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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렐과 하디 천국에 가다 - 김경식 연출

문예당 | 기사입력 2004/11/18 [13:41]

로렐과 하디 천국에 가다 - 김경식 연출

문예당 | 입력 : 2004/11/18 [13:41]



재미와 깊이를 동시에 느낄 수 있는 감동의 블랙코미디.


<스모크> <우연의 음악> <블루 인더페이스>로  유명한 천재작가 폴 오스터 특유의

단순명료하고 기발한 대사를 통해

재미와 깊이를 동시에 느낄 수 있는 감동의 블랙코미디.

☆ 따뜻한 인간미가 배어있는 리얼리즘극☆


      웃음과 인간미가 함께하는 깔끔하고 유쾌한 2인극




<스모크> <우연의 음악> <블루 인더페이스>로

유명한 천재작가 폴 오스터 특유의 단순명료하고 기발한 대사를

통해 재미와 깊이를 동시에 느낄 수 있는 감동의 블랙코미디.


공연기간 : 2003년 9월6일(금) ~ 10월 31(일)  

공연시간 : 평일 7시 30분(월요일 및 9월 25일은 쉼)

           토요일 및 휴일 4시, 7시, 일요일 4시  


관람장소 : 대학로 인켈아트홀 1관

관람상대 : 중고생 이상 일반

문의전화 : 02-765-1638

홈페이지 : http://www.edutheatre.org



            <로렐과 하디 천국에 가다>에 대한 작품해설




☆ 깔끔하고 유쾌한 소극(笑劇) !

   이 작품은 우스꽝스럽고 유쾌한 소극(笑劇)으로 시작된다.

   작업복 차림에 중산모를 쓴 어릿광대 같은 두 배우가

   서로 부딪히고 넘어지며 엉뚱한 말을 주고 받을 때 우리는 웃음 속으로 빠져들게 된다.

   실제 <로렐과 하디>라는 인물은 무성영화시대 희극인 명콤비로,

   동시대의 채플린처럼 우스꽝스러운 연기를 통해 웃음을 주면서도

   이면에 깊이를 느끼게 했던 실존배우들이다.

   그렇게 코믹하고 유쾌하게 전개되는 이야기를 보며 웃는 동안 우리는, 우리와 동떨어지고,

   우리보다 저급하다고 생각되는 인물들의 이야기가 곧 나의 이야기이며,

   그것은 통렬한 삶의 고통 속에서 나온 이야기들임을 알게 된다.

   그들이 쌓는 거대한 돌덩이들은 삶의 무게에 짓눌려 헐떡이는 인간의 고통을 느끼게 한다.

   그러나 그런 고통이 결코 우리를 우울하게 하거나 중압감을 주지는 않으며

   우리에게 계속 재미를 느끼게 한다.  



☆ “부조리극”의 현대적 변주

     웃음과 고통이 엇갈리는 상황 속에서 인간의 실존을 다룬 이 작품은

     베케트의 <고도를 기다리며>를 떠올리게 한다.

     미국 현대 문학사에서 '카프카적 포스트모더니즘 작가’라는 찬사를 받고 있는

      오스터의 이 작품은 “부조리극의 현대적 변주로 생각할 수 있다.


      일반적으로 부조리극은 개인의 문제에 침착하여 인간 내면의 문제를 다룬다.

      이 작품이 소극 형식으로 부조리한 인간의 실존상황을 나타내고 있다는 점에서

       부조리극과 일맥상통하는 점이 있는 건 분명하다.



☆ 따뜻한 인간미가 배어있는 리얼리즘극

      그러나 이 작품은 기존의 부조리극들과는 분명히 다르다.

      기존의 부조리극들이 인간의 실존상황을 비현실적이고 그로테스크한 모습으로 그려내며,

       무의미하게 반복되는 일상에서 인간을 왜소하게 느끼게 하고

       존재의 허무까지 느끼게 하는 데 반해

       이 작품은 그렇지 않다.

        우선 이 작품은 작가가 젊은 시절 막노동판에서 고생을 하면서 알게 된

        두 부랑자 청년들을 보고 쓴 작품이며 무척 현실적으로 그려지고 있다.

        또 그로테스크하고 충격적으로 그려지는 기존의 삭막한 부조리극과는 달리 이 작품은

        시종 따뜻한 인간미를 느끼게 한다.

         극 중 두 인물은 서로 삶에 대한 낙관과 비관을 주장하며 티격거리긴 하지만

         결국 서로를 위하고 서로에게 의지하는 따뜻한 관계를 지닌 인간들이다.

