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가이면서 소설가이기도 한 정영신은 30여 년이라는 세월 동안 우리나라에서 열리는 5일장을 촬영한 근력 있는 사진가다. 그는 전국 522곳의 5일장을 모두 사진으로 기록하였다. 옛날의 5일장은 소통의 공간이었다. 장터는 단순히 물건을 구매하거나 교환하는 장소일 뿐만 아니라 대처의 소식을 듣거나 인근 마을 사람들이 모여 정보를 교환하는 커뮤니케이션의 광장이요 공공공간이었다. 게다가 동학혁명이나 3·1운동도 장날을 계기로 전개되었다고 하니 5일장의 사회적 의미는 예사로운 것이 아니다.
정영신은 한국의 대표적인 장터 사진가이지만 이번 책에서는 장터뿐만 아니라 고향과 어머니' 라는 새로운 테마를 보여주고 있다. 그가 아무런 대가도 바라지 않고 발품을 팔아 촬영해 남긴 1980년대 이후의 농촌 사진은 피폐한 고향에 남아 있는 어머니들의 모습이다. 글로써는 불가능한 1980년대 농촌의 시대상과 그곳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정감을 사진으로 기록하였다. 어느 인류학자도 하지 못한 작업을 그가 해냈다.
1960년대 한국 전체 경제활동 인구의 60퍼센트 이상이 농업에 종사하고 있었다. 정영신이 카메라를 들고 전국 방방곡곡을 다니던 1980년 대만 하더라도 농가인구는 1천만 명이 넘었으며 이는 전체인구 대비 30퍼센트(28.9%)에 육박하는 숫자였다. 값싼 노동력을 바탕으로 한 저임 금 산업화 정책은 차츰 농촌 인구의 감소로 이어져 농촌의 공동화를 가져왔다. 농촌의 젊은이들은 공업단지와 수출자유지역 등으로 급속히 빠져나갔다. 땅과 소(한때 대학을 '우골탑'이라고 하지 않았던가)를 팔아 도시로 고등교육을 받으러 나간 농촌의 아들들은 교육을 마친 후 다시는 고향으로 돌아오지 않았다.
가이아(Gaia)는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대지(땅)의 여신이다. 그는 만물의 어머니' 이자 '신들의 어머니'로, '창조의 어머니 신' 이다. 아마 기원 전 그리스 사람들은 어머니를 대지와 같은 존재로 섬겼던 모양이다. 그러나 우리는 그리스 로마 시대로 가지 않고도 현존하는 대지의 여신들을 만나 볼 수가 있다. 그들은 바로 한국의 어머니들이다. 특히 땅에서 경작을 하고 가정경제를 담당하며 아이들의 교육까지 뒷바라지했던 한국 농촌의 어머니들이야말로 땅(대지)의 여신으로 불러 마땅한 존재이다.
정영신의 오래된 앨범에서 찾아낸 사진들에서 우리는 어머니를 만나고 고향을 본다. 모두 사라져 버리고 기억도 가물가물하지만 우리가 대지(땅)에서 비롯되었다는 것, 그리고 그곳에 가난하고 누추하지만 아름다운 모습으로 어머니가 서 계시다는 것을 사진은 말해 준다. 고향이 어머니이고 어머니가 고향이라는 사실을 뒤늦게 깨닫고 고향을 찾는 현대의 탕아들에게 넌지시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사진이 공식적으로 공표된 것은 1839년이다. 200년도 채 안 된 사진(미국의 건국보다도 짧다)이 인간의 표현영역의 중심에 자리 잡게 된것은 대상을 충실히 모사한다는 사진의 기록적 특성 때문일 것이다. 현대에 들어 젊은 작가들을 중심으로 상황을 연출해 찍거나 미술과 융합한 사진도 사진예술의 영역에 들어와 버렸지만 아무래도 우리는 아직도 사진이 진실을 말해 주기를 기대하는 것 같다. 사진을 믿고 싶은 것이다.
