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굴도 못보고 보내는 ‘90초 코로나 사별’... 美·유럽은 다르더라, 조선일보, "교조주의(영어: Dogmatism, 敎條主義)"
경영희 기자 | 입력 : 2021/12/17 [07:38]
▲ 이 시대 살인마 잭더리퍼는 누구일까 ©문화예술의전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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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장 후 장례’ 과학적 근거 있나
정부 “시신 접촉하면 감염 우려”
유족들, 복도에서 마지막 인사
전문가 “시신 감염 근거 없어”
美·유럽선 ‘확진 사망자’ 유족이 직접 볼 수 있게 배려
“눈이라도 감겨주고 싶은데… 잘 부탁드립니다” - 지난 14일 경기 고양시 서울시립승화원에서 코로나에 확진돼 숨진 환자의 유족들이 멀찌감치 놓인 관을 향해 큰절하고 있다. 1분 30초, 고인과의 ‘짧은 작별’을 마친 유족들은 화장 후 전달된 유골함을 품에 안고 오열했다. ‘선(先)화장 후(後)장례’ 원칙에 따라 코로나 확진자 장례가 치러지고 있지만, 유족과 전문가들은 ‘존엄한 장례’를 치를 권리를 빼앗아선 안 된다고 지적하고 있다. /김명진 기자
지난 14일 오후 5시 30분, 경기도 고양시 서울시립승화원 화장터. 운구 차량에 내린 관 하나가 화장 시설이 있는 건물 안으로 들어왔다. 별도 공간에서 대기하던 유족들이 이 모습을 보고 다가섰다. 하지만 빨간색 차단선 앞에서 멈춰 서야 했다. 고인의 관에서 열 걸음 떨어진 자리였다. 하얀색 방호복을 입은 화장터 직원 5명이 관을 둘러싸고 있었다.
유족 홍모(여·47)씨가 울음 섞인 목소리로 “얼굴 못 봐요? 어머니 모습 못 봐요?”라고 했지만, 직원은 “이따 유골 받으실 때 볼 수 있습니다”라고 답했다. 홍씨가 재차 “얼굴만이라도”라고 했지만, “얼굴은 안 된다”는 단호한 답이 돌아왔다. 직원들은 유가족에게 목례하고, 관을 향해서도 한 차례 고개를 숙인 뒤 화장 시설로 향했다. 유가족이 고인과 작별하는 데 걸린 시간은 단 1분 30초였다. 이날 화장터에 예약된 ‘코로나 사망자’ 20명은 수의(壽衣)도 입지 못한 채 생전에 입던 옷 그대로 비닐백에 담겨 화장됐다. 유골함에 담긴 뒤에야 가족들 품에 안길 수 있었다. 이날 이 같은 ‘짧은 작별’이 스무 차례 반복됐다.
코로나 사망자에 대해선 ‘선(先) 화장, 후(後) 장례’가 정부 지침이다. 시신과 접촉하면 코로나 감염이 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정부는 유족이 이에 동의해야만 1000만원의 장례 지원비를 주는 식으로 사실상 지침을 강제해왔다. 그러다 보니 “고인 얼굴도 보지 못하고 떠나보내는 게 너무 가혹하다”는 유족들의 호소가 잇따랐다. 코로나 환자는 생전에도 홀로 격리 치료를 받은 경우가 많다. 유족들이 “사망 후에라도 충분히 애도할 수 있도록 해달라”고 말하는 이유다.
작년 12월 동생이 코로나로 사망했다는 한 유족은 “동생이 아플 때도 오래 격리 생활을 했고, 유품까지 감염 우려가 있다고 해 다 태워버려 가진 게 없다”며 “두고두고 가슴에 남아 속상하고 안타까운데 유족들을 위해서라도 장례만이라도 제대로 치르게 해주면 좋겠다”고 말했다.
전문가들도 “정부 장례 지침에 과학적 근거가 부족하다”고 말한다. 실제로 코로나 초기인 작년 3월 세계보건기구(WHO)는 ‘시신으로부터 코로나 감염이 일어날 수 있다는 증거는 없다’며, 매장해도 무방하다는 가이드라인을 내놨다. 이혁민 세브란스병원 진단검사의학과 교수는 “코로나 바이러스는 주로 확진자의 비말(飛沫)을 통해 전염된다”며 “살아있는 사람의 비말은 기침이나 말을 하면서 전파가 쉽지만, 죽은 사람은 비말을 통한 감염이 거의 없다”고 했다. 이어 “코로나 확진자의 시신에서 며칠이 지난 후에도 살아있는 코로나 바이러스가 검출된다는 연구 결과가 있긴 하지만 이 바이러스가 다른 사람을 감염시킬 위험은 현저히 적다”고 했다.
