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어> 언론/배급 시사회 기자간담회
*일시: 2022년 6월 8일(수) 오후 2시 상영 후 *장소: CGV 용산아이파크몰 12관 *참석자: 감독 이일하, 출연자 모어(모지민)
[ 질의응답]
Q. 첫인사 & 개봉 소감 (감독 이일하)
지구촌이 2년 동안 코로나 때문에 굉장히 어려웠는데 그 와중에 저희 <모어> 개봉을 하게 돼서 너무 감개무량하다. 굉장히 즐거운 영화고 해피한 영화고 그리고 즐길 수 있는 영화니까 여러분들 많이 보러 와주셨으면 감사하겠다.
(출연자 모어) 영화 <모어>의 주인공 행복한 끼순이 모지민이다. 저는 낮은 곳에서 힐을 신고 높은 곳에서 토슈즈를 신는다. 영화 <모어>가 비로소 개봉하게 되어 저 또한 역사나 감개무량하다. 영화를 촬영할 때는 끝이 보이지 않았다. 그 끝없는 망망대해에서 이제 벗어났고, 떨리고 걱정도 되지만 이 영화는 단언컨대 역사가 될 예정이다. 왜냐하면 영화 <모어>는 저보다 더 많은 시간을 이 세상에서 살다 갈 것이기 때문이다.
Q. 연출 계기 (감독 이일하)
전작이 <카운터스>라는 작품이었다. 일본에서 촬영을 했는데 <카운터스> 안에 사진가 ‘로디’라는 사람이 있다. <카운터스>의 활동을 계속 기록하는 그런 사진가이다. 로디랑 같이 얘기를 하다가 로디의 사진 중에 모어의 사진을 발견하게 됐다. LGBT 바들이 있는 굉장히 재미있는 동네인 일본 신주쿠 2쵸메라는 곳에서 찍은 사진이었다. 오밀조밀한 바들이 여러 개 모여 있어 거기 한 번 들어가면 아주 정신을 잃고 헤매는 유쾌한 동네다. 거기에 있는 분장실에서 (모어가) 다리를 쫙 벌리고 찍은 사진을 보게 됐다. 그래서 그 사진에 너무나 매료되어 사진가 로디한테 이 사람 누구냐 한 번 만나보고 싶다 이야기했고, 로디가 이 사람 한국 사람이라고 답했다. 이후에 한국으로 건너와 이태원에서 모어를 만났다. 그리고 이 사람을 한번 찍어봐야 되겠다는 생각을 했고 그때부터 다큐멘터리 영화 작업에 착수했다.
Q. 출연 계기 (출연자 모어)
감독님을 처음 만났을 때가 2018년 여름이었고 영화 제작 기간이 3년에서 5년 정도 걸릴 것이라 이야기했다. 그래서 “저는 못하겠다. 내가 그걸 어떻게 하느냐” 이야기하며 거절했다. 이 얘기를 클럽 트랜스 사장 언니한테 전했더니 “이년아, 그 감독은 너한테 어떤 특별한 기운을 느꼈을 것이고 이런 일은 아무에게나 오지 않는다. 당장 가서 다리를 쫙 벌리고 영화를 찍어라”라는 호령이 떨어졌다. 그리하여 저는 “언니, 알겠어. 가서 다리 벌리고 찍을게” 답했고 그때부터 하염없는 나날이 시작됐다.
Q. <헤드윅>의 배우이자 감독인 존 카메론 미첼과의 만남 (감독 이일하)
LGBTQ의 ‘대빵’ 격 아닌가. 존 카메론 미첼이 한국에 온다는 소문을 입수해서 저희들이 미친 듯이 달려가 우선 옆에 섰다. 어떻게 한 컷이라도 건져볼까 하는 생각에 옆에 섰는데, 존 카메론 미첼은 그전에 영상을 봐서 모어를 알고 있었다. 그때부터 상황이 급진전됐다. 그래서 같이 식사도 하고 그러면서 많은 얘기를 나눴다. 존 카메론 미첼이 한국 공연 다음날 일본으로 가기로 계획돼 있었는데, 그걸 다 취소하고 저희랑 쌈밥집에 갔다. 보광동 곤드레 쌈밥집에서 쌈밥을 시원하게 먹고 다음 뉴욕에서 뵙겠다는 약속을 받아냈다. 그리고 제가 <헤드윅>을 너무나 재밌게 봤고, 우리 영화의 어떤 모델 격 아닌가. <헤드윅>을 한 10번 이상은 봤는데 그 존 카메론 미첼을 실제 본다는 것도 기뻤고 같은 공간에서 같은 이야기를 할 수 있었던 것도 굉장히 좋았다. 그리고 너무나 훌륭한 인격을 소유한 분이라서 저는 큰 감명을 받았다.
