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역사, 현대정치사에 있어 고질적인 병폐이자 폐단은 ‘붕당정치’라 일컫는 “계파정치”, “패거리정치”, “패권정치”의 한계일 것이다. 우리 한국사회 역시 마찬가지로 공무원이나 민간인이나 모든 조직 내에는 소위 말하는 “‘그들끼리만’의 문화”가 존재한다. 밀란 쿤테라가 말한 ‘줄’의 구조가 아닌 ‘원’의 구조이다.
밀란쿤테라는 ‘원’의 구조를 “한 번 나가면 다시는 들어올 수 없는 닫힌 폐쇄 구조 사회”라고 말했고, ‘줄’의 구조를 한 번 나가도 또 동료 뒤에 붙으면 되는 ‘개방적 민주적 절차의 사회구조’라고 말했었다. 그래서 한국사회에선 “한 번 나가면 다시 돌아올 수 없는 ‘원’의 구조라서 튕겨져 나가지 않으려고 늘 발버둥 치고 있는지”모르겠다고 한탄하는 이들이 많다.
이 땅엔 많은 조직과, 패거리, 그들만의 세계가 있지만 그건 일반인 보다 예술인들이 더 심하다고 알려졌다. 필자는 1990년부터 연극과 문화예술계를 만나고 접하고 있고 현재도 문화부장 & 취재부장, ‘문화예술의전당’ 편집장을 수행하면서 수많은 정치인, 예술인들을 만나고 있다.
만나면서 갖는 불편한 진실은 ‘이쪽은 정치인 집단 보다 더하면 더하지 못하지 않을 정도로 분열되어 있다’는 점을 느껴왔다. 그래서 이제는 고인이 된 강태기 연극배우는 배우협회회장이 되어 맨 처음 한 일이 “연극인의 화합을 위한 자리를 만들었다”고 말했고, 후엔“ 내가 배우협회회장으로 일하면서 가장 자랑스러웠던 일은 또 연극인의 화합과 단결을 위해 내 모든 역량을 다해 일한 것이라고 말했을 정도이다.
모든 예술인들과 마찬가지로 종합예술을 무대에서 해야 하는 연극인들은 ‘자존감’이 높고, ‘개성’이 강하고, ‘자기주장’을 굽히지 않기로 유명하다. 그래서 사회적 어떤 주요 사건에 대한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려 만나보면 100이면 백 모든 분의 대답이 같을 수가 없다.
그런데 그렇게 생각하는 필자에게 모든 연극인이 ‘이 분을 만나 인터뷰를 해 주었으면 좋겠다!,”이 분은 정치인이면서 한국연극발전을 위해 너무도 많은 일을 해 주셨다“ ”한국정치인들이 모두 이분 같았다면 한국정치 발전은 물론 한국연극 나아가 한국예술은 한층 더 발전했을 것이다. 그러니 꼭 좀 만나 인터뷰를 해서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 달라“.
참 난감했다. 통상의 인터뷰는 인터뷰이가 먼저 요청하거나 인터뷰어가 인터뷰이에게 먼저 요청하는데 이것은 인터뷰이도, 인터뷰어도 서로가 서로에 대해 모르고 있었고 한번도 만나서 이야기를 들어봐야겠다는 생각을 가져 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차일피일 미루고 있었는데 이번에 필자가 연재하는 ‘한국 최초의 뮤지컬은 000의 0000이다’를 취재하면서 원로 연극인과 대학원에서 ‘한국 뮤지컬사 연구’로 학위를 받은 분에게 또 요청을 받았다.
“자네 잘 모르지만……. ‘로 시작한 그 원로분의 요청은 ’한국연극사‘ 기록에서 꼭 필요한 작업이라 망설이는 필자를 설득하기에 이른다.
”그러니까 말이야, 자네가 쓰는 우리나라 최초의 뮤지컬이 통상 사람들이 알고 있던 ’1966년 10월 23일 시작한 예그린 악단의 ‘살짜기 옵서에’가 아니라 1966년 7월 22일부터 26일까지 국립극장에 올려진 000의 0000이다‘가 중요하듯 이 분을 인터뷰 해보면 왜 그것이 필요한지 단박 알아버릴 것이야, 그러니 망설이지 말고 꼭 해, 내 부탁이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