현장에 없는 것을 합성하거나 연출한 장면은 부자연스럽고 조작된 현실로 받아들이게 된다. 관객이 보는 순간 알아차리기 때문에 감동보다는 호기심만 불러일으킬 뿐이다(한국사진계에서는 요즘도 공모전 수상작이 합성사진임이 밝혀져 수상이 취소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광화학적 특성을 바탕으로 하는 사진은 태생적으로 거짓말을 하지 못한다. 빛과 색감의 왜곡은 있을지언정 대상(피사체)을 감추거나 속이지는 않는다. 그것이 가능하다면 그것은 카메라가 아니라 누군가가 사진에 손을 댔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 모두가 알고 있듯이 인문학(Humanities)은 인간과 관련된 근원적인 문제나 사상, 문화 등을 중심적으로 연구하는 학문이다. 사진은 단편적으로 보이지만 가만히 들여다보면 그 속에는 인간과 인간이 관련된 근원적인 모습과 가치가 있다. 학문은 아니어도 우리가 간과했던 인문적 가치가 내재해 있다. 일찍이 이러한 사실을 깨달은 서구인들은 이미 오래전에 이미지학을 인문학으로 받아들였다. 그러나 국내에서는 사진을 예술이나 참고도판 영역으로 치부할 뿐 인문의 범주에서 다루지 않고 있다. 심지어 소장학자들마저도 사진이 인문학에서 독자적으로 쓰일 수 있는가를 물어와 난감했던 적이 있다.
사진출판을 오랫동안 해온 나는 그 이유를 생각해 보았는데 그것은 우리의 교육이 문자 위주로 되어 있어 이미지 훈련을 받은 적이 없기 때문이라는 결론에 도달하였다. 수학정석과 종합영어 그리고 육법전서로 성장한 한국의 기성세대는 체계적인 이미지 훈련을 받아 본 적이 전혀 없다. 누군가가 현대의 문맹은 이미지를 해독하지 못하는 것이라고 했는 데 학교는 아쉽게도 문맹인들을 양성해 내보낸 것이다.
사진은 인문학적이고도 예술적인 양면성을 지니고 있다. 특히 사회의 시대상을 기록한 다큐멘터리 사진은 인문학과 마찬가지로 '인간의 가치 탐구를 대상'으로 한다. 한장 한장의 사진이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는 사진집은 한 권의 책과 마찬가지로 기승전결과 일관된 맥락을 가지고 있다. 활자로 읽는 것이 아니라 이미지를 머릿속에서 연결해 사진가의 의도와 내용을 파악하는 것이어서 그 외연과 내연이 넓다.
사진가 정영신은 그동안 장터의 사진가로 알려져 왔다. 그에 의하면 "장은 뭔가를 사고파는 장소를 뛰어넘어 인간의 삶과 정이 생생히 살아 있는 공간이다. 즉 그의 장터 답사와 촬영은 인간에 대한 탐구로 이어져 온 것이다. 사진가로서 정영신은 사진의 예술적 가치보다는 사라져 가는 것들을 기록하고 해석하는 인문학적인 입장에 가깝다.
"정영신의 장터 사진은 다소 산만한 느낌은 들지만 사진들을 꼼꼼히 살펴보면 장터의 난장스러움이 잘 묘사되어 있어 오히려 정감이 간다. 대개가 화면을 단순화시키기 위해 장애물을 치우거나 지워 기록적 가치를 망가뜨리는 경우가 있지만, 그런 짓은 절대 안한다. 세월이 지나면 그런 하찮은 장애물도 역사적 단서가 되기 때문이다.” - 조문호 다큐멘터리 사진가 - 인문학으로서의 사진 정영신의 어머니의 땅에 부쳐 , 이규상 (눈빛출판사 대표)
이번에 전시와 더불어 출간한 ‘어머니의 땅’은 작가가 30년 동안 장터를 다니면서 장에서 만난 엄마들과 함께 시골마을로 들어가 그들의 삶을 기록한 것입니다.
80년대 후반즈음 시골마을은 공동체와 두레로 농사일을 함으로써 동네사람들이 모든 일을 함께 했습니다.
해남 옥천에서 만난 할매는 밥은 먹고 다니냐며 소매를 끌어 당신 집 마루에 앉히고 먹을 것을 내와 처음 보는 낯선 이방인을 반갑게 맞아주었습니다.
사진집 ‘어머니의 땅’은 지난해 ‘길 위의 인문학’에 선정되어 필름을 하나하나 찾아 스캔하고 정리하면서 작가가 오랜 숙제를 마무리 한 작업입니다.
고향은 도시라는 공간과 다른 원초적인 생명력과 어머니의 사랑과 한이 고여있는 곳입니다.
