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외총체음악극 < 고려의 아침 Morning of Koryo >이 드디어 무대에 올려졌다.
작년 1부만을 맛보기로 보여준 <고려의 아침> 공연은
작 / 신선희 , 연출 / 신선희, 이병훈에 의해, 짜임세 있는 각본의 탄탄함과 함께
보여줄 수 있는 모든 것을 다 보여드리겠다는 당찬 의도와 의지같이 ,
의상, 무대세트, 말 타고 화살을 쏘는 장면 등을 사실적 고증과 함께 무대에
충실히 재현해 냈다.
아마도 이 작품과 같은 소재의 작품으로는 극단 현대극장의 뮤지컬
<팔만대장경>을 들 수 있을 것인데,
국립극장 무대에 올려졌던 <팔만대장경>이 조명과 구도로 여백적 동양미를
살리면서, 포스트 모더니즘식 구현에 충실한 뮤지컬이었다면,
이번 서울예술단 , 신선희 이병훈 연출의 <고려의 아침>은
사실주의와 표현주의적 정통기법을 갖고 보다 자세하고, 충실하고,
세밀하게 팔만대장경이 건각 되게된 동기와 역사적 사실, 유네스코가
세계문화 유산으로 극찬하며 올리게 된 배경 등에 관해 유용성과
가치 있게 말하지 않으면서 이해시키고, 보여주고 있고,
더하여 역사적 사실과 진실 위에 사실 일어날 수 있는,
있음직한 빈부의 격차를 뛰어넘는 사랑의 이야기로 동시 대중성과
예술성의 두 마리 토끼를 한 번에 잡은 수작의 뮤지컬로 평가된다.
타 뮤지컬과는 차별성이 있는 것이 보여주는 스펙터클에서도
요란하고, 현란하며, 자기 과시적인 눈속임과 같은 얕은 보여짐을
택한 것이 아니고,
하나 하나 장면 장면마다 그 정성과 손길과 정성스런 호흡이 느껴질
것처럼 많은 공을 다한 점과 함께, 그것으로 인한
자칫 줄거리와 보여지는 것만을 보고 있는 관객들에게는 그러한 점이
보여지고 만져지고 느껴지고, 심정적으로 와 닿지 못해
신비감과 환상이 약하다는 표현의 약함을 불만으로 이야기 할 순 있겠다.
그런데 연극을 많이 보고, 대중과 예술성의 구별/차이/차연을 확인하고
남을 배려하고, 백화점을 들어갈 때 뒷사람을 향해 문을 잡아줄 수
있는 관객들에게는
그러한 비어 있는 것 같고, 현란하고, 요란하지 않은 많은 표현주의적
표현 기법이 오히려 극중 인물들의 내면과 정신상태, 심정 등을
더욱 더 가깝고 아름답고 심정적으로 함께 움직이는 초침과 같이
가깝게 만든 요인으로 생각된다.
결국 관점의 차이에서, 대중성과 예술성에서 이번 서울예술단은
예술적인 아름다움에 더욱 충실한 가치를 두고 잇고,
그 내용적인 측면에서도 과연 팔만대장경이 갖는 의미는 무엇인가?
와 , 오늘 날 팔만대장경을 통해 현대인이 각성하고 자극 받아야 하는
점은 무엇인가? 에 관해 철학적 성찰 또는 에세이적 가볍지 않은 내용을
기층에 깔고 있다.
소설을 읽는 재미와 함께 에세이적 가볍지 않은 내용이 밀란 쿤데라 소설을
좋아하는 식견 있는 독자들의 탁월한 선택이라면
야와 대형 뮤지컬 <고려의 아침>을 선택하여 화려하거나 자극적이거나
자극시키지는 않지만 조용한 아침의 그 나라처럼
은근과 끈기 그리고 아름다운 예술미로 살포시 가슴에 기대오는 그 뮤지컬
<고려의 아침>을 선택하는 식견 있는 관객들도
소설과 같은 대중적인, 통속적인 다 알고 있는 사랑 이야기와 함께
인류문화유산인 팔만대장경 건각에 숨겨진 내용 등과 각 인물들의 섬세한
내면의 외연적 표현주의와 사실주의 정통 기법에 충실한 무대 위
재현과 구현 그리고 실현에 의한
관객들의 공연 보는 재미는 여간 쏠쏠한 것이 아니었다는 강조의
말이다.
서양의 중심기본 사상인 흑백/유무/이분법적 사고방식에서
석학인 데리다가 말한 '밀실에서 꾸며진 공모'라는 것이 현대에 와선 더 이상
존재하지 못하고 모두 밀실이 아닌 공개된 장소에 드러난 이상
동양과 불교, 또는 기본 '공'의 사상에서 유무와 흑백이 아닌 진공과 변화하는
상태에서의 팔만대장경이 말하는 진리는 보다 현실세계에서 쉽게 이해
되지는 못하지만 더욱 현실에서 적용할 수 없고 실현하려 노력하려하지만
그 높은 절대성으로 다가서지 못하는 것에서 더욱 가치가 높고 고귀하다
할 수 있을 것이다.
