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이 동시대와 소통하지 못한다면, 내가 몸담고 있는 시대의 아픔을 외면한다면 그것은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가? 선동적이고 얄팍한 풍자는 사양한다. 좌의 편도 우의 편도 아니다. 연극은 연극의 편이다. 정치와 권력은 다투지만 예술은 감동이라는 불가사의한 힘으로 상처를 보듬는 것이다. 진일보의 연극은 재미와 감동이라는 본질을 놓치지 않으며 동시대의 아픔과 함께할 것이다. 노무현을 만난 햄릿이 전하는 비밀 이야기 기획의도 ■ 그래, 또 <햄릿>이다! 지구촌 어디에선가는 매일 공연된다는 셰익스피어의 명작 <햄릿>이 2014년 대학로 소극장에서 다시 태어난다. 이번엔 <바보 햄릿>이다. 왜 <바보 햄릿>일까? 사전은 바보란 명사의 정의를 대개 ‘지능이 부족하여 정상적으로 판단하지 못하는 사람을 낮잡아 이르는 말’이라 정의한다. 그러면 2014년 우리가 기억하고 있는 바보는 누구인가??? ...... 김수환 추기경? 노무현대통령?...... 그렇다! 명예와 돈만이 전부가 되버린 시류의 네비게이션을 따르지 않고 우직하게 자신만의 길을 헤쳐 간 인간! 그래서 후대들이 새로운 삶의 좌표를 세울 수 있도록 앞장 서 길을 낸 사람들. 그들이 바로 “성스러운 바보 Holy Fool”다. <바보 햄릿>은 2014년 우리 시대의 ‘바보’는 누구며 ‘햄릿’은 누구 인지를 찾아보는 작품이다. ■ 햄릿이 만드는 <햄릿> - <바보 햄릿>! <바보 햄릿>의 작․연출을 맡은 극단 진일보의 대표 김경익은 한국의 대표적인 햄릿 배우 중 한명이다. 1996년 연희단거리패 10주년 기념공연 <햄릿>에서 주연을 맡으며, 수년 동안 국내 유수의 대극장들은 물론 러시아, 독일, 일본 등에서 한국 셰익스피어 연극의 글로벌화의 앞장섰던 바로 “그 햄릿”이다. 당시 미소년의 날렵한 몸매로 열정을 불사르는 “그”가 이젠 후덕한 중년이 되어 창조하는 <바보 햄릿>! 무대 위에서 사자후를 외치며 햄릿으로 살았던 김경익이 그 치열했던 무대 인생 20년의 결정체로 <바보 햄릿>을 만든다. ■ 햄릿이 만난 노무현 대통령! <바보 햄릿>에서 故 노무현 대통령은 억울하게 죽은 선왕의 역할로 등장한다. 햄릿이 복수를 꿈꾸게 만드는 중요한 역할이다. 꿈속에서 ‘나를...잊지말라!’는 선왕의 외침에 햄릿은 아버지의 복수를 다짐한다. 셰익스피어의 <햄릿>과 유사하지만, 선왕(故 노무현 대통령)이 꿈속에서 들려주고 싶었던 말은 정말 저주와 복수의 다짐이었을까? “바보”라는 애칭으로 불리던 그가 <바보 햄릿>을 통해 2014년을 살고 있는 우리에게 말하고 싶은 것은 무엇일까? 이 연극은 故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찬양도 비판도 균형 있는 시각으로 다루고 있다. <바보 햄릿>은 정치적 시시비비를 가리자는 내용이 아니라 오히려 지식인이라 자처하고 지적 허영 속에 살아가는 동시대 사람들을 겨누고 있다. 아무도 가지 않던 길을 만들어 갔던 ‘바보 노무현’이 우리에게 하고 싶은 말은 과연 무엇일까? 모순된 현실을 부정하며 복수를 꿈꾸는 햄릿을 통해 지금, 이곳의 관객들에게 묻는다. 당신은 진정 살아있는가? (To be) 아니면 그렇지 않은가? (or not to be) 그것이 문제라고! (That is the question!) 그것에 대한 반성과 성찰이 <바보 햄릿>이 만들어진 목적이다. ■ 450년간 살아 있는 사람, 셰익스피어의 <햄릿> 올 해는 셰익스피어 탄생 450주년이 되는 해다. 세계 곳곳에서 셰익스피어 축제가 벌어지고 그의 작품들이 여전히 동시대의 유효한 문화 자산으로 공연되고 있다. 한국에서도 이윤택의 <햄릿>, 오태석의 <템페스트>, <로미오와 줄리엣>, 한태숙의 <레이디 멕베스>, 양정웅의 <로미오와 줄리엣) 등이 장기간 공연되며 셰익스피어의 작품을 한국적으로 수용한 사례들이다. 이번 <바보 햄릿>은 직접 햄릿을 연기한 배우 출신 연출가 김경익에 의해 만들어 진다는 점이 이채롭다. 연출가의 머릿속에서 나온 햄릿이 아닌 출연하는 배우들의 결대로 작품을 풀어내는 작, 배우, 연출을 넘나드는 멀티크리에이터 김경익의 섬세하고 날카로운 연출이 기대된다. 줄거리 3류 잡지사 기자 종철은 밤늦게 데스크로부터 기사를 정정할 것을 부당하게 요구 받는다. 간신히 잠이 들자 악몽이 시작되고 종철은 정신병원에 갇힌 햄릿이 된다. 억울하게 죽은 선왕 노무현 대통령이 꿈에 나타나 “나를...잊지 말라”고 했다는 강박증에 시달리는 햄릿은 복수의 칼날을 간다. 마침내 햄릿은 스스로 노대통령이 되어 현실의 지배자 병원장과 마지막 일전을 벌인다. 난사되는 신문기사 공격에 망가진 햄릿은 선왕의 유언은 “나를...