작가는 고향이 곧 어머니라고 생각합니다. 또한 어머니는 땅이고, 삶입니다. 고향의 포근함을 느끼게 하는 어머니의 사랑입니다.
사진가이면서 소설가이기도 한 정영신은
사진집 ‘어머니의 땅’ 출간에 맞춰
인사동 ‘나무아트’(서울시 종로구 인사동길 54-1 /Tel 02-722-7760)에서
오는 9월23 ~ 10월 4일까지 전시를 합니다.
작가의 말
어머니의 땅, 고향 고향은 인간 삶의 근원적 뿌리임에도 불구하고 고향을 잊은 채 살아간다. 잊는 것이 아니라 아예 고향을 잃어버린다. 경제발전이라는 목표를 향해서 앞만 보고 치달리는 동안 우리민족과 함께 호흡하며 오랫동안 내려오던 옛 풍물들이 훼손되고 사라지고 있어 안타까울 뿐이다. 빠른 속도로 훼손되고 사라져가는 고향에서 마주쳤던 풍경을 ‘어머니’라는 이름으로 소환해 본다.
어머니라는 이름 뒤에는 늘 자식에 대한 지극한 사랑과 희생이 따른다. 그리고 민족의 뿌리를 내리는 땅과 강을 대지에 비유하는 모성은 존재의 근원이자 삶이다. 어머니의 상징성은 고향이다. 고향은 태어난 곳, 돌아가고 싶은 곳, 모든 것이 용서되는 곳이자 항상 기대고 싶은 대상이다. 고향은 집 떠났던 사람들이 다시 돌아올 수 있고, 나를 키워준 나무가 있고, 나를 먹여 준 밭과 논이 있고, 그 안에는 항상 어머니가 존재한다.
80년대 후반의 고향의 모습과 우리어머니들의 모습을 오래된 흑백사진으로 소환한다. 가뭄 끝에 비가 내려 모내기철이 되면 사방이 초록으로 물든 논에서 어머니가 써레질을 하고, 모심을 논을 고른다. 고무다라 가득 모내기할 모를 이고 곡예사처럼 걸어가는 어머니들의 모습은 숭고하다. 검정고무신을 신고 정강이까지 올라간 몸빼바지, 무거운 모를 이고 함박웃음을 짓는 모습 등은 고향이 주는 따뜻함이자 어머니들의 공동체가 빚어낸 아름다운 풍경이다.
한국인의 집단무의식은 어머니들의 한(恨)으로 점철되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옛 조상들이 경험했던 신화나 전설, 혹은 민담이 어머니들의 호미질에 녹아들어 그녀들만의 지혜를 만들고 한(恨)을 만들어낸다. 우리사회는 다른 나라에 의해 강제로 나라의 주권을 빼앗겼던 일제 강점기, 외세의 영향과 간섭에 의해 발발했던 6.25전쟁, 전쟁 이후 분단이 가져온 현재까지 지속되는 정신적인 것과 물질적인 상처는 집단무의식의 원형으로 남아 한(恨)이 되었다.
고향을 그리워하다보면 가족이, 어머니가 가장먼저 떠오른다. 우리는 가족을 성과 혈연의 관계에 의해 자연스럽게 형성되는 사회집단으로 본다. 특히 유교적 전통이 강한 우리사회에서는 부모가 본능적으로 자식을 위해 희생하고 헌신하는 것을 당연시 한다. 나아가 가족은 공동체적 사회의 원형으로 우리마음속에 자리 잡고 있는 것이다.
970년대 이후 진행된 도시산업화로 인한 사람들 사이의 단절과 소외의 문제, 80년대 민주화운동 가운데 드러난 세대, 계층 간의 갈등이나, 1990년대 이후 더욱 심화되어 가는 개인의 고립화와 가정의 파탄은, 역사의 격변 속에서 여전히 지속되고 있다. 가정 안에서 언제나 희생과 인내로 살아온 어머니들이 이 급속한 사회변화 속에서 가정을 올곧게 지켜온 것이다.
20세기중반의 한국사회는 철저한 가부장제 사회로 그 시대를 살았던 어머니들은 남성에게 종속적이고 열등한 존재로 인식되어 일생동안 그 굴레를 벗어나지 못하고 당대의 비합리적인 가치관과 윤리적 덕목이 우리어머니들의 삶에 큰 영향을 끼쳤다. 어머니들은 자기 본성대로 살아야 함에도 불구하고 힘 있는 자에게 무시당하거나 피해당할 때 그 억울함이나 응어리로 맺힌 한(恨)을 오로지 가정과 자식을 위해 희생한 것이다.