(출연자 모어) 존 카메론 미첼을 만났을 때 너무 신기했다. 제가 뉴욕 공연을 한다는 말을 문자로 보냈는데 보내자마자 자기 집을 무상으로 막 쓰라고 이야기했다. 그래서 그의 집을 쓰게 됐다. 할리우드 스타의 집에서 잔 사람이 또 누가 있을까 싶어서 그때 너무 신명이 났다. 한국에서 저의 우상 존 카메론 미첼을 만났고, 또 뉴욕이라는 곳에서 만났고 심지어는 그의 집을 찾아가서 머물렀고 그 모든 것들이 신기했다.
Q. 존 카메론 미첼이 <모어>를 보게 된다면. 기대되는 반응 (감독 이일하)
존 카메론 미첼 역시 영화감독이기 때문에 제가 이제 평가를 받지 않을까 생각한다. 굉장히 두렵다. 뭐라고 할지는 잘 모르겠다.
(출연자 모어) 안 그래도 제가 오늘 기자간담회 오기 전에 오랜만에 문자를 보냈는데 답변이 없다. 지금 뉴욕인지 LA인지 모르겠는데 답변이 없다. 존 카메론 미첼에게 항상 어렵게 문자를 했었다. 한국에 있을 때도 그렇고 혹시 촬영해도 되겠냐고 물어봤을 때 항상 답변은 “of course” 였다. 존 카메론 미첼은 스타이면서 정말 대인배다. 그래서 그 모든 촬영을 흔쾌히 승낙했고, 그가 영화 감독이고 배우이지만 제 생각에는 <모어>를 보고 좋아할 것이라고 100% 확신한다.
(감독 이일하) 조만간 만날 기회가 있지 않겠나. 조만간 만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Q. 음악 선곡 과정 (감독 이일하)
우선 이 영화는 지하에 있는 ‘드래그’를 세상 밖으로 가지고 나와서 함께 세상에 대한 어떤 탄원서를 시원하게 한 번 뿜어보자 그런 느낌의 콘셉트를 잡았다. 그래서 이것을 어떻게 표현할 것인가 생각했고, 모어의 육체적 아름다움 그리고 삶의 아름다움 등을 어떻게 표현할까 많이 고민했다.
제가 일본에서 살다가 한국에 들어왔는데 한국에 밖에 없는 그림들 같은 것과 드래그의 어떤 기괴함과 아름다움, 그로테스크하면서도 아름답고 해괴하면서도 아름답고 이상하면서도 아름다운 그런 것을 한국의 어떤 정서와 결합하면 좋을까 고민했다. 그런 와중에 모어의 절친인 뮤지션 이랑과 같이 작업하게 됐다.
사실 <모어>에 출연도 많이 했는데 영화에서 커트됐다. 뮤지션 이랑의 곡이 굉장히 한국적인 가사와 삶에서 녹아나는 그런 가사들 그리고 로-파이한 점이 모어의 화려한 점과 잘 매치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우선 기본적으로 이랑 씨의 곡을 베이스로 깔고 거기에 저의 80년대의 기억들. 그런 지점이 왜 생각났는지는 잘 모르겠는데 지금 20대분들이 알 것 같으면서도 모를 것 같고 어디서 들어본 것 같은데 잘 모르겠는 그런 곡을 위주로 선곡했다. 제가 어렸을 때 느꼈던 [아! 대한민국] 같은 곡들을 들으면서 느꼈던 감정들을 소환했고 거기에 다시 한번 위트를 씌워가지고 표현하려고 노력했다.