잊지 말라”가 아니라 “나를.....버리셔야 합니다” 였음을 깨닫는다. 선왕이 원했던 것은 자신의 길을 찾아 실천하는 깨어있는 시민이었지 감상적 맹종이 아니었던 것이다. 잠에서 깬 종철은 잡지사에 기사를 수정하지 않을 것을 알린다. 공연 특징 ■ 현실이란 거대한 톱니바퀴 속에 낀 모래알 - 연극 <바보 햄릿> <바보 햄릿>에 故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언급이 포함되자 수많은 이견들이 난무했다. 속이 시원하다는 사람도 있었고, 지금 이런 이야길 펼쳤다가 불이익을 당할 수 있다고 걱정도 있었다. 무엇보다도 돌아가신지 5년밖에 안된 전직 대통령의 실명을 거론된다는 점은 정치적인 이벤트로 보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먼저 왜 예술이 현실적인 이야기를 외면하는지 자문해 본다. 더욱이 연극은 동시대 사람들만을 관객으로 만나는 가장 현실적인 장르인데 왜 현실의 모순들에 침묵하는가? 연극은 현실이란 거대한 톱니바퀴 속에 낀 작은 모래알처럼 현실을 불편하게 만든다. 현실을 실제적으로 변화시키진 못해도 쳇바퀴처럼 도는 불온한 일상이란 톱니바퀴에 건강한 긴장감을 불어 넣으며, 삶의 의미를 되새겨 준다. ■ 2014 <바보 햄릿>의 주인공 - 원종철! 연출가 존 바튼은 햄릿을 캐스팅하는 기준에 대해 이렇게 이야기 했다. “그는 귀족적이고 신사적이지만 동시에 잔인하고 거칠어야 한다. 그는 열정적이지만, 스스로를 객관적으로 볼 수 있는 거리감이 있어야 한다. 그는 아이러니와 위트, 유머를 이해할 수 있어야 하지만, 깊은 지성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그는 매우 변덕스러워서 이 다음에 무엇을 할지 결코 미리 알아서는 안된다” 극단 진일보의 대표 김경익은 자신의 분신으로 열연을 펼칠 햄릿으로 원종철을 선택했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잘나고 똑똑한 인간들의 헤아림이 아니라 넉넉한 바보의 웃음이다. 그의 웃음을 한번 보라! 제 것 꼼꼼히 챙길 줄 모르면서 남 밥 먹고 다니는지 걱정이나 하고, 대극장 2회 공연 후에도 연습을 하자고 연출을 졸라댄다. 원종철은 연극과 연기에 미친 바보다. 그런 그가 2014년 극단 진일보의 <바보 햄릿>이다.” ■ 모든 걸 사용한다! 진부하지만 않는다면! <바보 햄릿>은 원작 <햄릿>의 장점을 외면하지 않는다. 명작이 동시대에 유효한 문화적 자산이 될 수 있는 건, 죽음, 욕망, 꿈, 애증, 집착 같은 인간의 보편적인 감정이 꿈틀거리는 ‘판’이 있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셰익스피어 특유의 유려한 독백을 동시대적 언어로 순화시키며 관객들의 공감을 유도했고, 로코코 풍의 배경 음악을 선택하여 극중극이나 유령을 만나는 장면 등에서 풍성한 신비감을 만들어 낸다. 또한 연극 곳곳에 셰익스피어 특유의 언어유희를 사용하며 지루하지 않은 <햄릿>을 이끌어 간다. 연극 속의 영상의 사용도 파격적이다. 故 노무현 대통령의 노제 장면, 탄핵 당시의 자료 영상, 당시 언론 보도 기사들, 생전 노무현 대통령의 연설, 실시간 공연 중계 등 지극히 현실적인 자료를 사용한다. 그러나 이 재료들은 재창작, 편집되어 드라마의 정서를 이끌고 동시대적 공감대를 만드는 역할을 해낸다. 또한 미니멀리즘의 큐빅 무대는 단순하지만 풍성한 연극적 공간을 변화무쌍하게 만들어 낸다. ■ 동시대와 함께 호흡하는 진일보의 연극! 연극은 아무리 후세를 위해 자료를 남겨도 그것은 영상이고 활자다. 오직 동시대의 관객만이 진정한 관극의 맛을 향유할 수 있다. 그렇기에 더더욱 동시대의 현실과 아픔을 외면해서는 안된다. 예술이 동시대와 소통하지 못한다면, 내가 몸담고 있는 시대의 아픔을 외면한다면 그것은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가? 선동적이고 얄팍한 풍자는 사양한다. 좌의 편도 우의 편도 아니다. 연극은 연극의 편이다. 정치와 권력은 다투지만 예술은 감동이라는 불가사의한 힘으로 상처를 보듬는 것이다. 진일보의 연극은 재미와 감동이라는 본질을 놓치지 않으며 동시대의 아픔과 함께할 것이다. 차기작 실버연극 <눈이 부시게 푸르른 날에>, 통일연극 <신세계 교향곡>, 분단을 넘어 부르는 통일의 노래 <아리랑 랩소디>등이 힘찬 여정을 준비하고 있다.
<저작권자 ⓒ 문화예술의전당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댓글
관련기사목록
|
많이 본 기사
공연/문화 많이 본 기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