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곡 ‘짐’에서 설파한대로 시간이 지나면 이해가 깊어지고 시간과 이해가 만나 마치 발효가 되듯이, 연습이 진행되면서 평면의 답답함은 오히려 새로운 대안을 제시해 주었다. 새삼스럽게 예술의 진일보라는 의미를 실감했다. 역사 속 이야기가 초점을 달리하여 새로운 의식을 담아낼 때, 기존의 희곡구도에서 획기적인 전환을 이룰 때, 그 무대의 주인인 배우들의 표현이 신선할 때 진일보도 가능하지 않을까. 짐 공연개요 작 정복근 연 출 한태숙 출 연 이남희, 이승훈, 서영화, 지영란, 강석, 김성표, 이기돈, 하지혜, 조부현, 최준영, 김성욱 스태프 : 무대_이태섭, 조명_신호, 음악_강은구, 안무_김윤진, 의상_김우성, 소품_우지숙, 분장_백지영, 디자인_장완규, 조연출_김수희, 유한철 관 람 료 일반 3만원, 학생 2만원 할인안내 단체 20인 이상 20% 할인, 단체 50인 이상 30% 할인 9월 20일, 21일 공연 예매시, 전석 50% 할인 공연문의 02.765.5476 제 작 극단 물리 줄거리 오십대의 김윤식은 어느 날 낯선 일본 여인으로부터 아주 오래전의 짐보따리 하나와 함께 편지를 받는다. 발신자는 무쓰시의 오미나토 부근 출신의 요시코라는 여인. 정체불명의 물건을 받을 것인가를 두고 김윤식과 요코는 계속 편지를 주고 받으면서 두사람은 차츰 그 낡은 짐보따리에 얽힌 과거의 유령들과 마주친다. 1945년 8월24일 오후5시20분경, 마이츠루만의 시모사바가 앞바다 해안 300미터 지점에서 대폭발을 일으켜서 침몰한 우키시마호에 타고 있던 한 젊은 한국여인 김정화의 짐을 둘러싸고 오시코와 윤식의 실랑이는 계속되고 짐에 대한 연관이 없음을 주장하며 수령하기를 정중하게 거절하던 김윤식은 차츰 그 짐의 주인일 수도 있는 대고모할머니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는데…. 우키시마호 폭침사건 우키시마호 사건은 2차대전 때 일본에 강제연행당한 한국인들이 전쟁이 끝난뒤인 1945년 8월24일 일본 해군 배 우키시마호를 타고 한국으로 귀국하는 도중에 배가 폭발하면서 침몰해 500여명이 숨진 사건이다. 우키시마호는 해방직후인 1945년8월24일 한국인 징용자 수천명을 태우고 일본 오미타토를 떠나 부산으로 향하던중 일본근해에서 침몰한 귀국선으로 당시 일본은 한반도 강점시 비행장, 터널, 지하탄약고 등 건설을 위해 아오모리현 반도에 이주시켜 강제노역에 투입했던 한국인 징용자와 가족 등 7500여명을 일본 군함 우키시마호(浮島丸.4730t급)에 태워 1945년 8월 22일 일본 최북단의 군항 오미나토(大湊)항을 출발시켰다. 광복을 찾은 한국인 징용•노동자와 그 가족들, 그리고 유골 19구를 조국으로 귀환하기 위해 부산으로 가는 것이었다. 그러나 출항 이틀째인 8월24일 폭발사고가 일어나 우키시마호는 침몰되었다. 8월 24일 오후 5시20분께 일본의 교토부 마이즈루만 안으로 들어오던 우키시마호는 해안에서 300m쯤 떨어진 시모사바가 앞바다에 이르러 멈춰섰고 잠시 뒤 폭발음과 함께 순식간에 두 쪽으로 꺾여 수많은 승객이 수장되었다. 당시 일본정부는 한국인 승선자 3725명 중 524명과 25명의 일본 승무원이 사망했다고 공식 발표했으나 희생자 유가족 및 시민단체들은 실제 승선자가 7500명에서 12000명에 이르고 사망자수도 수천명대에 달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사고원인이 명확히 밝혀지지 않고 있는데 일본정부는 미군이 마이즈루만에 부설한 기뢰와 접촉하면서 폭침했다는 '촉뢰설'을 주장하고 있으나 부산항에 가고싶지 않았던 일본해군의 '자폭설'이라는 주장도 있다 일본과 국내에 있는 희생자 유가족, 시민단체 등은 일본 쪽이 배에 실어 놓은 폭발물에 의해 사고가 났을 가능성이 높다는 내용의 생존자 증언과 관련 수집자료 등을 근거로 일본 정부에 진상 재조사와 관련 자료공개 등을 계속 요구해왔었다. 당시 배를 탄 21명(1명은 소송제기뒤 사망)과 희생자 유족 59명 등은 1992년 이래 3차례에 걸쳐 일본 정부를 상대로 공식사죄와 30여억엔을 배상하라는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제기했다. 