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현재, 올해로 코코어(Cocore)가 [Odor]를 발표한지 꼬박 6년째가 된다. 그 동안 이들은 너무 돋보이거나 아예 외면당하지도 않은 채, 그러니까 '묵묵하게'라는 수식이 합당하리만큼 자신들이 출발한 그 자리를 지켜왔음을 부인할 사람은 아마도 없을 것이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밴드의 역사만큼 이들의 사운드에도 적지 않은 변화가 있었다. 1998년에 발매된, 레이블 인디의 첫 음반이자 한국 인디 씬 최초의 그런지 사운드 음반으로 기록된 데뷔 음반은 커트 코베인이라는 그림자를 지우고서는 이해될 수 없었던 음반이고, [고엽제]는 '바로 그' 일그러진 그런지 사운드와 차분한 포크 사운드와 건조한 전자음이 조화롭게 공존하던 뜻밖의 음반이었다. 한 걸음 더 나아가 2000년의 [Boyish]에서는 클럽 공연장에서 막춤이라도 추어도 무방할 경쾌한 하드록 사운드가 주를 이루기도 했다. 그리고 2003년 2월, 팝아트적인 감각이 슬쩍 묻어있는 경비행기가 그려진 커버의 세 번째 정규 음반 [Super Stars]가 발매되었다.
먼저 음반에 참여한 인물들이 시선을 낚아챈다. 코스모스의 메인 보컬이었으며 인디 밴드들의 음반에 간헐적으로 참여해 온 정우민의 이름이 간만에 눈에 띄고, 문화 창작 집단이자 일렉트로니카 밴드인 [별]의 멤버인 가네샤와 별(음반에는 기애라는 이름으로 참여)의 이름도 보인다. 음반의 총괄적인 프로듀싱은 코코어 멤버들이 맡았지만, 믹싱에는 달파란이 참여하기도 했다. 아, 어째 심상치 않을 듯하다?
첫 곡은 시타와 타블라의 이국적인 음색이 몇 차례 귀를 휘어 감다가 불현듯 사라져버리는 "新世界". 음반의 인트로격인 이 곡 이후에 곧바로 등장하는 것은 와와 이펙터의 흥겨운 그루브가 충만한 "Jungle Fever"인데, 1970년대 첩보영화를 연상시킨다는 홍보문구에 전적으로 동의할 만큼 도시의 하룻밤 열정을 찬미하는 가사와 긴박한 사운드가 잘 어울리는 곡이다. 이후 오르간의 투박한 사운드와 인도의 현악기인 탐부라의 낯선 사운드가 인상적인 "야광 원숭이"와 무그 신서사이저와 시타가 얽혀 만들어내는 묘한 그루브와 반복되는 코러스가 인상적인 "슬픈 노래"가 끝나면, 진득한 소울 풍의 러브 송, "루시아"가 흐른다. 티-렉스(T-Rex)의 히트곡 "Get It On(Bang A Gang)"의 샘플링을 인트로에 사용한 "Rock N' Roll Anyway"는 가볍고 맑은 음색의 피아노 연주가 주도하는 가운데 이우성의 힘 빠진 듯 낮게 진행되는 보컬이 이색적인 곡이다. "축복"은 슬라이드 기타와 오르간 사운드에 가스펠의 형식이 차용된 곡인데, 여성 코러스와 이우성이 주고받는 콜 앤 리스판스(call & response)는 풍자적인 가사와 적확하게 맞아떨어진다. 이어지는 "부머랭"은 왕왕거리는 전기 기타 연주와 종종 엇갈리는 탁한 피리 음색이 주요 테마로 사용되는 나른한 사이키델릭 사운드의 곡이기도 하다. "오늘밤에 우리 둘이 나쁜 일을 벌이자"는 코코어의 기존 스타일이 오롯이 묻어있는 트랙이고, "My Samantha"는 어쿠스틱 사운드가 편안하게 진행되는 러브 송이다.
루 리드(Rou Leed)의 "Walk On The Wild Side"의 한 부분을 차용한 "곤충 채집"은 드럼 루프와 오르간, 아날로그 신서사이저를 겹겹이 믹싱해서 두터운 사운드의 층을 만들어내는 곡인데, 이 즈음부터 음반에는 일렉트로니카적인 요소들이 등장하기 시작한다. 하우스 리듬의 "농담처럼", 샘플링과 신서사이저의 몽롱한 감각이 뜻밖의 사운드 스케이프를 만들어내는 "속삭여줘", 트립합 스타일의 "새벽 숲 AM 04:00"은 음반 부클릿에 등장하는 달파란과 별의 존재 이유를 수긍하게 해주는 트랙들이다. 특히 마지막 곡 "소년은 은빛 로켓에 올라"는 신서사이저로 하나의 테마가 계속해서 반복되다가 별의 '너무나 별다운' 나래이션으로 마무리되는 곡인데, 이 음반(과 코코어의 모든 곡들)중에서 가장 이질적인 느낌을 주는 곡으로 기억될 것이 분명하다.
하나의 음반에서 이렇게 다양한 스타일과 그에 대한 밴드의 노력을 발견할 수 있는 것은 무척이나 기분 좋은 일이다. 고전적인 록앤롤부터 소울, 가스펠, 사이키델릭, 일렉트로니카 등 다양한 스펙트럼을 보이는 각각의 트랙들은 매우 정성 들여 다듬었다는 느낌을 주기에 충분하고, 62분이라는 긴 러닝타임은 지루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물론 이런 다양성은 듣는 이의 취향에 따라서 조금은 산만할 수도 있을 것이지만 그렇다고 이 음반을 잡고 투덜거릴 일은 없어 보인다.
마치 이 음반은 코코어가 전작들에서 꾸준히 도달하고자 했던 다른 곳, 이를테면 쉽게 기존 장르에 포섭되지 않을 독창적인 스타일과 다소 엉뚱하다 싶을 유머가 살아있는 사운드에 대한 탐색에 대한 고민의 정점에 있는 듯하다. 소위 '포스트 그런지'의 공허한 스타일도, 분노와 폭발이라는 진정성에 기댄 허상이나 과잉된 자의식의 난잡함도 아닌, 독자적인 영토에 안착하고 싶은 음악적 욕망과 그 과정에 대한 고민 말이다. 게다가 이쯤에서 코코어가 자신들과 비슷한 시기에 활동을 시작한 '인디 스타' 밴드들(특히 델리 스파이스, 언니네 이발관과 같은 기타 팝 밴드들)과는 상대적으로 적은 관심과 지지를 받아왔다는 사실마저 떠올린다면, '슈퍼스타'라는 이들의 앨범 제목이 마치 지독한 역설이거나 간절한 소망으로도 들릴 수 있음을 비로소 깨닫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 물론 이런 이야기가 별로 재미없을지 모르지만, 뭐 어쨌든 이 음반이 3년이라는 긴 시간을 기다려온 팬들이나 그 동안 고심했을 밴드 모두에게 만족스러운 결과물이라는 점만은 분명하다. 20030205
수록곡 1. 新世界 2. Jungle Fever 3. 야광 원숭이 4. 슬픈 노래 5. 루시아 6. Rock N' Roll Anyway 7. 축복 8. 부머랭 9. 오늘밤에 우리 둘이 나쁜 일을 벌이자 10. My Samantha 11. 곤충채집 12. 농담처럼 13. 속삭여줘 14. 새벽 숲 AM 04:00 15. 소년은 은빛 로켓에 올라 관련 사이트 공식 사이트 http://cocore.net 팬 사이트 http://cafe.daum.net/coco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