고향은 도시라는 공간과는 다른 원초적인 생명력과 어머니의 사랑과 한이 고여 있으며, 끈질기고도 훈훈한 정감과 애환이 숨 쉬고 있다. 고향은 생활 속에서 위로 받으며 의식의 끈을 유지하고 있다. 그곳에, 어머니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어머니는 대지이고 삶이다. 고향의 포근함을 느끼게 하는 어머니의 사랑이자 우리의 고향이다.
땅마다 어머니가 다르다 - 정영신의 ‘어머니의 땅’을 위하여 박인식/작가
인간의 영혼이란 희생과 용기와 인내가 가능한 정신이다. (윌리엄 포크너)
정영신의 사진은 포크너의 이 아포리즘을 이렇게 번안한다.
- 땅의 영혼이란 어머니의 희생과 용기와 인내가 낳은 정신이다. 이어 그의 사진은 내게 말한다.
땅마다 어머니가 다르다. 어머니마다 땅이 다르다. 땅마다 어머니 희생과 용기와 인내의 서사가 다르다. 어머니마다 땅의 노래가 다르다 그리하여 정영신은 땅마다/어머니마다 다른 사랑을 시대의 운명으로 보여준다.
1980년대 후반부터 시골 오일장에서 운명의 표정을 읽어왔던 작가는 이제 장터 풍경의 내적 본질인 ‘어머니의 땅’으로 카메라시선을 옮겨 놓았다. 어머니들의 희생과 용기와 인내가 우리땅 영혼의 꽃으로 피어나는 곳이 장터이던 시대가 있었다.
이 땅의 땅마다 다른 영혼을 어머니마다 다른 꽃으로 피우던 시골 오일장, 그 장터가 시대의 운명을 다하도록 30여년 줄기차게 사진 작업할 수 있었다는 사실 자체만으로 그는 시대 운명에게 선택받았다 하겠다.
오일장이 시대적 활기와 탄력을 그런대로 유지했던 1980년대, 우리 어머니들은 닷새마다 다가오는 장날이 있어 그 궁핍의 시대에도 살맛났다. 그가 온 나라 600여 곳의 오일장 운명의 표정을 포착하는 사이, 시골 오일장은 도시산업화의 물결에 밀려 하나둘씩 사라져갔다.
몇해 전 그가 연 사진전 <장날>에 나는 시 한수 올렸었지.
노인 한 사람이 사라지면/ 도서관 하나 사라진다는 말이 있다/ 눈은 나리는데/ 여기 얼마나 많은 도서관들이 장보따리 들고 줄지어 섰는가/ 도서관들의 눈빛이 도다리처럼 한쪽으로 쏠렸다/ 도서관들은 뭘 보고 있을까/ 뭘 기다리고 있을까/ 세상 구할 메시아? 다음 생애? 버스에 앉을 자리? 집으로 돌아가는 시간? 먼 섬으로 가는 통통배? 안방 아랫목? 두고 온 손주들? 떠나온 북쪽 고향?/ 눈이 나아리네♪ 깐소네 리듬타고/ 눈은 내리며 날리는데/ 춤추며 내리는데/ 희망버스는 아무래도 이 늙은 장터 버스정류장으로는 오지 않을 것 같다/ 마냥 눈은 내리는데/ 장터 하나 사라지면/ 수십 수백 도서관이 사라지고 마는데
모든 사진은 모든 운명이 그러하듯 시대의 산물이다. 작가가 진정으로 아쉬워한 것은 하루가 다르게 퇴색하는 오일장 자체가 아니라 역사의 뒤편으로 사라져가는 농촌공동체의 운명이다. 농업은 기업화되더라도 지속되겠지만, 농촌공동체는 이미 소멸했다. 작가에게 다시 돌아오지 않을 강을 건넌 농촌공동체의 본명이 ‘고향’이다.
소설가이기도 한 작가는 장이 있는 유년의 풍경을 고향으로 향한 원초적 그리움으로 선명하게 글로 묘사하고 있다.