           그렇게 핀터의 <덤 웨이터>보다 덜 폭력적이며,

           베케트의 <고도를 기다리며>보다 더 따뜻하고 재미있는 분위기 속에서

           우리들 자신의 정체성과 내면에 마주치게 되는 것이 이 작품의 묘미이자 매력이다.  



☆ 주체적인 인간의 의지와 노력


       이 작품 속에서 인간은 <고도를 기다리며>에서처럼 오지 않는 신을 기다리기만 하지 않는다.

             그들은 결코 초월적인 신, 유토피아의 이상에 의지하거나

                운명의 수레바퀴에 함몰되지 않는다.


                폴 오스터는 그의 소설에서 이렇게 말한다.

                    "유토피아란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리고 만일 인간이 그 꿈 같은 곳을 만들 수 있다 해도

                          그것은 단지 인간 자신의 손으로 건설하는 길 밖에 없는 것이다."


                   작품 속의 두 일꾼들은 삶의 무게에 결코 함몰되지 않고

                   끝까지 인간의 의지와 노력을 믿는다.


                   결과보다 과정이 아름답다는 믿음을 우리는 여기서 확인할 수 있다.

                   실제로 작가 오스터는 젊은 날 늘 삶의 고통을 느끼며 생활했다.

                     그러나 그는 남들과는 분명히 다른 생활 태도를 취했다.

                       그에게는 꿈이 있었기 때문이다.

                      아무리 생활이 힘들어도 조금만 돈이 마련되면 끝없이 여행을 떠났고,

                       결코 남의 경제적 도움을 바라지 않으며 닥치는 대로 일하며 살았다.

                         진정한 노력만이 생을 배반하지 않기에.


                       이 작품은 폴 스터의 유명한 소설 "우연의 음악"과 그 모티브를 같이 한다.

                       이 작품은 우리 삶에서 많은 부분이 우리의 결정과 선택으로 생겨난다는 것,

                        그리고 우리에게 주어진 어떠한 상황도 그것을 받아들이는

                         우리의 마음에 달려있다는 것을 말해준다.


                        벽돌쌓기의 모티브도 "우연의 음악"에서 나타나는데

                        실제로 벽돌을 쌓는 두 주인공들은 어느 순간

                          그토록 힘들게 들어올렸던 그 큰 돌덩이들을

                                아주 가뿐하게 들어올리는 경험을 한다.


                          여기서 우리는 실존에 대한 폴 오스터의 인식이

                         동양의 "모든 것이 마음에 달렸다는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 사상과

                                 근접했음을 보게 된다.  



☆ 희망적인 삶의 메시지를 전해준다.


             대부분의 부조리극들은 수미쌍관의 순환구조를 통해 끝없이 반복되는

             삶의 굴레와 존재의 허무를 느끼게 하지만.

             이 작품은 인간에게 주어진 상황을 극복하기위해 최선을 다하는 과정과 주체적인

             의지, 허무보다는 인간 스스로의 마음속에서 희망을 찾아내는 점이 더욱 더 강조된다.

             이 작품의 끝부분에서 벽돌쌓기를 완성한 두 일꾼들의 대사를 통해

             고통을 이겨낸 인간의지에 대한 감탄과 함께

             후련한 카타르시스를 느끼고 새로운 희망의 빛을 느끼게 된다.  



☆ 매일매일을 새로운 인생처럼.

              두 일꾼들의 작업은 아침에 시작해서 밤에 끝난다.

              로렐과 하디가 쌓아올린 돌들은 갑자기 하나의 벽으로 바뀌고,

              그 일을 하면서 겪은 고통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감탄하고 희열을 느낀다.

              그들이 태양빛이 가장 밝을 때, 가장 뼈저린 절망을 하고,

              사방이 완전히 막히고 캄캄해진 밤에 희망의 별빛을 발견한다는 아이러니도

               작품의 묘미를 더해준다.


              물론 다음날도 같은 일과가 반복되리라고 생각한다면 허무를 느끼겠지만,

               매일 매일을 새로운 마음가짐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그것은 결코

                희망을 잃게 할 일이 되지 못한다.


                 폴 오스터는 이렇게 말한다.

                     "전 시간에 대해선 아무것도 몰라요.

                          전 매일매일 새로운 사람이 되거든요.

                                   아침에 눈을 뜰 때 태어나

                                         낮 동안 나이를 먹다가

                                             밤에 잠자리에 들면서 죽는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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