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인에 대해 아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그 사람을 직접 만나기 힘드니, 매스컴을 통해서 추측하는 게 전부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몇 년 정도 관련 기사를 접하다 보면 저 사람은 어떤 사람이구나 정도는 파악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모 지사의 부인이 식당에서 밥을 먹는다면 ‘계산은 법카로 하겠구나’는 추측을 할 수 있지 않겠는가? 하지만 문재인 정권 사람들은 다르다. 지난 5년간 기사를 챙겨봤지만, 예측을 뛰어넘어 나를 놀라게 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지친 일상에 빠진 국민들이 위로받을 수 있도록 급한 민생부터 챙겨야 한다.” 문재인 정권에서 대통령 비서실장을 지낸 임종석의 말을 듣고 깜짝 놀랐다. 그가 민생에 관심 있다는 건 전혀 몰랐기 때문이다. 그는 경문협이라는 단체의 이사장을 지내면서 저작권료 명목으로 북한에 수억원의 돈을 보냈었고, 그 후 모인 돈을 북한에서 탈출한 국군포로에게 배상금으로 지급하라는 법원 명령도 거부했다. 그래서 그 민생이 북한의 민생이겠다 싶어 기사를 봤더니, 세상에! 그는 우리나라의 코로나방역과 부동산 가격에 대해 말하고 있다. 윤석열 당선인이 집무실 이전을 천명하지 않았다면, 우리는 임종석이 민생을 걱정하는 훌륭한 정치인이라는 걸 미처 몰랐을 것이다.
다음으로 탁현민을 보자. 우리가 아는 탁현민은 문재인 대통령을 돋보이게 할 목적으로 수많은 쇼를 기획했고, 해외순방 도중 문통의 발에 피가 났다며 안타까워 한 희대의 ‘충신’이다. 문통이 보여주기식 정치에만 몰두한 것도 탁현민에게 책임이 있을 텐데, 그가 얼마 전 한 말을 듣고 깜짝 놀랐다. 그는 청와대가 수백억 원의 돈을 들인 곳이며, 해방 이후 지금까지의 역사를 담고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그는 이렇게 말한다. “여기(청와대) 안 쓸 거면 우리가 그냥 쓰면 안 되나 묻고 싶다. 좋은 사람들과 모여서 잘 관리할 테니.” 그랬다. 탁현민은 문통만 바라본 간신이 아닌, 청와대라는 건물 자체를 사랑한 이였다. 그리고 그는 대통령 집무실과 비서동을 30초만에 주파하는 스프린터이기도 했다. 윤석열 당선인이 집무실 이전을 천명하지 않았다면, 우리는 탁현민을 진나라의 ‘조고’나 영화 ‘간신’의 모델인 임사홍을 능가하는 사람으로만 기억할 뻔했다.
더불어민주당 역시 오해받은 부분이 있었다. 민주당 하면 내로남불로 유명하지만, 그보다 더 욕을 먹었던 건 돈을 펑펑 쓴다는 점이었다. 자기 스스로 돈을 벌어본 적이 없어서 그러는 것 같긴 해도, 민주당의 씀씀이는 차원이 달랐다. 선거 때 돈을 푸는 것은 기본이고, 코로나라고 돈을 풀고, 세금이 더 걷혔다고 돈을 또 풀었다. 그 당의 고민정 의원이 했던 “곳간에 재정을 쌓아두면 썩는다”는 말이 바로 민주당의 철학이었던 것. 그런데 그 민주당이 1조원의 비용이 든다면서 윤석열 당선인의 집무실 이전을 반대한다. 국가 빚이 1000조를 넘은 천조국 시대라 1조원 정도는 돈으로 보이지 않는다는 사람이 많은데, 그 1조를 아끼자고 부르짖는 민주당 대변인이 참 신선해 보였다. 그랬다. 5년간 집권당 노릇을 했던 민주당도 사실은 돈 걱정을 하는 살림꾼이었다. 윤석열 당선인이 집무실 이전을 천명하지 않았다면, 우리는 민주당을 그저 나라 말아먹는 좌파들의 모임으로만 기억했을 것이다.
가장 큰 충격은 바로 문통님이었다. 우리가 아는 문통은 A4 읽기에 능하고, 어디서나 잘 주무시며, 혼밥과 자화자찬을 즐기는 천진난만한 분이었다. 하지만 그에게 우리가 가진 불만은 대통령이 왜 국가안보에 관심이 없느냐는 것. 특히 중국과 북한에 대해선 지나치게 굴종적이어서 답답할 때가 많았다. 그는 북한이 미사일을 쏴도 미사일을 미사일이라 부르지 못하게 했고, 엄연히 우리 재산인 연락사무소 건물이 북한에 의해 폭파됐을 때도 평온을 유지했다. 심지어 우리 국민이 바다에 표류하다 북한군의 총에 맞아 죽었을 때는 잠을 자느라 국가안전보장회의(NSC)에 불참했고, 깨어난 뒤에도 이렇다 할 대응을 하지 않았다. 북측에서 ‘삶은 소대가리’라 놀렸을 때 가만히 있었던 건 당연한 일. 혹시 사람이 너무 좋아서 이러나 싶었지만, 국민이 자신을 비판했다고 고소한 걸 보면 그런 것도 아니었다.
그랬던 문통이 격노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윤 당선인이 청와대를 옮기려 했기 때문. 국민소통수석의 말을 들어보자. “청와대 이전은 함부로 결정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며 화를 많이 냈습니다.” 무슨 말일까? “청와대 집무실 이전으로 인한 국방부와 합참, 청와대 위기관리센터의 연쇄 이동이 안보 공백과 혼란을 초래할 수 있다는 게 핵심 이유입니다. 북한이 올해 들어서만 열 번째 미사일을 발사하고 한미연합훈련이 예정된 상황에서 한반도 안보 위기가 가장 고조되고 있는 시기라는 점도 덧붙였습니다.” 그랬다. 안 그런 척했어도, 문통의 제일가는 관심사는 오직 안보였다. 심지어 미사일을 ‘발사체’가 아닌 ‘미사일’이라고 부른데다, 그게 올해 10번째라는 것도 카운트하고 있었다는 건 가슴뭉클하다. 다음 말은 너무 감동적이어서 눈물이 다 났다. “청와대는 임기가 끝나는 마지막 날 밤 12시까지 국가 안보와 군 통수는 현 정부와 현 대통령이 내려놓을 수 없는 책무라고 강조했습니다.” 마지막까지 국군 통수권자의 임무를 다하겠다는 각오, 이것이 특전사 출신 대통령의 위엄이었다. 윤 당선인이 집무실 이전을 추진하지 않았다면, 우리는 그가 안보에 무관심한 대통령이라고 오해할 뻔했다.
짚고 넘어가야 할 게 하나 더 있다. 보통 자기가 하려다 못한 일을 다음 사람이 한다면, 도와주는 게 인지상정이다. 그게 국가를 위한 일이라면 더욱더 그렇다. 하지만 문통은 달랐다. 자신이 10년간 부르짖다 못한 집무실 이전을 윤 당선인이 추구하는데, 도와주는 대신 격노했고, 훼방을 놓았다. 이걸 보면 알 수 있다. 문통은 인간의 경지를 뛰어넘은 초인이라는 것을. 그에게 왜 그리 무지성(無知性) 지지하는 이들이 많았는지, 이제야 이해가 간다. 이상은 윤 당선인의 집무실 이전이 아니었다면 모를 것들, 이 정도면 용산기지 이전을 찬성하기에 충분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