...... 집에 있는 소를 들로 끌고 나온 어머니, 내가 어렸을 적에는 소꼴을 먹이기 위해 소를 끌고 들로 나왔다. 소가 풀을 뜯어 먹는 시간에 구름과 이야기하고, 뒷산에 있는 아버지 무덤과 대화를 하다보면 어느새 해는 뉘엿뉘엿 저물어갔다. 마을 앞 개울가 옆으로 가면 온갖 풀이 무성해 소 끈을 멀리 잡고, 소가 풀을 먹는 동안 땅위에 아버지 얼굴을 그리고, 한복을 곱게 입고 장에 간 엄마를 기다리다보면 어느새 해가 땅에 떨어졌다. 그때 소가 음메! 하며 아는 척하면 소를 끌고가 외양간에 넣었다 .......나락을 베고 난 논에 이삭 하나라도 떨어져 있는지 달이 환하게 뜨는 날은 온 식구가 논에 가서 벼 이삭을 주웠다. 난 검정고무신을 신고 도레미파솔라시도를 부르며 살포시 밟아가며 달빛에 비치는 논바닥을 훑으면 손 안에는 제법 나락이 쥐어져 있었다. 망태기에 가득 담겨진 이삭을 보며 온 식구의 웃음소리에 놀란 달빛은 우리동네 끝집 당골네 집을 건너 우리집 싸리문 앞에 데려다주고 홀연히 사라지곤 했다.
한폭의 수채화 같은 고향의 기억을 간직하고 있기에 작가는 고향을 잃어버린 현대의 실향민에게 고향을 되찾게 해줄 방도를 끊임없이 열망했을 것이다. 불가능을 향한 열망만큼 작가혼을 불태우는 것은 다시없기에.
이 지점에서 그는 자신의 모든 것을 쏟아 부은 장터사진을 스스로 재발견한다. 그간 발표한 사진은 장터풍물/풍경이 주류였는데, 이런 장터 사진들은 자신이 추구하는 근원적 사진미학의 겉모습의 현상이었다는 걸 깨달았던 걸까.
장터를 찍으면서 부차적으로 찍었다고 생각했던 장꾼들이 장으로 나오기까지 이 땅과 한몸 되어 어울려 사는 일상의 풍경들이 근원적 사진미학의 눈을 작가의 내면 안쪽으로 열어젖힌 것이다. 그 안쪽 깊은 곳에서 ‘어머니의 땅’이라는 오래된 미래가 눈을 새롭게 뜨고, 자신을 쳐다보고 있었다. 그렇게 ‘어머니의 땅’을 기록한 사진들은 작가의 내면으로 들어가는 본질의 문을 열어젖혔다.
오일장은 우리 땅 고유의 고향사람들이 주연으로 출연하는 삶의 연극무대다. 그 연극을 영상화한 작가의 작품에서 남녀 출연자들은 세상살이 그대로 적절히 조화를 이뤄 맡은 역을 소화하고 있다.
하지만 고향 일상의 연극무대에 오른 출연자는 거의 여성 그러니까 어머니들이나 그의 사진에서 남자는 겉모습의 ‘현상’이었고, 여자는 내면에 감추어진 ‘본질’이었다. 이 ‘어머니의 땅’ 사진작업 시기는 1987년에서 1990년까지다. 그때 이미 근력 있는 남정네들은 대처의 노동시장으로 빠져나간 것이다. 오일장에 등장하는 젊은 남자는 땅 파먹고 사는 그 땅의 농꾼들이 아니라 거의 직업적인 장꾼인 타지 사람이다.
작가가 장꾼들의 일상에 눈을 뜬 1980년 후반만해도 우리의 고향들은 젊었건 늙었건 어머니들이 지아비와 다 큰 자식들은 ‘돈 벌러’ 대처로 떠나보내고 남은 어린 자식을 먹이던 ‘어머니의 땅’이었다.
그리운 김광석노래 그대로 작가의 나이 서른즈음인데, 거기서 자신의 성장기와 일체화 되었던 고향 전남 함평의 젊은 어머니를 자신의 자화상으로 재회하는 순간, 누구보다 작가 자신이 과거로 되돌아간 평형세계의 마법에 전율하지 않았을까.....
그 타임머신 체험은 ‘어머니의 땅’을 이 땅의 모든 실향민들에게 되돌아갈 수 있는 영원한 마음의 고향으로 ‘어머니의 땅’을 제시하자는 작가적 열망으로 이어졌을 것이다. 나 또한 디지털시대의 실향민. 작가의 그 그리운 아날로그 시대의 정서에 바로 빙의되고 만다.
