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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년언약 - 한국 연극 100주년 기념

문예당 | 기사입력 2008/05/04 [11:14]

백년언약 - 한국 연극 100주년 기념

문예당 | 입력 : 2008/05/04 [11:14]


한국 연극 100주년을 맞이하여 휘발되어 가는 연극정신의 복원에 대한 말 뿐인

공허한 외침이 아니라 배우예술로서의 연극의 미학을 몸소 증명해 내는 것은

바로 이번 무대에 서는 60여명의 배우들이다.


【국립극단 제211회 정기공연】



한국 연극 100주년 기념


  
백년언약


■ 공연 개요

◈ 공연명 : 국립극단 제211회 정기공연 / 한국 연극 100주년 기념 - <백년언약>

◈ 일  시 :  2008년 5월 28일(수) ~ 6월 1일(일)

             평일 19:30, 토 15:00, 19:30 / 일 15:00 (총 5일 6회)

◈ 장  소 :  국립극장 해오름극장

◈ 출  연 :  백성희, 장민호, 이상직, 이문수, 서희승, 김재건, 이승옥, 오영수, 문영수,

              최상설, 김종구, 이혜경, 권복순, 이영호, 우상전, 최운교, 조은경, 서상원,

              김진서, 남유선, 노석채, 한윤춘, 계미경, 곽명화, 이은희 (이상 국립극단)


             이은정, 양혜경, 강윤종, 김마리아, 고아라, 이태형, 오주환, 이하림,

             최선호, 송영광, 아오키 테쯔진(일본), Lance(미국) (이상 객원)


             김빛나래,우가은, 오민경, 김고은, 이수정, 이서경, 유영진, 조은별, 이슬기,

             박혜조, 김주리, 정다원, 이기리 (이상 계원예술고등학교 연극학과 재학생),


             장보경, 장현준, 장보현, 홍가은, 신희준 (이상 아역)  


◈ 스  텝 : 작.연출/오태석, 무대미술/손호성, 조명/아이까와 마사아끼 의상/이승무,

            소품/조은아, 영상/오한샘, 작곡/유은선, 작창/주호종, 음악 및 음향/김병철,

            분장/손진숙, 안무/홍은주, 경극지도/이광복, 조연출/이동용, 연출보/적극,

            통역/우지숙, 자막/한국문학번역원

◈ 주  최 : 국립극장

◈ 주  관 : 국립극단  

◈ 관람료 : 으뜸 7만원 / 버금 5만원 / 딸림 3만원 / 버금딸림 2만원 (사랑티켓 참가작)


◈ 예매 및 문의 : 국립극장 고객지원실  02-2280-4115~6

◈ 인터넷 예매 : www.ntok.go.kr(국립극장 홈페이지)



■ 공연 소개

한국연극 100주년 기념 - 오태석의 대형신작 <백년언약>

국립극단은 제121회 정기공연이자 한국연극계의 축제의 한 해, 한국연극 100주년을 기념하며

오태석 예술감독의 대형신작 <백년언약>을 해오름극장 무대에 올린다.

오태석 예술감독은 지독한 창작열과 끈질긴 작업정신으로 일관해온 우리 시대의 문제적 작가이자

연출가로서, 대한민국 연극계를 이끌어 온 말릴 수 없는‘장인’이라 할 수 있다.

더욱이 국립극단의 58년이라는 긴 역사 속에서 오태석은 간과할 수 없는 주요 인물이다.


1969년 명동국립극장 무대에 오른 작품“환절기”의 작가로 첫 인연을 맺어

1978년“물보라”, 1979년“사추기”, 1980년“산수유”, 1981년“한만선”,

1983년“나래의 섬”, 1985년“여자가”, 1988년“팔곡병풍”, 1997년“태”,

1999년 “운상각”, 2002년“기생비생 춘향전”, 2007년“황색여관”에 이르기까지

작가로서 혹은 연출가로서 국립극단과 인연을 이어왔다.


2006년 예술감독 부임 이래 첫 창작 희곡 집필과 연출을 겸하게 되는 <백년언약>은

삼국유사에서 소재를 빌려 일제강점기에서 해방, 6.25, 분단에 처한  한국 근대사의

허실을 연출가 특유의 생략과 비약의 묘미를 통해 우화적으로 간추려 놓는다.  

현존하는 이 시대 최고의 배우 - 장민호, 백성희

한국 연극 100주년을 맞이하여 휘발되어 가는 연극정신의 복원에 대한 말 뿐인

공허한 외침이 아니라 배우예술로서의 연극의 미학을 몸소 증명해 내는 것은

바로 이번 무대에 서는 60여명의 배우들이다.

