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권 연출의 ‘극단 제3극장’은 한국 최초의 창작뮤지컬 ‘새우잡이’를 국립극장 무대에 올린다.
한국 최초의 뮤지컬은 전세권 연출의 극단 '제3극장'이 국립극장에 올린 뮤지컬 '새우잡이' -6
권종민 기자| 입력 : 2018/01/25 [0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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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전세권 연출의 ‘극단 제3극장’은 한국 최초의 뮤지컬 ‘새우잡이’를 국립극장 무대에 올린다.
7. 한국 최초의 뮤지컬은 전세권 연출의 뮤지컬 카니발 수첩이다
인터뷰의 저작권은 문화예술의전당 www.lullu.net 에 있습니다. 인용,보도 시 출처를 밝혀주시기 바랍니다.
1.극단 ‘신협’ 과 극단 ‘제3극장’의 탄생
극단 신협(신극협의회의 약칭)은 해방이후부터 1950년대 말까지 신극을 주도한 대표적 연극단체이다. 당시 극단 신협 대표였던 이해랑은 그의 조연출 및 국립극장 무대감독으로 활동하던 전세권에게 젊은 연극인들을 규합하여 ‘제3극장’을 만들 것을 제안한다. 이에 전세권은 젊은 연극인들을 규합하여 1965년 3월 ‘제3극장’을 창단하고 첫 대표를 맡는다.
제3극장은 극단 ‘신협’과 동국대 출신 등 이해랑의 제자들로 구성하여 각고의 노력 끝에 한국뮤지컬사의 커다란 획을 긋는 뮤지컬 ‘새우잡이’의 막을 올린다.
동아일보 1965년 8월 24일 자 6쪽 기사엔
‘동아연극상 참가’ “... 중략, 26일, 27일 이틀간 국립극장에서 두 번째 무대를 보여준다. 한국에서는 좀처럼 어렵다고 되어있는 뮤지컬을 시도하느라고 남다른 애로를 겪고 있는 작가 겸 연출가 전세권 씨는 우선 재미있고 경쾌한 무대를 보여주어야겠다고 다짐한다. 아직 뮤지컬은 낯선 형식이어서 큰 기대는 없다면서...(중략)”
3. 한국연극사(리얼리즘연극)에서 뮤지컬의 태동
리얼리즘 연극만 고수하던 신협인 들에게 뮤지컬은 고무적인 것이 아니었다. 그러나 당시 한국의 연극계를 대표하던 신협의 젊은 연극인들의 노력으로 이 땅에도 종합공연예술의 새로운 장르인 뮤지컬이 개척되는 계기가 된다. 이때 개척자의 중추적인 역할을 한 사람이 전세권이다.
뮤지컬 연출은 음악, 안무, 극본 등으로 이루어진 무대적 요소를 각자의 긴밀한 관계를 통해 작품의 메시지를 관객에게 정확히 전달해야 하는 역할이기 때문에 구상화에 있어서 여러 가지 기술적 방법과 형식으로서 준비되어야한다. 그렇기 때문에 연출가는 무엇보다도 앞서 작품을 꿰뚫어볼 수 있는 예리한 비평능력이 있어야 한다. 전세권은 이때 이미 연극, 오페라 등 풍부하고 다양한 경력을 가지고 있었기에 뮤지컬 연출의 기능이나 역할에 남달리 이해가 밝았다. 또한 관심과 능력이 있었기에 극작과 연출, 제작이 가능했다.
4. 불세출 전천후 인물 전세권
전세권은 국립극장 전속인 ‘신협’의 단원으로 배우, 이해랑의 조연출, 무대감독까지 담당하였고 이후 국립극장 전속 무대감독도 지냈다. 뿐만 아니라 1962년 신춘문예 시나리오부문에 입선하였다. 이후 중앙대학교 연극영화과 출신의 ‘청포도극회’대표 장우식이 신인예술제에 출품할 작품을 전세권에게 의뢰한다. 이를 계기로 제1회 신인예술제에 <제5방향>(1961년, 전세권 작, 연출)을 쓰고 연출하고 무대미술상 까지 수상한다.
전세권은 극단 ‘제3극장’이 발족하기 이전 ‘청포도극회’란 이름아래 연극제에 묵은 신문에서 본 어떤 기사를 보고 ‘새우’라는 희곡을 쓰게 된다. 뮤지컬 ‘새우잡이’의 원형인 연극 ‘새우’는 전세권이 당시 부정축재로 궁지에 몰리게 되어 일본으로 밀항하려다 잡혀 사회적으로 물의를 일으켰던 정치인의 일화와 고전 ‘배비장전’의 모티브를 갖고 ‘새우’라는 희곡을 쓰고 연극으로 무대에 올린 것이다. 결과로 연극‘새우’는 1963년 문공부 주최의 신인예술상 연극부문에서 단체수석상과 연출상을 수상하게 된다. 이후 전세권은 ‘새우’를 뮤지컬로 만들고 싶다는 욕구를 갖고 작업을 한다.