고향을 잃어버린 사람들이여, 여기로 오라! ‘어머니의 땅’으로 오라! 당신들의 고향을 되찾아 드리리다.
이 사진들은 제아무리 AI가 주도하는 디지털세상이 온다 해도, 어머니들이 있는 한 인간은 인간의 길을 벗어나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을 준다. 이 사진들이 소환하는 추억은 인간의 미래를 예언하고 있으므로.
나는 순간을 영원으로 붙잡아 놓는 예술/기술이 사진이라는 정의에 동의하지 않는다.
고정불변한다고 믿는 사진도 사실은, 끊임없이 변화한다. 사진 자체는 변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사진은 보는 시선이 흐르는 시간을 따라 변하기에 변하는 시선을 따라 사진도 변 할 수밖에 없게 된다.
멀리 갈것 없이 당신의 옛 기념사진을 보라. 당신 나이 먹은 만큼 사진속의 당신은 세월을 거슬러 한해 한해 한 살씩 더 어려지고 있지 않던가.
사진미학의 진정한 가치는 불변이 아니라 이처럼 우리의 시선을 시간까지 거슬러 올라 ‘변화’시키는 그 흐르는 시간에 따라 사진도 변화한다는 나의 사진 상대성이론에서 찾아야 한다.
그의 카메라 시선은 꾸밈이 없다. 어머니의 땅만큼이나 자연스럽다. 작품이 되어야 한다는 강박이 없다. 브레송이 강조하는 소위 ‘결정적 순간’을 기다리지도 찾지도 않는다. 그런 자연스러운 자세/태도가 피사체의 자연스러움을 이끌어내 가장 자연스런 사진이 그의 카메라 시선에서 나오게 한다.
그 ‘무기교의 기교’가 제대로 발휘된 정영신의 사진을 먼저 본 뒤, 애송하는 김종삼시인의 <묵화>을 다시 소환한다.
물 먹는 소 목덜미에/ 할머니 손이 얹혀졌다/ 이 하루도/ 함께 지났다고/ 서로 발잔등 부었다고/ 서로 적막하다고
<묵화>의 풍경은 버릇이 된 내 오랜 질문도 소환한다.
오늘 하루를 함께 지낸 소 잔등이 더 부었을까? 할머니가 된 어머니의 하루가 더 적막했을까? 또 묻는다. 발잔등 부은 소의 적막은 어머니가 위로해 주는데, 발잔등 부은 어머니의 적막은 누가 위로해주는가? 그때 나는 듣는다. 그 오랜 질문에 정영신 사진의 답을.
어머니의 땅!
그의 사진은 어머니와 땅과 사랑이 동의어라고 알려준다. 모든 목숨이 사랑으로 한몸된 어머니와 땅에서 나왔다고 증언한다. 어머니 사랑을 기억하듯 땅의 사랑을 기억하라 되새긴다.
그의 사진은 다른 게 아니다. 땅과 한몸된 어머니의 영혼을 감촉하게 만든다. 그 어머니 영혼의 육신인 땅을 맨발로 밟아보게 한다. 이보다 더 소중한 일이 어디 있으랴. 우리는 누구든 어머니의 자식이니, 이 사진들은 ‘어머니의 땅’에 그려진 우리들의 근원적인 자화상일 수 밖에.
1980년대 후반 해남 강진 영암 등지에서 찍었지만 1950년대 후반 경북 청도의 내 고향 마을을 보여주는 그의 사진을 보고 있으면, 남들은 곤히 잠든 한밤중에 이름 없는 어느 혹성에 패인 행성 충돌구덩이를 세고 있는 어떤 천문학자의 무용한 열정이 떠오른다. 도대체 그는 그 충돌구덩이 숫자를 세서 뭘 하겠다는걸까?
도무지 답이 나오지 않는 그런 천문학자가 있듯, 사라져가는 장터와 그 장터 어머니들의 귀가길을 따라가 그 어머니의 땅을 줄곧 찍어온 사진가가 있다는 사실은 우리에게 아직 구원의 희망이 남아 있다는 믿음까지 안긴다.
암묵지暗黙知라는 말이 있다. 경험으로 체화되었다지만 겉으로는 결코 드러나지 않는 지식 또는 지혜를 뜻한다. 이 땅 어머니들이 그 암묵지의 표상이라고 정영신의 사진은 알려준다. 결코 드러나지 않는 이 땅 어머니의 암묵지를 시간의 흐름에 덧씌워 보여주므로.