Q. 음악 선곡에 대한 의견 (출연자 모어)
정말 느닷없었다. [아! 대한민국], [서기 2000년]을 감독님이 하자고 제안했을 때 왜 이런 노래를 하자고 하는지 몰랐다. [아! 대한민국]의 가사를 제가 다시 봤는데 너무 허무맹랑했다. 정말 말도 안 되는 이야기를 하고 있었고 너무 재밌다 생각했다. 그
런데 뮤지션 이랑의 노래나 [아! 대한민국] 같은 노래를 립싱크 하기는 되게 어렵다. 왜냐하면 립싱크 디렉션은 좀 과장되게 해야 하는데 선곡 노래들은 좀 얌전하게 부르는 느낌이어서 어떻게 표현을 할지 고민했다. 그래도 하긴 했지만 어색했다.
[서기 2000년]은 원래 군무로 찍기로 했는데 갑자기 경운기에 저를 앉혀 놓았다. 아무튼 감독님이 저한테 제안한 선곡들이 다 너무 느닷없었다. 저도 사실 특이하다는 말을 많이 듣는데 감독님 역시나 참 특이하고. 그래서 이렇게 영화가 나왔나 하는 생각이 들고 우리가 잘 만난 것이라 생각한다.
(감독 이일하) 사실은 더 그로테스크하고 파격적인 것들도 찍으려고 했는데 예산상의 이유라든지 다른 이슈가 있어서 찍지 못한 것들도 많았다. 예를 들어 멧돼지 박제사에서도 영화를 찍으려고 계획했는데 멧돼지가 잡히지 않아서 찍지 못했다.
Q. 뉴욕 라 마마 극장에서 어떤 공연을 했는지 (출연자 모어)
라 마마 극장은 로버트 드 니로가 무대에 섰던 전설의 실험적인 60년 전통을 이어오고 있고, 뉴욕의 이스트 빌리지가에 위치한 극장이다. 그 극장에서 [13 Fruitcakes]라는 한국 창작 작품으로 스톤월 항쟁 50주년 공연에 초대받아 무대에 섰다.
2019년 6월 프라이드 먼스 동안에는 정말 거짓말 하나 안 치고 공황에서부터 도시 전체가 그 어느 곳도 레인보우가 없는 곳이 없었다. 심지어 제가 그 공연을 하러 가기 전 비자를 받으러 미국 대사관에 갈 때에도 레인보우 깃발이 펄럭이고 있었다.
그만큼 미국이 스톤월 항쟁 50주년에 대한 자긍심을 갖고 있었다. 관련 프로그램이 몇 년 전부터 나오고 있는데 그 중에 [13 Fruitcakes]가 초대를 받아 라 마마 극장에서 공연을 했다. 영화에는 담지 못했지만 브로드웨이에서 존 카메론 미첼과 <헤드윅> 콘서트를 하게 됐다.
Q. 사계절 장면 연출이 두드러지는데 장면 구성에 대한 기획 의도
뮤지션 이랑의 [신의 놀이]라는 곡에 한국의 사계절을 응축했다. 왜냐하면 저의 개인적인 성향인데, 제가 외국에서 살다가 한국에 들어와서 한국의 풍경들이 이질적으로 보이는 것들이 있었다. 그런 이질적인 느낌들을 영화에 꼭 담아내고 싶었고 그런 욕망이 굉장히 강했다.
모어를 보면서 그런 이질적인 것을 담아내고 싶은 욕심이 생겼다고 생각한다. 모어는 자기 스스로도 자신을 모어라고 부르는 사람이다. 털 난 물고기이며, 사회와 잘 융합되기 힘든 자기 자신의 정체성을 표현하는 사람인데 그것을 어떻게 아름답게 표현하느냐 그런 고민을 많이 했다. 그 와중에 어떤 한국적인 풍경과 모어의 아름다우면서도 기괴한 모습이 잘 어울리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영화 처음부터 끝까지 계속했던 것 같다. 그런 이미지와의 어떤 싸움이었다고 할까. 이미지와 음악과의 어떤 콜라보레이션에 대해 생각을 많이 했던 것 같다. 전체적인 플롯이나 그런 것들은 틀이 대략 잡혀 있었다. 촬영을 하면서 영화를 이렇게 끌고 나가면 되겠다는 생각은 어느 정도 했었다. 다큐멘터리 장르가 그렇게 생성되지만 촬영을 하면서 이런 스토리가 되겠구나라는 것은 어느 정도 확신이 있었고 그러면 그것을 어떻게 구현하느냐에 대한 싸움이 좀 있었다고 생각한다.