그 중 국립극단 원로단원이자, 대한민국 예술원 회원으로 한국 연극계에 살아있는

전설인 백성희, 장민호 선생은 그저 무대를 오랫동안 지켜온 지킴이로서만

아니라 말 그대로 현존하는 당대 최고 배우로서 무대 위를 열정으로 누비며 연극이 지닌

모든 덕목을 실현해 내어 존경과 탄성을 자아내게 한다.


1968년 국립극장에서 올려진 <환절기>(오태석 작/임영웅 연출)에서 권태기에 들어선 부부로

열연한 이래 40여년이 흘러 80세가 넘어선 오늘, 또다시 오태석의 신작 <백년언약>에서

새댁과 남편 역으로 부부가 되어 한 무대에 선다.  

<백년언약>은 2008년 5월 국립극장 청소년 예술제 참가작으로 그 첫 막을 열며,

이후 10월 세계국립극장 페스티벌의 공식참가작으로 선정되어

KB청소년하늘극장(724석 규모)의 무대에 다시 올라 세계 유수의 공연작들과 함께 견주며

한국연극의 우수성을 알리고 국제문화교류의 가교 역할을 할 것이다.




■ 작품 알아보기

  또 다시 백년을 이어갈 희망의 약속

우리는 일을 당했을 때 신화나 고전에서 지혜를 빌려 어려움을 극복해 왔지요.

<백년언약>은 고구려의 무당 ‘추남’이 억울하게 죽으면서 서현공 부인 품으로 들어가

신라의 김유신으로 태어나 삼국통일을 이룬다는 에피소드를 모티브로 하여 암울했던

지난 백년에 허실을 점검해 봅니다.  

일제강점기, 해방 후 좌우대립, 6.25전쟁으로 이어지는

근현대사를 통관하는 아픔의 원인이 나누어짐 - 편 가르기에 있었던 것은 아닌지.  

백년이라는 시간이 지났음에도

우리는 여전히 DMZ를 사이에 두고 둘로 나뉘어져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삼국유사를 통해보면 고구려의 추남이나 신라의 김유신이나 따지고 보면 한 몸이 아닌가

그래서 삼국은 통일이 되었을까 - 그처럼 우리도 이 나눔의 시대를 청산할 수는 없는지

심청전에서 심봉사가 문득 개안을 하듯이

우리 모두 그런 눈뜸을 나누는 자리가 됐으면 좋겠습니다.- 작․연출 오태석의 말  -

■ 줄 거 리

격랑의 역사 위에 한 조각 폐선 모냥 떠있는 객차, 피난생활을 하는 열서너 세대가

적과 동지를 갈라놓는 사상의 회오리 속에 가족들을 지켜내려 몸부림친다.


만삭의 몸으로 새댁은 경무대에 근무한 까닭에 인민군 정치보위부로 끌려간

남편 생사확인에 동분서주하다 유산한다. 남편의 부재로, 생계를 꾸려나갈 방도를 찾아

밤거리에 나선 새댁은 동변상련의 아픔을 지닌 상이군인을 만나 의지한다.


세월은 흘러 한국동란 때 인해전술로 1.4 후퇴를 야기했던 중국이 이제 상품으로

이 나라를 덮고 있다.  한편 탈북자를 통해 전쟁 중 헤어졌던 남편 소식을

전해들은 새댁은 믿기지가 않는다.  


게릴라전을 전개하려 DMZ 밑으로 뚫렸던 땅굴이 이제 삶의 고달픔에 지친 동족들이

탈출해 오는 통로 - 반세기 넘어 단절된 민족 소통의 통로로 사용되기를 바라는

새댁의 마음에는 북녘의 어린 아이들을 가득 태운 노란 통학버스가

풍선 모양, 떠서 DMZ를 넘어온다.