이에 2001.8.23 일본 교토지법은 당시 일본정부의 안전배려 의무위반을 들어원고중 15명에 대해 일본정부의 안전배려 의무위반을 들어 한명당 300만엔씩 모두 4500만엔의 위로금을 지불하라는 원고 일부 승소 판결 내렸다. 그러나 공식사죄 청구부분은 기각했다. 이에 일본 정부는 법원이 정부의 책임을 일부 인정한 데 불복해 9월 3일 오사카 고등법원에 항소했으며, 탑승자와 유족 등 한국인 원고들도 일부 승소판결에 불복해 오사카 고등법원에 항소했다. 2003년 5월 일본 오사카고등재판소는 1심을 깨고 원고패소 판결을 내렸다. 오사카 고법 재판부는 "우키시마호로 한국인을 수송한 것은 치안상의 이유에 의한 군사적 조처"라며 "당시의 법 질서 아래서 정부는 피해자에 민법상불법행위 책임을 지지 않는다"고 판결했다. 북한에서는 2000년 살아있는 령혼들(감독 김춘송 ,출연 김철, 리영호, 정운모 외)이라는 이름으로 우키시마호 폭침사건을 영화로 제작했으며 국내에서는 2003년 전주국제영화제에서 상영된바 있다. **** 출처 네이버 백과사전 작가의도 어떤 역사적 사실이 객관성을 갖은 예술작품으로 만들어지려면 최소한 40년에서 60년의 세월이 경과해야만 가능하다고 루카치는 말한다. 이해당사자간들의 첨예하게 대립되는 정서 때문이기도 하고 사실을 바라보는 시선이 확보해야만 하는 시간적 거리가 그 정도는 되어야만 객관성이 확인될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의 근세사는 일본과 상관된 부분에서 언제나 풀어낼 수 없는 응어리를 드러내며 오랫동안 객관적 시각을 지닐 여유를 품게 하지 않았었다. 우키시마호 폭침사건이나 정신대, 혹은 징용에 대한 이야기가 언제나 불편하게 여겨지는 것은 그런 어휘들이 필연적으로 불러오는 정서의 부담스러움 때문이다. 오랫동안 이 주제를 숙제처럼 품고 있었으면서 손대는 것을 피해 오다가 나는 어쩌면 이제는 이 주제도 가볍고 단순한 이야기거리로 꾸며서 여유 있게 바라볼 때가 되지 않았을까 생각했다. 인간이 인간에게 행하는 폭력은 결국 가해자와 피해자에게 분량은 다를지라도 끊임없는 고통을 함께 느끼게 만들고, 그 폭력에 대응하는 이의 자세에 대한 자의식은 또 다른 앙금을 남긴다. 징용과 정신대의 피해자에 대해서 우리사회가 품었던 생각에 대해서, 스스로 그것을 용서하지 못했던 우리의 집단적 죄의식에 대해서 이제는 약간의 관용을 베풀어도 되지 않을까 생각해 보았다. 사실 우키시마호 폭침사건은 현지 일인들의 끊임없는 노력으로 사회의 주의를 환기시켰던 점이 없지 않다. 무대 위에 이 문제를 올려놓고 그냥 한번 생각해봐도 좋을 일이 아닐까 한다. 정복근 1997년 극단 물리 창단 멤버로 2007년 현재까지 활동 중1976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여우>로 등단한 후 현재까지 꾸준히 작품을 발표하고 있다. 작품 <버스를 타고> <여우> <자살나무> <태풍> <검은 새> <밤의 묵시록> <산 넘어 고개 넘어> <웬일이세요 당신?> <위기의 여자> <지킴이> <실비명> <간통> <그 자매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나?><숨은 물> <나, 김수임> <덕혜옹주> <배장화,배홍련> <얼굴 뒤의 얼굴> <이런 노래> <박씨전> 수상 한국 백상예술대상 희곡상, 제13회 서울 연극제 대상, 제18회 서울 연극제 희곡상, 영희 연극상 연출의도 작가 정복근은 희곡 <배장화 배홍련>이후 새로운 작품을 내놓지 않았다. 어쩌다 작가를 만날 때면 그가 오기로 작품을 쓰지 않는 게 아닌가 의심이 들 정도로 다시는 희곡을 쓰지 않겠다는 말을 반복하곤 했다. 나는 왜냐고 묻지 않았다. 작품을 써야 된다고 권유하거나 작가가 쓰지 않는다는 게 얼마나 힘들겠냐는 식의 위로도 하지 않았다. 강한 부정은 긍정이 아니던가? 드디어 그가 작품을 내 놓을 때가 도래했다는 것을 눈치챘기 때문이다. 예상대로 올해 초, 작가로부터 기다리던 희곡 한 편을 받았다. 서간체로 된 매우 짧은 희곡이었는데 대사보다는 지문이 많은 작가의 요구와 경고가 강한 작품이었다. 도대체 입체감을 최대치로 끌어올려도 연극이 갖는 한계에서 벗어나기 어려운데, 서간 형식의 평면적 구도라는 제한이 있는 희곡을 어떻게 무대에 형상화시킬 것인가? 