이 시점에서 정영신 사진은 꽃으로 피어난다.
아름답지 않은 꽃이 어디 있으랴 꽃을 피우지 않은 어머니가 어디 있으랴 어디엔들 꽃이 피지 않으랴 어느 땅인들 자식을 꽃 피우지 않은 어머니가 있으랴 세상은 땅과 어머니와 자식 꽃이 있어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다시 봄으로 돌아가며 꽃의 시간으로 돌아간다.
아니마Anima(칼융이 정립한 개념으로 자식 마음속에 남긴 어머니의 지대한 영향)으로서의 그의 사진이 내제 들려준 내밀한 고백이다.
어머니와 땅이 한 몸으로 어울려 아니마의 꽃을 피우던 그 아름다운 시간도 흘러갔다. 지금도 흘러간다. 앞으로도 흘러갈 것이다. 그렇게 흐른다 해도 시간에는 목적지가 없다. 시간은 목적지 없는 보이지 않는 공간이다. 흘러가야만 하는 이유도 없다. 시간은 도대체 어디로 왜 흐르는 걸까. 정영신의 사진은 이유 없이 목적 없이 흘러가는 시간에 대한 사유다.
그가 파악한 ‘어머니의 땅’의 시간은 의미를 가진 존재가 아니라 반反 역사로서 자연 그 자체이므로. 소멸운명으로 오히려 아름다와지는 우연이 아니라 (이해나 인식을 초월한) 필연이므로. ‘어머니의 땅’의 시간은 발견의 대상이 아니라 사진의 기억으로 전환시킬 창조의 대상이 되므로. 그리하여 그는 유년시절 고향에서 체험한 ‘어머니의 땅’의 시간을 그로부터 20여년의 시간이 흐른 1980년대 후반에 이 남녘땅에서 다시 체험하며 그 시간을 누구나 되돌아갈 수 있는 고향의 갈망으로 길러낼 수 있었다.
사람이 자연과 하나 되어 만들어 낼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필연인 ‘어머니의 땅’의 시간! 거기가 언제 어디든 유년의 시간으로 되돌아 갈 수 없다는 필연 또한 소멸운명에 아름다움을 더해간다. 하지만 그 아름다운 시간을 잊지 않고 기억할 수 있다면, 그 흘러가버린 시간은 영원한 생명을 얻어 불멸이 될 수 있다.
이 지점에 모든 사진가들이 품은 예술의 열망과 마찬가지로 사진가 정영신의 소명의식이 닻을 내린다. ‘어머니의 땅’도 모든 존재의 소멸운명을 피할 수 없지만, 정영신의 사진이 있어 그 추억의 시간은 시간이 흐를수록 시간이 흐른 만큼 오히려 더 가까이 가까이 ‘어머니의 땅’을 잊지 않는 가슴속으로 다가가게 되므로.
잘 알려진대로 이상향의 라틴어 ‘유토피아’는 어디에도 없다는 뜻이다. 유토피아가 존재할 수 없는 까닭은 이상향은 공간이 아니라 시간차원의 언어인 때문이다. 돌아갈 수 있는 공간과는 달리 돌아갈 수 없는 시간 속에만 존재하는 것이 이상향이다.
정영신의 사진은 동심으로 뿌리내렸던 그 ‘어머니의 땅’의 시간이 사실은 유토피아의 시간이었다고 말한다. 그 시간으로 되돌아갈 수 없기에, 그 ‘어머니의 땅’의 시간은 시간이 흐를수록 이상향의 절대에 가까워지며 꿈에라도 돌아가고 싶은 유토피아로 자라난다고 말해준다. 더불어 그의 사진은 놀랍게도 그 유토피아의 시간으로 되돌아갈 도리까지 알려준다.
메멘토 모리/죽음을 기억하라, 이전에 ‘어머니의 땅’을 기억하라고. 죽음까지 그 ‘어머니의 땅’에서 나왔다고. 거기가 어디든 ‘어머니의 땅’ 유년의 기억을 놓지 않는한 당신만의 유토피아를 당신만은 놓치지 않을 수 있다고.
그 유토피아의 시간으로 되돌아갈 기억장치/메모리 칩이 바로 이 ‘어머니의 땅’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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