■ Cast 주요 배역   

◉ 남 편 : 장민호                    ◉ 새 댁 : 백성희

◉ 상이군인 : 이상직                 ◉ 남 자 : 서상원

◉ 장 교 : 이영호                    ◉ 인애모자원 원장 : 서희승

◉ 구세모자원 원장 : 이문수          ◉ 순 경 : 김종구

◉ 형 사 : 김재건                    ◉ 수간호사 : 이승옥

◉ 장정들 : 오영수, 문영수, 김진서   ◉ 중국여자 : 이혜경  

◉ 이북여자 : 권복순                 ◉ 자 모 : 이은희  


■ 작 ․ 연출가  -  오태석

  국립극단 예술감독 오태석은 1940년 충남 서천 아룽구지 출생으로,

연세대학교 철학과를 졸업하였다.  1968년 국립극장· 경향신문 장막극 <환절기>

당선 이후, 김수근 문화상, 백상예술상, 동아연극상, 대산문학상, 연극평론가협회상,

연극협회상, 호암상 등 국내 주요 예술상을 수상하였다. 1984년 극단 목화 레퍼토리

컴퍼니를 창단하여 왕성한 활동을 이어오고 있으며, 현재 서울예대

극작과 석좌교수로 재직 중이다.

  극작가이자 연출가인 오태석은 40여 년 간의 연극 인생에서 우리 것의

아름다움(전통성)을 고수해 오며 우리 연극문법과 연극이 이 시대에 할 수 있는

역할을 탐구해 왔다. 역사의식을 바탕으로 ‘전통의 현대화’를 추구하고

연극을 통한 메시지로 경종을 울리며 우리들이 잃어서는 안 될 부분들에 대해

끊임없이 진언하고 있다.

  국립극단과는 <물보라>, <사추기>, <여자가>, <태>, <운상각>, <기생비생 춘향> 등

여러 작품으로 호흡을 맞춰왔다. 대표작 <로미오와 줄리엣>, <부자유친>,

<심청이는 왜 두 번 인당수에 몸을 던졌는가>, <백구야 껑충 나지마라>, <백마강 달밤에>,

<태>, <천 년의 수인>, <용호상박> 등이 있다.


■ 출연 배우 소개 (주요배역)

◉ 새댁(백 성 희)


국립극단 원로단원이며 한국연극계의 산증인으로 국립극장은 물론 대학로에서도

후배들과 함께 왕성한 공연활동 중인 영원한 현역이다.

2004년 연기인생 60주년 기념공연 <길>에 이어 2005년에는 고 이근삼 작가의 유작

<멧돼지와 꽃사슴>에서의 열연으로 2005년 동아연극상 특별상을 수상하였다.

대한민국 예술원 회원.


◉ 남편(장 민 호)


연극 인생 60여 년. 현역배우 중 최고참임에도 불구하고 그의 발성법을 따라잡는

배우가 아직 없다. 한국 현대연극과 국립극단의 역사가 곧 그의 역사다.

국립극단의 <인생차압>, <태>, 예술의전당의 <보이체크>, 영화 <태극기 휘날리며>,

<천년학> 등에 출연했다. 특히 1960년 서항석 연출의 <파우스트>에서

1998년 이윤택 연출의 <파우스트>에 이르기까지 파우스트 역을 4번이나 맡아

‘파우스트 장’이란 별명이 있다. 대한민국예술원 회원.


◉ 상이군인(이 상 직)

‘네로’나 ‘연산’과 같이 순수와 광기 사이를 오가는 불안한 영혼을 잘 표현해 내는

국립극단의 주역으로 2001년 <브리타니쿠스>로 백상예술대상,

히서 연극상 주목받는 연기자상, 2004년 히서 연극상 본상을 수상하였다.

이윤택 연출 <문제적 인간-연산>에서‘연산’역을,

2004년, 2006년 <귀족놀이>의 ‘주르댕’역을 맡아 호평을 받았다.


◉ 남자(서 상 원)

극단 미추 출신으로 2001년 국립극단에 입단했다. 입단 후 개성있고 선이굵은

역할을 주로 맡아왔는데, 연극<집>의 ‘망나니 사위’ 역, <뇌우>에서

양어머니와의 금지된 불륜과 사봉에 대한 사랑 때문에 괴로워하는 ‘주평’역,

<떼도적>의 비열한 도적 ‘슈피겔 베르크’역, 2007 <산불>에서는 자위대장

‘원태’역, 국립 극단 국가브랜드 공연<태>에서 ‘단종’역과 <햄릿>에서

‘햄릿’역을 맡아 안정된 연기를 선보였다.


◉ 장교(이 영 호)

예흥회 연극반 출신으로 결성된 극단 <시지프스> 창단에 참여하는 등 청소년 및 직장인,

해외동포 대상으로 한 연극 교육에 힘쓰고 있다. <맹진사댁 경사> ‘삼돌이’역,

<마르고 닳도록> ‘역대 대통령’역, <줄리어스 시저> ‘시저’역, <뇌우>

‘노대해’역 등에서 열연했다.

