어.
사람들이 봐도 하나도 부끄럽지 않아.







아주 부드러운 죽으로
우리의 아침 식사를 준비할 거야.
이를테면 쇠고기 꼭꼭 다져넣고
파릇한 야채 띄워 야채죽으로 하지.
깔깔한 입안이 솜사탕 문 듯 할거야.
이 때 나직이 모짜르트를 올려 놓아야지.







아주 연한 헤즐렛을 내리고
꽃무늬 박힌 찻잔 두 개에 가득 담아
이제 잉크 냄새 나는 신문을 볼 거야.
코에 걸린 안경 너머 당신의 눈빛을 읽겠지.








눈을 감고 다가가야지.
서툴지 않게 당신 코와 맞닿을 수 있어
강아지처럼 부벼 볼거야.
그래 보고 싶었거든.







해가 높이 오르고
창 깊숙이 들던 햇빛 물러설 즈음
당신의 무릎을 베고 오래오래 낮잠도 자야지.
아이처럼 자장가도 부탁해 볼까.







어쩌면 그 때는 창밖의 많은 것들,
세상의 분주한 것들,
우리를 닮아 아주 조용하고 아주 평화로울 거야.







나 늙으면 당신과 살아보고 싶어.
당신의 굽은 등에 기대 울고 싶어.
장작불 같던 가슴 그 불씨
사그러들게 하느라 참 힘들었노라.
이별이 무서워 사랑한다 말하지 못했노라.
사랑하기 너무 벅찬 그 때 나,
왜 그렇게 어리석었을까 말할 거야.







겨울엔  
당신의 마른 가슴 덥힐 스웨터를 뜰 거야.
백화점에 가서 잿빛 모자 두개 사서 하나씩 쓰고
강변 찻집으로 나가 볼 거야.
눈이 내릴까...







봄엔 당신 연베이지빛 점퍼 입고
나 목에 겨자빛 실크 스카프 메고
이른 아침 조조 영화를 보러 갈까
감미로운 드라마 같은영화...







가을엔 희끗한 머리 곱게 빗고
헤이즐럿 보온병에 담아 들고
낙엽 밟으러 가야지...
젊었을땐 하지 못했던 사진 한번 찍을까?
예쁜액자에 넣어 창가에 놓아두어야지...







그리고 그리고
서점엘 가는 거야
책을 한아름 사서 들고
서재로 가는 거야








그렇게 아름답게 늙어가고 싶어!!
나 늙으면 그렇게 그렇게
당신과 살아보고 싶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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