전세권의 극단 ‘제3극장’은 1965년 제5회 신인예술제에 황유철 작, 전세권 연출의 <사직원>을 출품하여 연출상, 미술상, 단체특상을 수상하게 된다. 이때 출연진은 최웅찬, 김무생, 장욱제, 이성웅, 김기일, 김명희, 박주아, 이신재, 김동완,김효경 등이 참여했다.
전세권은 3년 연속 신인예술제에 참가하여 최고의 상인 그랑프리 ‘특상’을 수상하면서 젊은이들이 갈망하는 새로운 연극, 뮤지컬에 대한 열망을 한껏 불태우게 된다.
한국 최초의 뮤지컬 <새우잡이> 작.연출 전세권은 가수 전인권의 형이다.
5. 박정희 정권하에서 만연한 사회 부정부패와 부패한 국회의원 실정을 유쾌한 뮤지컬로 그려
뮤지컬 <새우잡이>의 주제는 당시 사회에 만연된 부정부패와 사회적 범죄를 부패의 대표적 인물인 국회의원이라는 정치인을 등장시켜 사회를 풍자하고 있다. 경찰정치의 부재를 보석상을 턴 강도라는 특수인물로 설정하여 과도기적 혼란기의 극단적 이기주의를 대비시킨다. 가난하고 무능하지만 선의 상징인 선장과 해일, 옥심이라는 인물로 정의의 승리를 권선징악으로 풀었다. 이러한 당시 선악의 모호함과 혼란을 각기 대비되는 인물들의 회화화로 극적 재미를 추구하였다.
뮤지컬 <새우잡이>는 해일과 작부 옥심의 러브스토리를 마리우스적 멜로드라마로 사랑의 노래, 사랑의 리듬을 크레오그라피화 하여 해학과 눈물어린 인간애가 담겨있는 내용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뮤지컬 <새우잡이>는 1965년 26일, 27일 양일간 국립극장에서 오경일, 최영화 작곡으로 10개의 노래가 연기자와 특별히 동원된 ‘미리암합창단’에 의해 불려지고 40여명으로 된 ‘영.필 하모니’가 관현악 반주를 맡고 있다.” - 당시 동아일보 신문기사-
또한 당시 신아일보 기사는 - “ 한국연극협회에서는 지난 18일부터 다섯 젊은 극단을 초대-연극시리즈-를 국립극장에서 개설하였다. 연전에 국립극장에서 주재하던 ‘단막극 시리즈와 같은 형식이다. 이번에 참가한 극단은 ’신현대실험극회‘ , ’청포도극회‘ , ’혈맥극회‘, ’메아리현대극회‘, 그리고 ’제3극장‘인데 젊고 가난한 이 극단들에 공연할 무대를 주었다는 점은 이의가 없을 수 없다. 이 극단들 단독으로는 국립극장 무대를 빌릴 경제적인 힘이 없는 실정이기 때문이다.
특히 ‘제3극장’의 <새우잡이>는 이 나라 최초의 창작 ‘뮤지컬. 드라마’다. 전세권 작. 연출. 오경일 작곡. 젊은이들이 쓰고 작곡하고 안무하고 더군다나 오케스트라까지 직접 동원하는 시도만으로도 자부할만하다고 자신만만한 작. 연출. 전군은 이 극단의 대표이기도 하다. ‘고종황제와 의사 안중근’ 등에서 조연영화배우로도 얼굴이 익은 그는 연극계에 투신한지 벌써 8년. 19세의 홍안으로 ‘신협’에 문하생으로 뛰어들어 조연출로 쭉 자랐다. 무대미술에도 손을 댔고 시나리오를 써서 <지게꾼>, <부산댁>, <3통8반여반장> 등 영화화한 다재다능의 예능인이다. 그러나 의욕을 불태울 수 있는 분야는 역시 연극이기 때문에 요새는 ‘제3극장’을 조직해서 연극에 전념해서 금년도 신인예술상에서 연극부문 특상과 연출상으로 인정을 받았고, 이에 미개척분야인 ‘뮤지컬드라마’의 계발에 뛰어든 것이다. 연출을 하랴, 표를 예매하랴 눈코 뜰 새 없으면서도 투지는 여전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