서울예술대학 및 한국방송대를 졸업하고 상명대학교 대학원 연극과에 재학 중이다.


◉ 인애모자원 원장(서 희 승)

1972년 국립극단 연기인 양성소를 거쳐 1975년부터 국립극단의 단원으로 활동해오고 있다.

희극적 연기가 독특한 성격파 배우이며, 특히 춤과 노래, 북연주 등이 뛰어나

한국적 해학극에 안성맞춤이다. 1999년의 ‘이해랑 연극상’을 비롯해

‘백상예술대상’,‘히서 연극상’들을 수상했다.

<검찰관>, <수전노>, <마르고 닳도록>, <인생차압>이 대표작.

최근에는 뮤지컬 <댄싱 섀도우>의 ‘타마르 노인’,

TV드라마 <칼잡이 오수정>등에도 출연하였다.


◉ 구세모자원 원장(이 문 수)

서울예술대 연극과 졸업. 1974년부터 극단 동랑레퍼토리, 에저또,

산울림 등을 거쳐 1989년부터 국립극단에 몸담고 있다.

당당한 움직임과 특유의 울림이 좋은 소리로 사랑받는 연기자로 <귀로>,

<피고지고 피고지고>, <타이터스 앤드러니커스>, <바냐 아저씨> 등이 대표작이며,

영화 <거룩한 계보>, <박수칠 때 떠나라>등에 외부활동도 활발하다.


◉ 순경(김 종 구)

중앙대 연극영화과를 졸업하고 1982년에 입단한 국립극단의 중견.

코믹함과 진지함을 동시에 겸비한 캐릭터의 소유자.

중앙대 대학원 박사과정에 재학 중인 학구파 배우이다.

국립극단의 <법에는 법으로>, <마르고 닳도록>, <태>, <귀족놀이>,

<떼도적>, <테오에게 보내는 마지막 편지> 등이 대표작.


◉ 형사(김 재 건)

극단 동랑레퍼토리를 거쳐 1974년부터 지금까지 국립극단에서 활동하고 있다.

<산불>, <물보라>, <꿈하늘>, <소>, <피고지고 피고지고>, <떼도적> 등에 출연했고,

<사로잡힌 영혼>으로 1991년 사랑의 연극잔치 남자조연상,

1992년 백상예술대상 남자연기상 등을 수상했다.

최근 <태> ‘세조’역, <햄릿> ‘클로디어스’역으로 카리스마 연기를 선보였다.


◉ 수간호사(이 승 옥)

동인극단과 KBS 성우 6기를 거쳐 국립극단에 입단했다.

<베르나르다 알바의 집>, <리챠드3세>, <파우스트>, <인생차압>,

<바냐 아저씨> 등에서 활약했다.

제3회 대한민국 연극제 여우주연상, 2004년 평론가협의회 최우수연극인상을 수상하였다.

최근까지 대학로에서 <왕비 100년만의 외출하다>를 연출하는 등

연기 외에 많은 부분에서 활약 중이다.




■ 도 움 글

         한국연극 100주년과 국립극단, 그리고 <백년언약>

                                  서  연  호 (고려대 명예교수, 국립극단 자문위원)
1.
  지난해부터 한국연극 100주년을 기념하려는 사업들이 여기저기서 제기되었다.

필자는 정동극장의 자문회의에 초빙되어 <은세계>를 공연하는 문제로

소견을 피력하기도 했다. 최근에는 전국연극협회에서 전문가들의 추천방식으로

100주년의 기념비적인 작품을 선발하는 모임에 초대를 받았으나 바람직한

방법이 아닌 듯하여 불참한 사실도 있다. 국립극장에서는 기념사업의 일환으로

오태석 작, 연출의 <백년언약>을 공연하려고 준비 중이라 한다.

  먼저, 100주년이 어떤 의미인지를 나름대로 생각해 보고자 한다.


금년, 2008년부터 100년 전이면, 1908년이 된다. 상식적으로 원각사의

<은세계>가 떠오른다. 명시적인 자료는 발견되지 않지만, 여러 가지 관련 자료를

종합해 보면, <은세계>는 <최병도 타령>이라는 별칭의 창극이었던 것으로 집약된다.

최병도(崔秉陶)는 19세기 말기 김옥균의 사상을 추종하던 실존인물이었고,

그의 역할을 맡았던 나주 출신의 소리광대 김창환(金昌煥, 1854-1927)과

연출을 맡았던 무안 출신의 강용환(姜龍煥, 1865-1938)을 비롯한 모든 참가자들은

소리광대이거나 잽이들이었다.


