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고
광고
연예

‘대화의 희열3’ 다시 찾아온 감동과 울림, 1인 토크쇼의 진수

전영무 기자 | 기사입력 2021/05/14 [09:44]

‘대화의 희열3’ 다시 찾아온 감동과 울림, 1인 토크쇼의 진수

전영무 기자 | 입력 : 2021/05/14 [09:44]

 

▲ ‘대화의 희열3’ 다시 찾아온 감동과 울림, 1인 토크쇼의 진수   © 문화예술의전당

 

시즌 3로 돌아온 ‘대화의 희열’. 대화가 주는 울림은 여전히 유효했다.

 

지난 5월 13일 KBS 2TV ‘대화의 희열’(연출 신수정) 시즌3가 첫 방송됐다. 1인 토크쇼의 명맥을 묵직하게 이어가고 있는 ‘대화의 희열3’은 2년 만에 돌아와, 또 다시 감동과 울림이 가득한 ‘말의 성찬’을 펼쳐냈다. 첫 번째 게스트로는 ‘한국 문학계 거장’ 황석영 작가가 출연해, 거침없는 입담을 풀어내며 TV 앞 시청자들을 대화로 빠져들게 만들었다.

 

우리 역사 어디에나 있었던 '황포레스트검프' 황석영의 삶은 그야말로 파란만장했다. 4.19혁명, 베트남 파병, 5.18민주화운동, 민간인 최초 방북과 그로 인한 망명, 수감 생활 등에 대한 이야기가 이어졌다. 한국 근현대사와 함께한 그는 현실에 직접 몸을 담그고 글을 쓰는 ‘행동하는 작가’, ‘실천하는 문인’이었다.

 

특히 5.18민주화운동의 참상을 세상에 알린 최초의 책 ‘죽음을 넘어 시대의 어둠을 넘어’의 탄생 배경은 모두의 마음을 아프게 했다. 그가 잠시 서울로 와 있던 사이 터진 광주의 참혹한 일들. 황석영 작가는 “부끄러움이 있었다. 비겁하게 살아남았다는 미안함, 죄책감이 있었다”며, “어떻게든 진실을 밖에 알려야 했다. 자료를 사방에서 모으고 있었다. 누군가는 책의 구성(집필)을 해야 했다. 내가 총대를 메라는 말에 ‘좋다. 하자’고 했다”며 책의 저자로 이름을 올린 이유를 설명했다.

 

1989년 세간을 떠들썩하게 한 ‘방북’ 이야기도 빼놓을 수 없다. 당시 황석영의 방북은 사회적 금기를 깬 파격적인 행보였다. 황석영 작가는 왜 북한에 갔냐는 질문에 “당신 같은 작가가 분단을 운명이라 그러고 체념하고 받아들이면 어떡하냐”는 한 노인의 물음에 아무 답을 할 수 없었다며, “대한민국 작가로서 ‘쪽팔려서’ 갔다. 내 존엄성, 한국 문학의 존엄성을 위해서 갔다”고 거침없이 이야기했다. 그로 인한 오랜 망명, 수감 생활도 겪었지만, 황석영 작가는 덕분에 좁은 시야에서 벗어나 한반도를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됐다고 밝혔다.

 

마지막으로 황석영 작가는 현재진행형인 작가로서의 뜨거운 삶을 전했다. 후배들의 작품을 시간을 들여 읽고 공부한다는 그는 “젊은 후배들과 맞짱 뜬다는 생각으로 글을 쓴다”며 꺼지지 않는 열정을 드러냈다. 또 글 잘 쓰는 방법에 대해서는 “하늘에서 벼락같이 영감이 떨어지는 건 없다. 미숙하고 어렵고 헤매는 건 누구나 똑같다”는 말을 남겼다. ‘거장’이라 불리는 대작가의 이 말에 모두가 위안을 받고 깨달음을 얻는 시간이었다.

 

돌아온 ‘대화의 희열3’은 한 사람의 인생을 깊이 있게 들여다보는 프로그램 특유의 색깔과 매력을 가득 펼쳐냈다. 때문에 그 어떤 프로그램에서도 느낄 수 없는 깊은 감동과 울림을 시청자들에게 선사할 수 있었다. 첫 번째 게스트로 출격한 황석영 작가는 한국 근현대사와 함께한 삶과 작가로서의 열정을 이야기하며, 폭넓은 대화와 묵직한 주제를 이끌어냈다. “대화의 힘은 여전히 유효하다”는 것을 보여준 단독 토크쇼 ‘대화의 희열’. 앞으로 어떤 게스트와 어떤 대화들로 시청자들을 찾아올지, 다음 회를 기대하게 하는 묵직한 첫 시작이었다.  

 

한편, ‘대화의 희열3’을 찾은 두 번째 게스트는 가수 제시의 출연한다. 예고 영상에는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예측불가 매력의 제시의 모습은 물론, ‘인간 호현주’의 어디서도 볼 수 없던 진지한 모습이 담기며, 관심을 집중시켰다. KBS 2TV ‘대화의 희열3’은 매주 목요일 밤 10시 40분 방송된다.  

 

사진제공= KBS 2TV ‘대화의 희열-시즌3’

  • 도배방지 이미지

관련기사목록
포토뉴스
"범죄자들이 선동의 깃발을 들고 나라를 흔드는데 한숨만 쉬고 있는 건 보수정치의 직무유기"- 윤희숙 전 의원
1/7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