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동예술극장 이번엔 화재… ‘스카팽’ 조기 종연 , 조선일보 - 한국최초의 뮤지컬 공연 된 명동예술극장 화재
한국 연극사 상징적 장소… 작년 초 ‘K팝 공연장 변경’ 논란도
김혜경 기자| 입력 : 2020/10/28 [19: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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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일 오후 11시26분쯤 서울 명동의 국립극단 명동예술극장 4층에 화재가 발생해 약 1시간 30분 뒤인 다음날 오전 0시 55분쯤 진화됐다. 이로 인해 ‘거리두기 좌석제’ 시행 중에도 매회 전석 매진에 가까운 좋은 반응을 얻었던 프랑스 극작가 몰리에르 원작 연극 ‘스카팽’도 28일부터 조기 종연된다.
전날 발생한 화재를 진압하기 위해 소방인력 100여명이 투입됐다. 자정에 가까운 늦은 밤 발생한 화재인데다 당일 공연이 쉬는 날이었고, 극장에 남아 있던 직원 2명도 화재를 일찍 인지하고 대피해 인명피해는 발생하지 않았다. 극장 내 면적 약 45㎡와 전기설비 등 곳곳이 불탔다. 소방당국은 불씨가 4층(객석 기준 3층) 로비 창고 천장 안쪽 전기 문제로 발생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한편 이날 화재로 국립극단은 연극 ‘스카팽’을 조기 종연한다고 28일 밝혔다. 또 명동예술극장 로비에서 개최 중이던 국립극단 70주년 기념 전시 ‘연극의 얼굴’도 중단한다. 국립극단은 “로비 쪽 그을음이 심한 데다 화재 진압때문에 1시간 가까이 물을 들이붓다 보니 극장에 전기가 전혀 안 들어오는 상황이다. 피해 규모 파악이나 복구에 생각보다 시간이 걸릴 것 같다”며 “28일 공연 예매자부터 110% 환불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서울 명동 한복판에 자리잡은 명동예술극장은 오랫동안 국립극단 전용극장으로 사용되며 ‘국립극장’으로 불렸고, 한국 연극사를 대표하는 공연을 올려온 상징적인 공연장이다. 하지만 올해 들어 코로나 사태로 주요 공연들의 취소나 조기 중단이 잇따랐고, 관객의 열띤 호응 속에 순항하던 ‘스카팽’마저 조기 종연케 된 것이다.
명동 한복판 ‘한국 연극 상징’… ‘K팝 공연장 용도 변경’ 논란도
명동예술극장은 외국 관광객들로 북적였던 서울 명동 거리 한복판에 자리잡은 바로크 양식의 석조 건물. 558석 객석을 갖추고 정통 연극만 무대에 올리는 귀한 연극 전문 공연장이다. 1936년 ‘명치좌(明治座)’라는 이름으로 개관했다. 1957년 6월 1일 ‘명동예술회관’으로 개칭되어 국립극장이 되었다. 1962년 3월 ‘명동국립극장’으로 개칭했지만, 1973년 10월 국립극장이 남산으로 이전하면서 폐쇄됐고, 1975년에는 금융 기관에 매각돼 사무용 건물로 쓰이기도 했다.
2003년 12월 문화관광부가 인수해 리모델링 공사를 거쳐 2009년 6월 5일 ‘명동예술극장’으로 새롭게 문을 열었다. 외부 벽면은 옛 모습을 그대로 살리되 내부는 전면 보수해 최신 무대시설을 갖춘 588석 규모의 중극장으로 재탄생했다. 서울시는 이 극장을 ’10월의 미래유산'으로 최근 선정했었다.
작년 초에는 일부 명동 상인이 이곳을 ‘K팝 공연장’으로 쓰자고 주장하고, 이해찬 당시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문화체육관광부에 “공연장 용도 변경이 가능한지 검토하라”고 지시하면서 연극계의 강력한 반발을 불러일으켰다. 당시 이해찬 대표, 김태년 정책위의장, 안민석·우상호 의원 등이 명동을 찾은 자리에서 명동관광특구연합회 측의 “K팝 콘서트가 가능한 복합 공연장으로 만들어 외국인 관광객들을 유치하자”고 건의하고, 이 대표가 옆에 있던 노태강 문체부 2차관에게 “상인들의 의견을 적극 검토해달라”고 하면서 공론화됐다. 문체부는 국립극단 측에 “명동 상인과 상생할 방안을 검토해달라”고 했었다.
당시 이성열 국립극단 예술감독은 “명동예술극장은 문화 예술의 중심지였던 명동의 명맥을 잇고 있는 문화적 자산이다. 이곳까지 K팝 공연장이 들어선다면 명동이 런던 코벤트가든처럼 명소로 발전하는 것은 영원히 불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 배우 손숙씨는 “순수 예술 극장을 죽이는 행위를 막기 위해 연극인들과 연대해서 맞서겠다”고 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