  당시 신연극이라는 개념으로 공연된 <은세계>는

구연극에 대한 대안으로 만들어진 것이었고, 구연극은 판소리를 포함한

전통연희를 통칭하는 개념이었다.


『조선연극사』의 저자인 김재철(1907-1933)은 신극의 정신은 사실주의이고,

<은세계>는 신극이었다고 기술하였다.

이러한 지적은 타당한 것이었지만, 후세의 사람들에게 <은세계>가

곧 일본 가와카미 오도지로류(川上音二郞流)의 신연극,

혹은 이이 요보류(伊井蓉峰流)의 신파극,

혹은 시마무라 호게쓰류(島村抱月流)의 신극으로

오인하게 만든 요인이 되기도 하였다.


  이처럼 근대극의 기준을 <은세계> 작품공연에 두지 않고, 근대식 극장개설에

기준을 둔다면, 1902년 8월에 개설된 협률사로 소급할 수 있다.

이 협률사가 후일 개축된 것이 원각사였다.

이렇게 통산하면, 금년은 한국연극 106주년이 되는 셈이다.



협률사는 고종황제의 명으로 만들어진 제국극장(帝國劇場)이고,

현대식으로 국립극장이었으니, 국립극장의 관점에서 본다면,

그 현대적 의의를 무심히 지나쳐 버릴 일만은 아닌 것으로 생각한다.

  명분론적인 이야기는 이만해 두기로 하고, 우리 사회에서 새삼스럽게

100주년을 강조하는 진심(眞心)은 무엇일까.


그것은 한 마디로 우리 연극의 반역사적인 후진성과 고질적인 침체성에

대한 안타까움, 나아가서는 개선방향에 대한 근본적인 모색의 필요성에서

발원된 것이라고 필자는 생각한다.


  2.
  1950년 4월 29일, 식민지시대에 지은 광화문 네거리의 부민관을 수리하고,

신극협의회(신협)를 전속단체로 하여 유치진 작, 허석 연출의 <원술랑>을 무대에

올린 것이 국립극장의 출발이었다. 2008년 3월 14일, 지난해에 호평을 받은

<햄릿> 재공연을 기준으로 하면, 현재 국립극장은 58주기를 맞는 셈이다.

전쟁기간인 1953년 2월 13일부터는 대구문화극장이 국립극장으로 사용되었고,

전후인 1957년 6월 1일부터는 명동의 시공관이 국립극장으로 사용되기 시작하였다.

1973년 10월 3일부터는 장충동의 국립극장시대가 열려 오늘날에 이르렀다.


  지난 58년 동안 필자의 뇌리에 얼른 떠오르는 창작품들을 극작가 기준으로

더듬어 보면 대체로 다음과 같은 작품들이다. 이용찬의 <가족>은 장면전환이

빠른 몽타주식 전개방법을 통해 1950년대의 현실 가운데서 부자의 갈등을

새롭게 다루었다. 오영진의 <인생차압>은 한국적인 미학이 풍기는 작품으로

이미 연극사의 고전이 되었다.

차범석의 <산불>은 극한상황에 처한 인간의 심리를 진솔하게 그렸다.

천승세의 <만선>은 서양비극의 토착화 사례를 보여주는 수작으로 평가되었다.

  김은국 원작의 <순교자>는 혹독한 전쟁상황 속에서 젊은 세대가 겪는

실존의 문제를 선명하게 부각시켰다.

오태석의 <환절기>는 방향성을 상실한 젊은 세대의 부조리성을 탐색하였다.

전진호의 <인종자의 손>은 가족에 얽힌 윤리적 갈등,

특히 양심의 문제를 심도 있게 다루었다.

이재현의 <포로들>은 포로석방의 전후상황을 기록극으로 다루어 박진감을 느끼게 했다.

김의경의 <남한산성>은 병자호란 때 척화파와 주화파의 논쟁을 통하여

현실의 역사적 의미를 다각도로 조명하였다.

  이상에서 열거한 작품 이외에도, 최인훈의 <둥둥 낙랑둥>과 <옛날 옛적에 훠어이 훠이>,

이승규의 <약속>, 이강백의 <비옹사옹>, 차범석의 <꿈하늘>,

이현화의 <넋씨>, 이상현의 <사로잡힌 영혼>, 이강백의 <물거품>,

김광림의 <홍동지는 살어 있다>, 이만희의 <피고지고 피고지고>,

이근삼의 <이성계의 부동산>, 함세덕의 <무의도기행>,

우봉규의 <눈꽃>, 송미숙의 <아노마> 등이 호평을 받았다.