희곡 제목에 참여자들은 영향을 받기도 하는데 제목 그대로 ‘짐’의 구도가 연출의 짐이었다. 고백하자면 혼자서 대본 읽기를 하는 중에 나는 몇 번이나 대본을 팽개치곤 했다. 제본이 안 된 종이들이 갈갈이 바닥에 흩어진 채 나를 올려다보며 히죽 웃고 있는 느낌을 받을 때면 작가는 능청스럽게 저의를 눙치고 있는데 나는 그걸 간파하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러 번 수정을 거쳤지만 여전히 작품은 내 손안에서 자유롭지 않았다. 드라마센터 연습실을 오가는 중 어쩌다 극장의 문이 열려 있으면 극장 안으로 들어가 보곤 했다. 삼십 년 전 연극작업에 대한 주체할 수 없을 정도의 과도한 열망을 추스르곤 하던 곳이 바로 모교의 그 극장 안이었다. 캄캄한 객석에 앉아 하염없이 빈 무대를 응시하노라면 감히 범접할 수 없는 거대하고 훌륭한 기운과 함께 나도 존재한다는 것에 벅찬 감동을 느꼈고 결국은 무대를 만들어 갈 사람의 일원이라는 데에 행복을 느꼈던 것이 기억났다. 희곡 ‘짐’에서 설파한대로 시간이 지나면 이해가 깊어지고 시간과 이해가 만나 마치 발효가 되듯이, 연습이 진행되면서 평면의 답답함은 오히려 새로운 대안을 제시해 주었다. 새삼스럽게 예술의 진일보라는 의미를 실감했다. 역사 속 이야기가 초점을 달리하여 새로운 의식을 담아낼 때, 기존의 희곡구도에서 획기적인 전환을 이룰 때, 그 무대의 주인인 배우들의 표현이 신선할 때 진일보도 가능하지 않을까. 한태숙 작품 <그 자매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나?> <첼로> <덕혜옹주> <얼굴 뒤의 얼굴> <세종32년> <나 김수임> <나운규> <레이디맥베스> <에쿠우스> <창극 논개> <배장화 배홍련> <광해유감> <서안화차> <꼽추, 리차드 3세> <고양이늪> <이아고와 오셀로> <네바다로 간다> 수상 백상예술대상, 서울연극제, 김상열연극상, 동아연극상, 여성연극인협회상, 서울어린이연극상 출연진 이승훈 (김윤식 역) 서영화 (요시코 역) 지영란 (노파 역) 이남희 (사토 역) 김성표 (박창수 역) 이기돈 (코러스 역) 하지혜 (김정화 역) 극단 물리 극단 물리는 "우주 만물의 이치" 그 원리와 현상을 해석, 표현해 내고자 하는 한국의 실험 극단으로 1990년대 <첼로>, <덕혜옹주> <나 김수임> 등으로 우리에게 알려진 연출가 한태숙을 주축으로 결성되었습니다. 1997년 <그 자매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나?>를 창단 공연으로 시작해, 2002년에는 <레이디 맥베스>를 통해 폴란드 콘탁 페스티벌(Kontakt Festival)에 공식 초청을 받고, 2003년 <서안화차>로 동아연극상 4개 부문(작품상, 연출상, 연기상, 무대미술상)을 수상하는 쾌거를 이룩해 내었습니다. 올해로 창단 9주년을 맞은 극단 물리는 <나운규>, <배장화 배홍련>, <광해유감>, <서안화차>, <죽도록 달린다>, <고양이늪>, <네바다로 간다>에 이르기까지 꾸준한 창작 작업을 통해 해마다 연극계 이슈를 만들어 내며 좋은 성과를 얻고 있습니다. 최근작 1999년 <레이디 맥베스> 문예회관 소극장 / 우수공연 베스트 5 / 99 서울연극제 작품상. 연출상, 연기상. 2000년 <레이디 맥베스 200> 예술의 전당 자유소극장 2001년 <배장화 배홍련> 문예회관 소극장 우수공연 베스트 5 2002년 <레이디 맥베스> 폴란드 바이 포모로스키 극장, 예술의 전당 자유소극장 / 폴란드 콘탁 페스티벌 공식 초청작 2002년 <광해유감> 문예회관 대극장 2003년 <西安火車> 설치극장 정美소 , 2003 서울공연예술제 공식 초청작 / 우수공연 베스트 7, 평론가 베스트 3 , 동아연극상 작품상, 연출상, 연기상, 무대미술상 2004년 <죽도록 달린다> 아룽구지 소극장, 동아연극상 새개념연극상 2005년 <죽도록 달린다> 문예진흥원 예술극장 소극장 <고양이늪> 아르코예술극장 대극장 제1회 여성연극인협회상, 동아연극상 무대미술상 <저작권자 ⓒ 문화예술의전당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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