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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 오스터

문예당 | 기사입력 2003/10/06 [14:06]

폴 오스터

문예당 | 입력 : 2003/10/06 [14:06]


1947년 2월 3일 뉴저지 뉴악 출생

1969년 콜럼비아대 학사 취득

1970년 콜럼비아대 석사 학위 취득  

1970년대 주로 시인으로 활동 (프랑스 시 번역)

1974년 8월 6일 작가인 Lydia Davis과 결혼

   시집 《폭로》, 《자크 듀팽 편 발자크》

1975년  잉그램 메릴 재단이 주는 시인상 수상.

1976년 《아랍인과 이스라엘인》  

1978년  11월 이혼

1977년  PEN의 번역센터에서 주는 번역상 수상.

   3월 희곡 《일식》뉴욕시 예술인 극장에서 초연

1980년 『스퀴즈 플레이』폴 벤자민이란 가명으로 출판

1981년 Siri Hustvedt과 결혼

1982년 『The Art of Hunger : Essays, Prefaces, Interviews』

  『The Invention of Solitude』고독의 발명 발표

1985~ 86년『The New York Trilogy』뉴욕 삼부작  

  - 유리의 도시(85), 유령(86), 잠겨진 방(86) 발표

1987년 『In the Country of Last Things』폐허의 도시

1989년 『달의 궁전』발표

1990년  『우연의 음악』발표 - 미국 예술원의 모톤 다우웬 자블 상 수상

1993년 『리바이어던』발표 - 메디치 외국문학상 수상

  『우연의 음악』영화

1994년 『미스터버티고』발표

1992/95년? 『The Red Notebook』

1995년 『Smoke』& 『blue in the face』영화

1997년 『Hand to Mouth: A Chronicle of Early Failure』빵굽는 타자기

1998년 『Lulu on the bridge』영화

1999년 『Timbuktu』동행  

2001년 『The Book of Illutions』  

         『Story of My Typewriter』  


마법과도 같은 문학적 기교와 심오한 지성으로 <떠오르는 미국의 별> 이라는

칭호를 부여받은 유대계 미국인 폴 오스터.

그는 1947년 미국 뉴저지 뉴악에서 태어나 콜럼비아 대학을 졸업한 후 선원,

통계 조사원, 강사, 전화교환원등 다양한 직업을 전전하다

1974년 시집 『폭로』를 발표하면서 문단에 대뷔했다

. 1980년 이후 본격적으로 소설을 쓰기 시작하면서 미국을 비롯 유럽의 비평가들로부터

찬사를 받은 그는 [리바이어던]이라는 작품으로 1993년 메디치 외국문학상을 수상받기도 했다.


그는 시, 소설 뿐만 아니라 비평, 에세이, 번역 등 다방면에서 왕성한 작품활동을 펼치고 있는데

웨인 왕이 감독한 영화<스모크>의 시나리오를 썼을 뿐 아니라

그 속편격인 영화 <블루 인 더 페이스>에서는 웨인왕과 공동으로 각본과 감독을 담당하는

이력을 보이는 등 영화쪽에도 큰 관심을 보이고 있다.

현재 그는 뉴욕 브루클린에서 아내(Siri Hustvedt), 두 자녀(Daniel and Sophie)와 함께 살고 있다.

슬픈 외국어 (무라카미 하루키 수필집) 에 언급 된 '폴 오스터'

  이윽고 슬픈 외국어 (p.169)

메리는 브루클린의 한적한 곳에 살고 있는데, 바로 근처에는 폴 오스터 부부가 살고 있고,

거기에 맨해튼에서 온 모나 심프슨 부부까지 합세해서,

그날 저녁은 상당히 활기찬 디너 시간이 되었다.


그런데 그런 자리에선 안타깝게도 나 같은 사람은 거의 대화에 끼지를 못한다.

한 사람하고 얘기할 때는 그냥 그런대로 불편하지 않지만,

네 명이 되고 다섯 명이 되어, 얘기가 기관총처럼 빠르게 진행되면,

이야기의 흐름을 따라가는게 고작인 형편이 된다.



이야기 자체는 상당히 흥미롭지만, 가만히 두 시간 정도 듣다 보면,

신경이 피로해지고 이완되어 버린다.

신경이 이완되면 집중력이 떨어져서 내가 하는 영어도 점점 이상해진다.

소위 '배터리가 나간' 증상을 나타내는 것이다.

외국어로 대화를 해본 적이 있는 사람은 대개가 그런 증상을 경험해 보았을 것이다.


아무튼 폴 오스터와 만날 수 있었던 건 참으로 즐거웠다.

나는 전부터 오스터라는 사람을 상당히 뛰어난 악기 연주가가 아닐까 하고

내 멋대로 상상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에게

'당신의 문장은 구조적으로나 시간적으로 매우 음악적으로 느껴지고,

뛰어난 연주가의 스타일을 연상하게 하는데요?"하고 물었더니,

그는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그러고 나서 이렇게 답했다.


"나는 악기를 연주할 줄 모릅니다.

가끔 집에 있는 피아노를 두들기기는 해도 말이에요.

하지만 당신 말은 맞다고 생각해요. 나는 소설을 쓸 때 언제나 악기를 연주하는 것,

음악을 만들어 내는 걸 생각하면서 쓰거든요.

악기를 잘 다룰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도 곧잘 하곤 합니다."


내가 그를 정확히 맞히지는 못했지만 크게 빗나가지도 않은 정도라고 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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