  국립극장의 공연과 관련하여 간과할 수 없는 인물이 오태석이다.

특히 장춘단시대의 연극을 크게 변화시킨 작품은 1978년 9월 오태석 작,

연출의 <물보라>였다. 이어서 그는 <사추기>, <산수유>, <한만선>, <나래섬>,

<여자가>, <팔곡병풍>, <태>(1993년), <운상각>, <태>(2000년) 등을 공연하여 주목받았다.

지난 46년 동안 오태석은 연극의 다양한 실험, 국어를 연극언어로 활용하려는 시도,

현대적인 관점에서 전통의 재발견,

현실감 넘치는 주제의식의 구현 등을 줄기차게 추구해 왔다.

  3.
  수채화를 멀리서 보면 부드러운 느낌을 준다. 엷은 색상과 내용들이 조화를

이루는 까닭이다. 그러나 수채화를 가까이서 보면 색상은 흩어지고 내용들의

질서는 엉망으로 부서진다. 가장 부드러우면서도 가장 엉망인 세계,

이것은 수채화가 지닌 역설(아이러니)이다. 누구나 수채화에 대한

이런 인상을 지니고 있을 것이다.

국립극장에서 5월 28일부터 공연될 <백년언약>은 이런 수채화 같은 작품이라 할 수 있다.

우리 역대 정치가들이 부르짖고 있는 무슨 민주화, 무슨 복지, 무슨 기적,

무슨 세계화 같은 말씀은 모두가 멀리서 보는 수채화라고 할 수 있겠다.

그러나 현실 속에서 나날이 부딪는 우리 삶을 한 폭의 아름다운

수채화라고 할 수 있겠는지, 이 시점에서 되물어야 한다.


  우리에게 광복은 민족분단의 아이러니며, 6.25는 허구적인 사상의 소모전이고,

평화통일론은 수사학에 지나지 않는다.

우리는 여전히 세계사에서 낙후한 못난 백성이자 두 조각난 나라의

고독한 시민일 뿐이다. 배고픈 사람들은 여전히 북적이고 굶어죽는 동포들도

부지기수이다. 사태가 이러한데도 우리가 휴머니즘을, 동포애를,

진정한 통일을 말할 수 있을까. 이런 질문에서 오태석의 <백년언약>은 발상된 것이다.


이제는 할머니가 된 젊은 새댁(백성희역)이 시종 작품을 이끌어간다.

전쟁 통에 총에 맞아 죽은 그의 남편(장민호)은 후반부에서 새댁의 환시로

나타나서 북한 아이들을 구제하는 데 동분서주한다.

아이와 남편을 상실한 비극을 딛고, 억척스럽게 살아오며 이웃사람들과

북한 아이들을 위해 헌신하는 새댁의 모습이야말로 그대로 감동으로 밀려온다.


  물 위에 배가 떠 있듯이, 낡은 객차 하나가 공중에 떠 있다.

이 객차의 안팎이 연극의 공간(손호성 미술)으로 이용된다.

피란시의 은신처, 인민군 취조실, 모자원, 여인숙, 유흥 클럽,

안과 병원, 비무장지대의 땅굴 등으로 상황은 자주 바뀐다.

새댁을 중심으로 상이군인(이상직), 남자(서상원), 몸집처녀(이승옥),

모자원장(서희승, 이문수), 형사(김재건), 순경(김종구), 장교(이영호),

장정들(최상설, 문영수)이 숱한 에피소드를 신속하게 연출해낸다.


에피소드들은 지나날 우리의 기막힌 현실을 재현하고 은유하면서

아기자기하게 흥미롭게 지나간다.

이것이 이 작품의 가시적 재미를 만들어낸다.

오태석 연극의 장기이자 재치이기도 하다.

  비무장지대를 뚫고 노란 스쿨버스가 달려온다.

그 안에는 굶주린 아이들이 하나 가득히 타고 있다.

그 아이들은 마치 삼국유사에 등장하는 쥐들을 닮았다.

앙징스럽게 귀엽고 함께 잘 어울려 놀고 있는 쥐들의 형상이다.

새댁이 그 아이들을 품에 안는다. 여기서 막이 내린다.

국립극단의 100주년 작품은 이렇게 우리의 미래언약을 담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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