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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주문화원, 경천묘(敬天廟) 제례봉행

10월 7일(월) 오전 11시, 귀래면 주포리 경천묘

전영무 기자 | 기사입력 2019/10/01 [09:37]

원주문화원, 경천묘(敬天廟) 제례봉행

10월 7일(월) 오전 11시, 귀래면 주포리 경천묘
전영무 기자 | 입력 : 2019/10/01 [09:37]

 

원주문화원은 오는 10월 7일(월) 오전 11시 원주시 귀래면 주포리 소재 경천묘에서 제례를 봉행한다. 

 

▲     ©문화예술의전당

 

초헌관에는 김광수 원주시 부시장, 아헌관에는 신재섭 원주시의회 의장, 종헌관에는 박순조 원주문화원장을 제관으로 봉행할 예정이다. 

 

경천묘 배향 인물은 신라 제56대 경순왕으로 대보공 김알지의 28세손이며, 이름은 부(傅)이다.

 

경순왕은 927년 왕위(王位)에 올랐으나 신라는 이미 사직(社稷)을 보전할 힘이 미약한 상황이었다.

 

이에 935년(경순왕 9년) 운명이 다한 신라의 형편을 신하들과 논의한 끝에 무고한 백성들과 천년 사직의 문화 보존을 위해 고려에 손국(遜國)하기로 결단을 내렸다.

 

경순왕은 신라를 고려에 평화적으로 넘겨준 뒤 명산(名山)을 두루 다니다가 용화산(龍華山)의 빼어남을 보고 정상에 올라 미륵불상(彌勒佛像)을 조성하고, 그 아래에 학수사(鶴樹寺)와 고자암(高自庵)을 세웠다고 전해진다.

 

경순왕이 돌아가시자 왕을 추종하던 신하와 불자(佛者)들이 고자암에 영정(影幀)을 모시고 제사를 받든 것이 영정각(影幀閣)의 시작이었다.

 

고려 중기에 전각은 무너지고 인적도 끊어졌다가 조선 초에 목은 이색, 양촌 권근 등에 의해 전각이 중수됐다.

 

조선 숙종 때 원주 목사 김필진이 새로 화상을 그리고 전각을 지어 모셨으나 화재를 당했고, 영조 때 재건되면서 임금이 영정각의 명칭을 경천묘(敬天廟)로 하사(下賜)했다.

 

그 후 경천묘는 소실됐으나 경순왕이 머물렀던 유래에 따라 지명이 귀래면(貴來面)이라 불리게 된 점과 무고한 백성들의 생명을 보전하고 신라 문화를 지켜낸 왕의 충정을 기리고자 원주시에서 2006년 9월 미륵산 아래에 경천묘를 복원했다.

 

경천묘는 원주시 향토문화유산 제2008-1호로 지정돼 있으며, 매년 음력 9월 9일에 제례를 봉행하고 있다.

 

문의 : 원주시청 문화예술과 향토문화팀(033-737-2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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