Q. 다큐멘터리로서는 이미지 컷과 상징적인 장면이 두드러지는데 처음부터 기획된 것인지 (감독 이일하)
처음부터 다큐멘터리를 기획하고 피칭할 때 이 다큐멘터리는 뮤지컬 다큐멘터리가 될 것이라고 말하고 다녔다. 그리고 그런 이미지들을 항상 어떻게 구현을 할지 생각을 굉장히 많이 했던 다큐멘터리다.
기본적인 스토리는 찍어가면서 퇴적이 되는 스토리이다. 맨 처음 이태원 보광동 카페에서 모어와 만나서 인터뷰를 하면서 일생을 들었다. 제가 눈물이 조금 많은 편이지만 그때 눈물을 흘렸다. 그러면서 이런 스토리가 있고 이런 스토리는 이렇게 발전시키면 되겠다는 생각을 했다.
발레라는 소재는 모어에게 뒤에 있었지만 저는 앞으로 끌어와서 스토리화했다. 이 영화를 어떻게 표현할까하면 다른 사람들은 저에게 스타일리쉬하다는 말을 많이 한다. 저는 스타일을 중요시하는 사람 중 한 명이다. 스타일의 영화는 죽었다. 스타일의 영화는 이제 한 물 간 것 아니냐고 말씀하시는 분들도 많은데 저는 개인적으로 그 스타일이라는 것이 굉장히 중요한 요소라고 생각한다.
모어의 사진을 처음 봤을 때 느낀 유혹하는 아름다움, 활활 불타오르는 아름다움에 끌렸다. 그것을 어떻게 표현할까 라는 생각이 <모어>라는 영화를 만들면서 처음부터 끝까지 쭉 있었다. 어떻게 하면 모어가 항상 말하는 아름다움, 육체의 아름다움, 심성의 아름다움, 상황의 아름다움, 처절하면서도 슬픈 아름다움 이것들을 표현할까 (고민했다). 그렇다면 내가 일상을 보여주는 팔로우식 다큐멘터리보다는 음악과 춤을 가미하고 거기에서 여태까지 없었던 어떤 것을 추구하는 저의 스타일은 이 드래그를 세상 밖으로 끌고 나와서 유쾌하면서도 뽕짝 같고 해괴한 그런 쇼를 한번 해보자. 세상을 향해서 탄원서를 한 번 펼쳐보자 이런 생각으로 뮤직비디오스럽고 뮤지컬스러운 스타일을 완성시키기 위해서 많이 노력했다. 처음부터 계획된 것이었다.
Q. 존 카메론 미첼에게 드래그 퀸으로서 예술가로서 영감을 얻은 일이 있는지 (출연자 모어)
라 마마 시어터에서 공연 마치고 존을 만났다. 존이 저를 매일 파티나 공연에 초대해서 친구들에게 소개해주고, 영화에서도 나오지만 타임스퀘어에서 찍은 사진을 보고 친구들에게 저를 자랑했다. 존이 정말 진심으로 나를 좋아하고 자랑스러워하는구나 싶어서 저의 우상이 그러니까 너무 행복했다. 저는 항상 공연 후 객석을 돌아보면 텅 비어있는데 찬란한 순간이 갑자기 확 꺼지면서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 한 100층에서 지하 10층으로 꺼지는 공허함을 느낀다. 뉴욕에 있으면서도 제가 존한테 청승을 부렸다. ‘존, 나는 뼈가 너무 시려워. 뼈 좀 만들어줄 수 있겠어?’라며 잘 하지 못하는 콩글리쉬로 물었다. 존이 ‘넌 방금 애를 낳았을 뿐이야’라고 말해주었고, 그러면서 제가 숙소로 돌아갔어야 했는데 전철역까지 바래다주고 저를 다독여줘서 너무 많은 위안이 되었고 그의 사랑을 느낄 수 있었다.