의료 전문가들도 과학적인 장례 지침 개정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허윤정 아주대 의대 교수는 “선 화장을 해야 하는 뚜렷한 근거도 없이 이런 지침을 유지하면서 정부가 개개인의 ‘존엄한 장례’를 할 권리를 빼앗고 있다”며 “장례 업계나 국민의 코로나 사망자 장례에 대한 거부감 역시 정부가 ‘시신에 의해 감염될 수 있다’는 잘못된 신호를 줬기 때문”이라고 했다. 엄중식 가천대 길병원 감염내과 교수는 “선 화장 장례 지침은 코로나에 대한 정보가 별로 없었던 코로나 유행 초기에 만들어진 지침”이라며 “일반 시신보다 조심히 처리해야 할 필요는 있겠지만, 이제 이 지침의 과학적 근거가 없다는 점이 밝혀졌기 때문에 개정이 필요하다”고 했다.
정부도 지침 개정을 추진하고 있지만 현장의 반발이 만만치 않다. 장례식장 업주들은 현실적으로 ‘코로나 낙인’이 찍히는 것을 우려하고 있다. 코로나 사망자의 시신을 직접 만져야 하는 일선 장례지도사들 사이에선 “장례 종사자들을 감염 위험에 내모는 것”이란 얘기도 나온다. 박일도 한국장례협회장은 “지금 과학적 근거가 중요한 게 아니라 국민의 인식이 문제”라며 “화장터에서 유족들은 멀리 떨어져 고인 얼굴도 못 보게 하고 있고, 그런 보도가 연일 언론에 나오는데 사람들이 ‘코로나 시신 안전하니 장례하라’고 하면 믿겠느냐”고 했다.
해외에선 방역 수칙만 잘 지키면 코로나 사망자도 유족과 직접 만날 수 있도록 허용하고 있다. 고인에 대한 존엄을 지키고, 유족들의 정당한 권리를 방해해서는 안 된다는 취지다. 유럽에선 독일과 프랑스, 영국 모두 고인의 사망과 장례 과정에서 유족과 만남을 허용한다. 고인의 마지막 모습을 공개하는 서구 장례의 풍속에 따라, 장례식장을 찾은 손님에게 고인의 맨 얼굴도 공개한다. 다만 유족과 조문객은 고인에게 다가갈 때 마스크와 투명 플라스틱 얼굴 가리개를 써야 한다. 직접 접촉은 허용하지 않는다.
미국의 경우 코로나 사망자의 조문과 장례에 대한 특별한 규정을 두고 있지 않다.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는 “고인에 대한 조문이나 장례식에 특별한 위험이 있는 것은 아니다”라면서 “장례식장에서 10명 이상 동시에 머무르는 것만 자제하라”고 권고하고 있다. ‘시신으로부터 코로나 감염이 일어날 수 있다는 증거는 없다’는 WHO의 지침을 반영한 것이다. 작년 7월 코로나 장례 가이드라인을 내놓은 일본은 시신 담는 가방의 얼굴 부위를 투명하게 만들어 유족이 확인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최재욱 고려대 예방의학과 교수는 “화장 권고는 말 그대로 권고여야지, 지자체나 질병청이 사실상 화장을 강제하는 것이 문제”라며 “장례 과정에서 적절한 방역 조치를 취할 경우 제한을 두지 않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했다.
“눈이라도 감겨주고 싶은데… 잘 부탁드립니다” - 지난 14일 경기 고양시 서울시립승화원에서 코로나에 확진돼 숨진 환자의 유족들이 멀찌감치 놓인 관을 향해 큰절하고 있다. 1분 30초, 고인과의 ‘짧은 작별’을 마친 유족들은 화장 후 전달된 유골함을 품에 안고 오열했다. ‘선(先)화장 후(後)장례’ 원칙에 따라 코로나 확진자 장례가 치러지고 있지만, 유족과 전문가들은 ‘존엄한 장례’를 치를 권리를 빼앗아선 안 된다고 지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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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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