그것과는 달리 이번 <고려의 아침>에서 팔만대장경의 건각을
달리 말하여 인격의 완성과 자기의 완성으로 두고 변화하여 이 공연을
읽고 있노라면
마치 그 고뇌와 지옥과 같은 고통 속의 번뇌와 괴로움 속에서도
자기 자신에게 의문과 의문을 끝없이 던지며 자신이 스스로 쌓고 있는
벽과 담을 허물며 앞으로 나아가는 판각쟁이 거인의 모습에서
명확히 알지 못하고, 그저 남에게 듣은 것과, 스스로 획득하지 못한 것을
자신의 것인 양 행세하고, 외형만 보고 실질을 몰라봤던 그러한 점을
판각쟁이의 최초 의문인
'과연 이 어려운 시기에 그 대장경으로 과연 무엇을 할 수 있겠는가?'
라는 점과 '부처님은 죽었도다' 라는 죄업과 정당방위인 살해행위에서 조차
괴로워하는 인간의 양면성을 동시에 보여주면서도,
그 후 현실적인 어려움을 이겨내고 결국 대장경을 완성시키는 것과
연화장의 소원을 푼 눈 먼 공주의 아름다운 현존이 가슴 벅찬 감동으로
관객들을 무대로 내 몰고 있는 극히 요즘 보기 드문
작은 것으로 가장 큰 감동을 만들어내는 벅찬 감동의 뮤지컬이다.
어제 공연에서 그러한 감동의 뮤지컬 중에서 다소 아쉬웠다 말할 수
있는 점은 공주를 맡은 배우의 목소리가 잘하는 가운데 고음처리에서
(고음처리에서 감정의 고조가 불을 댕기는 순간에) 불안한 음이 튀어나와
그 감정이 따라 함께 올라서지 못하는 점이 아쉬웠고,
사실주의와 표현주의 기법에서 등장인물들의 내면 세계를 무대에서 훌륭하게
표현하는 가운데 많은 표현들이 인공적인 모습의 표현으로만 일관되게 처리
된 점은 위험성과 함께 고도의 고난도 기술을 요구하는 아크로바트적인
전문 곡예사가 해야 할 일이겠지만 그래도 다소 인형과 모형 말을
사용하는 것 등에서는 인간적인 냄새가 나야 할 곳에서 나지 않는 것이
다소 아쉽다 할 수 있겠다.
사실 좁은 공간에서 영화도 아닌 실시간으로 실재동작으로 처리되는
그런 점에서 이해하고 십분 이해하고 있지만, 완성도를 높이고 무대에서
아직 아무도 그런 점을 시도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서울예술단은
할 수 있었는데.........그것을 피해나간 것이 아쉽다 할 수 있겠다.
그렇지만 그렇게 다소 아쉽게도 모자란 인간적인 측면을
작창인............어제 나오신 분이 안숙선 작창은 아니신 것 같은데....
잘 모르지만...............안숙선 작창은 아니신 것 같은데..............어제
나오신 분의 창이 너무도 열정적이고 황홀할 정도로 멋진
분위기로 장치와 인공적인 처리가 무대를 메우는 와중에서
힘차게 뚫고 일어서 인간적인 흙냄새의 분위기를 온전히
북도와준 것에 관객으로 내 최고의 찬사인
김일성 박수를 기립하여 열렬하게 보내드린다.
결과적인 이야기이지만, 아마 어제 그 분이 없는 상태에서
인공적인 처리와 짜임세 있고 완벽한 희곡구조로 끌고 갔다면
관객들은 그 촘촘해진 그물에 걸려 숨도 제대로 쉬지 못했을 것이다.
결국 데리다를 말하는 큰 고기는 그물에 걸리지 않는 다는 말처럼
깊고 깊은 바다 속을 아무런 긴장 없이 소설을 읽는 대중적 재미와
에세이적 높은 예술성으로
작창의 분위기와 뉘앙스 추임세, 순간 순간 귀중한 시간에 나타나
감정을 돋궈주는 그 노래 한마디에 절로 숨통과 함께
피곤함이 가시는 잊을 수 없는 라이브 공연,
뮤지컬이었다.
살아 있는 것과 죽어있는 것의 차이는
결국 감동을 선사하고 선사하지 못하는 결과와도 긴밀히 연결되어 있다면
옥외 대형 뮤지컬 <고려의 아침>은
펄펄 살아 숨쉬는 잊을 수 없는 감동의 뮤지컬이다.
현대인은 스스로에게 너무 바빠, 외형적이고 환경과 속도에
뒤처지지않게 따라가는 라고 너무도 바빠 좀처럼 자기 자신과의 대화를
할 줄 모르는 벙어리이다.
그 벙어리에 대해 감동의 뮤지컬 <고려의 아침>은 천천히 자신과의
대화를 충분히 할 수 있고, 만들어주는 계기와 장소를 제공하고 있다.
담을 쌓는 무리들, 또 그 담을 따라 서성거리며 눈치만 보는 현대인들.
모두들 초췌한 모습임과 웃고있지만 언제나 진실로 불만족한 인간들이다.
가끔은 따라가고 쫓아가는 것에서 물러나, 좋은 길에서 물러나
뒷산 작은 오솔길을 걸으며 푸른 나무들과 물기 머금은 흙들과 함께
내면의 이야기를 들어보고 입을 열어 물어보아야 한다.
야외 대형 뮤지컬 <고려의 아침>
탁월한 선택이다!
러닝타임 2시간 30분 , 광화문에서 5호선 전철타면 불과 40분 거리........ <저작권자 ⓒ 문화예술의전당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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