Q. 화면 상에서 춤추는 모습을 보고 어떤 기분이 들었는지 (출연자 모어)
매번 촬영을 거듭할수록 너무 힘들었다. 왜 힘들었나면 정해진 것이 없는 상황에서 맨땅에 헤딩해야 했다. 엄청난 조명과 스태프가 있는 것이 아니라 감독님과 제가 가내수공업으로 대부분의 현장에서 열악하게 촬영을 했다. 그때마다 ‘현타’가 와서 카메라가 켜져 있고 저는 춤을 춰야 했는데 멍청하게 서있었다. 감독님은 컷을 하고 저는 집에 와서 왜 그것 밖에 못했을까, 나는 왜 이럴까 하면서 매일 울었다. 최선을 다하지 못했고 그것이 고스란히 영화에 나온 것 같아서 영화 속 춤 장면이 부끄럽다. 왜 그렇게 멍청하게 앉아있었을까 후회하고 다시 찍고 싶지만 돌이킬 수 없기 때문에 저는 그냥 가슴을 치겠습니다. 아악!
Q. 올해 제10회 무주산골영화제 아빈 크리에이티브상 수상의 소감 (출연자 모어)
영화에서처럼 누가 드레스 자락을 들어주거나 화장을 고쳐주거나 그런 일들은 벌어지지 않았다. 산에서 들에서 찍을 때 거울도 없어서 어떤 유명한 배우들은 나 못 찍는다고 했겠다. 정말 예쁘게 보이는 것은 생각할 수 없었고 다 포기하고 카메라가 돌아가면 찍어야 했던 상황이었다. 이를 악물고 찍었고 그래서 이번에 무주산골영화제에서 상을 주셨고 보상을 받았다. 감독님께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멍청한 제 자신을 아름답게 담아주셔서 감사하다.
Q. 직업인으로서 ‘모어’를 다루기 위해 특별히 중점을 둔 부분이 있다면 (감독 이일하)
직업인으로서의 댄서를 표현하려고 했다기 보다는 (모어에게) 발레라는 것은 거세된 유년기의 꿈으로 정의했다. 한국의 사회상과 접목시켜서 발레는 제 연출 노트에는 거세된 유년기의 꿈으로 기록되었다. 그 꿈을 소환해서 다시 한 번 이루어보자는 것이 뉴욕에서 토슈즈를 신고 서는 장면으로 해소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직업인으로서, 드래그 퀸으로서, 댄서로서의 발레가 아니라 유년기의 꿈을 다시금 소환하자는 느낌이었다.
Q. 다음에도 영화 촬영의 기회가 있으면 해보고 싶은지 (출연자 모어)
영화가 끝나고 나자마자 만약 다시 영화 촬영 제안이 들어온다면 어떻게 할까 생각을 했었다. 계속 고민해보다가 지금 시간이 하염없이 흘러 개봉을 앞둔 제 심정으로는 한 번 더 할 수 있을 것 같다. 한 번 더 애를 쓰고 한 번 더 피를 토할 수 있을 것 같고 한 번은 더 역작을 남기고 싶다.
Q. 마지막 말씀 (감독 이일하)
여러분들이 신나게 보고 즐기고 체험할 수 있는 영화로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 코로나도 끝나는 시기에 여러분들 와서 스트레스 해소하시고 가시기를 바란다. 많이 보러 와주세요. 감사합니다.
(출연자 모어) 영화 <모어>는 퀴어 영화가 아니고 인간 모어, 모지민의 성장기를 다룬 영화다. 그래서 퀴어 영화로 국한되어 규정되기를 절대 바라지 않는다. 퀴어, 퀴어가 아닌 모든 분들이 꼭 봐야 하는 영화이고 인간 모지민이 얼마나 이 변방에서 애를 쓰며 살아가는가, 얼마나 아름답게 끼를 덕지덕지 하염없이 바르며 살아가는가에 집중해서 보셨으면 좋겠다. 감독님 말씀대로 유쾌하고 재밌는 영화니까 마음껏 웃으셨으면 좋겠다. 무주산골영화제에서 많은 관객분들이 우셧다. 눈물포인트가 많은데 많이 웃고 많이 울고 많이 담아가는 영화가 되었으면 좋겠다. 많이 봐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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